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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 스테파노 Feb 02. 2023

유통은 늘 뒤 따라간다. 스스로 혁신이 불가능한 이유

유통산업

유통산업에는 죄가 없지만, 기업은 착하지 않다


고민과 생각들을 거듭한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지난 댓글에 남기었듯이 지금의 유통 구조가 최선이거나 최적이라는 생각은 하고 있지 않습니다. 문제가 많고 개선할 점이 많습니다. 특히 지난번 제 이어진 글에도 말씀드렸듯이 유통산업은 자잘하게 나뉜 "파편화"가 심하게 진행되었고, 그 안에서 행위에 대한 가치 부여가 "보편적"으로 이루어집니다. 노동과 용역 등 부가가치가 드러나 있어 정찰에 가까운 비용구조를 지니고 있기에 그 판단은 제각기가 됩니다.


유통산업은 내부의 구조조정과 혁신이 매일 일어나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유는 생각보다 이익이 크지 않고, 경쟁자가 많으며 생각보다 진입 장벽이 높지 않아, 자본의 힘에 굴복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SPC의 내부 "통행세" 이슈를 이야기하셨는데, 이는 엄밀히 말하자면 유통산업의 죄가 아닙니다. SPC라는 연결 기업집단의 이기심과 욕심이 문제인 것이지요. 이를 위해서는 지배구조의 혁신과 그에 부합하는 규제와 세제의 개편이 필요하지만 요원합니다. 사회에서 가장 힘센 재벌 기업들이 버티고 있으니까요.


삼성그룹은 기업의 문구류, 사무기기, 기본 요역 제공사인 MRO(소모품, 다순 용역 대행사)였던 "아이마켓코리아"를 울며 겨자 먹기로 그룹 밖으로 밀어낸 적도 있지만 여전히 관계사의 지분을 유지하며 실질적 내부 거래를 합니다. LG그룹에도 "서브원"이라는 회사가 같은 역할입니다. 이뿐일까요. 내부 물류는 어떨까요? 삼성전자의 물류는 "로지텍"이라는 자회사가 삼전의 모든 물류를 총괄합니다. LG는 최근 LX그룹으로 분가한 범한물류, 현대차는 "현대글로비스", SK그룹은 "M&M"이라고 영화 <베테랑>의 모델이었던 최태원 회장 사촌 최철원이 하는 회사가 독점합니다. 박카스로 유명한 동아제약에는 "용마로지스"가 있지요.


http://www.kl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6697

국내 물류산업 발전의 저해요인의 하나로 꼽히는 국내 대기업의 물류 내부거래 비중이 여전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 세계적으로 ESG 경영에 관심이 높은 가운데 국내에서도 대기업을 중심으로 G(지배구조)부분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들이 이뤄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내부거래위원회를 구성해 투명성과 적정성을 높이는 활동들이다. 물류업계에선 오래전부터 대기업이 물류 자회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내부거래 관행이 물류기업의 자체 혁신 동력을 저하하고 성장기회를 제약하는 요소로 꼽혔다. 이 같은 논란에 많은 대기업이 물류 분야 내부거래 비중 줄이기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기사 본문 중-


내부에 "유통-물류"를 내부자로 끼는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우선 물동에 대한 예측 관리가 용이해집니다. 그리고 내부 거래로 이윤과 마진을 확보해서 그룹사나 모회사 매출 이익에 장부상 분칠을 해 줍니다. 그리고 지배구조를 견고하게 해 줍니다. 삼성전자가 미국 증시에 상장 못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이 모든 내부 거래를 걷어 내야 하는데 그렇다면 지금 장부가가 반토막이 날 수도 있으니까요. 최근 대기업 집단이 된 "하림"이 해운사인 STX해운을 인수한 이유도 비슷합니다.


