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일즈의 비기; 먼저 주어라. 그러면 크게 얻을 것이다
어릴 적 모친은 '절약'을 몸소 실천하시던 분이었다. 그 절약의 이유는 그 어린 시절부터 가늠되고 이해할 수 있었다. 집안에 돈 버는 사람이라고는 사우디아라비아 열사의 땅에서 달러를 벌어 오시던 부친뿐인데, 밥상에 앉은 입들은 조부모, 두 형제, 둘째 시누이와 그 세 아이들, 출가 안 한 막내 시누이에 시동생, 그리고 이따금 강원도 태백에서 상경하는 만년 구직생 둘째 시동생까지. 아껴도 아껴도 쌀독은 금세 축나고 말았으니까. 그 푸념을 하루 종일 집에서 지켜보던 막내의 눈은 어른과 동기화되고 말았다.
그러다, 모친의 수완과 절약이 보태어져 어느새 동네의 알부자가 되고 아파트도 여러 채, 빌딩에 세를 놓는 집의 아들이 되어있었다. 십 년 만에 만든 달동네의 기적이었다. 그런데, 모친은 여전히 구두쇠였다. 스크루지 영감이 환생한 것일지도 모른데 생각이 들었다. 옷은 매번 "네 때는 쑥쑥 크니까"라는 이유로 두세 치수 큰 옷을 접어 입고 다녔고, 용돈은 주급으로 2~3천 원 씩을 받았는데, 그것도 '용돈 출납부'를 작성하고 통과해야 가능한 일이었다.
다 견딜만했는데, 유독 부끄러운 순간이 있었다. 백화점 나들이가 그것이었다. 재래시장은 물론 동네 슈퍼에서도 당시에 '에누리'가 가능한 때였다. 모친은 입버릇처럼 "깎아 주세요"로 마무리 멘트를 맺었다. 그런데, 문제는 백화점에서도 마찬가지라는 것. 머리가 커질 무렵 모친과 함께 나서는 백화점 길은 늘 화끈대는 부끄러움이었다. 어느 날인가 백화점 의류코너가 세일에 들어갔다. 20~30% 세일이라는 팝업 문구가 크게 붙여 있지만, 모친은 아랑곳없이 '에누리'를 요구하셨다. 참다가 모친에게 내가 "세일한다 잖아요, 어머니~!"라고 하자 모친이 가르치 듯 말씀하셨다.
세일 가격이 모름지기 정상 가격이란다.
아들아.
세상을 돌아보면 '에브리데이 세일 중'이다. 백화점, 대형마트는 정기세일, 특별세일, 명절세일 등 숱한 세일 행사로 달력을 가득 채우기 마련이고, 편의점에서도 할인가격이나 1+1 행사가 연중 시전된다. 오프라인뿐일까. 온라인은 더 점입가경이라고 할 수 있다. 할인가가 아닌 정상가격에 구매를 한 경험이 얼마나 될까. 온통 특별히 나에게 제시된 가격에 크릭을 기쁘게 하곤 했었다. 그런데, 그렇게 구매한 가격은 정말 '이득'이 된 것이었을까?
한 때 <Consultative Sales(컨설팅적인 영업)>라는 실라버스로 경영대학원과 기업들을 돌며 강사 일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중 중간 과정이 "협상의 기술(Negotiation Skills)"이었다. 보통 협상은 '제안(Offer)'과 '요청(Request)'의 연쇄 반응으로 진행된다. 제안이란 "내가 당신에게 이런 혜택을 주겠소"라는 식의 의견이고, 요청은 "나는 얼마에 사고 싶습니다"라는 양태의 의사표현이 된다. 이것을 역할을 나누어 '역할극-roll playing'을 진행하며 수업을 진행하는데, 재미있는 것은 '요청자' 보다 '제안자'가 더 많은 이득을 보는 결과를 보인다는 것이었다.
https://blog.toss.im/article/cognitive-money-2
생각보다 흔한 이론이다. 좋은 협상가가 되기 위해서는 상대방에게 요구할 것을 우선 정리하지 않고, 내가 내어 줄 수 있는 한계를 정리해야 한다. 그것이 '앵커링 이팩트'의 효능이 된다. 영리한 소비자가 되기 위해서는 제시하는 가격에 흔들리면 안 된다는 것이다. 자신의 기준에서 채정해 놓은 '최적 가격'을 먼저 구성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람의 심리라는 것은 내려진 닻처럼 이미 인지되어 버린 가치가 기정사실처럼 각인되고 만다. 어떠한 경우이든 협상에서 가격표를 먼저 뒤집는 일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B2B IT업계의 '가격 정책'은 비논리적이다. 보통 리스트 프라이스라는 견적가격을 들고, 할인율(디스카운트)을 적용하여 고객이 혜택을 보는 듯한 착시를 일으킨다. 통상 50~70%를 DC 해 준다. 어떤 경우 경쟁이 치열한 저마진의 제품의 경우 95~98%까지의 디스카운트를 제안한다. 100억짜리 견적이 2~5억이 되는 일이니 이는 이득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 제품들의 원가는 얼마일까? 진짜 시장 가격이 리스트 프라이스일까? 그럴 리가 없다.
