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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이로운 Mar 29. 2019

여건과 조건의 상대성


   ‘여건이 되어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었다.’, ‘여건이 안 되어 어떤 일을 할 수 없다.’고 할 때의 여건(與件)이란 주어진 조건을 의미한다. 여기서 조건(條件)이란 어떤 일을 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요소를 의미한다. 





   최근까지만 해도, 나는 특정한 일을 이루기 위해 갖추어야 하는 조건이라는 것이 절대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일을 이루기 위해 누구나 동일한 조건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똑같은 일을 이루려 한다고 해도 사람들이 각기 갖추어야 할 요소는 절대적으로 동일할 수가 없었다. 비슷할 수는 있지만 똑같을 수는 없는 것이었다.

   여기에 아침잠이 전혀 없는 사람이 있고, 아침잠이 무지 많은 사람이 있다. 같은 아파트, 같은 동에 살고 있는 두 사람은 집 앞에 있는 수영장에서 새벽 수영 레슨을 들을까 말까 고민하고 있다. 이들의 경제력, 체력, 직무 환경은 엇비슷하다. 이때 두 사람이 고려해야 하는 상황적 여건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아침잠이 전혀 없는 사람은 새벽 수영 레슨을 듣기 위한 조건으로 ‘아침잠 포기’를 꼽을 필요가 없다. 그런데 아침잠이 무지하게 많은 사람은 새벽 수영 레슨을 듣기 위한 조건으로 ‘아침잠 포기’를 꼽아야 한다. 이 외에도 이들은 새벽 수영 레슨 수강을 위해 미묘하게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여건을 살필 것이다. 이들의 여건 차이는 이뿐만이 아니다. 이들은 동일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여건은 상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었다. 어떤 여건 차이는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기도 하였다.





   그런 부분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되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고민이 내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것을 느꼈다. 내가 누군가의 고민을 고민하는 일이 얼마나 얄팍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절실하게 느꼈다. 사람마다 어려워하는 부분이 다 다르고, 아파하는 부분이 다 다르고, 힘들어하는 부분이 다 다르고, 즐거워하는 부분이 다 다르고, 행복해하는 부분이 다 다르고, 보람을 느끼는 부분이 다 다르고, 성취감을 느끼는 부분이 다 다르다는 점을 보다 실제적으로 뉘우칠 수 있었다. 

   돌이켜보니, 여건의 상대성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이 내 과거 곳곳에 있었다. 그들은 내 망설임을 단 한 순간도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내가 어렵다고 하는 것을 단 한 번도 쉽다고 하지 않았다. 내가 힘들다고 하는 것을 단 한 번도 아무것도 아니라 하지 않았다. 그들은 내 어려움과 내 힘듦을 모르지만 그것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고, 이해했고, 존중하였다. 그들로부터 나는 ‘내가 모르는 세계의 모르는 고통을 헤아리는 법’을 배워 나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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