'얼마나'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의 관점이 필요
한동안 팍팍한 살림살이에 잘 살펴보지 못한 세상살이를 둘러보았습니다. 나랏 살림에 대한 이야기, 고용과 임금에 대한 토의, 그리고 라떼와 모카 논쟁까지 말이지요. 나 자신보다 우리의 고민, 세상의 걱정을 함께 나누는 글들을 보고 부끄럽고 미안하고 그런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그다음에는 같은 사안과 문제를 바라보는 모양이 각자의 선 자리마다 참 다르다는 것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인 견해입니다만, 사회 현상과 법행정 제도에 대한 고민과 논쟁은 매우 건강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논쟁이 거듭되고 고민이 거듭되면서 주장 당사자들은 가끔 스스로의 스탠스를 굳건히 하기 위해 자신의 주장 논거를 너무 깊게 파 들어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잘 디뎌 놓으면 되는 '입장'이 자신의 발목, 아니 무릎까지 묻어 놓게 되는 경우가 참 많아 보입니다. 유연해질 수 어렵게 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시선도 낮아져 좁아질 수밖에 없게 됩니다. 자신이 하는 것이 축구인지 야구인지도 모른 체 현상과 수치, 현란한 그래프와 식자의 인용만 그득해 지지요.
최근뿐 아니라 세간에서 뜨거운 논쟁은 '세금'에 대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감세냐 증세냐의 기조적 주장과 부동산과 관련된 소유세와 거래세의 교차 고민도 그러합니다. 특히 이번 윤석열 정부의 '법인세 인하'를 두고서도 찬반 논쟁과 그 의견을 둘러싼 이야기들이 파생되고 있습니다. 법인세가 OECD 회원국 중 어느 수준이다, 실효세를 따져야 한다, 법인세의 가중으로 기업 투자가 위축된다, 극소수 재벌그룹을 위한 부자 감세다 등의 의견들이 제법 그럴듯한 이론과 수치로 서로의 일리 있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묻고 싶은 원초적 질문이 있습니다.
"그 말 많은 '법인세' 내고 계십니까?"
어려운 통계 지표 분석과 이론을 좀 밀어 내고 쉬운 이야기로 시작해 봅니다. '세금'은 무엇일까요? 사회ㆍ국가 구성원으로서 공동체의 안녕과 지속적인 운영을 위한 최소한의 자기 부담이라고 배웠는데, 사실 너무 거창합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더 실감하기 마련이라지요. 영화나 드라마 시장 골목을 떠 올려 봅시다. 일수 가방 옆구리에 끼고 얼룩덜룩 요상한 셔츠 차림의 덩치들이 가게마다 방문하며 '삥'을 뜯습니다.
일종의 '자릿세', '보호세'라는, 치안과 상권 유지에 대한 반대급부이자 비용이라면서 매상의 일부를 걷어 갑니다. 이것이 바로 '세금'의 원초적 모습입니다. 더 재미있는 사실은 이 '세금'의 순우릿말이 바로 '구실'이라는 것입니다. 순우리말로 '맡은 바 책임', '모든 과세의 세납', 그리고 '관아의 임무'라는 뜻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구실(口實)-핑계'와 잘못 사용되는 경우가 생겨 그 순우리말의 쓰임새가 줄어든 것이지요.
세금은 납세하는 내게 이득이 당장 돌아오지 않기에 늘 '아까운 지출'로 여기어지곤 합니다. 그러나 사회적 합의로 공적인 일의 예산을 '재정'이라고 체계화되고 소득이나 재산 등 가치의 상승된 부분에 '과표-과세표준'을 만들어 세금을 부과합니다. 구성원의 총의를 모은 과세표준과 그 납세의 의무 이행을 '조세 정의'라고 하는 것이지요.
세금의 원초적 모습은 '이득'에 부과하는 '소득세'에 있습니다. 이를 기반으로 각종 거래세와 부가세가 파생하게 되었지요. 벌어들인 이득, 소득의 일정 부분을 다시 국가 행정을 위해 납부하는 것은 '국가'라는 거대한 공공인프라를 직간접적으로 사용한 이용료라는 개념으로 보면 경제 논리에도 부합합니다.
