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신규 원전 수주 실패로 체코 원전의 신기루
대통령의 체코 순방의 성과에 대해 논평이 갈린다. 매번 갈리는 논평이지만 미디어와 언론의 판단이 조금 더 부정적으로 기운 것도 사실이다. 윤석열 정부는 '원전 수출'에 사활을 건 듯해 보인다. 다른 정책이 실질 작동하지 못하기에 보여 주기 식의 '수주 성과'로 여러 실책을 덮으려는 속셈으로 보인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1159207.html
그리고 원전 수주는 1) 진보 정권의 탈원전 에너지 정책에 대한 전면 비토 2) 비토를 통한 전정권 압박 및 탄압 3) 기득권의 전통적인 화수분이었던 토건 세력의 부흥 등의 정무적 판단도 가미되었을 것이다. 에너지 산업 환경에 역행하는 판단을 뒤로하고, 또한 현지 기업에게 60%를 토해 놓는 조건을 옆으로 밀고 서라도, 한국의 원전 수출은 사실 남을 것이 하나 없는 밑지는 장사라는 것이 산업 비평가들의 판단이다. 그 판단의 이해를 위해 언론이 외면한 2022년 폴란드 원전 수주 실패에 대한 내막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https://naver.me/GOQjDdU7
한국 수력원자력과 미국의 웨스팅하우스가 수주 경쟁을 벌여온 폴란드 원전 사업의 1단계 사업자로 미국 업체가 선정됐습니다. 최근 웨스팅하우스가 한수원을 상대로 원전 수출을 금지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는데 이 소송이 영향을 미친 건 아닌지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2022.10.29 MBC뉴스데스크 리포트 중-
2022년 수주 직전처럼 기대했던 400억 달러 규모의 폴란드 원자력 발전 1단계 사업이 미국의 회사(웨스팅하우스)로 넘어갔다. 그 수주 실패의 배경에는 한국을 상대로 낸 '소송'때문이 아닐까 하는 평가가 잇따르고 있다.
웨스팅하우스가 한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배경은 '배신의 낙인'이 있다. 과거 한수원은 웨스팅하우스와 해외시장 공동진출을 추진하고 공동 수주를 벌였다. 그 과정에서 'APR1400'은 미국 정부의 수출통제 대상이라는 사실을 한수원이 여러 차례 인정해 버린 것이 발목을 잡은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 APR1400이란?
한국형 3세대 가압경수로 노형. 신한울 1호기에 적용. APR은 국내에 신고리 3,4호기가 가동 중. APR1400은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로부터 설계인증을 받음(미국의 원천 기술 라이선스).
신한울 1호기는 핵심 설비인 원자로 냉각재 펌프(RCP)와 원전계측제어시스템(MMIS) 등을 국산화해 기술자립을 한 국내 첫 원전.
지난 10월 29일 자 전기신문 기사(https://www.elec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310597)에 따르면, 16쪽 분량의 소장 전문에 걸쳐 웨스팅하우스는 한국형 신형 가압경수로 APR1400의 판매는 "미국 연방규정집(CFR) 제10장(Title 10) 제810절(Part 810)에 따라 미국 에너지부의 승인 대상"이라고 주장한다.
미국 연방규정 제10장 제810절은 특정 원전 기술을 수출통제 대상으로 지정해 외국에 이전할 경우 에너지부 허가를 받도록 강제하고 있다. 미국 기업의 기술을 이전받은 외국기업의 재이전에도 똑같이 적용한다는 규정도 포함되어 있다. 미국이 원천 기술을 가진 원자로 기술은 미국의 통제하에 있는 '라이선스'의 성격이라, 적성국이나 오교적으로 통제되는 국가 '등'에 수출할 때는 미국 행정부의 승인이 있어야 한다는 규정이 수출을 가로막은 것이다.
사실 이와 같은 일은 새로운 케이스가 아니다. 에너지 부문뿐 아니라 전 산업에 걸쳐 '기술 종속'이라는 불평등하고 강제적인 규칙이 민간사업 영약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미국이 정한 교역 금지국, 엠바고 국가, 그리고 테러 적성 국가에 미국의 기술이 원천을 이루는 경우 원칙적으로 판매 인도가 금지되며, 예외적으로 미국 정부의 승인과 감독하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계약조항이 있다.
가장 쉬운 예가 컴퓨터, 서버, 스토리지, 통신장비 등의 정보통신 장비이고, 이 장비들의 핵심 부품과 기술은 거의 대부분 미국의 것이다. 예전에 중국의 민간 기업이나 시리아 등 전자 정부 거버넌스 시스템 등 수주를 하고도 미국의 CPU와 소프트웨어가 탑재된 하드웨어를 인도하지 못했던 경험이 아주 유사하다.
웨스팅하우스는 한수원이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는 입장이다. 그 기술을 APR1400 및 APR1000에 사용했다는 주장이다. 그렇게 정부가 자랑하던, 국산화된 원자력 기술의 핵심기술은 정작 미국의 것이라는 사실도 드러난 셈이다. '한국형'이라고 붙는 대부분의 사업의 현실이 또 드러나 씁쓸하다. 슈퍼컴퓨터, 서버 시스템, 그리고 민주주의.
