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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 스테파노 Feb 19. 2024

기꺼이 당신들의 타협하지 않는 볼모가 되겠습니다

의료계 집단 행동에 대한 암환자의 입장

- 혈액암 환자가 의료계의 집단행동에 대해 마주하는 자세-


저는 백혈병 진단을 받고 초기 항암을 시작한 중증 질환자입니다. '기적의 탄환'이라는 표적 치료제의 개발과 혁신, 그리고 각종 항암치료와 조혈모세포이식으로 보통인의 기대수명을 희망하며 투병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의사단체들의 단체 행동이 예고된 가운데, 저와 같은 중증환우들은 그저 사람 개인의 '선의'를 기대할 수밖에 없는 실정입니다.  투병 정보를 얻고 정서적 위안을 받기 위해 가입한 환우들의 온라인 커뮤니티는 최근 조용하기만 합니다. 혹여나 의료인들을 자극해 '진짜 재앙'이 오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기 때문이지요. 마치 볼모로 잡힌 인질들의 딜레마가 현실로 다가온 처지가 되었습니다.


의사들의 집단행동과 도 넘은 발언들(암 초기 환자를 말기로 만들어야 한다. 의사가 자신들 생명줄을 잡고 있다는 것을 개돼지에게 보여 주자)을 보며 떠오른 단어가 한 가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공갈'입니다.

공갈이다


"이미 많은 부를 축적하고 있는 나라에서는 부를 창출할 수 있는 온갖 방법이 다 활용된 터라, 이제 남은 거라고는 단 한 가지 방법밖에 없다. 공갈이 바로 그것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 사전 중 <공갈> 편-


공갈이란 공포심을 느끼도록 윽박지르거나 을러 대는 행위를 말하며, 때론 ‘거짓말’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고 사전에서 정의하고 있습니다. 공갈의 일성은 대체로 어처구니없게 다가 오지만, 지속되는 압박감에 의해 결핍이나 상실에 대한 두려움을 쌓게 됩니다. 이것이 공갈의 효능이고 이런 공갈의 효능은 생각보다 유효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정치세력(정치인뿐만 아니라, 의사들처럼 정치적 권력을 추종하는 세력)은 항상 대중에게 공갈을 하고 협박을 합니다. 그들은 고상하게 ‘수사학’이라고 하기도 하고, 약간 솔직하게 감정선을 자극하는 ‘선동’이라고 하기도 하며, 대놓고 “아니면 말지” 식의 전략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심하게 비약하자면, 이들이 가진 유일한 병기는 ‘호소를 위장한 공갈’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공갈의 효능은 매번 패닉 상태의 외상환자에게 놓아준 모르핀처럼 유효하게 다가옵니다. 그래서 이와 같은 공갈의 행위는 정치행위 마지막에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지도 모릅니다.


보수 정치권과 의료 산업 주체들은 의료의 수지 불균형을 이유로 들어 공공의료 확대 반대와 민영화를 들추고 있습니다. 지금의 의료인들도 포화가 되어있어서 먹고살기 어렵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민간 개업의의 폐업은 늘어가는 반면, 공공의료기관과 종사자의 수는 부족하고 그 수치마저 부끄럽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에  조금은 상충하는 개념 충돌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의료행위에서 이익이 발생하지 않는 것이 당연지사


늘 의료계는 '적자타령'입니다. 적자구조라는 것은 쉽게 이야기해서 수입보다 지출이 많다는 이야기지요. 이는 공급이 수요를 과잉 초과하여 가격이 하락하여 벌어지거나, 가격점이 시장경제의 수요공급의 교차점에서 이탈되었을 경우일 것입니다.


국내 의료 수요는 과잉 초과 수준이고 공급은 부족하기 그지없습니다. 이 지점에서 본다면 각 의료 기관의 수요공급의 교차점은 높아져 가격이 당연 상승하게 됩니다. 대부분 공급이 한정된 과점시장에서 적자는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공공의료뿐 아니라 비영리를 추구하는 대한민국 의료공급의 특성은 가격이 시장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로 결정되는 '의료수가제'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비싼 의료보험료를 지출하는 이유입니다.