다만 그 과세 대상이 개인인지, 아니면 기업이나 회사, 단체인지에 따라 받아들이는 관점과 그 과표의 설정이 복잡해집니다. 우선 개인의 '소득세'는 자연인인 사람 개인이 대상이지만, 법인에 해당하는 '법인세'는 법적 인격을 가진 '법인'이라는 손에 확 잡히지 않는 존재가 그 대상이 됩니다. 여기에서부터 '법인세 논쟁'이 시작하기도 합니다. '법인'은 실체가 아니니까 과세할 수 없다는 주장이 나오는 지점이지요. 그럼에도 불구 현대 조세 개념은 납세자가 아닌 과표에 해당하는 '돈'에 의해 규정되기에, '장부'의 모습으로 정리가 가능하면 그 가상의 인격인 법인에도 과세는 타당하다는 것이 주류의 의견입니다.
다음 차례의 논쟁은 '법인세'의 과표에 있습니다. 법인세는 법인의 이익 소득에 부과하는 '소득세'입니다. 소득은 통상적으로 '이익'을 이야기합니다. 매출이나 매상, 수입 등과는 구분되는 개념이 됩니다. 저녁 6시에 맛집 소개를 하며 '월 매출, 연매출~ 얼마의 신화'라는 소개는 비즈니스의 허상이 됩니다. (물론 쿠팡같이 적자 일변의 상술이 통하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소득세 개념, 특히 법인과 기업의 소득은 벌어들인 재화의 총량에서 외부로 지출되는 비용을 제외하고 '남은 것', 즉 '이윤'이 과세의 지표가 됩니다. 개인의 소득세 과표는 경비성 지출과 외부 비용 추산이 어렵기에 추정 과표를 마련하여 소득금액에 따라 가중치로 이익을 추정하고, 나머지 부분은 '공제'라는 장치를 통해 과표 조정을 합니다.
법인은 법적 '인격체'라는 의미에서 개인의 소득세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법인세는 다른 말로 '법인 소득세'라고 합니다. 기업이나 영리 단체가 벌어들인 이윤에 부과하는 세금이라는 것이지요. 개인과 다른 점은 외부 지출 금액이 장부에 잘 드러나기에, 외부 유출금 즉 지출을 제외하고 남은 '이익금'에 일정 비율 부과합니다. 이번 개정으로 이득의 최고구간 22%를 부과합니다. 개인 소득세는 구간별 차등이 있기에 직접 비교는 어렵지만, 8~45%의 부과되는 소득세율의 평균은 22%에 가깝게 느껴집니다. 제법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윤석열 정부는 생각보다 무색무취하여 정권의 모양새를 판가름하기는 참 어렵습니다. 얼추 'MB정권 시즌2' 정도 된다고 가늠될 뿐입니다. 그 중심에는 "자유"라는 개념이 신념처럼 작동하고 있습니다. 자세히 보면 이 '자유'는 매우 좁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돈 버는 자'의 자유, 그리고 '권리가 있는 자'의 자유로 귀결됩니다. 그 일환으로 앞장세운 정책이 '친 기업' 정책입니다. 솔직한 표현으로 '친 재벌' 정책입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08/0004800317?sid=101
8월까지 누계 국세수입을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우선 기업실적 개선 영향으로 법인세가 전년 동기 대비 27조 7000억 원 더 걷혔다. 소득세도 근로소득세, 종합소득세를 중심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조 9000억 원 늘었다. 소비·수입 증가 영향으로 부가가치세는 4조 2000억 원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사 본문 중-
“다른 나라도 경제 활력을 제고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세율을 내린다.” (7월 25일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기자간담회) 국내 대기업의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를 추진하면서 정부가 내세우는 대표적인 근거가 바로 '다른 나라도 한다'였습니다. 국내의 조세 정책을 해외의 추이로 결정한다는 이야기가 언뜻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조세 정착이 고도화되면서 임의로 세율을 조정하지 않아도 경기의 부침에 따라 공제와 보존, 환급과 추가 징수를 통해 실제 기업환경의 세부담을 맞춘 지 오래되었습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법인세는 예산 세수보다 초과 달성할 것으로 보입니다. 경제가 죽겠다고 아우성인데 법인세 포함 소득세는 더 걷히게 되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익이 큰 대기업 집단과 소득이 많은 사람들이 돈을 많이 벌었기 때문입니다. 팬데믹 시대에 비대면 서비스로 ICT기업, 플랫폼 기업, 소비재 기업, 그리고 정유사, 은행들은 막대한 이익을 거두었으니까요. 그런데, 정부에서 발 벗고 세금을 깎아 주겠답니다. 글로벌 투자 우위가 약해져서라고 하면서 말이지요.