이렇듯, 예시하신 "SPC의 통행료"는 만연한 대기업, 기업집단의 총체적 적폐입니다. 단지 "유통구조"의 문제가 아닙니다. 유통의 프로세스와 시장의 구조가 아니라 기업의 윤리의식과 철학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기업은 태생이 "이기적"입니다. 대기업의 지배구조와 연결구조만 해결해도 국민들의 장바구니가 가벼워진다는 것이 과장이 아닌 이유입니다.

출처=물류신문



대형 창고형 매장에 대해서는 사실 유통 단계를 축소해 비용을 줄이는 대신 시간과 수고, 그리고 기회의 비용을 들이는 "비용 트레이드"일 뿐입니다. 일단 거점의 접근을 위해 거리 시간 비용을 들여야 합니다. 북유럽 가구 "이케아"의 매장 전략을 떠 올리면 쉽습니다. 그리고 서비스를 최소화합니다. 매대 배치부터가 친절하지 않습니다. 최적의 상품을 직접 찾아다녀야 합니다. 그리고 소분 포장이 없습니다. 대용량이나 묶음을 구매하여 다양한 소비라는 기회를 포기해야 합니다. 이 모두가 가치가 됩니다. "가격"은 "가치"와 다릅니다. 그것은 극히 개인화된 계산기의 영역입니다. 이것은 "유통의 혁신"이 아니라 "소비자의 소비 행태의 혁신"일 뿐입니다. 소비자가 "선택"하는 것이지요.


진짜 혁신은 소매단계의 마진이 아닙니다. "마진"과 "영업이익"을 혼동해서는 곤란합니다. 마진은 "매출액-매입원가"를 이야기합니다. 영업이익은 "마진-영업비용"을 나타내지요. 이 "영업비용"에는 복잡한 비용들이 포함됩니다. 도ㆍ소매 마진율은 25% 내외입니다. 소매가 30% 정도이고 도매가 20% 정도 차지합니다. 영업이익은 소매가 10% 내외, 도매가 5% 정도로 평균 7%가 됩니다. 여기에서 세금과 기타 유지비를 뺀 것이 순익이 되는 것이지요. 마진이 좋다고 이익을 보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늘 "비용"이 문제입니다.



농수산물의 유통 혁신은 생산자 중심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하 님의 의견에 공감하고 동조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가장 많이 이야기하시는 "농축수산물"의 경우, "유통 혁신"의 과제가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도매 거점이 생산지가 아닌 소비자 근거리의 수도권 중심으로 편성된 것이 문제 중 문제입니다. 불필요한 중간 단계가 생기고 비용이 중첩 증가됩니다. 그렇다면 방법과 대안은 무엇이 될까요. 가까운 이웃을 보기로 합니다.


글로벌 각국의 농산물 유통체계는 유통환경에 따라 발전과정이 다릅니다. 하지만 산지와 소비지를 연결하는 도매유통이 어떤 형태로든 개입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농산물 유통환경이 빠르게 변화하면서 국가별로 농산물 도매시장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 실정입니다.


가장 중요하지만, 더딘 (사진=더바이어)


이웃의 일본 정부는 이런 변화에 발맞추어 2020년 스마트 농업의 가속화와 농업의 디지털 혁신을 추진한다는 내용의 계획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또 2025년까지 농업 종사자 대부분이 데이터를 활용한 농업을 실천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등 스마트 농업의 보급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최종 소비자의 영역이 아닌 생산자 영역의 혁신이 추진되는 것입니다.


일본의 농산물 유통은 우리와 같이 도매시장을 경유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유통경로를 보다 단순화해 상호 이득을 극대화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코로나19가 산업의 변혁을 촉진했습니다. 직거래 시스템이 보다 활성화되면서, 농작물 유통 트렌드도 변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도매시장 경매제도를 2018년 큰 폭의 개혁을 단행한 뒤 2020년에 개정 도매시장법을 공포했습니다. 시장 개설과 유통 주체들에 대한 허가 및 규제는 개설자인 지방자치단체에 맡기고, 거래 제도는 개설자와 유통 주체들이 알아서 정하라는 내용으로 규제를 최소화했습니다.


