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걷고 또 걸었던 날들

웅이가 여니에게

by 박 스테파노

오랜만에 대학 과동문들과 골프모임을 가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전 어설픈 대학생의 모습이 떠 올랐습니다.

군대를 다녀와 복학을 하고 일산에서 신촌 학교까지 갈 수 있는 방법은 좌석버스였는데, 내 기억으로 편도 800원 정도의 비용으로 한 번 승차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나는 나름 나름의 고학생이었습니다. 방과 후에 초, 중, 고생 과외도 하고 틈틈이 이런저런 시급 알바를 하면서 학비와 함께 부친의 부채 이자를 상환하는 그런 복학생이었지요.



월급으로 지급되는 아르바이트비가 몰려있어서 매달 보릿고개를 겪곤 했는데, 낭패는 버스 비용이 한 푼도 남지 않을 때였습니다. 보통 두 가지 경우가 발생하는데, 학교를 갔으나 집에 올 비용이 없을 경우.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껍데기에 소주로 마지막 동전을 탈탈 털고 800원만 억지로 남겨 일산 집으로 가는 막차에 올랐으나, 결국 종점 대화에서 기사님이 나를 흔들어 깨우는 경우였습니다.


학교에서 빈털터리로 남겨진 경우 차비를 한 푼 두 푼 구걸해 모으거나, 친구라는 미명으로 애인과 동침하는 친구 녀석 자취방 한편에 웅크려 자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후자의 경우는 답은 한 가지였습니다. 그냥 걸어서 일산 초입인 장항동까지 걸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이야 아파트 천지지만, 그때는 대화 버스 종점 주변에는 인가나 상가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완전 외지였습니다. 재수가 좋은 날은 귀가하는 막차 기사님에 집 언저리까지 태워 주신 적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냥 걷는 것이었습니다.


이정표도 없고 방향도 가물 한 취중 시골길은 무척이나 어둡고 음산했습니다. 그때 길을 찾는 유일한 방법은 저 멀리 늘어 선 가로등이 빛나는 길을 오른쪽에 두고 걷는 것이었습니다. 그 길은 '자유로'가 분명할 것이고 오른쪽에 두고 걸으면 동쪽으로 가는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어찌어찌 새벽이 다되어 집에 찾아든 그 몇 날 밤이 기억에 참 많이 남습니다.


그렇듯 제게 20대는 죽어도 다시 돌아가기 싫은 그런 시절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이십여 년이 흘러 되돌아본 그때의 내 모습에서 딱 한 가지 거두어 간직하고 싶은 것이 있었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걸어서라도 내 힘으로 가던 그 걸음에 대한 기억입니다.



지금 내가 어디를 걷고 있을까 하고 생각을 해 봅니다.

바닥을 딛고 다시 어느 능선인가를 걸어 올라가는 그 길의 시작 어디쯤이 아닐까 나름의 가늠을 해 봅니다. 최근 몇 개월 동안 그 걸음을 그만두고 싶어 한 적이 꽤 있었습니다. 800원도 없어 걸어야만 했던 그 시절에도 하지 않았던 '포기'를 떠 올렸던 것입니다. 사실 요즘은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형편도 상황도 좋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한 상승세에서 꾸준한 걸음을 약속하지 않은 채 그저 희미해진 '사랑'타령만 하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나의 800원도 없던 시절을 인정해 주던 사람들이 있는 한, 저는 걸어갈 것입니다.

물론 오르막 길이겠지요. 하지만, 언젠가 곧 저 위 넓진 않지만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는 그곳에서 우리 다시 만나겠지요. 그때, 눈으로 웃고 맘으로 울면서 그대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그대들 덕에
내 걸음 멈추지 않게 되어 참 고마워요."


-곰탱이 남편의 어여쁜 아내와 나누는 아침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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