기재부 쪽은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하는 연방 법인세 최고세율 인상(21.28%)도 실현되지 않을 것이라고 일축합니다. 법인세 감세가 국제적인 대세라는 얘기만 앞세웁니다. 그러나 최근 미국 상원을 통과한 ‘인플레이션 감축법’, IRA를 보면 미국 정부는 법인세 최고세율 인상 없이도 10년간 약 340조 원(2580억 달러)에 달하는 대규모 증세를 단행하기로 통과하였고, 이는 정부 국정 수행 지지도의 상승을 견인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다른 나라'이자 경제안보동맹인 미국의 이야기입니다.
글로벌 선진국의 법인세 조세 경향은 '감세'냐, '증세'냐로 판가름되지 않습니다. 최근 각 정부들의 조세 정책은 '조세 정의의 공평성'에 있습니다. 부러 세율을 조정하지 않아도 꼼수와 편법을 지양하고 리베이트와 장려라는 의미로 중점 사업을 진흥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22% 인지 25%인지를 두고 계수하는 정책은 20 세기의 디지털 시대 이전의 손쉬운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산업의 생태계와 글로벌 경영을 고려해 파편화되고 치밀한 조세 정책을 설계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대두되는 것이 '최저세한율'입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래 저래 꼼수로 감면을 아무리 받아도 최소 15%는 내라'는 것입니다.
미국의 경우 막대한 수익을 거두는 플랫폼 공룡들이 '해외 조세특례' 등을 악용하여 기업의 일반 회계와 세무 회계의 구멍을 파고들어 '절세'를 간구합니다. 이 꼼수를 방지하여 실제 영업이익에 최고세율을 부과하겠다는 준칙이 바로 IRA의 재정 예산 근간이 됩니다. 아마존, 구글 등 10억 달러 이상의 영업이익을 내는 플랫폼 기업이 작년에 낸 법인세율은 평균으로 고작 9%였으니까요. 그 하중이 제조업이나 작은 로컬기업들과 일반국민들에게 가중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판단입니다. 그 재원으로 '신재생에너지'등 그린산업에 투자해서 인플레이션까지 잡겠다는 것입니다. 모든 정책의 기저에는 조세 정책이 동반됩니다. 예산 없는 계획은 무의미하니까요.
한국은 약 90만 개의 법인이 법인세를 내고 있습니다. 이 중 35만 개의 법인이 공제를 받고 있습니다. 중소기업이나 제조업은 주로 R&D나 설비투자에 대한 공제를 받는 반면 대기업 집단들은 '외국납부세액공제', 즉 해외에서 내는 세금만큼 공제받는 혜택으로 법인세를 감세받았습니다. 중소기업들 중 25%만이 감면의 혜택을 받았지만, 대기업, 특히 재벌 기업 집단은 거의 모든 법인이 감면을 받거나 신청하였습니다.
