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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 스테파노 Jan 21. 2023

구룡마을의 화재는 "연례행사"

설 전에 "강남구 판자촌" 구룡마을에 큰 불

 전에 "강남구 판자촌" 구룡마을에  


https://n.news.naver.com/article/001/0013712290?sid=102

20일 오전 6시 28분께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4 구역 주택에서 큰 화재가 발생해 소방당국이 진화 중이다. 소방당국은 오전 7시 17분께 450~500명을 대피시켰다. 강남구청에 따르면 구룡마을에는 약 666 가구가 살고 있다. -기사 본문 중-


구룡마을에 또 화재가 발생했다. 사실 구룡마을에 겨울철 화재는 해마다 반복되는 다반사 같은 일이 되었다. 특히 2000년 대 "재개발 이슈"가 수면 위로 가시화되자 번번이 발생한 것에 일종의 "음모론"이 제기되기도 한다. 1990년대부터 30여 건의 불이 났고, 그 기간 인명 피해를 동반한 대형화재만 이번 건을 포함하여 5차례나 된다. 일종의 "연례행사"가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구룡마을" 아시나요?


서울 강남구 개포동 제7 구역에 자리 잡은 구룡마을은 1970년대 후반에 생긴 무허가 판자촌이다. 강남구 구룡산 부사면에 위치한 이곳에 언제부터 사람들이 모여들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88 올림픽 등에 따른 개포동개발계획에 의해 개포동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거주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특히 도곡동에 있던 판자촌이 1994년에 최고급 주상복합 아파트인 타워팰리스의 부지로 선정되었다. 주민의 거주지가 철거되자 그곳의 많은 철거민이 구룡마을에 유입되었다. 사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개포동은 "강남의 시골" 취급을 받았다. 공영 주택이 많았고, 맞닿은 수서도 공무원 아파트 등이 들어 설 계획이었고, 배후는 그린벨트로 막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말죽거리(양재사거리)에서 도곡동, 개포동으로 이어지는 동네는 "뒷구정"으로 불리기도 했다. 압(앞)구정과 차별된 동네라는 뜻이다.


구룡마을 (사진=UPI)


그러나 2000년대 이후 부동산 붐과 재개발 붐으로 인해 "꾼"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환매가 가능한 토지들을 투기세력들이 매집을 하기 시작했고, 그것도 모자라 "점유 권리자"인 실제 거주민들에게 속칭 "딱지"들이 나돌기 시작했다. 기어이 "보상꾼"들이 거주민으로 알박기도 하였다. 속사정을 모르면 이해가 잘 가겠지만, 농지나 그린벨트로 묶인 지역의 개발은 '환지방식'과 '수용방식'을 택하게 되는데, 이에 따른 보상대상이 나뉘기 때문이었다.


'환지방식'이란 토지를 수용당한 토지주에게 보상금 대신 개발구역 내 조성된 땅(환지)을 주는 방식이다. 도시개발법상 공공시설 설치, 변경이 필요하거나 개발지역 땅값이 인근 지역보다 비싸 보상금을 주기 어려울 때 적용한다. 반면, '수용사용방식'이란 부지 개발 후 토지를 모두 수용한 뒤 소유주에게 돈으로 보상하는 방식을 말한다. 보통 신도시의 경우 수용방식이 대부분이다. 이는 오랜 다툼이 있었다. 서울시장과 강남구청장의 정치 진영에 때라서도 혼선을 가져왔다. 전문가들은 '일부 환지방식'을 도입해야 한다 권고했다.