"가격결정 권한"이 공급자에게 가지 않는 이유는 "의료"는 시장의 원리로 두어서는 국민 전체의 행복추구권이 침해되기에 국가와 기관이 개입하여 가격을 조정합니다. 전기, 가스, 교통, 의료가 대표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의료는 "비영리 기관"이 법적으로 정해진 위치입니다. 즉 수요ㆍ공급의 시장원리가 작동하는 곳이 아닙니다.


현실


이와 함께 적자구조의 개선을 위해 '비용'에 대한 철저한 이해와 성찰도 필요합니다. 현재 의료기관의 '비용'은 사실상 거의 모두 '고정비'에 준하는 시설비, 인건비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더불어 의료서비스 전문인의 인건비를 현실화하고, 연차별 인력구조를 탄력적으로 조정하고, 재료비 용인 의료서비스 재료에 대한 가격 정상화/투명화가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요. 공공 종사를 담보로 하는 의료전문인 교육기관을 확충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결론적으로 의료기관의 만성 적자구조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의료기관의 서비스 공급을 늘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서 의료기관수와 병상수를 늘리고, 의료에 종사하는 의료서비스 공급자인 의사와 간호사 및 의료전문인의 공급수를 늘려 고정비를 변동비에 준하게 끔 유연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역설적으로 보이지만 '적자구조'개선의 제1번 과제인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욕망'이 개입합니다. 대한민국의 의사들의 임금급여 수준은 세계 최상위권입니다. '공급 과잉'이 아니라 '공급 가격 초과'가 문제입니다. 중증질환자들과 가족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한국의 의료 종사자들의 서비스 품질이 결코 세계 최고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지요. 전공의들은 '사회적 교육과 훈련'이 완성되지 못한 집단입니다. 그들이 내어 놓은 의료기록지와 각종 의뢰서, 소견서만 보더라도 그들의 공무적 문서 작성 수준은 '낙제점'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긴 투병으로 경험적 지식이 축적된 환자들보다 인사이트가 부족할 때도 있습니다. 환자들 앞에서 '폭탄'이라고 스스럼없이 지칭하는 그들입니다. 그런 그들은 '미래의 밥그릇'이 늘 걱정입니다.


사실 병원이 추구하는 가격구조라는 것은, 병원은 실질적인 서비스와 재료비를 제값으로 제대로 받아 운영하되, 환자의 조건에 따른 합리적 차별에 의한 지원 프로그램으로 치료비를 보전하고 지원하는 제도가 더 바람직해 보이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입니다.


병원의 재무제표는 건전성을 유지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서민들에게는 비용 부담을 들어주는 목표로 공공적 의료 서비스 전달체계를 만들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이를 위해 정부기관은 물론, 의료종사자, 환자/의료소비자들의 협력과 깊은 이해가 필요합니다. 공부하고 연구해서 적용하는 것이 필요하지요. 슬로건이나 운동보다 앞서길 바라는 지점입니다.


문제는 여기에



비현실적인 의료수가를 상향 현실화하는 방안은 의료보험료를 늘리거나, 공공비용에 의한 수가보전이 방법으로 이야기됩니다. 하지만, 현재 실제 국민소득과 과세 투명성을 감안할 때 보험료의 상향은 정말 부담스럽습니다. 그렇다면 공공재원의 확대인데, 이것은 증세가 없다면 절대 불가능한 일입니다. 다시 말하면 의료소비자의 부담이 필연적이라는 것입니다.


의료소비자의 부담의 증가 외에는 방법이 없을까요? 공공뿐 아니라 민간의료기관도 장부상으로는 적자 혹은 BEP even으로 경영학적으로 낙제점에 가깝습니다. 민간기업의 기준으로는 폐업 내지 구조의 조정이 필연적입니다. 이러한 수익의 구조를 개편하기 위한 방법은 수입구조를 확대하거나 비용구조를 합리화하여 비용을 감소하는 양방향의 조치가 필요합니다.


