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쪽으로 어떻게 들어가는 거더라
산산이 부서진 3월 이후 아무 글도 적지 못했다. 끝났을 거라 생각했던 균열이 상반기 내내 이어져 도통 무엇 하나 손에 잡히지 않았다. 유도관 코치 일을 그만두면서 오래도록 다니던 유도관, 복싱장을 그만뒀다. 다시 땀흘릴 터전을 찾느라 몇 개월을 헤맸다. 회사 앞 복싱장을 한 달 다녀보기도 하고, 집 인근의 유도관을 여러 군데 들러 상담하거나 하루 운동을 해보기도 했다. 관비가 너무 비싸거나 샤워 시설이 없거나, 관원이 너무 없거나, 출퇴근 동선이 꼬이거나, 또 생각지 못한 변화가 찾아오거나… 등등 이것저것 생각하고 따지다 보니 쉽사리 정착하지 못했다.
그 와중에 방랑벽이 점차 삶의 전반으로 번진 건지 회사를 제외하고는 모든 게 대격변을 겪었다. 작은 교통사고를 당해 한의원을 오래 다녔고, 오래도록 미뤄왔던 숙제와 같은 관계를 정리하면서 많은 각오와 변화가 필요했다. 틀에 박힌 듯 몇 년에 걸쳐 반복되어 오던 일상의 동선과 루틴이 뒤바뀌었다. 낯선 장소, 낯선 사람들, 스치듯 지나간 인연들이 너무나 많았다. 연거푸 혼란이 지속되니 이제는 웬만한 재난 상황이 닥쳐도 조금은 무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해로운 것들을 삶에서 거세하는 과정 중에 잠시 몸살을 앓는 거라고.
그렇게 한소끔 큰 장마와 폭풍이 지나갔다. 유난히 비가 많고 길었던 여름이었다. 머리카락을 짧게 잘라 긴 여름날을 시원하게 보냈다. 얼떨떨한 마음으로 나는 낯선 곳에 서 있다. 방랑의 끝은 보이지 않지만, 일단 지금은 다시 나의 유도를 하고 있다.
다시, 수련
근 4개월 여를 서울대입구역 인근에서 하얗고 말끔한 인테리어의 도장을 다녔다. 지금이야 또 생활 반경이 바뀌면서 다른 도장으로 옮기게 됐지만, 그곳에서 보낸 여름은 기분 좋게 기억에 남아 있다. 여성 관원이 많았고, 단단하고 열정적인 관장님이 계신 곳이었다. 관장님을 보고 있으면 만화 <나루토>에서 나루토가 쓰는 필살기 ‘나선환’이 떠오르는데, 그 단단한 모양새가 마치 소용돌이치는 힘을 응집해서 고압의 상태로 품고 있는 느낌이었다. 잡아주는 관원이 남성이든 여성이든, 체급이 어떻든, 상대에게 맞추어 그 힘을 알맞게 꺼내어 겨뤄주시곤 했다.
도장의 커리큘럼은 매일매일 익히기, 메치기에 굳히기와 자유대련까지 할 수 있었다. 여성 관원 비율이 높아서 대체로 여성은 여성 관원들끼리 운동했고, 신기할 정도로 모든 관원들의 기술이 정갈하고 깔끔했다. 메치기를 할 때면 거울에 비친 내 자세가 그들에 비해 한없이 무너져 보여 부끄러웠다. 비슷한 체구의 실력 좋은 여러 여성 분들과 맞잡아보는 건 정말 귀한 경험이었다. 입관하기 전까지 한동안 대련을 하지 못했던 터라 초반에는 걸음마를 다시 시작하듯 스스로의 움직임이 어설프고 부끄럽기만 했다. 한동안 잃어버렸던 대련의 감을 더듬더듬 찾아가기로 했다. 그렇게 봉사 문고리 잡듯 더듬거리던 중, 나는 나의 큰 콤플렉스를 발견했다.
오른손잡이면서 나는 왼쪽 기술로만 상대를 넘기고 있었다. 오른손 기술에 자신이 없으니 깃을 잡고 버티다가 상대가 틈을 보이면 왼쪽 기술로 업어치기를 해서 넘겼다. 깊이 생각해오지 않았던 한판의 순간들을 곱씹어보니 왼쪽 한팔 업어치기, 왼쪽 허리 껴치기였던 경우가 많았다. 오른손잡이 형태, 즉 우자연체로 시작했다가 상대가 오른손으로 뒷깃을 잡는 순간 왼쪽으로 골반을 비집고 넣으니 처음으로 나와 맞잡는 상대는 당황해서 넘어가곤 했다. 하지만 도장에서 매일같이 맞잡는 이들은 내 레파토리를 눈치채고 손쉽게 내 스위치에 대비했다.
