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 스테파노 Nov 03. 2015

오피스 (2015)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공포 - 상실

이미례는 제일 F&B라는 식품회사의 5개월 차 인턴사원이다. 광주에서 줄 곧 지내오다 서울 취업을 위해 인근 교외 지역에 싼 월세방을 얻어 매일 여행길 같은 출퇴근을 반복하고 있다. 익숙해 질만 하지만 늘 출근 시간에 쫓기어 아슬아슬하게 지옥철을 탄다.  가래침처럼 겨우 내뿜어져 플랫폼으로 내려 선  뒤부터는 지각을 면하기 위해 달려야만 한다. 정말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도착한 사무실은 공기가 어수선하다. 지난밤 일가족 망치 살인사건의 범인이 자신이 속한 영업 2팀 김병국 과장이라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부장으로부터 듣는다. 경찰들이 찾아 와 인턴인 자신까지 탐문하여 조사를 하고, 사무실의 분위기는 좀처럼 나아지기 힘들어 보인다. 별 볼일 없는 인턴인 자신에게 늘 관심 있게 친절하던 김병국 과장의 살인의 동기가 무엇인지, 진짜 과장이 살인범인지 깊게 생각해 볼 틈은 없다. 이번 달 말까지 정규직원 채용 심사를 위한 보고서를 작성해 내어야 한다. 5개월 동안 성실히 임하였고 인사부 과장님도 별일 없으면 채용될 것이라 언지를 주었지만, 최근 같은 팀에 입사한 스펙 좋은 인턴 때문에 불안을 좀처럼 떨칠 수 없게 된다.

이미례는 이번 달에 정규직 채용을 결정지을 수 있을까? 김병국 과장이 정말 자신의 가족을 살해한 사이코패스일까? 그리고 그 사라진 김병국 과장은 어디에 있을까?


솔직한 고백으로 공포스러운 영화를 잘 못 보는 편이다. 깜짝 놀라고 급습하는 무서운 감정도 그러하지만, 그러한 감정을 알면서도 겪어 내야 한다는 것이 불편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가끔은 영화보다 더 공포스러운 삶을 생활을 일상을 경험하기도 한다는 것을 이번 영화 <오피스>를 보고 느끼게 되었다. 영화는 공포스럽다. 호러영화나 잔혹 스릴러의 문법은 보이지 않으나 충분히 공포스럽다. 알면서도 겪는 공포라는 것은, 실제 삶 속에서도 그대로라는 것을 말해 주기 때문에 더 공포스럽다.


그렇게 무섭지는 않다 (사진=다음영화)


영화에서 '사건'으로  말하여지는 '살인'의 장면은 사실 그렇게 잔혹하거나 끔찍하게 묘사되지는 않았다. 다만 그 살인의 과정이 사건을 이루는 인과의 설명이 많이 축약되어 엽기적으로 보이는 것이 공포감을 배가 시킨다. 영화의 첫 장면인 김병국 과장의 가족 살인 장면부터 그러하다. 살인의 이유를 말하지 않는다.


여느 때와 같이 축 늘어진 어깨로 가장 김병국은 노모와 처자식이 있는 집으로 퇴근을 한다. 늘 그러한  것처럼 노모에게 인사하고 몸 불편한 아이의 인사를 받는다. 아내가 차려낸 별다를 것 없는 저녁밥상을 깨끗이 비우고 TV 앞에 모여 앉아 과일을 먹는다. 다른 것이 있다면 옷을 갈아 입지 않은 채였다는 것뿐이다.  그때 아내가 '옷 좀 갈아 입지.'하는 소리에 최면에 깨어난 사람처럼 신발장 어딘가에서 망치를 꺼내어 들고 자신의 가족들을 내려 친다. 가족사진에 흩뿌려지는 핏방울이나 망치에 부서지는 뼛소리 보다, 별다른 긴장과 주저 없이 일을 치르는 김병국의 모습이 공포스럽다.


영화의 장르적 공포는 거기까지였다. 다음 장면부터는 영화의 이야기에 사회와 삶의 모습이 겹쳐 보여 주며 공포를 던져준다. 김병국이 끔찍한 살인을 끝내고 숨어든 곳은 다름 아닌 자신의 사무실 '오피스'이다. 여기에서 김병국의 준거적 기준이 어디에 있는가가 드러난다. 칸막이 책상 틈에서 해 뜰 때부터 해지고 한참 후까지 '오피스 라이프'를 경험한 사람들은 아마 공감을 하게 될 부분이 아닐까. 일반적인 샐러리 맨이 하루 중 눈 떠 있을 때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은 바로 자신의 오피스이기 때문이다. '오피스 와이프'라는 개념이 떠돌기도 하듯 오피스라는 공간은 자신의 '집'보다 훨씬 익숙한 장소이고, 편한 장소이고, 아마도 중요한 장소가 되어 있을 것이니까.


20년 넘은 오피스 라이프를 경험하면서 비슷한 생각을 많이 하였다. 일에 치이고 상사의 눈치에 밟히고 위아래 좌우에 동료인지 경쟁자인지 알 수 없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공간이기는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공간은 매우 소중하고 편한 공간이다. 이따금 휴일에 잔업을 핑계로 가족의 부대낌을 피해 오피스로 피난을 오던 기억도 난다. 편하게 책 한 권 읽을 수 있는 공간이었고, 텅 빈 회의실에서 밀린 영화를 오롯이 감상할 수 있었던 공간이기도 하였다. 이런 공간은 분명 샐러리맨에게 중요한 준거적인 의미를 주고 있을 것다.


