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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 스테파노 Feb 17. 2019

짧은 여름날의 뜨거운 노래; 레토(2018, Leto)

곧 여름이 끝나 간다. 우리의 이번 여름이

‘러시아’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라는 질문에 많은 사람들은 제법 안다고 들먹거린다. 똘스또이와 도스또옙스끼로 대변되는 고전 문학의 나라이며, 차이꼽스끼와 발쇼이 발레단으로 어림잡아 예술의 본향이라 말한다. 요즘 들어서는 트럼프와 맞짱 뜨는 호기만 가득한 푸틴의 나라이며, 동계 올림픽에 금지약물 복용으로 시끄러웠던 무언가 불편 가득한 나라로 인식된다. 그것이 아니라면 부산과 인천 등지에서 ‘춤을 추어’ 돈을 버는 8등신 미녀들을 떠 올리거나, 가끔 할리우드 영화에 등장하는 해결사 조폭들이 생각나게 된다.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몸집만 거대하고 실효 없는 거들먹만 가득한 이빨 빠진 호랑이, 발톱 빠진 곰 마냥 한물간 세력의 대명사로 기억되는지도 모른다. 레닌과 뜨로츠끼 등의 인류 역사상 가장 성공한 혁명의 주인공들은 그저 세계사 시험에 한두 번 만나 보는 것이 전부이다. 반세기 이상 올림픽 메달을 싹쓸이하며 힘을 과시하던 스포츠 강국은 ‘도핑 공화국’으로 손가락질받기 일쑤이다. 이뿐인가 한 때 실제로 미국 대통령과 독대하며 세계의 진영을 양분하던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모습도 아련한 옛날이야기가 되었다. 러시아는 그저 한물간 쓸모없는 얼음 땅만 과시하는 낡은 세력의 대명사로 기억된다. 그런 러시아를 30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소련’이라 부르곤 했다.



“봄이 오고 겨울이 가는 것 모두가 다 당(공산당)의 은총이지.”


영화 <레토>는 그 ‘소련 시대’의 이야기이다. 소비에트 연방 공화국의 시대에 사는 청춘과 그들의 전부로 보이는 ‘음악’에 대한 이야기다. 그 음악도 다른 장르가 아닌 ‘록 음악’이다. 구 소련 체제에서 가장 암울하다고 하는 브레즈네프와 안드로포프의 서슬 어린 전체주의적 1당 독재의 시기에 활동하던 록 밴드를 그리고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 ‘소련’에 록 음악이 있었을까? 아마 잘 모르는 다수는 영화 <레닌그라드 카우보이스>를 보고 우스꽝스럽고 괴기스러운 밴드를 연상하면서 깊은 오해가 시작되었을 것이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레닌그라드 카우보이스>는 핀란드 태생이다. 이런 오해가 아니라 소련 대중음악이라고 하면, 드라마 <모래시계>에 삽입된 주제곡 ‘백학’이나, 심수봉이 번안해 부른 ‘백만 송이 장미’를 떠 올리는 정도가 다 일 것이다. 왜냐하면 이 시절 소련에서 음악을 직업으로 하는 음악들은 모두 “관변 음악”들이었고, 이 음악을 하는 사람들만 직업으로서의 음악을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록 스피릿’은 바이러스 같이 전염성이 강해 그 폐쇄된 사회 안에서도 삽시간에 퍼져 나가게 되었다. 1960년 대부터 외국을 드나들 수 있었던 소수의 사람들로부터 전파된 록 음악들은 아마추어들의 카피와 여가로 시작된 밴드 활동의 태동을 낳게 되었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진화하지 못한 공산주의 사회가 가져다주는 어쩔 수 없는 병폐 ‘체제의 기생충’ 격인 게으름뱅이들을 양산하게 되었고, 그들은 짧은 노동시간의 직업을 가지고 여가의 시간을 그야 말고 놀고 때우는 데 전념할 수 있었다. 거기에 더해 비쇼츠키 등으로 대변되는 민중 포크가요와 바드 송, 시가들과 만나면서 러시아의 특색 있는 록음악을 만들어 내게 되었다. 그러던 중에 왠지 우리와 익숙한 요절 가수 ‘빅또르 초이’의 밴드 ‘키노(러시아어로 ‘영화’)가 등장하게 되고 러시아 록 음악의 뉴웨이브를 이루게 된 것이다. 영화는 이 러시아 뉴웨이브 록 음악의 태동기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나는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
더 이상의 남은 희망은 없다.
곧 여름이 끝나 간다. 지난여름이.

