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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 스테파노 Aug 27. 2024

'신디사이저'를 아시나요?

AI가 예술을 한다고? AI와 예술, 그리고 윤리

유사 업계에 있다 보니 여러 가지 한계적 요소가 눈에 띄었지만, 대체적으로 '기계의 침습'은 인류가 두려워하는 '아포칼립스'의 대표적인 상상이 아닐까 싶다. 몇 해 전 어느 플랫폼에서 AI의 침습에 대한 생각을 나눈 적이 있다. 그때 여러 이야기를 다양하게 나누었다. 특히 '일자리'에 대한 두려움에 대해서였다.



"일자리 위협" 가장  이유는 '기술' 아니다

기계나 컴퓨터의 위협이 시작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인류 존재 근간을 위협하진 못해도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하고 그 일자리를 대용할 수 있다는 두려움은 현실적이지요. 그러나, 일자리의 감소는 인공지능이나, 로봇의 등장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들을 현장에 접목하려는 필요와 수요에 의해 그러합니다. 바로 최적화(optimization)에 대한 욕구입니다. 자본가와 기업가에겐 "전가의 보도"가 된 지도 오래입니다. 시간과 노동의 손실ㆍ유휴를 없애고 효율을 극대화해야 "돈"이 벌리니까요.

그러나, 결국 이 모든 것들에 대한 미래는 사람의 몫이 될 것입니다. 사람이나 인공지능 컴퓨팅이나 미래에 대한 조망은 가능하나 직접 목도할 수는 없는 일이지요. 미래를 예측하는 일은 미래를 만들기 위한 효용적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내일은 사람이 만들어 가는 그 길 위에서 현재와 과거로 실재될 것입니다. 이런 방향성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어쩌면 그 먼 옛날 바벨탑의 교훈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마다의 각자의 생각의 말들이 더 우리를 두렵게 만들고 결국 또 편 가르기의 도구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것은 '섭리'를 대신할 자는 없다는 것이지요.

-<디지털이 뭐길래 -박 스테파노> 본문 중-


흔한 이야기들을 접하다가 오늘 미술계, 소설, 웹툰 창작에 AI가 들어 서기 시작했다는 인터뷰에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기술'은 늘 인간의 효율을 돕기 위한 도구로 탄생되고 쓰였을 텐데, 그 기본적인 목적에서 벗어난 점유와 침습이 과연 가능할까, 이런 생각들 말이다. 가벼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전자음악'이라는 영역에 이르게 되었다. 전기와 전자기기를 활용한 대중음악의 창작 환경은 과연 '기계의 도움일까?' 아니면, '기계의 침습일까?'



신디사이저와 전자음악, 닭과 달걀의 관계


신디사이저는 '신스', '키보드'라고 약칭되는 대중음악의 필수 악기다. 영어 synthesizer를 보면 아시겠지만, '종합하다', '합성하다'라는 의미가 들어간 악기 형태의 전자 기기를 말한다. 여러 주파수나 파형의 소리를 합성해서 새로운 소리를 만들거나 변조를 해 주어 사용자의 편의와 창작을 도와주는 악기로 자리 잡고 있다.


초창기 신디사이저, 사진=Wallpapertip.com

역사를 따지면 전자음악을 위해 신디사이저를 발명한 것이 아니라, 신디사이저를 위해 전자음악이 태어났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획기적인 새로운 음악의 시대를 연 장본인이다. 역사는 1800년대로 거슬러 올라 가지만 지금의 신디사이저의 모습은 1960년대에 등장한다. 전기의 도움을 받는 악기는 이미 등장했었다. 전기 기타가 마이크의 증폭 원리로 탄생했으며, 지금의 일렉 기타로 진화했다. 그러나 전기 악기의 탄생을 '전자음악'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신디사이저가 탄생하고서야 비로소 음악에 전자기기, 컴퓨팅 기술이 도입되었다.