구룡마을에 살던 학생의 대부분은 주민등록이 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나 현재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의해서 전입이 가능해졌다. 그러다 보니, "주민등록" 자체가 보상꾼들에게는 '딱지'가 되어 거래되었다. 박원순 시장은 이런 병폐를 막고 임대주택 비율을 높이고 임대료를 해마다 낮추기 위해 일부 환지방식의 부분 공영개발을 추진했으나, 보수 진영 구청장은 공영 개발을 주장했다. 이유는 "땅주인만 혜택을 본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땅주인이 심어 놓은 "딱지 전입자"들만 득세할 수밖에 없어진다. 수용 비용 충당을 위해 임대료가 상승되고 진짜 거주자인 저소득층은 결국 딱지 거래를 해서 몇 천만 원이라도 건지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주민의 대부분은 과거 서울 일대의 재개발에 밀려 강제로 이주해 살게 된 사람들이다. 기초생활수급자, 노인, 빈자 등이 많은 편이다. 강남구, 서울시가 정치적 줄다리기를 하는 동안 개발 브로커나 부동산업자, 법조꾼이 더 모여들었다. 주민을 부추겨 보상 요구안이 천정부지로 올라서 빠른 해결과 합의가 거의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렀다.



빈번한 화재 - 음모론의 확산


'부촌 바로 옆의 빈민가'라는 이유 때문에 감성적인, 차별적인 시선으로만 대충 보는 것과 그 속살은 다르다. 구룡마을 내부 주민도 서로의 이해관계 차이로 반목과 대립을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민 대표자 단체가 '구룡마을 자치회'와 '구룡마을 주민 자치회'로 갈려서 서로 싸우고 있었다. 공과금등 납부 문제와 화재 사간으로 인해 대표자 단체가 둘로 나뉘었다. 이를 이용해 딱지(거짓 입주권)를 만들고 법적 보상이 안 되는 것을 모르는 무지한 사람을 이용해 먹는 것들은 부동산업자-투기꾼-법조꾼 "개발 카르텔"들이었다.


화재 사건은 처음에는 실화로 보였으나, 시간이 갈수록 "방화"라는 생각이 짙어졌다. 바로 갈등 당사자들 건의 방화이거나 투기 세력들이 딱지를 무력화하거나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새롭게 재설정하려는 목적에서 불을 놓는다는 소문이 내부에는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대법원 결정으로 "주민등록"이 가능해지면서 화재가 잦아들다, 다시 작년부터 큰 불이 나기 시작했다. 문제는 이곳의 집들이 "골격"이 없는 판잣집이라는 것이다. 합판, 목재, 스티로폼, 경량패널 등 불에 취약하고 빠르고 크게 타는 인화물질로 만든 집들이기에 한 번 붙으면 순식간에 크게 타오른다. 그래서 인명 사고도 잦았다.


•2014년 화재

https://m.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63645.html#ace04ou



•2017년 화재

https://mnews.jtbc.co.kr/News/Article.aspx?news_id=NB11445897


현재 구룡마을은 재개발이 좌초되어 있다. 2014년 서울시와 강남구 합의로 2020년까지 "전면수용" 방식으로 진행하기로 하였으나, 현재까지 진전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공급 규모와 임대 비율을 두고 서울시·강남구청 간 이견을 나타내면서 사업 일정이 불투명해졌다. 당초 구룡마을엔 최고 35층 주상복합 974 가구, 최고 20층 아파트 1864 가구 등 2838 가구의 주택과 근린생활시설, 공원, 교육시설이 들어설 예정이었다.


주택 공급유형은 임대 1107 가구, 분양 1731 가구. 하지만 2020년 6월 서울시가 구룡마을을 4000 가구 규모의 공공임대단지로 조성하겠다고 발표하면서 강남구가 다시 반발하고 나섰다. 서울시와 협의가 여의치 않자 강남구는 국토부와 사업 재검토를 논의했다. 구룡마을을 공공재개발로 추진하거나 주택 공급대책에 포함시키는 방식이 거론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후속 소식이 들리지 않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다른 "서울 달동네" -백사마을, 성뒤마을, 정릉골. 개미마을은 문재인 정부 때 주거 개선을 위한 재개발에 착수되었다.


