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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 스테파노 Feb 14. 2023

'야쿠르트'에 대한 꼬리를 무는 생각들

척하면 척

글을 재미있게 읽는다는 것은, 순전히 제 입장에서, 생각의 꼬리를 만들어 준다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이야기와 문장에서 스스로의 생각으로 자기만의 맥락을 만들어 가는 길은 흥미가 가득합니다. 오늘 좋은 이야기에 생각의 꼬리를 얹어 봅니다.


'에이치와이(hy)'라고 하는 '한국야쿠르트'도 기업과 현대사의 의미에서 흥미로우면서도 뒤 끝이 남는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한때 '물류최적화 프로세스'의 전략 기획 수립 프로젝트의 고객사였습니다. 신사역 사거리 잠원동 언덕 위의 고객사에 잠시 상주도 했었지요. 그때의 생각들이 들어 다시 레퍼런스들을 찾아보며, 이야기 곁들어 봅니다.


1.

'한국야쿠르트유업'으로 시작한 이 회사의 창업주는 5.16 쿠데타의 일원이었던, 윤덕병 씨로 삭정희 정권 때 대통령 경호부실장을 지냈습니다. 예편 후에 '삼호유업'을 만들고 '유업'에 뛰어들었지요. 그러나 일제 강점기시 17명의 낙농인 조합으로 설립된 '경성우유협동조합(지금의 서울우유)'가 독과점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공급이 수요에 못 미쳐 '우유 처방전'을 병원에서 받아야 우유를 살 수 있었던 웃픈 시절이 계속되었다고 하네요.


출처=월간조선

2.

1964년에 박정희 대통령이 서독을 방문하고, "우리 국민들도 우유를 원 없이 마셨으면 좋겠다"라는 유명한 '눈물의 연설'후 산업계를 움직여 다른 우유회사들이 생겨났습니다. 남양유업(1964년), 매일유업(1969년), 빙그레(1967년) 등이 그때에 생겨 난 것이지요. 이제 공급 경쟁이 시작되던 시기 1969년에 유업을 시작한 윤덕병 씨는 고민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지금 권력 비호 창업자들과 달리 '전문 경영인'에게 회사를 맡깁니다. 사촌형인 윤쾌병 박사인데, 건국대학교 수의학대 학과장을 역임할 정도의 '축산 전문가'였습니다.


3.

신의 한 수가 된 것이 윤쾌병 박사의 인사이트였고, 정보가 국한된 그 당시 '유산균'의 아이디어도 윤박사의 공이었습니다. 그래서 일본의 '야쿠르트'사와 합작 법인-조인트 벤처를 설립한 것이 '한국야쿠르트유업(주)'였고 비율은 한국:일본=7:3으로 하였습니다. 기술 이전은 하되 권리는 일본 측이 가지며, 조건으로 일본 본사에서 경영진을 파견(2002년까지) 하기도 했습니다. 아직도 한국야쿠르트-hy의 2대 주주이며, 일본 야쿠르트 홈페이지에는 마치 해외지사인 것처럼 표기되어 있기도 합니다(버릇은 어디에 안 가는 듯).

hy 지분 구조 (사진=위키백과)


4.

설립 초기만 해도 대중들은 야쿠르트가 뭔지도 몰랐습니다. 몇몇 소비자들은 "왜 병균을 돈 주고 마시냐"며 했다지요. 한국야쿠르트는 M&A를 참 잘하고, 지배구조 관리도 영리하게 하는 회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연구조직을 위해 1976년에 비락우유(주)를 인수하고 중앙연구소를 세웠습니다. 이유는 당시 '유산균 음료'에 대한 법적 기준이 없어 담당하는 관계 부처도 서로 담당이 아니라고 혼선이 있었고, 해외 사려를 규격 마련 후에는 모든 제품이 '규격 미달'이 되어 버렸지요. 그래서 R&D를 강화한 방법이 된 '인수 합병'은 그 후에도 진행 중입니다. 1978년 평택공장 준공 후 화장품업체 호중화학(주)-나드리화장품을 인수하고 다시 2006년 대상그룹에 팔아 자산운용사를 만들기도 합니다.


5.

그리고, 지금 지배구조에서 가장 중요한 회사가 (주)팔도인데, 1982년 일본 라면수프 제조업체 이찌방식품과 기술제휴를 맺고 1983년 이천공장을 세워 '팔도라면'으로 라면사업에 진출했습니다. 저도 좋아하는 '비빔면', '도시락 컵라면' 그리고 '꼬꼬면'까지 나름 성과도 내는 알짜가 되어 지배구조를 품는 '앵커 컴퍼니'가 되었습니다. 현재 '(주)팔도'는 창업주 윤덕병 아들 윤호중 씨가 100%의 지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팔도와 일본 야쿠르트 본사가 지분을 양분하고 있고, 자본시장에도 휘둘리지 않기에 탄탄한 경영이 가능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6.

