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잡학다식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 스테파노 Dec 21. 2022

월드컵과 알제리 전투

2022 카타르 월드컵 결승전의 소회

월드컵이 막을 내렸다. 세기의 대결 신구교체의 의미 심장한 세리머니. 메시는 메시였고, 음바페는 더 음바페였다는 찬사와 박수갈채가 그 피날레를 돋우고 있다. 솔직히 새벽의 결승전은 정규 시간 2-2까지 보고 티브이를 꺼버렸다. 아침 일상의 부담이 첫 번째 이유였고, 두 번째는 VIP 좌석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박수를 치는 마크롱의 모습 때문이었다. 중계진은 묘하게 그 장면과 음바페의 단독 샷을 교차하며 보여 주었다. 콜로세움의 코모두스와 막시무스가 떠올랐다면 너무 나간 비약일까?

음바페를 위로하는 마크롱 (사진=중앙일보)

세계 축구를 보면서 늘 느끼는 것이 있었다. 프로의 세계인 클럽이야 손익이 주판 작용이라고 치자. 국가대표, 그것도 유럽 경제ㆍ축구 강국들의 선수 구성에 아프리카계 이민자들이 눈에 띈다. 그것도 엄청 많이. 뎀벨레, 쿤데, 디사시가 선발 라인업이고, 튀랑과 코모도가 그리즈만과 지루를 대신해 뛰었다. 음바페의 헤트트릭의 배후에는 이 아프리카 이민자 1,2,3세들의 뒷받침이 있었다. 이 팀이 진정 프랑스 팀인가라는 얕은 생각들이 침범했다.


갑자기 1965년의 영화 <알제리 전투>가 생겨났다. 1954년에서 1962년 사이, 9년간 프랑스 식민통치에 대항한 알제리 민족해방전선(FNL)의 무장 독립투쟁과 프랑스군의 정치적 폭력행위 등을 다룬 작품이다. 다큐멘터리 픽션 형식으로 재구성한 영화로 독립 후 3년 만에 만들어 실상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회상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제국주의 프랑스의 학살과 정치적 탄압이 담긴 영화는 프랑스에서 30년 넘게 상영되지 못했다. 국내에도 2009년에서야 소개가 되었다. 그리고 아직 프랑스는 제대로 사과하지 않고 있다.

영화 <알제리 전투>, (사진=JUST watch)

지금의 프랑스가 식민 시대의 제국주의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월드컵에서 활약하는 이민 후손들을 보며 생각이 복잡해졌다. 민주주의, 시민 혁명 발상지라는 포장으로 교묘히 그들의 추악한 역사와 골 깊은 차별을 숨기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맞다. 그저 내 생각과 느낌뿐일 수 있다.


어쩌면 기회와 보다 나은 내일을 찾아든 이민의 성공사일 수도 있다. 프랑스 축구대표들은 시민의 한 사람으로 자부심과 지금의 성공해 만족하고 행복해할지도 모른다. 그들을 자랑스러워해야 하지만 안쓰럽다는 생각은 또 하나의 편견이자 섣부른 일반화가 될지도 모르니까. 그럼에도 불구 자본주의적 성공이 지나간 역사의 바퀴 자국까지 지워버리는 것이 아닌지 염려는 스럽다.


그래서 모로코를 내심 응원했다. 반대의 경우로 유럽으로 이민 간 자녀들이 다시 고국의 대표팀에서 뛰었다. 그들이나 음바페나 같은 시대가 나은 이란성쌍생아가 아닐까. 모로코와 알제리가 아라비아 반도나 페르시아만 어디에 붙어 있다고 생각하는 한국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정작 알제리의 청년들은 유럽인이라 생각한다지. 무엇이 맞고 틀린지의 채점의 문제가 아닌 것이 되었다.


마크롱은 기업의 규제를 풀고 공기업의 민영화, 그리고 부자 감세에 앞장서 보수의 지지를 받았다. 2018년의 일이다. 지금 노란 조끼 시위나 철도파업 등의 후폭풍과 국제 경기의 준엄함으로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우리의 3, 4년 후 가까운 미래가 아닐까 걱정스러웠다.


음바페와 메시가 소속된 파리 생제르망의 주인은 개최국 카타르 국왕이다. 자신의 팀에 소속된 자원들의 피날레는 조별리그 무승 광속 탈락의 자국팀을 잊게 해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 축구 리그 앙에서 가장 좌파적인 PSG 팬들이 대거 이탈하고, 보수주의 팬들이 웃어야 할지 알듯 모를 듯 팔짱 낀 형국은 아직 진행 중이다. 축구는 축구일 뿐이라고 하지만, 그저 축구로 보기엔 내 속에 내가 너무 많다. 그렇다. 모두 내 탓이지.









매거진의 이전글 반도체가 쌀이라면, 미국을 보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