구룡마을에서 보는 타워팰리스 (사진=나무위키)


구룡마을은 유독 화재가 빈번한 지역이다. 잦은 화재가 흉흉한 음모론의 강한 증거로 거론되기도 했다. 강남의 마지막 남은 노른자위 땅임에도 30여 년째 재개발 사업이 첫 삽조차 뜨지 못하자 재개발을 원하는 주민, 토지주 등이 일부러 불을 지른 것이라는 음모. 무시할 수 없는 이유는  큰 불로 재개발 논의가 급물살을 탄 전례도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와 강남구청이 토지 보상을 두고 대립하던 2009년부터 2014년까지 구룡마을에선 크고 작은 화재가 12차례 발생했다. 특히 2014년 11월 화재로 주민 1명이 사망하면서 안전을 위해서라도 재개발을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받았고. 사업방식을 둘러싼 갈등을 이유로 같은 해 8월 도시개발구역에서 해제됐던 구룡마을은 이로 인해 다시 도시개발구역으로 지정된 바가 있었다.



"강남불패" 민낯


"강남"을 이야기할 때, 외부에서는 동경의 시선이 있으나 실제 거주민 내부에서는 '빛 좋은 개살구'라는 자조도 많다. 강남은 태생이 '억지'와 '의도'로 형성된 지역이어서 그런 듯하다. 경기도 광주 북단의 농촌 지역이 영등포 동쪽에 있는 곳이라는 "영동"으로 불리다, '고급 주거지'와 '테헤란로 상업지구'로 거듭난 것은 30여 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어릴 때에 개포, 대치, 잠실, 삼성 등은 택시가 승차 거부를 하던 "베드타운"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니까. 이곳이 부촌이 된 것은 중산층의 유입, 사무 상업 지구의 개발 등 자연스러운 도심, 부동산 형성 요인에만 기인한 것은 아니다. 특정 투기세력 -명동, 영동 사채-과 정치 비자금의 유입, 그리고 지하 경제의 활성이라는 암울한 사실이 기반이 되었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어찌 되었든 1.5세대가 지난 지금 "강남"은 살기 좋은 곳일까? 답은 동네마다 시기마다, 그리고 가진 것에 따라 다르다. 강남 3구는 동남권의 인구 비율 높음 – 베드타운과 상업지역 공존하기에 역동적이지만, 안정성이 떨어진다. 유흥주점이 인구 대비, 면적 대비, 업태 대비 가장 많은 곳이다. 경제와 소비의 중심지이지만 거주민은 그래서 피곤하다.


365일 재개발/재건축, 주거환경 정비가 이루어진다. 노후 아파트 재건축시기의 일시 도래하고 전용 주거지역 관리를 위해 땅파기는 일상이며, 강남, 서초 등 상습 침수구역은 답이 없다. 이러한 장기간 개발 스트레스와 함께 엄청난 교통지옥에 시달린다. 통근 영향권 광역화로 인해 교통혼잡 가중되었고, 보금자리 지구, 문정지구, 위례신도시 등 대규모 배후지 개발에 따른 인프라는 늘 뒤에서 따라온다.


강남불패? (사진=iStocks)


학군이 좋다고? 특목고 쏠림 현상으로 90년대 50~70명씩 서울대를 보내던 학교들은 두 자릿수 합격생에 감지덕지하고 있다. 그리고 베드타운의 특성이 있어 여전히 가족단위가 많이 거주하나, 사회복지시설 수, 보육시설 수 등 행정 서비스의 상대적 결핍 지역인데 정치인이나 행정가는 "아파트 재개발"을 외치며, "표수"만 챙길 뿐이다. 대치동 학원 중심가? 희망고문의 원산지이고, 강남 양극화의 기준점일 뿐이다. (강남은 극심한 양극화의 자치구. 압구정ㆍ뒷구정으로 나뉘는 진짜부자와 부자지망생들 공존. 진짜 부자들의 아이들은 보통 대치동이 아니라 해외 보딩스쿨에 있다는 것은 비밀 아닌 비밀)