현재 세수가 모자라 증세가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물론 집권 초기에 무리한 코로나 손실보존 집행과 외환방어, 주가 조정에 대한 예산이 소비되었지만 중장기적으로 충분히 방어될 수 있는 재정 여력이 있습니다. 무턱대고 법인세 감세를 한다는 것으로 투자 매력이 상승 할리가 없습니다. 아직 유수의 글로벌 기업들은 한국 지사를 기업 공개 가능한 주식회사의 형태로 설립하지 않습니다. 유한회사나 그저 부문 출장 사무소의 개념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법인세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언제든지 정리 가능하게 가벼운 몸집으로 있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지정학적 이유와 근간 산업이라 좋게 말하는 시장 배타적 이기주의 때문입니다. 금융, 통신, 전력, 반도체 등 시장 진입이 불가한 것들이 많으니까요. 이들만이라도 제대로 법인 소득세를 낸다면 국내 기업들의 부담은 한층 가벼워질 것입니다.
법인세를 감세해 주면 국내 재벌 기업들은 감사하다고 투자를 늘릴까요? 그럴 리가요. 기업의 영업이익은 두 가지로 남거나 지불됩니다. 사외 지출이라고 하는 임금, 배당, 출자, 금융이자, 그리고 세금과 사내 유보(보유금이라고도 하지만)라고 하는 현금 보유와 각종 자산이 해당됩니다. 엄밀히 말해 사원수를 늘린다던지 신규 사업에 출자한다는 것은 '투자'가 맞지만, 사옥을 새로 짓고 자사 보유의 부동산을 개발하고 공장을 리모델링하는 것은 사내 유보로 처리됩니다. 최근 현대차 그룹의 삼성동 개발 사업을 '투자'로 인정해 준 것은 기업 회계 준칙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있는 이유가 됩니다. 세금을 덜 내면 '투자'라는 모호한 껍데기로 사내유보를 늘려 기업의 주머니만 늘려 주는 꼴이 됩니다.
기업은 태생적으로 이기적입니다. 착한 기업이라는 말은 영원한 거짓말에 가깝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친 기업'을 표방하는 정부는 명확한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기업이 이윤을 극대화하는 자유의 기반을 주되 이 땅에서 생산된 재화에는 올바른 세금을 걷어 내야 합니다. 세계는 신보호무역주의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자국의 산업과 기업, 그리고 소비자와 국민들을 우선시하겠다는 의지가 강해졌지요. 그런데 해외 투자 유치를 위해 조세와 규제를 느슨하게 해 주겠답니다. 방향이 틀렸습니다. 받을 것은 받아 내고 얻어 낼 것은 얻어 낸 다음에 그들과 결실을 나누는 진짜 '실용주의'가 필요한 때입니다.
감세 국가 대한민국의 선택, 부채 국가인가 복지국가인가? 한국의 국가는 협소한 세수 기반을 선택함으로써 조세를 적게 징수하고 적게 지출한다. 시장에서의 소득 불평등을 재분배를 통해 수정하는 공적 역할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 대신 다수 시민에게 납세의무를 면제해 주었다. 국가는 그들에게 줄 것이 없으므로, 아니 줄 생각이 없으므로 요구하지도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의 조세 징수 권리를 가능한 한 제약하면서 복지국가를 발전시킬 수 있는 제3의 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적 고통을 개인화하는 감세 국가와 부채 국가를 선택할 것인가. 세수 기반의 확대와 세수 증대를 바탕으로 조세 지출이 아닌 국가의 직접적 재정 지출을 통해 재분배와 리스크를 사회화하는 복지국가를 선택할 것인가
-<감세 국가의 함정> 책 소개-
중간에 던진 질문에 자답하자면, 법인세는 '법인'이 내는 것입니다. 그들의 오묘한 세율 조정에 비루하고 팍팍한 우리의 일상이 영향받기는 쉽지 않은 더 복잡한 세상입니다. 그들이 '얼마나' 내는가로 아웅 다웅하기 보다는 '어떻게' 내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꼼수와 편법으로 스스로 '절세'라 우기는 탈세의 경계에 선 세수를 확보한다면, IRA 같은 것이 하나도 겁이 안 날지도 모릅니다. 국내 제조 생산물에 반대급부로 세제 감면 혜택이나 장려금을 주면 되니까요. 미국 세금법을 조정해 달라는 개가 풀 뜯어먹는 소리에 가까운 '외교적 노력' 따위는 필요 없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