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타인이 된다. 타인은 누구에게나 비밀이 있다.
고향 속초를 떠나 각자의 자리에서 짝을 만나고 가정을 이룬 40년 지기 친구들이 오랜만에 커플 모임을 하게 된다. 아바이 순대, 명태 회무침, 물곰탕 등 고향 음식으로 잘 차려 놓은 성공한 의사 부부 석호(조진웅)와 예진(김지수)의 집들이는 오랜만의 안부와 덕담으로 훈훈하게 시작한다. 그런 유쾌한 식사자리에서 예진의 제안으로 게임을 시작하게 되는데. 바로 각자의 핸드폰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통화 내용부터 문자와 이메일까지 모두 공유하자고 한 것. 흔쾌히 게임을 시작하자고 하였지만, 각자의 예상치 못한 비밀이 핸드폰을 통해 들통나면서 처음 게임을 제안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비밀은 누구에게나 있다고 하지만 그 비밀의 드러남은 늘 충격적일 텐데. 이들은 게임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영화 <완벽한 타인>은 2016년작인 이탈리아 영화 <perfect strangers(Perfetti sconosciuti)>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휴대폰을 통해 서로의 비밀이 공개된다는 그럴싸한 설정이 관심을 모아 한국뿐 아니라 스페인, 프랑스, 미국, 독일, 카타르, 스웨덴, 터키 등 세계 각국으로 리메이크 판권이 판매되었다. <완벽한 타인>은 전체의 큰 줄거리와 묘한 결말까지 원작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한국 관객에게 좀 더 개연성을 부여할 수 있는 각색도 알차게 적용되었다.
우선 원작에는 친구들의 유년시절의 묘사가 없다. 어릴 적 친구들이라는 설정은 맞지만 어릴 적 에피소드나 구체적인 장소들이 설명되지는 않는다. 아마도 한국의 리메이크에서는 영화의 지역 특정으로 잘 사용되지 않았던 속초라는 묘함과 산과 바다가 있고, 민물인지 바닷물인지 모를 석호가 있는 속초라는 지역적 매력이 작품의 의미 전달에 유효하다 생각이 되어 사용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한국 리메이크에서는 '골프 부킹 사건'으로 영배(윤경호)가 따돌림을 받는 장면이 나오는데, 원작에서는 축구의 나라 이탈리아 답게 축구게임에서의 왕따로 이야기된다.
그리고 배역의 캐릭터도 사뭇 다르다. 속초에서 한 두 손가락에 꼽히는 우등생으로 서울법대를 나와 변호사로 성장한 태수(유해진)와 전업주부 수현(염정아)의 설정은 보다 보수적인 엘리트 가장의 모습과 구박받는 전업주부로 설정되어 원작의 수평적인 구도와는 다른 관계로 이야기된다. 이런 가정 안에서의 보수적인 가치관이 한국 대표 정서로 표현되기 위하여 수현의 일탈이 되는 야한 속옷을 몰래 입는 장면도, 사실 원작에서는 노팬티로 그려진다는 점도 주목해 볼만 하다. 또한 준모(이서진)와 세경(송하윤)의 설정도 원작과는 조금 더 극적인 요소를 가미하였다. 세경은 수의사이자 부유한 집안의 딸로 없는 머리에 사업을 하다 망해먹은 바람둥이 준모와 결혼하고, 그에게 레스토랑을 차려준 것으로 되어 있다. 원작의 경우, 남편은 택시기사이고 아내 쪽에 대한 설명은 없다. 그가 바람을 피워 임신시킨 여자는 택시회사 차량 배차 담당자로 어찌 보면 평이한(?) 직장 내 불륜으로 그려진다. 둘 다 아내를 두고 두 여자와 바람을 핀 나쁜 놈이라는 사실은 동일하지만, 준모의 경우에는 세경이 차려준 레스토랑에서, 고용인인 매니저와 불륜관계를 맺었다는 점에서 그 죄의 무게가 더 무겁게 느껴지게 한다.
'여적여(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케묵은 설정도 원작에는 없는 것이다. 겉으론 친하고 쿨한 척하면서도 돌아서면 소위 험담의 소재가 되는 여적여의 관계는 한국의 리메이크에서 도드라진다. 새로 이사한 집의 투머치 한 인테리어와 가구들을 면전에서는 칭찬하면서도 뒤돌아 다른 이에게는 꼴값이라 폄훼하는 수현의 태도도 꽤나 비중 있게 그려진다. 여적여를 추정하는 또 한 가지는 교집합의 고차 방적식인데, 세경이 사 온 집들이 선물 부엉이 도자기가 메디인 차이나인 것을 확인한 예진과 수현이 한편이 되는 장면도 원작에는 없는 장면이다. 이 뿐만 아니라, 극 중 가장 쇼킹한 사건인 영배의 동성애 커밍아웃의 소동도 한국의 리메이크에서는 태수의 과장된 동성애 모방 장면으로 웃음만을 유발한다. 원작에도 동일하게 커밍아웃은 충격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여지지만, 그 행위를 묘사하는 장면은 없고 영배의 역할을 맡은 배우가 주변의 반응에 불쾌하고 괴로운 표정을 짓는 것으로만 그려진다.
