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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이로운 Aug 27. 2020

인간은 왜 먹어야 하는가


쾌락을 충족시키는 도구가 된 음식


아직 세계 인구 가운데 26% 정도는 식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지 못한 채로 살아가는데*, 어떤 나라 사람들은 극심한 비만 때문에 다양한 합병증을 앓거나, 단명합니다.


* 2019 세계 식량 안보 및 영양 현황 보고서(FAO, 2019).


우리나라에도 밥 굶고 사는 사람들 별로 없습니다. 소득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비만 인구도 늘었습니다. 젊은 사람들 비만율이 급속도로 높아지고 있다는 연구들이 속속 나옵니다. 우리나라 성인들 세 명 중 한 명이 비만을 앓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늘 점심에 밥을 먹을 수 있을지, 없을지 고민하는 게 아니라, 오늘 점심에 뭘 먹을지 고민합니다. 온 곳에 식당들이 널려 있습니다. 가정집 냉장고들 대부분은 가득 차 있습니다. 음식들이 범람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 음식들을 다 먹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나라 전체 쓰레기의 28% 정도가 음식 쓰레기입니다. 왜 우리는 다 먹지도 못할 음식들을 잔뜩 차려 놓는 걸까요.


우리는 생존을 위한 식사가 아니라, 놀이와 보상을 위한 식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원래 인류의 식사는 ‘영양분 섭취’라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는데, 현대인의 식사는 ‘감각적 쾌락의 충족’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물론, 나는 우리가 보다 맛있는 음식들을 먹을 수 있게 된 것을 축복으로 여깁니다. 다양한 레시피들이 개발되어, 사람들이 자신의 식사 시간을 더욱 즐길 수 있게 된 것은 분명히 좋은 일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우리 자신의 식생활을 조절하거나 통제하지 못하는 경우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다양하겠습니다. 음식과 식사에 대한 잘못된 인식, 가공된 음식 안에 함유되어 있는 중독적인 성분들…. 이런 것들이 음식을 우리의 주인으로 만듭니다.





라면 먹고 사는 사람, 스테이크 썰며 사는 사람


우리가 먹는 음식들도 다양한 이미지들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라면’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와 ‘스테이크’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확실히 다릅니다.


음식들도 물건들처럼 각각의 상품이라, 수많은 기업들이 감미로운 말들로 소비자들을 현혹시킵니다. 당신이 이 음식을 구입하면, 이렇게 고급스러운 사람이 될 거라고. 당신이 구입하는 이 음식이 당신을 ‘한 차원 높은 인간’처럼 보이게 해 줄 거라고.


대중의 호평을 받고 있는 유명한 연예인이 어떤 상품을 즐겁게 사용하는 모습을 광고로 보여주는 것은, 이미지 판매를 위한 최적의 수단 중 하나입니다. 그 광고를 본 소비자들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나도 저거 쓰면 저 사람처럼 될 수 있을까.


음식 광고 속의 음식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위로입니다. 격려입니다. 효도입니다. 즐거움입니다. 휴식입니다. 모성애입니다. 행복입니다. 건강입니다. 우리는 그것들을 얻기 위해 돈을 지불합니다.


그런데 사실, 음식은 음식일 뿐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어떤 음식 구매와 섭취가 불러올 결과들에 신경 써야 합니다. 기업들은 거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웬만한 기업들은 우리의 건강과 행복에 실제로는 별 관심 없습니다. 지구의 미래에 관심 갖는 기업들은 얼마나 되나요.



우리는 언제 먹고 왜 먹나


건강하지 못한 식습관이 인류를 병들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본인의 식습관을 개선시키지 못합니다. 거기에 문제가 있다는 걸 자각하지 못해서. 또는 그걸 자각했지만, 거기에 대한 심각성은 딱히 못 느껴서.


우리는 온갖 음식들에 둘러싸인 채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배가 고프지 않은데도 때가 되니 먹습니다. 친구들, 가족들이 뭐 먹자고 하니까 먹습니다. 심심해서 먹습니다. 우울해서 먹습니다. 화가 나서 먹습니다.


그런 그들의 최선은, 죄책감이 들 때마다 몇 시간씩 운동하는 것입니다. 반나절씩 굶는 것입니다. 그러한 행동들이 죄책감을 효과적으로 덜어 줄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자신의 건강을 제대로 회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식습관을 바꾸어야 합니다.





인간은 왜 먹어야 하는가


나는 20대 후반이 될 때까지, 하루에 3끼를 다 챙겨 먹었습니다. 그러다 28살이 되던 해부터 하루에 두 끼만 먹었습니다. 저녁 5-6시부터 그다음 날 오전 10-11시까지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은) 아무것도 먹지 않았습니다. 나는 매일 공복을 느끼기 시작했고, 몸이 필요로 하는 만큼만 먹으려 했습니다.


간헐적 단식과 두 끼 먹기를 시작하기 전에, 나는 자주 체했습니다. 점심을 많이 먹었는데 저녁을 또 먹으면 어김없이 체했습니다.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게 당연한 일인 줄 몰랐습니다. 나는 내 소화 기관이 약해서 그런 줄 알았습니다. 내가 음식들을 필요 이상으로 먹어서 내 몸이 과부하에 걸렸다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내가 점심에 밥을 얼마나 먹었는지는 생각하지 못하고, 나는 단순히 하루에 3끼를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만 집착하고 있었습니다.


뭔가가 넘쳤을 때 그게 넘쳤다는 걸 깨닫기가 쉬운 것 같았는데, 그게 참 쉽지 않은 문제였습니다.


안 먹어도 되었을 저녁을 먹고 체해서 앓아누워 있는 것에 지칠 만큼 지친 후에야, 나는 나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인간은 왜 먹어야 하는가. 먹기의 본질이 뭔가.


그제야 나는 깨달았습니다. 내가 ‘자꾸 먹는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요. 내가 매일 폭식을 하는 건 아니었지만, 나는 음식 섭취가 불필요한 상황에서도 계속 먹고 있었습니다. 나는 먹기에 중독되어 있었습니다. 그래 놓고 다이어트가 힘들다고 우는소리하고 있었습니다. 몸이 필요로 하는 만큼만 먹으면, 몸에 군살 붙을 리가 없는데.




이 글은 자기 계발서 《비워 내기 ― 과잉의 시대와 미니멀리즘》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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