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가 자원이라면
반도체가 '자원'이 될 수 있다는 의견에 상당 부분 동의를 한다. 특히 '쌀'에 비유한 반도체 산업론은 선행과 후행의 지표를 보더라도 일리가 있고 실물의 시장에도 부합한다. 다만, 그 '자원'의 양상과 특징으로 볼 때 결론의 방향은 조금 달리한다. 자원 강국인 사우디 등 산유국이나, 중국 같은 소재 자원 보국이 아닌 미국을 레퍼런스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를 살펴볼까 한다.
자원은 보통 산업에서 두 가지 형태로 나눌 수 있다. 석유ㆍ석탄ㆍ광물 같은 천연 매장자원, 그리고 곡물ㆍ소재 같은 생산물 자원으로 나뉜다. 천연자원은 인간의 기여가 거의 없이 부지불식 간에 자연이 쌓아둔 것이다. 발견이 곧 가치이고 그것은 사실 '천혜'라는 지리학적 운명에 기인한다. 반대로 생산물 자원은 인간의 의도와 요구에 따라 기획되고 계획으로 쌓아지는 자원이다. 대표적으로 '곡물자원'이 그러하다.
"Data is Oil."이라는 표현이 있지만, 반도체를 원유에 비유하지는 않는다. 데이터는 미리 의도되지 않아도 디지털 생태계에서 부지불식 간에 쌓이는 잠재 가치리고 말한다. 그러나, 반도체는 다르다 시장과 미래가치를 조망하여 생산하여 쌓아 두거나 바로 출하하는 계획 자산이기 때문이다. 곡물 시장의 지표인 선물지표와 반도체 시장 중 규모로 가장 큰 메모리의 지표의 선ㆍ후행이 유사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한민국이 반도체 강국이라 자부심은 대단하지만 사실 그 디테일에서 이해가 부족하기 마련이다. 생각보다 복잡하니까. 그리고 몰라도 일상에 큰일이 일어나지 않으니 큰 상관은 없다. 다만 '시장'과 '자본'을 혼동하기 쉬운 경제 관련 메시지로 인해 그 이해가 부족할 수 있다. 단 투자자나 자본 시장 중심의 메신저만의 탓은 아니다. 대중적인 기술 산업 설명이 업계에서도 없었던 점은 분명하다. 반도체 산업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래 자료는 국가미래연구원이 11월에 릴리스한 <반도체산업의 가치사슬별 경쟁력 진단과 정책 방향>이란 리포트이다. 비교적 쉬운 설명이 자세히 되어 있다. 시간을 들인다면 반도체 시장과 산업의 윤곽선 정도는 그려 볼 수 있으니 참조하면 좋을 듯하다. 길고 버겁다면 아래 복사 첨부한 <요약> 부분이라도 담아 두어도 좋겠다.
https://www.ifs.or.kr/bbs/board.php?bo_table=News&wr_id=4546
반도체는 전자기기에서 연산, 제어, 전송, 변환, 저장 등 첨단 서비스를 수행하는 핵심부품이며, 반도체 산업은 이를 생산하는 제조업을 중심으로 후방산업인 제조 장비, 소재산업을 포함한다. 반도체 산업의 가치사슬별 경쟁우위를 정성적·정략적 지표로 진단한 결과, 미국은 반도체 종주국으로 여전히 세계 반도체 시장 점유율 1위로 R&D/설계 분야에서 최고의 경쟁력을 가지고 있으나, 제조 분야는 대만과 한국의 경쟁력이 더 높게 나타났다. 종합경쟁력 비교에서 한국은 비교 대상국인 미국, 일본, 대만 등 주요 6개국 중에서 5위를 차지하였다. 메모리 반도체를 제외하고는 나머지 분야에서 모두 경쟁열위에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지난 2020년 조사와 비교하면 중국의 경쟁력이 한국을 앞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는 현재 경쟁력이 가장 우수한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차세대 반도체 개발을 비롯하여 초격차 전략을 통해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경쟁열위에 있는 시스템반도체 팹리스 분야는 성장을 위한 수요산업 연계가 필요하며, 파운드리 분야는 첨단기술 분야에서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보고서 <요약> 중-
반도체는 통상, 제조와 생산으로 그 산업 구조가 나뉜다. EDA/IP부터 메모리까지가 설계에 따른 제조(팹리스 포함)의 부가가치, 그리고 조달 과정에서의 공정 생산 부가가치까지 아우른다. 보통 이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하면 쉽다. 생산은 잉곳을 가공한 웨이퍼를 투입하여 반도체의 특성을 가지도록 가공하는 전공정과 이를 마친 웨이퍼를 패키징하고 검사하는 후공정으로 구성된다. (웨이퍼 제조-전공정(산화공정, 포토공정, 식각 공정, 증착&이온주입공정)-후공정(금속배선공정, EDS공정, 패키징 공정)이다.
보통 메모리 반도체와 시스템 반도체로 이야기된다. 시스템 반도체가 로직 반도체와 아날로그 반도체 등으로 세분되지만, 시장 이해 편의상 통칭하기로 한다. 메모리 반도체는 시장의 약 26%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나머지는 로직 IC(CPU로 대표되는), 마이크로 컴포넌트, 아날로그 IC, 개별소자, 광학, 소자 등 부가가치가 높고 핵심기술이 필요한 "비메모리 반도체", 즉 시스템 반도체이다.