(Кончится Лето: 영화 엔딩 크레디트 OST <키노>– 여름이 끝나 간다)


영화를 보기 전에 홍보나 기타 소개 글들을 보고 모두 낚이게(?) 된다. 영화가 마치 한국계 러시아 록스타 ‘빅또르 초이’의 영화라 생각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는 ‘빅또르 초이’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그 시대를 함께 보냈던 음악의 동지들이자, 암울한 시기를 함께 버티어 간 전우들의 스케치로 그려진다. 앞서 말했듯 관제 음악이 아닌 이상 음악을 직업으로 가질 수 없었던 사회였다. 공연을 하든, 몰래 해적판 레코팅을 하든, 행사를 뛰든 정식 수입을 확보할 수 없었기에 그 시절 록 음악인들은 모두 궁핍할 수밖에 없었다. 화생방 훈련실 마냥 호흡 가쁘게 답답한 현실에서 큰 한숨 쉬어 볼 수 있는 시간은 음악을 하는 순간, 그 음악을 함께 듣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반문화 운동의 모임을 ‘뚜소브나(get-together)’라고 부르며, 그들만의 공간과 시간을 억지 확보하기 위해 온갖 힘을 다하였던 것이다. 그 짧고 짧은 카메라 플래시 같은 행복의 시간은 길고 긴 겨울왕국 러시아의 여름 같이 잠시 왔다 가는 그런 시간들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여름은 젊음의 시절, 상록의 시절이라는 의미 이상의 간절한 행복의 꿈같은 시간을 의미할 것이다.


영화는 레닌그라드의 유일한 관제 합법 록 공연장이었던 '레닌그라드 록 클럽'에서 '주파르크'의 리더이자 한때 아크바리움의 멤버이기도 했던 미하일 '마이크' 나우멘코와의 조우로 시작한 ‘빅또르 초이’의 데뷔 시기에 대한 이야기로 진행된다. 여기에 빅또르의 뮤즈가 되었던 마이크의 아내 나따샤와  러시아 록 음악의 중요한 한 획을 그은 ‘아크바리움’의 리더 보리스 그레벤시코프와의 인연을 그려 낸다. 록 음악이 지금의 뻬쩨르부르그인 레닌그라드에서 성행한 이유는 인근 핀란드와 접경하고 있는 지리적 여건과 함께, 겨울이면 길고 긴 까만 밤을, 여름이면 하얀 밤을 지새울 수밖에 없는 지역적 특성으로 인한 것이라 생각이 된다. 구 소련 체제에서의 밤은 자본주의의 밤보다 길고 각박하였을 것이다. 영화에서도 TV에서는 늘 당과 나라에 충성하는 인민들을 위한 세뇌적 관제 방송이 거듭될 뿐이고, 그 안의 젊은이들이 음악을 소비할 수 있는 방법은 소위 ‘빽판’이라고 하는 해적 레코드를 통해서 이거나 비밀처럼 작은 집에 모여 듣는 ‘뚜소브까’가 전부였을 것이다. 제한적인 허락과 별개로, 기본적으로 록음악을 '서구의 썩어 빠진 퇴폐적인 산물'이라며 줄기차게 까고 있던 소련 당국에서는 빅또르 초이 등의 노래를 매우 위험한 반체제 작품으로 규정했고, 공공장소에서 공연하는 것을 금지해 버렸다. 그럼에도 앨범은 매우 빠른 속도로 팔려나가 소련 젊은이들에게 파급되고 말았다. 원래 하지 말라는 것은 더 하고 싶은 법 아닌가. 그것이 짧은 여름날의 특권이니까 말이다.


영화는 거대한 사회적 이야기를 하거나, 록 음악사의 장황한 도슨트의 역할은 배재하고 있다. 그저 그 시절의 젊은이들의 음악에 대한 열정과 갈등 그리고 좌절을 단순한 흑백 화면에 담아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토>의 화법은 새롭고 신선하다. 영화 중간중간에 상상의 장면이나 몽상적인 화면은 여지없이 컬러로 표현해 내었다. 그 컬러의 화면에는 검열로 주춤거리고 특유의 민족성으로 묵직한 러시아 록 음악 대신 서구의 록 레전드 넘버들이 깔린다. 자유에 대한 갈망과 금기에 대한 반항으로 대변되는 폭발 할 듯한 내면을 나타낼 때는 ‘토킹 헤즈’의 ‘PSYCHO KILLER’가 등장하고, 여름날처럼 짧은 빅또르와 나따샤의 데이트 장면에는 ‘이기 팝’의 ‘PASSENGER’이 흘러나온다. 빅또르와 나따샤가 거만하다고 까 버린 루 리드의 명곡 ‘PERFECT DAY’는 두 사람을 향한 마이크의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을 대신 노래한다. 거기에 더해 좀 더 ‘극화’된 장면에는 어김없이 상황을 ‘실제 일어난 일이 아니다’라는 말로 정리하는 연극적 요소도 더 한다. 아마도 이들의 음악은 러시아의 짧고 짧은 여름날처럼 뜨겁지만 아쉬움 가득함을 표현하고, 당국의 통제와 사회의 감시로 인해 모든 창작의 활동이 ‘검열’ 당하고 ‘검증’ 받아야 하는 현실을 풍자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음악적 멘토가 새로운 신예의 등장을 보며 복잡한 감정을 숨긴 채 음악적 완성을 위해 헌신한다는 이야기는 영화 <스타 이즈 본>이나 <스타 탄생>을 떠올리게 한다. 보잘것없는 블루칼러 이민자의 록 음악에 대한 열정과 좌절에서는 최근 <보헤미안 랩소디>를 떠 올려 볼만도 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엄중한 사회적 여건 속에서 검열과 제제라는 역경을 뛰어넘어 젊음의 패기로 발산한다는 내용은 2008년 개봉한 우리 영화 <고고 70>을 떠 올리기에 충분하다.