원래 hy의 최대주주는 일본의 '야쿠르트 혼샤'로,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구조였습니다. 창립 초기에는 대한민국과 일본에서 각각 공동대표이사, 이사 2명, 감사를 선임하였고, 일본에서 기술자들도 파견했습니다. 설립 초기 3년 동안 판매액의 3.5%를 일본 야쿠르트에 로열티로 지불했는데 이 때문에 일본기업이 아니냐는 논란이 많았습니다. 이윽고 일본 야쿠르트사가 한국야쿠르트의 경영에 간섭하려 하자 이를 막기 위해 한국야쿠르트 경영진들이 팔도를 분리시키면서 상호출자를 감행합니다. 한국야쿠르트와 팔도를 서로의 최대주주로 만들어 야쿠르트사의 영향력을 크게 줄였다고 회사 차원에서는 이야기합니다.


7.

사실 이것은 아주 좋은 구실일 뿐이었습니다. 어차피 팔도는 분할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러시아 보따리 장사들의 애호로 '도시락면'의 역주행 수출과 '꼬꼬면'의 돌풍으로 죽어가던 라면사업부가 급팽창하게 됩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회사 세습구조를 만들 분할 합병을 합니다. 외아들 윤호중이 거의 내부거래로 수익을 취하던 라면 용기 제조사 '삼영시스템'에 팔도와 비락을 넘기고 다시 팔도가 한국야쿠르트에 출자하는 전형적인 순환출자의 무한궤도를 만듭니다. 시실 소비재 산업에서 '용기 제조업'은 매우 중요한 도구가 됩니다. 태평양 아모레퍼시픽의 지배구조 정점에는 '태평양 산업'이라는 화장품 용기회사가 있으니까요. 손쉽게 명분으로 포장해 아들에게 사업체를 물려준 것이 지금의 모습이고, 이런저런 비판이 나오자 2021년 사명을 'hy'로 바꿉니다. 당시 '일본 불매 운동'의 영향도 없었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지배구조 (그래픽=이코노믹 리뷰)


7.

그리고, 윤덕병 창업주의 유신시절의 행위로 비판도 많습니다. 기업 설립 자체가 정권의 비호가 있었다는 의문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1966년 박정희가 스스로 설립한 '5.16 민족상 재단'에 윤덕병은 1998년부터 2012년까지 총 17차례에 걸쳐 7억 6,500만 원을 기부했습니다. 이는 지금까지 재단에 들어온 기부금 약 22억 원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이지요. 이것이 보도되어 2012년 불매운동이 일자 재단에서는 기부자 명단을 비공개하기에 이릅니다.


8.

이와 같이 한국야쿠르트-hy는 "야쿠르트 아줌마"에 대한 이슈 이외에도 기업에 대한 여러 논쟁이 있습니다. "먹는 것으로 장난치지 마라"라는 이야기가 있듯이 '먹거리'를 다루는 식품산업은 기업가들의 정신이 무엇보다 사회로 향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실이 그러하지 못합니다. 단지 '남양유업'같이 드러난 문제만이 아니고, 매일유업이나 기타 반사 이익을 얻는 기업들도 어두운 꼼수가 있기는 매한가지입니다. 건설산업 다음으로 불투명한 기업의 생리, 진입장벽의 두꺼움이 작용하는 곳이지요.


9.

예전에 우유는 아무나 마실 수 없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고려, 조선시대에는 왕실의 전유물이었다고 하더군요. 고려시대의 '우유소'가 조선시대에 '타락색'이 지금 동대문과 혜화동을 가르는 낙산(駱山)의 지명이 되었다고 합니다. 우유와 유류제품에서도 시간이 깊게 파놓은 계층과 계급의 골을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요즘 "소유"와 "점유"에 대해서 생각 중입니다. 다음 글쓰기의 주제가 될 것 같습니다. 산업 사회에서 기업과 경제의 소유권은 어디까지일까를 생각해 봅니다. 노동자와 소비자는 그 주체가 될 수 없는 것인가 하는.


못가는 곳이 없는게 아니라 안가는 곳이 없다 (사진=야쿠르트사회복지재단)


10.

일본에서도 원래는 야쿠르트 아줌마(ヤクルトおばさん, 야쿠루토오바상)라고 불렀다고 하더 군요. 1980년대부터 '야쿠르트 레이디'로 호칭이 바뀌었는데, '아줌마'라는 말의 뉘앙스 뒤편에는 노동 착취와 여성 차별의 흑역사가 스며들어 있는 것 같아 스스로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야쿠르트 일배송은 명동성당 점거 농성 때도 유일하게 출입이 허가된 외부인이었다고 합니다. 최근에는 복지 사각지대의 혼자 사는 노인의 '돌봄 물품'을 대리 배송해 주는 사회복지 사업도 연계중이라지요. "못 가는 곳이 없는게 아니라, 그분들이 안 가는 곳이 없다"라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글 덕분에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습니다. 생각을 주시는 글 늘 감사히 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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