모친의 말씀 중 진리가 있었다. 할인이나 세일의 목적은 예전에는 재고의 정리나, 매출의 상향 유도, 아니면 진심 가득한 고객 대우였을지 모르지만, 지금의 '할인 가격'은 그 자체로 판매자에게 이득이 가득한 거품이 끼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소비자가 혹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는 이유는 판매자가 먼저 '제안'을 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비자는 그저 요청없이 수락하게 되는 것. 이것을 '상술'이라고 하고 좀 더 포장하면 '영업의 기술'이 되는 것이 아닐까.
모친의 에피소드와 앵커링 이팩트를 이야기하는 것은 위리가 얼마나 호구인지 자책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기업이나 개인의 경제활동 중 가장 중요한 요소를 '영업-세일즈'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우리는 일상에서 흥정하고 협상하니까. 무엇이 되었든 다니엘 핑크의 말처럼 "파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이다.
흔히 영업을 가장 하찮고 비루한 직무라고 여기기 마련이다. 나 또한 기분상 꽤 오랜 시간 주저한 기억이 있고, 당시는 결국 홍보팀에서 사회 첫 커리어를 하게 되었다. 그 후 영업과 세일즈 마케팅, 영업관리에 대한 비즈니스 컨설팅으로 20여 년의 커리어를 쌓게 된 것은 인생의 역설이 되었다. 이렇듯 여전히 "영업직"은 쉽게 선택하기 어려운 커리어가 되었다. 특히 한국에서 말이다. 그런데, 또 다른 역설처럼 지금과 같은 취업절벽에 구인난을 겪는 분야가 영업이라는 것은 비밀 아닌 비밀이 되고 있다.
기업의 활동에 있어서 영업은 중요한 영역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그 ‘영업’이라는 것을 제대로 알려고 하는 사람 역시 많지 않다. 그래서 영업은 사회에 진출하는 신입사원이 쉽사리 선택하기 어려운 영역이 되었다. 그 이유는 실제로 영업의 행위가 어려워서 일 수도 있으나 다른 기업활동에 비하여 연구결과나 제대로 된 지침서가 없어서 이기도 하다. 산업이 발달하고 기업의 활동들이 다변화되면서 기업활동의 주요한 영역들은 수많은 혁신과 연구 끝에 시간 축과 정비례하여 발전되어 왔다. 제조업만 하더라도 연구개발, 제조, 관리의 영역은 이전 10년은 물론 5년 전의 이론이나 방법론으로 대처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그러나 영업활동은 10년 전은 물론이고 50년 전, 아니 어쩌면 한 세기 이전의 방법론이 크나큰 진화와 변모없이 현시대에도 적용되고 있다. 회사의 방향과 목적을 설정하는 전략의 영역만 보아도 확연하다. R&D 전략, 생산기술전략, 경영관리의 전략들은 매년 갱신되다 못해 연중에서 수정과 정렬을 거듭하게 된다. 그러나 영업분야의 전략은 마치 오래된 시골 교회 목사의 흔한 설교와 다르지 않아 보인다.
착하게 살고 열심히 기도하면
천당에 갈 수 있습니다.
이제 하직을 얼마 두지 않은 노인들이나 막 개종한 사람들에게는 유효한 설교가 되겠지만, 젊은이들이나 아직 교인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현실감 없는 추상적인 설명일 뿐이다. 그래서 영업이라는 것이 ‘전략’과 마주하는 순간 배다른 자식 같은 ‘마케팅 전략’으로 변모되고, 그 전략은 ‘수립’은 있으나 ‘실행’이 없는 그런 껍데기로 남을 확률이 지대하다.
글값 논란에 이어 어느 플랫폼 필진을 '영업'하여 모셔왔다는 운영진의 이야기를 듣고 어이가 없었다. 최초의 포스팅은 '영입'이었으나, 그 영입이 공식화되면 '공모'를 내세운 마케팅 피치가 가짜가 될 수도 있기에 단어에 점하나 찍어 스스로 '언어의 유희'를 했다는 뿌듯함도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영업"이 '영입'보다 가볍고 하찮은 활동이라는 인식에 반대의견을 내고 싶었다. 이 사회에서 치열하게 팔고 사는 모든 이들의 치열한 '영업'이 폄하되어서는 곤란하니까.
영업이라는 것은, 이처럼 사람과 사람의 마음이 변수로 존재하는 단순하지 않고 매우 복잡한 방정식이다.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장악해도 쉽게 대신할 수 없는 분야이기도 하다. 시대가 4차 산업이니 초 연결 사회니 저마다의 기술규준으로 정의하는 만큼 영업 활동에 대한 연구와 교육훈련은 매우 중요하다. 현재의 추이로 종사자가 늘어날 분야는 ‘누군가’에게 ‘willing to pay’를 이끌어 내는 판매자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 ‘누군가’가 고객이든, 파트너이든, 회사 내부의 이해 관계자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협상과 흥정의 목적은 이득의 추구이다. 내가 좀 더 얻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내가 얻을 것보다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먼저 제안할 때 협상의 주도권은 내게 오기 마련이다. 내 제안에 꿈쩍하지 않는 상대도 늘 있다. 설사 상대방에게 패만 보여 주었다는 생각이 들어도 분명 내가 얻는 것은 있다. 그 상대와 협상의 테이블에 다시는 앉지 않음으로써 시간과 에너지를 아끼게 되니까. 인간관계에서 계속 '제안'하는 이유이다. 그것도 내 속이 훤히 보이게 마련이다. 25년 이상 협상만 하던 사람의 한 소리고 해 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