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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 스테파노 Feb 04. 2023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지만..약탈의 대상이 된 노인들

지금의 사회적 자산은 지나간 세대의 기여분

치매(痴呆)라는 불편한 병명


작년 통계를 보니 노인 인구 중 10명 중 한 명이 치매환자라고 말을 한다. 우리는 치매(痴呆)라는 단어를 생각 없이 사용한다. 사실 이 단어의 의미를 하나하나 들여다 기분 좋은 뜻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치(痴)라는 한자도, 매(呆)라는 한자도 모두 어리석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으니까. 기억의 장애로 시작되는 병증이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 버린다는 의미인데, 사실에 가까운 이야기이지만 나이가 들어 생각해 보니 서글프기가 끝이 없다.


치매란 가장 슬픈 병 (사진=대구베스트외과)


일본에서도 과거에는 "치매"라는 단어를 사용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보다 장애인과 소수자에 대한 배려가 정착된 이유인지 몰라도 "치매"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다. 노인이나 환자에 대한 차별이라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인지증(認知症)"이라는 단어로 바꾸어 사용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가끔 인지증이라는 표현이 사용되고 있긴 하다.


개인적으로 인지증이라는 말도 썩 반갑지 않게 느껴진다. 배려를 하다가 삼천포로 빠진 느낌이 든다. 어떤 일을 분명히 인식하고 안다는 의미가 "인지"일 텐데, 치매 병증에 "인지증"이라는 표현은 반어를 넘어선 축약이 되기 때문이다. 정식 영어 병명인 라틴어에서 나온 표현 ‘디멘씨아(Dementia)’라는 단어도 "정신이 나간", "이성을 빼앗긴" 상태를 지칭하는 것이니, 어느 곳에서도 이 병증에 대해 고운 표현은 찾아보기 힘든 것은 사실이다.


억지 연상일 수도 있으나 그만큼 노인들은 "정상 범주 외의 존재"로 여기어지고 있다. 그들을 위하는 나라는 물론 그들이 사회의 정상 범주의 존재로 살아가기도 힘든 나라가 되어 있다. 어쩌면 이 세상은 노인들이 이루어 놓은 "자산"만 가로채려는 커다란 "약탈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들었다. 기억도 잃고 돈도 잃은 노인들이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호시탐탐 재산만 노린다 - 노인약탈


https://n.news.naver.com/article/001/0013731892?sid=102

인천 한 노인복지관장이 취약계층 노인의 후원 전세금을 빼돌린 혐의로 검찰에 넘겨졌다. 인천 중부경찰서는 업무상 횡령 혐의로 인천시 동구 노인복지관장 A 씨를 불구속 입건해 검찰에 송치했다고 1일 밝혔다. A 씨는 모 공익재단이 후원한 취약계층 노인의 주거환경개선 전세보증금 500만 원가량을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이 노인이 사망하자 전세보증금에서 공과금을 제한 금액을 자신의 계좌로 입금한 것으로 파악됐다. -기사 본문 중-


작년 11월 22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약탈인간 2>를 방영하였다. 약탈하는 자들의 특성은 포식자로서 가장 약한 목표를 정해 뜯어먹는 데에 있다. 이날은 "노인 약탈"에 대해서 고발하였다. 일명 노인 사냥꾼의 약탈이란 우리나라가 노인 빈곤율도 높긴 하지만,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노인들이 많은 자산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재산을 노리고 접근하고 갈취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부양하는 자식들이 있으면 괜찮겠지만 이번 사연의 할머니처럼 자식이 몸이 불편하시다거나, 손주가 없으신다면 주요 타깃이 된다.


이번 고발에 소개된 김 할머니는 은행 최초 여성 책임자를 역임하시는 등 사회생활을 지속하신 분이었다. 퇴직 후에는 여러 기부를 하시는 등 사회에 환원 노력도 멈추지 않고 사셨다. 금융기관의 경험과 근면의 결과로 수백억 대의 부동산 자산을 형성하셨다. 이런 분들도 나이가 들고 노쇠해지면 어쩔 수 없이 판단에 대한 선명성이 줄어들기 마련이다. 이런 할머니에게 요양보호사가 접근하여 환심을 사고 입양시켜 달라고 가스라이팅을 해 결국 수양딸이 되었다. 100세가 가까워 온 노인이 어리석어졌다기보다, 사람이 그리워 마음이 약해진 이유에서이다.