부가가치는 제조(팹리스, 설계 등)가 칩(Chip) 생산(메모리, 비메모리) 보다 월등히 높으며, 생산물 중에서는 시스템 반도체가 메모리 반도체보다 상당한 정도로 높다. 대한민국은 칩 생산, 그중에서 메모리 반도체가 전체의 64% 이상 차지하고 있다. 냉정하게 '고부가가치의 가치사슬'은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가장 큰 약점 중의 하나이다.
그럼에도 반도체 '부가가치 총량'은 세계 2위이다. 그리고 3위는 중국이나 대만이 아니라 일본이다. 후방ㆍ전방 산업인 장비ㆍ소재 부문이 아직 확고하고 전통적인 아날로그 반도체의 독보적 강자이다. 중국은 아직 멀었고, 대만은 규모에서 아직 비교대상이 아니다. 이유는 '종합생산'이라는 토털 라인업을 갖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1등? 당연히 미국이다. 이 지점이 SWAT 분석의 '강점'을 부각해야 할 지점이 된다. 바로 '양'으로 담보되는 메모리 반도체의 경우 한국과 미국이 양분되어, 경영 부가가치인 이익이 막대하기 때문이다. 지켜내야 하는 부분이다. 다행히 이 영역은 생각보다 진입이 쉽지는 않다. 그래서 중국의 편법과 반칙이 성행하는 이유다.
위의 보고서를 보면, 반도체 산업의 종합경쟁력은 미국이 1등, 한국의 종합경쟁력은 시스템반도체가 최하위 수준이다. 미국은 시스템반도체(99), 메모리 반도체(91) 등 모든 제품에서 최상위다. 대만은 메모리 반도체(69)는 열위이나 시스템반도체(85)에서 높은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은 대만과 정반대이다. 메모리 반도체(87)에서는 높은 경쟁력을 평가받고 있으나, 시스템반도체(63)가 비교 대상국 중 최하위다. 이것이 이유가 되어 종합평가에서도 하위권으로 평가된다.(괄호 안 점수는 연구보고서의 정량 점수 환산 100점 만점)
반도체 산업은 반도체 제조업(제조/생산)의 지표가 상당 부분 차지한다. 하지만, 반도체 산업 생태계는 반도체 제조를 위해 필요한 제조 장비, 소재산업까지 포함한다. 기업의 업종도 모든 공정을 수행하는 종합 반도체 기업(IDM: Integrated Device Manufacturer), 설계만을 담당하는 팹리스(Fabless), 제조를 담당하는 파운드리(Foundry), 가공된 웨이퍼를 검사하고 포장하는 후공정 기업과 함께 제조 장비, 소재 기업으로 나뉜다. 이 원초적인 가치사슬에서 전략의 확보가 필요하다. 경쟁우위의 부분의 격차를 벌리거나 최소 유지해야 하고, 경쟁열위의 부분은 투자와 과감한 합작 등으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단 모든 것을 다 혼자서 잘하기는 힘들다. 나름의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이유다.
대한민국의 반도체 산업은 현재와 미래의 먹걸임에 틀림없다. 한국의 반도체 산업은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최근 주요국의 반도체 산업 육성 강화로 인해 공급망이 요동 직전이다. 향후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고 우리나라의 위상도 흔들릴 위험이 있다. 더욱이 우리의 종합적인 경쟁력은 최하위권이다. 이미 미래 경쟁에서 지고 가는 것이다.
반도체를 자원으로 여기어 지원 경제로 삼으려 한대면, 뭣보다 최강국 미국을 벤치 마크하고 철저하게 추격해야 한다. 일본의 이탈로 한국은 잠시 길을 잃었다. 눈에 보이는 추격 대상의 도태로 안심도 성급했고, 의지와 동력이 다소 감소되기도 했다. 그러다가 지금의 다급한 상황이 된 것이다. 다시 목표를 정교하게 설정해야 한다. 미국이다.
미국이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에서 1위를 수성하는 이유는 '종합적으로 골 고른 우위'에 있다. 과목에 편식이 없다. 위의 산업 생태계에서 왼쪽과 오른쪽의 균형이 맞는다. 균형은 일본만 유일하게 맞추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미국의 또 다른 1등 산업 '곡물 산업'과 유사하다.
곡물거래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생산자와 소비자를 세계적 규모로 연결시키는 일련의 산업활동이다. 이를 과점으로 수행하는 기업은 소위 곡물 메이저로 불리고 있는 대규모 곡물 유통업자들이다. 국제적으로 곡물 수출경쟁력의 우위성은 기업의 곡물 처리 및 선적 능력이다. 생산-> 운송-> 저장-> 운송-> 저장-> 수출의 일련의 과정은 '규모의 경제', 그 이상의 인프라가 필수적이다. 이를 보면 후발 주자가 뛰어들려면, 경작과 수확의 '직접 농경'뿐 아니라, 막대한 자금력을 통한 운송, 저장 설비 등을 설치해야 하는 매우 높은 진입 장벽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것이니까. 다시 말해 모든 과목에서 성적을 낼 수 있는 가치사슬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방법은 여러 가지가 제시되지만 팹리스라는 제조의 영역과 아날로그 반도체 등 시스템 반도체의 가능 영역의 회복과 추격이 선결 과제로 보인다. 메모리 생산은 관성과 과점력으로 버틸 수 있다. 과락에 있는 과목의 성적을 평균 이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이를 위한 R&D와 인적 자원의 투자가 급한 때이다. 그러나 정부의 방침이 시장의 실정과 반대로 가는 것이 가장 큰 걸림돌로 보인다. 지혜와 힘을 모을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