현재 의료기관의 비용의 대다수는 의료서비스 공급자의 인건비와 기자재 보강비 그리고 재료비와 일반관리비로 이루어집니다. 그중에서 가장 큰 부분이 인건비이고 그다음이 기자재 보강비입니다. 의료수가의 현실화뿐 아니라 해답은 여기에 있습니다. 산업의 구조와 국민의 소득 수준을 감안할 때 의료공급자의 통상임금에 대한 재고는 필연적입니다. 또한 비정상적인 기자재의 도입과 수주관행도 사라져야 합니다. 1억 원 원가의 기자재를 5,6억에 구매하여 비자금을 생산하던 구조는 여전합니다. 큰 기자재뿐 아니라 소액의 의료재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국민의 세금으로 스스로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자고 합니다. 일부 기득권의 이해관계가 개입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국민 유권자들도 "진영"의 스피커에 현혹되어선 안됩니다. 우기며 버티는 기득권도 문제이지만, "골든타임" 적기를 놓쳐 버린 정부도 문제입니다. 매일 방역 수치만 발표하는 것은 그저 그런 요식행위입니다. 실질적인 공공 의료 체계를 정비할 수 있는 적기는 지나가고 있습니다. 이런 것이 "레임덕"일 수도 있습니다.

정치권은 늘 의사들 눈치만


사회적 경제와 공유경제를 이야기하면서 자본주의의 시장과 민간의 영역에 대한 insight가 부재하다면 소설에 불과합니다.


보편적 복지를 이야기하면서 재정에 대한 이해와 정부지원사업에 대한 냉철한 평가시스템의 도입이 없다면 복지의 전달체계도 개선되기 어렵습니다.


공공의료를 이야기하면서 의료사업의 전반에 대한 이해와 비정상적인 의료서비스 공급구조에 대한 고민이 없으면 공공병원은 세워질 수 없습니다.


새로운 정치를 이야기하면서 정당정치에 대한 기본적 공과를 파악하지 못한다면 그 새정치는 정말 새(bird)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고급 좋아하는 분들께


"고급스러움이란
빈곤함의 반대말이 아니라,
천박함의 반대말이다"

-코코 샤넬-


샤넬이 말처럼, 고민하고 학습하지 않으며, 보다 전문가적인 고민이 없는 일성들은 가치의 빈곤함을 양적으로 채워질 수는 있지만, 준비되지 않은 얇은 고민의 천박함을 메워 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프로필과 명함을 내세운 '식자적 자의식',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공갈이라는 프레임의 덫이 어느 정도 효능을 발휘한다면, 이번 정권뿐 아니라 앞으로도 시민이 중심이 되는 정치활동도 밝은 전망을 하기 어렵습니다. 이들의 최종 목적은 선거의 승리나 정치 이벤트의 성공이라기보다, 대중들의 철저한 정치적 무관심을 유도하는 것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일반인이, 서민이, 대중이, 시민이 ‘감히’ 정치행위를 하는 것이 못마땅한 세력들의 추악한 방어이고 공격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미디어의 공갈 형태에 대한 뒷면을 우리가 사실적으로 관찰할 필요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기에 일상은 버겁고 인생은 힘겹습니다.


현상을 보고 진실을 가늠하기란 점점 더 어려운 세상이 되었습니다. 미디어와 언론에서 쏟아 내는 정보에 대한 판단과 검증에 생각보다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귀찮음의 결과가 오늘과 같은 내일을 가져다줄 뿐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요? 그래서 고민과 다짐은 필요합니다. 항상 주의를 기울이고 생활하기 어려웠다면, 지금부터 그렇게 하면 됩니다. 그것조차 버거운 삶이라면 일상 중 특별한 한때 노력해서 함께 하면 됩니다.


그 특별한 때가 바로 지금, 그리고 바로 오늘인 것일지도 모릅니다. 오늘 바로 세우지 못한 나무는 내일 바르게 자라지 못합니다. 오늘 고쳐 잡지 못한 물길은 내일 바다로 갈 것이라 장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혈액암 환자인 저는 그들의 공갈에 기꺼이 볼모가 되기로 합니다. 타협과 절충 없는 볼모가 되기로 합니다. 죽을 각오라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의료인들의 집단 공갈을 반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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