예전부터 늘 자신있게 기술을 들어가지 못하고 낭떠러지 앞에 선 것마냥 상대의 깃을 잡은 채 망설이곤 했다. 자신감 부족이었다. 그 트라우마가 그저 한때의 슬럼프이겠거니 여겼다. 이후에도 어찌됐든 시합에 나가서 곧잘 금메달을 따곤 했으니 무사히 슬럼프를 이겨냈으리라 넘겨 짚었던 것이다. 아니었다. 나의 대련 영상들을 보니, 여전히 나는 잡기 싸움과 몸쓰기가 받쳐주지 못한 채 계속 오른쪽의 기회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왼손의 탄생
그렇다면 오른손잡이인 나에게 어떻게 왼쪽 기술이 이식됐을까? 처음은 부상 때문이었다. 흰띠, 노란띠 즈음 왼쪽 손목을 운동 중에 삐끗하게 되면서, 한동안 왼손이 말썽이었던 시기가 있었다. 손목에 딱딱하게 굳힌 부목을 손날 바깥에 대고 붕대를 감아 고정시켜야 했다. 도복의 소매 바깥으로 뭉툭하게 붕대와 부목이 드러나 회전낙법을 칠 때에도 왼손이 땅에 닿지 않도록 주의해야 했다. 그 상태로는 왼손으로 깃을 잡기가 어려웠다. 당시 내가 배운 기술들 중에서 왼손을 쓰지 않으면서 익히기 할 수 있는 기술은 왼쪽 한팔 업어치기뿐이었다. 오른손으로 상대의 왼팔 소매를 잡아채고, 부목을 댄 왼손을 상대의 왼쪽 겨드랑이 아래로 찔러 넣었다. 당연히 처음에는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디딤발이 반대가 되면서 스텝이 엉성했다. 그렇게 기형적인 형태로나마 유도를 하는 게 재밌고 좋았다. 당시에는 왼손을 다쳐서 마지못해 왼손 한팔 업어치기를 했던 것이지만 덕분에 지금 두어 가지의 왼쪽 기술을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나아가 나의 평소의 회피형 성향도 유도 대련 스타일에 한몫 영향을 끼쳤으리라 생각한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타인과 대립하고 갈등을 빚는 상황에서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마주한 상대를 쓰러뜨려야 하는 무도 계열 운동을 한다면서 무슨 어불성설이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사실 대회를 앞두고 있거나, 심지어 도장 안에서 대련 시간이 다가오면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머리와 가슴 안의 회로가 하얗게 타버릴 것 같다. 그렇다보니 도장 밖의 삶에서도 분위기가 날카로워지는 상황을 최대한 피하고 싶어서, 애초에 상대의 기분을 거스르는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거나 문제 상황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런 성향 탓인지 잡기 싸움에서 일단 지고 들어가곤 한다. 오른손잡이들끼리 붙으면 보통 서로 익히기를 하는 기본 잡기, 즉 오른손 메치기를 들어가기에 유리한 잡기 자세를 만들려고 치열하게 서로의 깃을 잡고 뜯어내기를 반복한다. 오른손은 상대의 왼쪽 목깃을, 왼손은 상대의 오른쪽 소매깃을 잡아야 하는데 나는 상대에게 먼저 깃을 내어줘버리곤 한다. 그리고 상대에게 앞발까지 내어주고 정신을 차려보면 오른손잡이인 내가 왼손 잡기를 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자꾸만 왼쪽 기술을 시도하게 되어버리는 것이다.(그냥 잡기 싸움을 못하는 검은띠의 변명으로 들어주셔도 괜찮다.)
삶이 늘 그래왔던 것 같기도 하고. 상대방의 움직임에 수동적으로 반응하고,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에 익숙해져왔다. 쉽게 휘둘렸고 변화를 두려워했다. 앞서 글의 서두에서 언급했던 상반기의 혼란은 예견돼있었던 일들이었을 터다. 회피하고 외면하며 미뤄왔던 수많은 일들이 연쇄적으로 폭발했다.
그렇게 너덜거리는 상태로 서울대입구역의 유도관에서 보낸 4개월은 ‘잃어버린 오른손을 찾는 모험’이었다. 관장님께서는 내가 기술을 들어가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노라면 적당한 힘으로 버티면서 기다려주셨다. 몸을 써야 한다고, 깃을 잡고 밀었다 당겼다 흔들어주며 틈을 만들어야 한다고. 힘이 바짝 들어가 굳어있는 몸과 발에 신경을 집중했다. 덕분에 관장님이 잡아주실 때면 왼쪽 기술로 회피하기보다 오른쪽 기술을 시도해보자, 라는 용기가 생겼다.
여름의 끝에서 나는 여전히 잃어버린 오른손을 찾는 모험 중이다. 나아가 도장 밖의 삶에서도 다시 원래의 궤도를 찾아 헤매고 있다. 생각해보면 오래도록 내 ‘잡기’를 포기해왔다. 타인에게 삶을 의탁하고 오른손잡이임을 포기해왔다. 원래의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오른쪽 기술의 감각이 희미하지만.
나는 다시 나를 찾아서 헤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