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력감

무도 일기_2024년 11월 19일

by 무도인 박대리

이사를 하게 되면서 옮겨온 도장에 다닌 지 이제 한달이 지났다. 한달 동안 전국보령유도대회도 다녀왔고, 지금은 업어치기며 허리후리기를 다시 재조립하고 있다. 관장님께서는 의사가 환자를 진찰하듯 정확히 내 기술의 문제 지점을 짚어주셨다. '밸런스'. 업어치기와 허리후리기를 할 때 마치 짝다리를 짚듯 한쪽으로 기울어지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늘 상대를 메치게 되더라도 어설프게 들어가다 말거나, 메치더라도 나도 같이 중심을 못잡고 넘어져버리곤 했다. 이래저래 무너진 채로 굳어져버린 기술을 고치느라 요즘은 운동이 끝난 뒤에도 메치기를 하거나 튜브를 잡고 혼자 좌우 중심을 잡는 연습을 하고 있다.


유도는 여전히 너무 재미있지만 이제 몸은 주3회의 유도조차 버티기 힘들 정도로 만신창이로 무너지고 있다. 오래도록 속을 썩여온 오른쪽 어깨와 오른쪽 무릎은 호전될 기미가 없다. 어깨 통증 때문에 편하게 기지개를 피는 감각이 기억나지 않는다. 팔을 들면 찌릿 통증이 인다. 오른쪽 무릎은 이제 출퇴근길의 일상적인 걸음에도 통증을 안겨줬다. 나아가 문제는 통증 부위인 무릎과 어깨에서 그치지 않고 점점 옆으로 퍼져갔다. 무의식적으로 아픈 곳을 쓰지 않으려 하다보니 뜬금없는 곳에 힘이 들어가거나 이상한 움직임을 취하게 된 탓이리라.


이번주 월요일에 좀 무리해서 대련을 하긴 했다. 평소에도 월요일에 관원들의 출석률이 좋긴 했는데, 이번주는 사람들이 정말 들끓듯 많았다. 대련은 쉬이 풀리지 않았다. 이리저리 휘둘렸고 무리해서 기술을 시도했다가 되려 상대에게 깔리기 일쑤였다.


끝나고도 여자 관원분과 메치기를 좀더 했고, 집으로 돌아와 소고기를 잔뜩 먹고 잤다. 자는 동안 오른쪽 어깨에는 뜨거운 찜질팩을, 오른쪽 발등과 오른쪽 정강이, 오른쪽 무릎에는 얼음주머니를 옮겨댔다. 얼음주머니를 대고 있으니 하반신이 너무 추워 이불을 덮었다. 상체는 뜨거운 찜질팩을 얹고 있으니 더웠는지, 아침에 일어나보니 잠결에 기모 잠옷의 상의만 훌러덩 벗은 상태였다.


아침에는 좀더 컨디션이 나아져있을 줄 알았는데 출근길 내내 오른쪽 발등이 딛을 때마다 욱씬거렸다. 무릎도 삐걱이기는 여전했고. 그래도 얼음 찜질을 하고 나니 무릎은 한결 나았다.


오른쪽이 다 망가졌는데 과연 오늘 운동을 갈 수 있을까?


어깨와 무릎, 발, 정강이, 골반... 다 아팠다. 속상했다. 누가 등떠밀어 유도를 시킨 건 아니지만, 그냥 철없이 슬펐다. 몸이 낡아서 그래. 회복도 더디고 쉽게 망가지고. 하루종일 회사에서 조심조심 몸을 움직여보며 저녁 운동의 가능성을 가늠했다.

오후 늦게에 통증이 좀 덜해졌던가 보다. 고민하다가 결국 도장으로 갔다. 살찌는 기분도 너무 싫었고, 몸을 움직이고 싶었다. 게다가 수요일에는 저녁에 일정이 있어서 운동을 못 갈 테니, 오늘은 꼭 운동을 가야 했다.


도장으로 향하는 버스에서 졸린 눈을 비벼가며 '발등 테이핑 하는 법'을 핸드폰으로 검색했다. 내내 테이핑을 안한 채로 운동해왔는데 이제는 손가락 마디에도 꼭 테이핑을 한다. 발등에 그냥 테이핑이 추가될 뿐이다. 도장에 도착하자마자 옷을 갈아입고 도장에 비치된 테이프를 가져와 이리저리 둘둘 감았다. 이리저리 자르고 붙이고 조이고 나니 좀 통증을 잡아주는 것 같기도 했다. 발을 굴러도 보고 쓸어도 보며 시험했다. 이 정도면 참을 만해.



그러나 대련은 형편없었다. 월요일도, 오늘 화요일도. 기술을 왜 들어가질 못할까. 상대의 두 팔을 뚫고 들어가야 하는데 나는 번지점프대 앞에서 망설이는 겁쟁이처럼 뒤로 몸을 빼고 버티고만 있었다. 몸을 내던져야 하는데.

상대에게 메쳐져서 깔끔하게 떨어지면 몸이 아파도 오히려 개운했다. 그러나 내가 업어치기나 안뒤축후리기를 어설피 들어갔다가 밸런스가 무너지면서 연이어 상대에게 기대듯 넘어지는 순간은 자괴감에 내 뺨을 후려치고 싶었다. 이제는 내가 왜 안되는지 이유를 알게 됐으니까. 이유를 알고 있으면서도 고치지 못하고 또 습관처럼 왼쪽 발로 온 무게를 실으며 지읏기 상태에 도달하는 순간, 그래서 또 업어치기에 실패하고 주저앉아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 스스로가 답답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눈 앞의 상대에게 졌다기보다, 나는 나에게 계속 지고 있었다. 오만했던 과거의 나에게 계속 지고 있다.


평소 같았으면 남아서 메치기라던가 튜브운동이라던가, 줄넘기라도 더 했을텐데. 오늘은 운동이 끝나자마자 온몸에 붙인 테이프를 뜯는데 집중했다. 청도복의 섬유가 들러붙어 얼룩덜룩 파랗게 변한 테이프들이,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너덜거리는 허수아비처럼 초라했다.


습관을 바꾸지도 못하고 있었고 되려 낡은 육신은 제 기능을 하고 있지도 못했다. 원망하며 특정 부위를 두드려패주고 싶은데 정확히 어떤 신체부위를 혼내줘야할지도 감이 안 왔다. 망가진 오른쪽 다리? 오른쪽 어깨? 아니면 기술을 명령하고 있을 뇌?

그런 한심한 고민을 하다가 어쩌면 이제 유도를 하기에 너무 나이가 많이 든 걸까, 라는 생각도 들었고 끝내 그런 이유로 멀어져버린 K의 생각도 나면서 눈물이 글썽 치밀어 올랐다. 이제 앞으로의 삶은, 정말 상실의 시간만 남아있는 거야.


차가운 물로 쫄쫄 씻으며 밀려오는 무력감을 받아들였다. 그래, 사이버펑크가 도래하길 기다리자. 망가진 오른쪽 관절, 육신들을 갈아끼우는 거야. 허무맹랑한 생각에 혼자 웃고, 찬물에 덜덜 떨다가, 대련이 안 풀리는 걸 부상 탓으로 몰고 가는 스스로의 비겁함을 조롱하다가, 두 팔로 나를 안고 나왔다.


집으로 돌아와 또 가스레인지 앞에 서서 소고기를 구워 먹었다. 계속 서있으려니 무릎이 아팠다. 소고기를 많이 먹었으니까, 내일 아침에는 이 소고기가 오른쪽 관절들로 많이 흡수돼서 빨리 나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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