병원? 주요 민간 대학 병원이 "거주지"에 영향받을 리가. 수개월 입원 대기하는 지방, 지역 환자가 다수입니다. 3차 병원의 거소가 지역 주민에게 미치는 편익은 미미하다. 오히려 수도권 외의 지방에서는 큰 요소가 된다. 개원 병ㆍ의원의 겨우, 강남은 특정 과목 개원의만 넘쳐난다. 보건소도 상대적으로 적다. 강남의 주택ㆍ아파트는 "가성비"가 "안습"일 뿐이다.(30억 이상의 순자산을 가진 계층에겐 최고일지도) 1인 가구가 가장 많은 자치구이고, 소득 격차가 가장 심한 지역이다. 그리고 예상하지 못하지만, 공공 보육시설, 공원, 체육시설 등 복지혜택은 꼴찌이다.



큰 불에도 주목받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들


구룡마을은 개포중학교와 300m, 소망교회와 600m, 타워팰리스와는 2.3㎞ 거리에 있다. 구룡마을에 가서 보면 타워팰리스가 코 앞으로 보인다. 가깝다는 이야기다. 한때 그 높은 마천루 그곳에 집이 있었고 사무실도 있었다. 타워팰리스 주민들은 구룡마을의 존재를 모르거나 알게 되면 아이들의 훈육용 공갈의 못된 말로 이용했다. "공부 열심히 안 하면 저렇게 되는 거야"라고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구룡마을의 화재 사건의 뉴스 시효는 하루를 넘기지 않는다. 이곳 얼룩소는 어떤가. 당장 상관없는 가상화폐의 미래와 고준담론의 비평들은 넘쳐 나지만, 오늘 화재에 대한 언급은 1차례만 보았을 뿐이다. 그마저도 떠 내려가 버렸다. 왜일까? "나랑 상관없는 세상의 일"이라는 생각이 아닐까? 그런 비천한 곳에서 살 일도 없고 그런 상상도 안 해 보았을 테니까. 부끄러운 일은 아니지만 안타까운 일이다.


2012년 설날 구룡마을에서 (사진=내 사진)


주민등록은 660 여 가구이나 실제 1,100 가구가 모여 사는 곳에서 500 가구가 긴급 피난을 갔다고 한다. 내일이면 설이라는데, 그들은 떡국을 맘 편히 먹을 수 있을까. 대부분이 "딱지장사"들에게 임차하여 들어온 세입자들이다. 재개발의 수혜가 미치지 않는 사람들이 다수인 것이다. 10여 년 전 서울시 재개발 정책을 입안하며 그들의 속살을 보고 발길을 돌리기 어려웠다. 그 후 수년 동안 빈민 사목을 하시는 수녀님들과 명절 때면 아이들과 신나게 놀아 주곤 했었다. 학원 가기 힘들어 공부방에 모여든 그 친구들이 생각나는 밤이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그때는 "우쭐거림"이 있었다. 그러나, 많은 일을 겪고 세밑에 하루살이를 걱정하는 나에게 그들의 소식은 남의 일이 아니었다. 왜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은 가난한 사람들끼리 나누어야 하는 것일까. 지난 시간 내 우쭐거림에 대한 가혹한 질타가 아직 계속인가 싶다. 반성하고 되돌아본다. 그들을 위해서라도 잘 버티고 일어서야겠다. 오늘따라 "바보 추기경"의 "구룡마을 성탄미사"가 생각난다. 잠 못 이루는 이유가 내가 아닌 우리여서 그나마 작은 위안을 얻으니 이 또한 신비일까. 아니면 운명의 장난일까. 그래도 기도하기로 한다. 더 가난하고 힘든 이웃을 위해.

김수환 추기경 구룡마을 성탄미사 (사진=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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