MIDI 같은 컴퓨팅 기술과 접목되어 풍성하고 다양한 소리를 만들어 내어 현대 음악의 필수 요소가 되었다. 음악인들 우스개 소리로 98%는 신디사이저가 하고, 2%만 인간의 영감으로 채우면 된다고 하니까. 기본적인 건반악기부터, 현악기, 관악기, 그리고 드럼 비트까지 웬만한 음악은 이 악기 하나로 다 커버가 되는 게 사실이다. 실제로 우리가 잘 아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은 실제 악기가 아니라 신디사이저들로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하기도 한다. 한국에서의 초연도 그러했는데, 당시 신디사이저인지 관현악단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신디사이저의 천재 뮤지션 Francis Rimbert – Bionic Orchestra, 사진=Diacogs

기계인 신디사이저는 인간의 창작을 도운 것일까, 아니면 인간의 영역을 침습한 것일까? 참 오묘한 선문답이 될지도 모는다는 생각이 든다. 소리의 합성과 종합, 시간적인 단축과 공간의 절약, 그리고 인건비의 절약이라는 실질적 효율에 더해 새로운 소리와 장르의 탄생, 그리고 실험과 한계의 돌파라는 예술 본연의 영역을 도운 것은 틀림없다.


반면, 기존 리코딩 오케스트라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리코딩 공간도 집구석에서 가능할 만큼, 리코딩 스튜디오나 엔지니어들의 수익을 가져간 것도 사실이다. 증폭되고 과장된 주파수와 음색에 귀가 길들여져 인간의 고유한 자연 그대로의 음악, 악기의 연주는 시장이 좁아졌다. 예를 든 <오페라의 유령>의 경우에도 십여 명의 키보드 연주자가 수십 명의 오케스트라를 대신했으니까. 이것만 본다면 일종의 '일자리 역습'이 맞을 듯하다.



기술과 예술, 창작은 절묘한 동행이 필요해


기술은 인간의 편리에 대한 욕구로 계속 발전한다. 도구를 만들고 고도화하는 것이 호모 사피엔스의 가장 큰 특징이니까. 그 기술 발전에 대한 격차는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그 첨단에 AI, 인공지능의 기술 시대가 다가오고 편익을 도모하기 위해 일상에 들어서고 있다. 기술 소비자로서는 환영 일색이다.


반대로, 그 기술이 반갑지만은 않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산업 기술에 영향을 받는 직종부터, 법률 서비스에 각종 전문직까지 일자리의 위협을 받고 있다. 그리고, 예술과 창작의 영역에서도 그 침습이 실제 하는 두려움이 되고 있다. AI가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음악을 만든다니. 말세가 온 것 같은 생각이 들것이다.


만화는 그리는 게 아니다, 사진=한겨레


 두려움을 덜어 줄지도 모르는 상상을  본다. 웹툰과 일러스트를 그리는 작가들은 어디에 작업을 할까?  스케치북, A4용지나 연습장이 아닐 . 대부분 드로잉 파드와 태블릿을 이용하여 '전자펜' '키보드' 오가며 작업을  것이다. 거기에 더해 부수적인 컴퓨터 프로그램, 소프트 웨어를 사용한다. 와콤 태블릿에 클립 스튜디오 페인트를 깔고 작품 활동을 한다. 겁나 편하고 효율적이다. 대중문화,  컬처의 효능에는  '기술' 힘이 있다.


그러는 동안 만화 작업은 여러 명의 도제 문화생들의 열정 페이는 사라지고, 일인 작가도 성공하는 시대가 되었다. 반면, 문하생이나 출판 인쇄소의 일자리는 줄어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세로 본능' 스마트 폰의 보급으로 웹툰 시장은 급격히 늘어났고, 도제 문하생들은 바로 작가 데뷔가 가능해졌다. 모든 일에는 이와 같이 음과 양이 존재한다. 그것을 '섭리'라고들 부른다.


그 옛날 문하생들, 사진=다음 부동산


기계와의 동행은 불가피한 시대가 되었다. 신디사이저의 탄생이 대중음악을 기계가 대처했다는 것보다는 더 새롭고 풍성한 결과물을 생산해 놓은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결국 기술도 인간의 창작물이니 서로의 조화와 슬기로운 조합은 분명 새로운 창작의 시대를 만들어 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모두의 지혜가 필요한 이유가 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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