빅또르 초이의 노래가 들려온다.


1990년 대 중반에 러시아에서 교환학생으로 생활할 기회가 있었다. 글라디노스뜨, 페레스트로이까 등으로 문호가 개방되고 시장 자본주의를 받아 들어 변화하던 초창기의 러시아에서의 생활이었다. 영화 <레토>의 시기와 십여 년 차이는 있지만, 암울하고 답답한 거리의 모습과 생기 없는 사람들의 표정은 그 당시도 별 다를 것 없었다. 다른 것이 있다면 엄청난 인플레이션이 시작되어 100달러 정도 환전하면 수백만 루블로 돌려받았던 것과 시장 경제의 도입으로 신세대(노브이 루스끼)가 등장하고 외국인들의 수가 늘어난 것들이었지, 본디 땅의 주인인 러시아 민중들의 생활은 별반 다를 바 없었다. 그런 러시아 유학 생활 중에 지금까지 남아 있는 인상적인 장면은 그들의 일요일의 모습이었다. 일요일이면 ‘뜨레찌야꼽스끼 미술관’ 같이 명화들이 남아 있는 미술관, 박물관이나 장영주 등의 유명 뮤지션이 연주하는 ‘차이꼽스끼 대음악당’ 같은 곳에 길게 늘어선 입장 대기 줄이었다. 모두들 없는 살림에도 어린 자녀들의 손을 잡고 영하 20도가 넘는 추위 속에 입장의 차례를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입장 순서가 되면 열중 팔, 구는 아이들만 안에 들여보내고 부모들은 밖에서 그들을 기다리곤 하였다. 유명 문화시설의 입장료를 지불하면서 일상을 영위하기에는 빡빡한 경제가 발목을 잡기에 대부분 ‘무료’로 제공되는 아이들을 들여보내는 것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가난할지언정 문화에 대한 자존심은 잃지 않고 있었다. 러시아 시(詩)를 낭송하는 시가 낭송장에 수 천명이 늘 만원사례를 이루고, 체홉의 연극을 올리는 작은 소극장에서도 긴 줄은 예삿일이 된다. 영화에서 보리스가 마이크에게 러시아 록 음악을 서구에 알리자고 제안을 한다. 그런데 마이크는 주저하게 된다. 서구 사람들이 아무리 차이꼽스끼, 체홉을 인정하고 찾아든다 하여도, 우리의 음악은 비틀스, 티렉스, 이기 팝, 데이비드 보위 등이 하고 있는 음악과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는 자조 가득한 열패감이 앞서기 때문이었다. 그런 말들에 보리스는 이야기한다.

‘우리의 이야기를 하면 되지, 지금 우리의 이야기 말이야.’


음악의 장르는 파편화되고 그 다양함을 손으로 꼽기에 불가능할 정도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르를 물어 온다면, 잠시의 주저함 없이 ‘록’이라고 대답한다. 여러 음악의 장르가 있지만, 음악의 장르에 ‘정신(spirit)’을 붙일 수 있는 유일한 장르가 ‘록 음악’이기 때문이다. 일전에 영화에 대하여 말할 때, 지금의 시대와 조응하는 ‘시대성’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음악도 마찬가지 이유로 ‘록’에 꽂혀 살고 있다. 엄중하고 두꺼운 철의 장막도 뚫어낸 록의 정신은 강한 전염성으로 본래의 음악의 토대를 숙주로 삼아 거듭 나는 매력이 있다. 빅또르 초이의 음악을 아직도 모스끄바 아르바트 거리에서 버스킹으로 들을 수 있는 것은 그의 음악적 성과에 대한 예찬뿐은 아닐 것이다. 그 시대를 버티어 낸 ‘뚜소브나’ 세대에 대한 존경과 고마움의 표시일 것이다.


런던 올림픽 개막식에 지미 페이지가 이층 버스에서 기타 리프를 연주하고, 소치 올림픽에서 빅또르 초이의 ‘혈액형’과 ‘여름이 끝났다’가 울리는 장면은 록 마니아로서 사뭇 부러웠다. 한국의 음악 산업 토양에서 그 놈들이 그놈들 같고, 그 노래가 그 노래 같은 k-pop 보이 그룹, 걸 그룹의 홍수 속에서 ‘록 음악’의 뿌리를 찾는 것은 생뚱맞은 일이 되곤 한다. 그러나 가장 암울하였던 우리의 현대사 속에서 함께 울분을 부르짖을 수 있었던 ‘록 밴드’들을 언젠가 재조명하는 날이 오길 개인적으로 바라 본다. 음악만 들어도 좋았던 영화 <레토>를 보며 한국 록 스피릿의 권토중래를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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