이런 생각을 하는 틈에서 영화에서는 자세히 설명되지 않은 김병국 과장의 사건에 대한 동기와 이유를 가늠어 볼 수 있었다. 그는 가장 중요한 공간인 오피스를 떠나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여 견딜 수 없는 절망을 느꼈을 것이다. 세상 모든 것을 잃었다 생각했을 것이다. 되돌릴 수 없다면, 그렇게 만든 사람을 가만 둘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결심했을 것이다. 자신을 해고한 사람들과 자신을 업신여기고 따돌린 사람들을 죽이고 자신도 자살하려고. 그러기 위해서는 사후에 걸림돌이 되는 가족부터 정리하는 것이 순서처럼 보였을 것이다. 가족들에게 가장은 중요한 존재이지만 그것은 그가 오피스에서 일할 수 있는 그때만 그러할 것이라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회의는 깨는 시간이 아니다 (사진=다음영화)


영화가 진행되면서 사건을 일으킨 주체가 김병국 과장이라는 확신에서 다른 사람일 수도 있다는 의심으로 변하게 된다. '오피스'라는 공간에 대한 준거적 집착이 가장 적을 것 같은 인턴 사원 이미례에게 김병국 과장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팀원들이 점심시간 따돌리는 장면에서 더욱 확연하게 보인다.


정작 이미례의 눈엔 김병국 과장이 그저 좋고 착한 사람일 뿐이다. 자신은 그런 사람보다 일 똑 부러지게 하는 홍대리나 자신의 인사권을 쥐락펴락하는 부장의 눈에 들고 싶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녀에게서 이미 김병국 과장의 모습을 본다. 김병국 과장도 그러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미례 본인도 부정하고 싶지만 결국 그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런 시점에서 '회사'라는 공간에 대한 많은 생각이 들게 되었다.


직장은 중요한 곳이다 (사진=다음영화)


내가 졸업하던 때는 IMF사태라는 국가적 숙제를 안고 있었던 시기였다. 20여 차례의 면접을 보러 다니면서 청계천 변을 걸으며 높이 솟아 오른 빌딩들을 보면서 생각하곤 했다.


'저기 많은 창들 만큼 많은 회사가 있을 것이고, 그 만큼 많은 사람들이 있을 텐데... 내가 앉을 책상은 어디에도 없는 것 같구나.'


국가지원 인턴제라는 것을 시작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몇 번의 이직으로 하고 한해 한해 하루살이의 마음으로 직장생활을 이어 왔다. 늘 자리와 위치에 대해 고민을 하였고, 동료들의 빠른 승진에 분통이 터지기도 하였으며, 해결할 수 없는 미션으로 압박하는 상사의 주문에 달리는 지하철 앞으로 뛰어 들고  싶어질 때도 있었다. 누가 보면 욕할 수도 있으나 스스로 생각하기에 그리 튀지 않는 스펙에 흔하디 흔한 영어 어학연수도 못 다녀왔고, 중소기업 인턴으로 시작하여 미미한 경력으로 신입 공채 동료 후배들과 섞여 지내야 했다.  


그때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누구보다 열심히 하는 것 뿐어었다. 그러나 그 열심히 한다는 것은 어쩌면 스스로 자격지심에 대한 고백이 되어 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직장 상사 보스의 18번 레퍼토리일 수도 있지만, '열심히 하는 것은 알겠지만 결과가 안 나오잖아.'라는 질책은 정말 괴로운 것이었다. 영화에서 화장실에서 울고 있는 이미례에게 선배가 건네는 이야기도 다르지 않았으니까.


"미례 씨 너무 열심히 하지 마. 대충 대충 설렁 설렁 그렇게 하는 거야. 너무 열심히 하면 티나. 무언가 부족해서 감추려고 저렇게 열심히 하는구나 하고. 알겠지?"

그렇게 열심히 아웅다웅 바둥대면서 지키고 싶은 것은 바로 자신의 공간, 그저 미팅 준비를 위해 복사하고 스테이플러를 각 맞추어 찍어 내는 그런 일을 하더라도 내 책상과 의자가 있는 공간, 오피스였을 것이다. 만년과장 김병국에게도 지방대 출신 인턴 이미례에게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누군가 그러한 공간을 빼앗어 낸다는 것은 당사자에게 끔찍한 일이 되어 버린다.


정치적 사회적 관심을 최소화하는 요즘이다. 하지만, 요즘 노사 합의니 취업대책이니 노동 유연화니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울컥 대었다. 그저 기묘한 숫자로 오묘한 표현으로 취업과 해고, 정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그것을 대의적 관점이라는 해석으로 관철시키고 있다.


하지만, 일자리라는 것은 어쩌면 한 사람의 월급을 주고 안주고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자신에게 소중한 공간 '오피스'를 잃은 사람들은 어쩌면 모든 세상을 잃은 것 같은 절망을 맞이하게 되고, 현실적으로도 희망 없는 삶을 살아 갈 수밖에 없다. 그런 삶을 선택하느니 더 이상 부양할 수 없는 가족을 보내고, 그동안 꾹 눌러 참았던 사람들에게 복수의 칼을 겨누는 것은 범죄의 합당성을 떠나 공감할 수 있는 마음이다.


엽기적이고 비현실적인 것만 같은 공포영화, 하지만 이 공포영화가 공포스러운 것은 사건의 잔혹함이 아니라 사건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상실감이 너무나도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소중한 내 '공간'의 상실은 빼앗긴 사람에게도 그 주변 사람 모두에게도 공포스럽다.


사진=다음영화


매거진의 이전글 사도 (2015)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