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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nkPad - "빨간 콩"의 추억

컴퓨터 키보드에 대한 소고

by 박 스테파노

IBM이라는 회사를 15년 조금 넘게 다니고 이직을 하는 시간에 이런저런 만감이 교차했지요. 그중에서 가장 서운하고 어색했던 일이 "빨간 콩"이라고 부르는 씽크패드의 트레이드 마크 트랙포인트와의 이별이 아닌가 싶습니다. 퇴직 후에도 부러 씽크패드를 찾는 이유 중 하나도 길들여진 빨간 콩에 대한 미련이랄까.


이 씽크패드가 비즈니스 할 때도 동반자로서 사업 매개체로서 아프고 시리기도 했던 기억이 있네요.


1.

씽크패드는 정확히 말하자면 "일본의 기술"입니다. 일본에 있는 IBM의 유일한 동아시아지역 R&D허브인 "아마토 연구소"의 아리마사 나이토가 주축이 되어 개발한 산물이었지요. 검은색으로 유명한 칼각의 외형은 일본의 "벤또"에서 착안한 디자인 아이디어라고 전해집니다(각진 검정상자에 빨간 속). 야마토 연구소는 아직도 씽크패드의 산실이자 생애주기를 관리해 주는 동반자로 남아 있습니다. (야마토 연구소가 궁금하시면 아래 참조)

https://brunch.co.kr/@philcf9b/44


2.

씽크패드의 개발 배경은 다소 "즉흥적"이었습니다. 하버드대학교 비즈니스 스쿨과 노트북 공급 계약을 덜컥 체결하였습니다. 사실 IBM이 최초로 퍼스널 컴퓨터를 만든 기업(PC라는 것이 IBM제품 브랜드)이지만 포터블컴퓨터(노트북)를 만든 것은 시장 대비 한창 늦었습니다. 이미 1982년 도시바와 컴팩이 최초의 노트북을 만들어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하버드대학교와 노트북 공급계약은 맺은 상황에서 만들어 놓은 노트북이 있는 상황도 아니었습니다. 9개월 안에 완성품을 만들어내야 하는 급박한 상황에서 나온 것이 이 "씽크패드"였습니다.


3.

촉박한 시간에 설계, 제조공정까지 결과물을 내야 해서 담당자들은 "악몽의 시간"이라고 회고합니다. IBM 직원이던 대니웨인라이트가 평소에 지니고 있었던 IBM 임직원용 메모장을 보고 영감을 받았습니다. 'Think' + 'Notepad'='Thinkpad'라는 브랜드가 탄생한 것이지요. "Think"는 창업자인 토마스 왓슨이 주창한 일종의 "사훈"입니다. 발이나 몸이 아닌 발로 뛰라는.

당시 IBM수첩, 지금도 색상과 디자인만 바뀌었다 (사진=브랜드 티스토리)


4.

중국 "레노버"에 2005년에 형식상 매각을 합니다. 이유는 비즈니스 포트폴리오를 하드웨어에서 컨설팅과 소프트웨어에 집중하기 위해서였지요. 그래서 하드웨어 중, 이익 구조가 낮은 저가 라인을 정리합니다. 그 시작이 "퍼스널 컴퓨터 사업"을 전부 중국 기업 "레노버"에 팔았지요. 그러나, 속을 들여다봐야 합니다. 당시 매각 조건으로 레노버의 주식 50%를 IBM이 취득하게 됩니다. 지금은 줄어서 37~8%의 지분을 유지하지만 아직 대주주입니다. 일종의 "사업 대리자"를 선정한 셈이 되었지요. 연결 재무제표에서 빠져 취약한 이익구조를 덜어내지만 시장 영향력은 쥐고 있는 셈이지요. NT서버라는 x86서버도 매각하게 됩니다.


5.

씽크패드가 "중국산답지 않은"을 유지하는 이유가 주력 모델인 E시리즈를 비롯해 전체 라인업의 대부분의 기술과 디자인을 여전히 야마토 연구소에서 총괄 관여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IBM이 지분을 인수하면서 레노버 회사의 경영구조를 미국식으로 변하게 됩니다. 다소 느슨한 홍콩의 재무규준이 아닌 더 엄격한 글로벌 재무규제대로 기업평가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로 레노버는 그 어떤 중국 기업보다도 투명한 기업으로 평가받습니다. IBM은 중국에 "연착륙"한 몇 안 되는 미국기업입니다. 그 이유가 레노버 협력 같은 "꽌시(관계 비즈니스)"를 잘 이용했다는 평가가 뒤따릅니다.


6.

노트북 사업을 주저하는 이유는 "원가의 노출" 때문입니다. 이제 더 이상 주문 제작하는 첨단 기계가 아니라 소모품이 되어 버린 것이지요. 그러다 보니 대당 5천 원~1만 원 정도의 미진구조로는 배보다 배꼽이 커졌습니다. 특히 씽크패드의 주력 E, X시리즈는 일본에서 생산했었으니까요. 그러다가 그것을 해결할 "혁신"의 방법이 매각 후 지분 연결이 되었습니다. IBM은 지금도 이 방법으로 자신의 몸집은 작고 단단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씽크패드 울트라 나브키보드 - 포인팅스틱은 양손이 키보드에 떨어지지 않으면서 조작할 수 있는 장점. (사진=브랜드 티스토리)

7.

"키보드" 타격감 중시하신다면 X1 모델을 추천합니다. 야마토 연구소의 야심작이라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쿨링 소음은 중대형 서버의 기술을 가져온 것이니 손이 뜨거우신 분들 추천합니다. 그리고 물리적으로 카메라를 감추는 기능도 추가되어 현재의 이슈를 발 빠르게 반영하고 있는 듯합니다. 개인 정보 우려 되시는 분도 추천. 무엇보다 추억의 "빨간 콩"을 못 잊은 아재줌마 분들께 추천합니다. (사정상 당장노트북 하나 없지만, 구입한다면 무조건)


'Thinkpad'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과시하지 않는다. 결과로 보이길 원한다. - Thinkpad 디자이너, 데이비드 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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