작년 8월 김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일이 발생했다. 그전부터 친지들이 의심하여 요양보호사를 상대로 입양무효소송을 제기하였으며, 다른 횡령 배임이나 사문서 위조 등을 또 고소하고 법정 싸움을 진행 중이었다. 안타깝게도 남아 있는 아들 최광우 할아버지는 현재 78세, 치매에 걸리셔서 정신이 온정치 않은 상태이다. 현재의 상태라면 유류분을 요양보호사가 고스란히 재산 행사를 하게 된다. 다른 집에서도 절도와 사기 행각을 벌인 요양보호사와 그 가족들에게 법도 고민이 깊어지고 있는 것이다.


백인천 전 감독 (사진=MBN)


프로야구 원년 MBC청룡의 4번 타자이자 감독을 겸임한 백인천 감독도 같은 경우를 당하고 말았다. 뇌졸중으로 중풍이 온 백 감독에게는 곁에 남은 가족들이 없었다. 백 감독의 재력은 대단했었다고 한다. 일본 프로야구에 고교졸업 직후 스카우트되어 십 수년 동안 주전 선수로 활약하며 거액의 연봉을 받았다. 그 당시 고대 인근 돈암동과 안암동 필지를 다 매입할 정도였다고 하니 상당액수로 추정된다. 그러나 2번의 이혼 후 가족들은 해외로 떠나고 외로운 그의 곁에 "수양딸"이 접근해서 재산을 빼돌리고 그의 이름으로 사기까지 저질렀다. 백 감독은 교외의 20평 셋집에 요양보호사와 함께 살고 있다.



노인들은 정말 그대들의 천덕꾸러기인가 - 지금의 사회적 자산은 지나간 세대의 기여분


고령화 시대는 이미 지나가 버렸다. 지금은 지나 "고령사회"에 접어든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늙은이가 현명한지 어리석은지는 분명치 않으나, 우리 모두는 계속 살아간다면 누구나 늙는다는 것은 확연한 진실이다. 누구든지 "어리석어진다는 치매" 같은 질병을 겪을 수 있는 상황이다. MZ고, 라떼고 간에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말이다. 멀지 않은 미래에 가장 큰 사회적 아픔 중의 하나가 될 가능성은 아주 높다.


그 유명한 <걸리버 여행기>의 걸리버는 소인국, 대인국, 라퓨타를 지나 "스트러드블럭"이라는 곳에 당도한다. 이 나라 사람들은 죽지 않는다. 그저 80이 지나면 국가에서 이들을 "없는 존재"로 처리하는 것. 이들은 젊을 때 보고 배운 기억들만 유지하고 떠 올리며 80세 이후의 삶은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영겁의 시간을 보낸다. 그 기억마저도 완전치 못한 "인지저하"의 상태로 재산도 국법으로 죽은 자가 되어 모두 상속하고 겨우 연명할 것만 나라에서 보장해 준다. 이런 사회가 이제 현실감 있게 다시 보인다.

걸리버 여행기, 영생불사의 나라 스트러드블럭 (사진=tvN)


노인성 뇌 손상 장애에 대한 최선의 예방책과 대안을 찾기 위해 힘을 기울여야 한다. 보다 더 범국가적이고 범세계적인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 요양시설이 그저 비즈니스 아이템으로 유행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이 질병에 대한 사람들의 올바른 인식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와 함께, 진정 노인들의 고충과 가족, 동반자들의 근심을 보듬을 수 있는 길을 찾으려는 노력이 우선되어야 한다.


살림이 빡빡해지니 65세 이상 지하철 무료 승차가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논의의 시작은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이것이 노인들에 대한 폄훼와 차별로 이어지면 안 될 일이다. 어느새 노령 세대는 다른 세대들에게 귀찮고 불필요한 존재가 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국민연금도 젊은 세대들이 왜 부양하냐며 수령 연령을 늦추고, 지급을 줄여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개인의 입장에서 맞는 말처럼 보인다. 그런데 완전히 "틀린 주장"이다.


지금의 사회적 자산과 인프라와 생활의 기반은 그 노인들의 희생과 헌신으로 이루어 낸 것이다. 복지와 후생이라는 개념 없는 국가체계에서 그저 후대를 위해 노동과 저축, 그리고 성실한 조세부담과 사회보험의 기여로 지금의 사회적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젊은 세대들이 나이 든 그들을 공짜 부양한다는 생각은 참 어리석다. 그대들이 스스로 자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헛헛함도 가늠기 힘든데, 애써 바라지한 다음 세대들이 천덕꾸러기 취급하는 것이 혹시 노인들을 "다 잊고 싶은" 평에 걸리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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