영화 <완벽한 타인>은 여러 가지 이유로 요즘 한국 영화에서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공간이 한정된 단일 공간에서의 소동극이 개봉 6일 만에 손익분기점을 넘겼다는 점과 이러한 소동극에 현재 시장에서 몸값 꽤나 한다는 배우들의 출연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러나 원작의 리메이킹을 거치면서 영화는 보다 일차원적인 코미디로 문화의 차이와 관객과의 공간을 메우고 있다. 이러한 일차원적인 코미디의 과함은 원작에서 이야기하는 메시지의 전달을 퇴색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블랙코미디'라는 장르를 붙이기에도 주저스럽게 만든다. 예전 장진 사단의 <박수칠 때 떠나라>, <바르게 살자> 같은 소동극에서 주는 사회의 풍자와 비판의 강도에 비해 <완벽한 타인>은 많이 희석된 이야기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세 개의 삶을 산다.
공적인 하나.
사적인 하나..
그리고 비밀의 하나...
"거짓말은 남을 속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속이는 것이 거짓말이야."
영화가 초반 부분에 예진과 성인이 된 딸 소영(지우)과의 갈등으로 티격태격하는 장면에 거짓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비밀은 말하지 않음으로써 거짓이 될 수도 있고 거짓이 아닐 수도 있다. 비밀은 거짓과 진실의 사이에서 묘한 경계에 머무르게 되는데, 그 경계라는 것이 한 줄 그은 선으로 묘사되듯이 매우 위태로운 것이다. 비밀이란 말하지 않고 드러나지 않으면 사실 거짓에 가까워지는데, 말하고 들통남으로써 진실에 가까워지는 양성 동체의 신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극 중에서도 이야기되듯, 사람의 본성이란 달과 같아서 개기일식이나 구름으로 가려지거나 지구의 그림자로 반쪽이 나도 다시 드러나게 되는 것. 그렇게 사람들은 본성을 가리고 가리지만 결국엔 드러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비밀이라는 것도 늘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자신의 본성에 관련된 비밀이 가장 치명적이고 자극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본성이란 비밀을 이런저런 이유로 드러내기 힘들어하거나 주저하거나 거부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 본성의 감춤과 탄로의 반복과 저마다의 삶의 모습이 되는 것이고, 비밀의 삶이 감추고 가려져 사적인 삶에 머물다 드러나게 되면 공적인 삶으로 변모될까 두려운 심리가 비밀을 지키고자 하는 가장 큰 이유일지도 모른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친구들과 커플들은 누구나 말하지 못할, 말하지 않은 비밀이 있었다. 그 비밀이 끌끌 혀끝 차면서 핀잔줄만한 것 일수도 있고, 관계마저 모두 끊어 버리고 달아나고픈 충격적인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비밀이 드러나 소동이 진행되고 각자의 자리로 향하는 그들의 마무리는 다시 일상으로의 복귀로 그려진다. 그래서 영화서 끝날 때까지 흐르는 노래가 'I Survive'이고 한국어로 번안된 노래 '난, 괜찮아.'로 선택된 이유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공적인 삶이든 사적인 삶이든, 비밀이 있든 없든 삶은 계속되어야 하니까 말이다.
영화에서 여자와 남자의 차이를 말하며, 아이폰과 안드로이드폰을 각각 여자와 남자로 비유하는 지점은 흥미로웠다. 다르다는 것과 틀리다는 것은 엄연히 다른 정황인데도 우리는 삶에서 혼용되어 사용하고 있고, 저마다의 삶이 다른 모습이라고 틀리다고 명확하여 단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극 중에서 동생애에 대한 드러남에 대해서도 40년 지기 친구들은 매우 불편해한다. 그것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이어서인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친구들에게 알리지 않아서인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나와 다르기 때문에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인 것이다.
누구나 나의 이야기보다 타인의 삶에 대해 거들어 이야기하는 것을 편하게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타인들의 불행을 보고 남 이야기한다. 나만 아니면 나만 그 고통의 주인공이 아니면 타인의 이야기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내게 그 불행의 고통이 닥쳐온다면 그것은 남들에게 그저 '타인'의 이야기가 된다는 것도 미처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남들의 남다른 이야기에 남달리 흥미로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남다른 삶이 마치 타인의 불행이고 고통이기에 다행이라는 자기 위안을 얻는 것일까? 그럴 때면 자신의 발밑을 내려다 보고 하늘 한 번 쳐다보기를 권한다. 그리고 눈을 잠시 감고 가슴에 손을 올리고 잠시만 생각해 보길 바란다. 혹여 내게는 '남다른' 비밀의 삶이 있는지, 있다면 그것 이 틀리기 때문에 말 못 하는지 다르기 때문에 주저하는지 말이다. 보통 자신을 마주하지 못하는 비겁한 사람들은 그마저도 힘드니 말이다.
영화 <완벽한 타인>은 볼만한 영화이다. 우선 거대한 이야기와 엄청난 제작비가 필요하지 않은 형식의 영화가 제법 성공을 거두었다는 점이 그러하다. 그리고, 과장된 코미디로 의미가 퇴색되긴 하였지만, 시대와 사회를 풍자하고자 하는 제작의 의도 또한 나쁘지 않다. 그리고 나오는 배우들을 보면서 '연기'에 대해 느끼게 해 준다. 목소리만 출연한 이순재, 이도경, 라미란 등 중견 연기파 배우는 물론, 조정석, 김민교, 진선규의 목소리만의 연기를 찾는 재미는 쏠쏠하다. 그리고 출연하는 배우들의 연기력의 갭(Gap)을 느낄 수 있는 점도 흥미롭다. 이런저런 이유에서 이제 IPTV에도 걸린 영화 <완벽한 타인>은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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