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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이로운 Aug 20. 2020

내가 가진 물건들이 정말 나를 대변할까?


놀랍도록 편리해진 소비 생활


요즘은 우리가 마트에 가는 게 아니라, 마트가 우리 집으로 옵니다. 우리는 핸드폰이나 컴퓨터로 마트 물건들을 주문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그다음 날 새벽에, 온갖 물건들이 우리 집 앞으로 배달됩니다. 간단한 생활 용품들부터 신선 식품들까지, 다 배달됩니다.


마트만 그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새벽 배송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총알 배송이라는 말이 별로 와 닿지 않았는데, 이제는 그 단어에서 생생한 현실감을 느낍니다.


상품 결제 과정은 얼마나 간편해졌나요. 온라인 쇼핑몰에 내 카드 정보를 등록해 놓기만 하면, 나는 비밀번호 몇 자리 누르는 것으로 결제를 완료할 수 있습니다. 온라인 쇼핑몰 아이디에 우리 집 주소가 등록되어 있으면, 물건을 살 때마다 집 주소를 일일이 적어 넣을 필요도 없습니다.


핸드폰만 가지고 있으면, 우리는 현금이나 카드 없이도 물건을 살 수 있습니다. 소비에 대한 유혹에 넘어가기가 너무 쉬운 세상입니다.





욕구에 따른 소비의 결과


과거의 사람들 대부분은 주로 자신들의 필요에 따른 소비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다고 해서 본인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다 살 수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어떤가요. 많은 사람들이 욕구에 따른 소비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겨울옷을 가지고 있는데 겨울옷을 또 삽니다. 운동화를 가지고 있는데 운동화를 또 삽니다. 핸드폰이 고장 나지 않았는데 핸드폰을 또 삽니다. 찬장이 가득 찼는데도 찻잔을 또 삽니다. 안 쓰는 방이 있는데도 더 큰 집으로 이사 갑니다.


예전에는 대개의 집주인이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현대의 집주인은 물건들인 때가 많습니다. 물건들을 보관하기 위한 방을 따로 필요로 하는 집들이 많습니다.


옷들을 보관하기 위한 방. 운동 기구들을 보관하기 위한 방. 책들을 보관하기 위한 방. 그동안 받아 온 선물들을 보관하기 위한 방….


내가 살고 있는 집에서 가장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건, 옷들과 책들이었습니다. 나는 옷들을 버리질 못해서, 안 입은 지 몇 년이 된 옷들도 행거에 그대로 걸어 놓았습니다. 몸에 전혀 맞지 않는 옷들도요. 나는 옷들을 버리지 못하는 내가 어떤 문제를 겪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집에 가든 옷장 모습이 그랬으니까요. 다들 그러고 사는 줄 알았으니까요. 그게 정상이겠거니, 하였습니다.


나는 책들도 버리지 못했습니다. 내 직업이 작가여서가 아니라, 그냥 나는 내 물건들을 좀처럼 버리질 못하는 인간이었습니다. 나는 심지어 책들을 수집하기도 했습니다.


내가 살았던 방들은 언제나 책들로 붐볐습니다. 나는 내 집 곳곳에 쌓여 있는 책들을 보며 일종의 충만감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대한 충만감의 크기보다, 거기에 대한 갑갑함의 크기가 언제나 더 컸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내 책들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책들을 사 모으는 걸 멈추지 못했습니다. 결국 나는 쓰던 책장을 버리고 새 책장을 사야 했습니다. 새 책장도 금세 다 찼습니다.


나는 내 편의나 휴식을 위해서가 아니라, 책 보관을 위해 내 방 구조를 계속 바꿨습니다. 내 방에 책이 있는 게 아니라, 책 방에 내가 있을 뿐이었습니다.



내 물건들이 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는 믿음


옷이나 책뿐만이 아니라, 나는 모든 물건들을 필요 이상으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내가 결핍에서 멀어지는 만큼, 감사할 줄 아는 내 마음의 기능은 저하되었습니다. 나는 새로운 물건들을 가질 때마다, 감사가 아니라 쾌락에 전율하였습니다.


무언가를 새로 가지게 될 때마다 내가 쾌락을 느낀 것은, 그 물건이 나를 ‘좀 더 근사한 인간’으로 만들어 줄 거라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물건들의 쓸모가 아니라, 그 물건들의 전시에 더 관심을 쏟을 때가 있습니다. ‘이걸 어디에 쓰지?’가 아니라 ‘이것들을 다른 사람들한테 어떻게 보여주지?’ 하는 것에….


현대의 소유물들이 일종의 표현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마케팅 전략들이 상품을 표현 수단으로 만들었습니다.


‘이것을 가진 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이다.’

‘나는 이것을 가짐으로써 내가 이러이러한 사람임을 세상에 알린다.’


수많은 TV 광고들이 우리에게 속삭였습니다. 이 물건을 가지는 즉시, 당신은 이런 사람이 될 거라고. 인기 많은 사람, 섹시한 사람, 우아한 사람, 개성적인 사람, 건강한 사람….


우리는 물건을 사는 동시에, 어떤 이미지를 삽니다. 어떤 이미지를 사기 위해, 우리가 어떤 물건을 구입할 때도 있습니다. 왜 수많은 사람들이 명품 소비에 열광할까요. 그 명품 지갑, 가방 같은 것들이 자신을 품위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물건의 가격만큼 자신의 가치가 높아진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명품 물건들과 연결되어 있는 이미지 때문입니다.


지갑이나 핸드폰은 명품 가방이 아니라, 브랜드 없는 천 가방에 넣어도 됩니다. 그 천 가방에 넣을 수 있는 것들이 명품 가방에 넣을 수 있는 것들보다 더 많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기능적인 면에서는 그 천 가방이 명품 가방보다 훌륭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물건과 연결되어 있는 이미지가 자기 자신을 정의할 수 없다는 걸 진실로 알아차린 사람들은, 물건의 실용성을 최우선 가치로 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물건과 연결되어 있는 이미지가 자기 자신을 정의할 수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나를 값비싸 보이게 만들어 줄 수 있는 물건들’을 소비하길 멈추지 못합니다.


잘잘못이 있나요. 각자의 선택과 그에 따른 결과가 있을 뿐입니다.





‘비우기’는 생활 혁명인 동시에 정신 혁명


사람의 겉모습만으로 그 사람의 모든 걸 판단하는 것은 굉장히 어리석은 일이라고 모두가 생각합니다. 그런데 정말 사람의 겉모습을 전혀 상관하지 않는 사람은 드뭅니다. 아직은 드뭅니다. 그래서 끝없이 소비하고 과시하는 생활에서 벗어나는 것을 개인의 일로만 보기는 어렵습니다.


“수수하게 살고 싶으면 지금부터 그렇게 하면 되지.”, “필요 없는 것들, 오늘 당장 다 버리면 되지.”라고 말하기는 쉽습니다. 그런데 당장 그렇게 살기는 어렵습니다. 자신의 오랜 습관을 버리는 것 자체도 어렵지만, 자신의 생활 변화가 일으킨 주변 사람들의 시선 변화를 감당해 내는 건 더더욱 어렵습니다. 그걸 감당해 내려면 정신적인 무장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비우기’는 생활 혁명인 동시에 정신 혁명입니다. 내부적인 준비가 병행되어야 하는 일인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내부는 머릿속이기도 하지만, 마음속이기도 합니다. 비우기는 지식과 지혜 모두를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이 글은 자기 계발서 《비워 내기 ― 과잉의 시대와 미니멀리즘》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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