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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 스테파노 Dec 27. 2018

[Note] '형님 영업'과 '뒷문 기부'

영업은 조직 생존의 본능

커리어 중간에 살짝살짝 외도하며 NGO 및 공공기관에 근무한 적이 있었다. 업무와 조직의 목적이 다르지만 '영업'의 활동은 중요하게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 때이기도 하다. 기업이 상품을 판다면,  NGO나 공공의 1 섹터 3 섹터는 그들의 서비스와 사회적 가치를 판매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기에 영업에 대한 인식은 그곳에서도 중요하고, 뿐만 아니라 그 영업의 행위는 '전략적'이어야 한다는 것도 동일하게 유효하다.


그 시절 신문에 잠시 기고했던 이야기를 함께 나누어 본다.


 호형호제(呼兄呼弟)의 불편한 진실


기획, 재무, 전략, 홍보, 총무, 구매, 전산, 공무, 대외협력 등 수많은 기업활동에 있어서 꽃은 아무래도 영업일 것이다. 특히 요즘과 같이 치열한 시장환경에서는 영업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기 마련이다. 모든 회사의 경영은 영업에 가치를 조준하고 잘 진행되도록 지원하고 관리하는 일로 정리될 수 있다. 그만큼 영업이라는 것은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활동이다.


한국사회에서 기업영업 활동 중 ‘형님 영업’이라는 말이 있다. ‘갑’과‘을’의 관계로 규정 지어지는 기업 거래에 있어서, 갑의 의사 결정자를 “형님”이라 부를 수 있는 관계 형성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이“형님”이라는 말에는 많은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비공식적인 의사결정의 주요 정보를 나누는 관계라는 의미도 있고, 절대적인 제안 가치보다는 관계중심의 이해관계에서 비즈니스의 성패가 결정된다는 의미도 있다. 정량적인 손실의 계산보다는 선의와 의리에 관계한 의사결정으로 이루어지기 십상이고, 이성적인 이해와 분석보다는 감성적인 공감과 동조로 계약이 되곤 하는 경향이 많다. 모두 안 좋은 일이라 할 수는 없겠지만 , 자칫 공정한 거래 경쟁과 보다 발전적인 혁신을 저어하는 역기능이 부각되기 마련이다. 당장의 사업성과를 얻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본다면 ‘갑’과 ‘을’ 모두에게 낭패스러운 관계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영화 <아부의 왕> 중


기업 사회공헌 활동에서도 ‘형님 영업’과 유사한 형태의 관계 형성을 많이 보게 된다. 기업 사회공헌은 그저 ‘선한 이미지 구축’을 위한 ‘자선적 기부’에 그치는 경우가 대다수이었기 때문이다. 기업이 윤의 아주 적은 부분을 그저 ‘좋은 일을 하는’ 일에 사용하여 ‘좋은 기업’의 이미지로 소비자와 시민들에게 남도록 하는 것이 전부인 시대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비영리기관이나 사회복지 현장기관들은 그저 ‘선심’을 자신의 단체에 베풀어 주기를 기대하고 바라고 요청하고 애원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구조에서 사회혁신적 활동을 사업으로 하고 있는 현장단체들은 모두 이른바 ‘뒷문 기부’에 큰 기대를 걸게 되곤 한다.


‘뒷문 기부’라는 것은 정식적인 제안과 검토와 실행으로 이루어지는 기업 사회공헌 프로세스를 거치지 않는 배분활동을 빗대어 이야기하는 것이다. 때로는 현장의 책임자나 담당자의 인지도를 높이거나, 거꾸로 인지도가 높은 사람을 홍보대사 등으로 영입하여, ‘이미지’에 집중된 관심을 배분으로만 유도하는 경우가 바로 ‘뒷문 기부’ 문화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까지 기업 사회공헌 활동의 통계 대부분은 금융이자소득으로 몇몇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는 장학재단 형태의 운영이나, 아예 학교, 의료법인을 만들어 소위 ‘자판기 장사’라고 일컫는 학원, 병원사업을 경영하거나, 과세 공제가 가능한 기관 등에 일시 기부하여 인센티브를 받는 일로 수렴되어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사회에 대한 책임을 ‘착한 일하기’로 공헌하는 일이 꼭 나쁘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어쩌면, 이러한 시도 조차 하지 않는 기업들이나 전문 소득자들에 비하면 분명 좋은 시도라고 상대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뒷문 기부’에는 분명한 한계와 쉽게 치유할 수 없는 부작용을 생산하게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책임’은 어느새 기업의 중요한 전략이 되었다. 전략이 부재된 기업의 활동은 지속 불가능하다. 따라서 그저 ‘좋은 봉사를 하는 기업’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활동은 지속 불가능하다는 결론으로 이어지게 된다. ‘자선’은 이제 흔한 상품이 되었다. 사회적 현상이나 문제는 더 이상 정치나 복지의 영역에 그치지 않고 있다. 사회문제 해결의 영역은 이미 비즈니스 이슈가 되었다. 기업은 정부보다 거대하고 소비자는 시민보다 거세기 때문이다.


사회문제의 해결은 비즈니스 리더에게 더 이상 ‘선택’의 사항이 아니다. 시장은 포화되었고, 경쟁자는 우후죽순처럼 늘어만 간다. 세상의 재화는 한정된 것처럼 느껴지고, 신기술은 이제 자본 독과점의 전유물이 아닌 세상이 되었다. 이러한 비즈니스 고민이 고령화, 저출산, 양극화, 불평등, 사회적 소외와 관련된 이야기라고 연관 지을 수 있다면, 기업은 ‘사회공헌 활동’을 넘어서서 ‘사회혁신활동’의 단계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기업은 ‘사회’라는, 아직 개발하지 못한 시장을 개척함으로써 사회 변화의 새로운 경제학을 써내려 가게 될 것이다.


세상 사람 모두가 “형님”, “아우”처럼 좋은 관계를 형성한다면 분명 좋은 일이다. 하지만, 나만이 특별한 관계를 원하는 순간, 세상의 상식과 원칙은 깨져버리고, 그 판마저 위축되고 작아지게 마련이다. 기업은 세상의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이익창출을 극대화하고, 사회는 새로운 시장을 기업에게 제공함으로써 부족한 재화와 역량을 마련할 수 있는 세상을 계획하여야 한다. 자선과 같은 일을 하는 것은 그저 ‘나쁘지 않다’는 것만 증명하게 된다. 선하고 좋은 일을 하는 것을 넘어선 ‘바꾸고 변화시키는 노력’이 절실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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