개혁 이후 도매시장의 폐쇄, 도매법인의 도산이 이어졌습니다. 도매법인은 생존을 위해 서로 간의 인수·합병을 추진했고, 그 결과 도매법인도 하나로 통일되기 시작했습니다. 도매시장 유통은 대도시, 대형 도매시장 중심으로 집중되고 양극화가 심해졌습니다. 그 대신 대형 도매시장을 중심으로 다른 중앙 도매시장과 지방 도매시장의 연계를 강화시켰습니다. 이런 결과로 도매 거점 변화가 일자 유통 주체들도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은 유통 주체들이 물류시설을 짓는 등 적극적으로 나서게 됩니다. 물류시설이 확충되고 시설현대화가 진행되고 있다. 도매시장의 가공 소포장, 구색 맞춤 등 물류센터 기능도 확대되었습니다.


농산물 출하지역은 산지로 집중되었습니다. 일본은 농협 등 출하조직이 농산물산지유통센터(APC) 중심의 ‘공동선별·공동출하·공동계산’을 진행합니다. 도매시장에서 대량 경매와 정가·수의 매매가 진행돼 가격이 비교적 안정적입니다. 이들 지역 농협에서는 대도시 도매시장에 출하를 집중하게 됐고, 이에 따라 판매력과 가격 영향력이 강화되어 산지와 도매시장의 관계가 강화되었습니다.

일본 농산물 유통 경유도 (출처=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또한, 일본에서는 IBM, 후지쯔 등 많은 기술 기업들이 농업분야에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일본 IBM의 농산물 이력 추적 서비스, 후지쯔의 농업 관리 클라우드 서비스시스템입니다. 데이터를 수집·활용해 농가의 생산량을 증가시키는 디지털 농업 관리 시스템도 눈에 띕니다. 향후에는 드론 등 ICT를 활용한 농업이 도입되면서 축적되는 데이터를 중심으로 분석·활용하는 애플리케이션 시장도 같이 성장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를 활용하여 시장 대응과 유통 최적화를 해 낼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청년들이 농촌으로 오는 경우도 늘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농업(Agriculture)과 기술(Technology)을 결합한 합성어인 어그테크(Agtech)라는 새로운 수단을 통해 농업에서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생산지의 혁신이 소비자들의 소비의 변화를 주도하게 된 것입니다.



유통은 앞장서는 법이 없다


시장의 변화를 수용하기 위해 산지 생산자의 자율적 공급 관리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부가 주도하는 적극적인 시장개입 정책은 단계적으로 축소하고 계약재배, 생산안정제 등 생산자의 역할에 근거한 혜택을 부여해야 합니다. 도매시장 정책의 구조적 전환이 검토되어야 하는 시점입니다.  관리추체 역량에 따라 자율성을 확대하며, 지방 도매시장의 경우, 실적 평가에 따라 과감한 구조조정이나 기능 변경 등을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조업체들은 생산자인 제조사들이 유통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습니다. 이들의 손짓 하나, 말 하나에 유통망의 종사자들은 울고 웃게 됩니다. 제조업이 가지는 유통의 헤게모니를 농수산 생산 주체들이 갖기 위해서는 제조업 수준의 "자원 관리"가 가능해져야 합니다. 그것이 유통구조의 혁신을 자연스럽게 견인할 수 있습니다. 지금의 상태에서 "유통구조를 개혁하라"는 것은 구호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미 자리 잡은 유통 기업들은 착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 혁신이 소비자에게 전파된다면 유통망은 진화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혁신과제는 양 끝단의 몫이다(사진=아주경제)


"쿠팡"같이 착시를 주는 장난에 속아서는 안됩니다. 조삼모사의 착시일 뿐입니다. 그들은 기존의 숟가락을 거두어 국자나 주걱으로 삼을 뿐이니까요. 유통산업은."후행적"입니다. 설대 선도하여 혁신한 적이 없습니다. 지금 혁신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소비자와 생산자의 시간이라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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