중요한 것은 미국 법원이 APR1400 및 APR1000 원전 설계를 810절에 따른 수출통제 대상 기술로 판정하게 되는 경우나 기술 정보 제공 금지를 내리는 경우다. 현재 정부의 주력 정책으로 한수원이 원전 수출을 추진하는 폴란드, 사우디아라비아와 체코에 제안하고 있는 원전 수주가 사실상 무산이 되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기 일보 직전이다.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은 이유는 한수원과 한전이 APR1400에 대해 웨스팅하우스로부터 라이선스를 받은 기술이라고 스스로 인정한 점이다. 또한 수출통제 대상에 대해 인지하고 있음을 과거 여러 차례 인정했다고 밝혀지고 있다.
웨스팅하우스 소장에 따르면, 웨스팅하우스와 한수원, 한전 등 3사는 해외시장 공동진출을 위해 사업협력 계약을 맺은 바가 있다. 이어 2012년 UAE에 APR1400을 수출하는 과정에서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의 표준설계(DC)를 획득하기 위해 라이선스 및 컨설팅 서비스 계약을 체결했다. 이들 계약엔 APR1400이 제810절에 따른 미국 에너지부의 수출통제 대상이라는 점이 명시돼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과거 UAE에 원전을 수출할 때 한전은 미국 에너지부로부터 APR1400의 판매를 승인받아 진행한 전례가 있다. 당시에는 협력관계였던 웨스팅하우스는 한전이 제공한 APR1400의 기술 정보를 토대로 미국 에너지부에 승인을 요청해 주기도 했다. 이것이 발목을 잡는 것이 된 것이다. 같은 논리라면, 웨스팅하우스의 입장에 따라 폴란드와 체코, 사우디아라비아에 원전을 수출할 때도 마찬가지 절차를 반드시 걸쳐야 하는데, 자신과 경쟁관계일 때는 승인 요청에 협조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역시 미국 녀석들 다운 생각이다.
UAE 원전 수출 당시에는 한국 원전이 기술 자립을 이루지 못한 상황이라 웨스팅하우스와 타협을 했을 뿐이고, 기술 자립에 성공한 현재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반론도 원자력계를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그 기술자립이 '원천 기술'은 여전히 라이선스에 묶여 있는 것이 아니냐는 한계론이 우세하다. 그리고. 웨스팅하우스의 지배 자본인 모기업은 '도시바'다.
과거 웨스팅하우스에 기술 자문료는 물론 증기 터빈을 포함한 기자재를 당시 웨스팅하우스 모회사인 도시바에 하도급을 주는 형태로 타협해 미국 에너지부의 승인을 받았다. 몇 차례 웨스팅하우스와 합의한 내용이 있는데 무리하게 독자 수출을 추진하다 발목을 크게 잡힐 수도 있다.
-전기 신문 기사 인터뷰 중-
미국이 폴란드 원전사업을 수주하고, 웨스팅하우스가 소송에서까지 이기면 한국의 독자적인 원전 수출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것은 이번 결과가 나오기 이전에도 전망된 이야기다. 또한, 일부에서는 한국산 전기차를 세액 공제 대상에서 제외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제정 이후 2라운드가 시작되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원전 수출이 한국과 미국의 또 다른 갈등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는 배경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5월 정상회담에서 제3 국 원전시장 진출 등 원자력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한 바가 있다고 대통령실은 강조했다. 그리고 지난 유엔총회 시 48초 환담, 지난주 G20에서의 1분간의 회담에서도 '경제 안보 동맹'을 굳건히 했다고 자화 자평하였다. 그런데, 미국은 위에 말한 갈등의 상황이 오면 '민간 기업의 자율적 의사결정'이라고 둘러 대면할 말이 없어진다. 바이든 대통령은 중간선거 결과적 선전 뒤에 자신의 업적, 치적을 SNS에 열거한 포토카드를 게시했다. 제일 처음 나온 것이 'Inflation Reduction Act'바로 IRA입니다. 자신의 최고 치적은 우리에게 뒤통수가 되었다. '동맹'이라면서.
흔히 '기술 권력'이라 이야기들 한다. FAANG로 대표되는 미국의 빅 테크 기업들과 카카오ㆍ네이버ㆍ쿠팡 등 한국의 유니콘 공룡 독과점식 기업의 무소불위의 입지를 비판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기술'의 본연은 없다. 비즈니스 모델이 거품처럼 혁신 기술로 인지되는 것이다. 빛나는 앞면에 가려 그 뒷면에 진짜 '기술 권력'을 우리는 간과하는지도 모른다.
삼성이 파는 모바일 중 상당 비중은 통신칩 원천 기술을 가진 퀄컴에 상납하고, 원전은 웨스틴 하우스, 벡텔, 제너럴 일렉트릭 등의 기본 라이선스가 필요하다. 반도체도 기본 설계도 기술 비용이 지불되고 마진이 적은 메모리만 찍어 내고 있다. 일기예보 기상청 슈퍼컴퓨터는 미국, 대만, 일본의 기순들을 차용하거나 그대로 가져다 쓰고 있으며, 한국의 내연기관 엔진은 일본의 미쓰비시에게 매년 막대한 기술 라이선스 피를 내고 있는 실정이다.
'기술 권력'은 이런 것을 말한다. 사우디 왕세자나 그 할아버지가 와서 양해각서를 수십 개 작성한들 수주의 걸림돌은 늘 '미국'의 논리가 작용하기 십상이 되었다.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 내일을 준비해야 할 중요한 시기다. AI, 코딩, 메타버스, NFT 같은 마케팅 슬로건이 아닌 진짜 기술을 보유하는 것이 '기술 권력'이 아닐까 한다. 이번 사건을 보며 혀를 차기보다, 좀 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방안의 도모가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