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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선영 Feb 10. 2021

고양이가 문을 두드렸다

동시와 글이 만나면

재롱이 가족


집을 나설 때마다 반겨주는

길고양이 재롱이


재롱이는

101동 구역 담당 길고양이 노랭이의 딸이자 103동 구역 고등어의 아내이고 경로당 구역 삼색이의 엄마이며 놀이터 구역 누룽지의 할머니이다


엄마가 챙겨준 가득한 밥상에

이야옹 이야옹

온 동네 고양이 다 부른다


옹기종기 모여 먹는 밥

온 가족 모이는 날


                    - 동시집 <우리 집이 변신한다면>  (2022.브로콜리숲)



고양이 패션        


매일 똑같은 옷 같지만

사실은 분위기에 맞게 다른 옷으로 갈아입지     


엄마가 안고 쓰다듬어줄 때

윤기 좔좔 멋진 코트로 갈아입고     


동생이 울면서 장난감 집어던지면

도망가기 좋은 운동복으로 얼른 갈아입지     


심술 난 동생이 꼬리 잡아당길 때

뾰족뾰족 털옷 입고 있는 걸 보면 알 수 있지


                       - 동시집 <우리 집이 변신한다면>  (2022.브로콜리숲)





  손님들


  “탁! 타닥!”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현관 밖에서 소리가 들렸다. 택배가 왔나보다 생각했다. 하지만 연이어 들려오는 타닥 소리에 택배가 아니라 ‘손님들’이 온 소리라는 걸 알게 되었다.  

  우리 집 마당에는 ‘손님들’이 산다. 4마리의 길고양이가 바로 ‘손님들’이다. 엄마 고양이 ‘재롱이’가 있고, 재롱이의 첫째 아들 ‘나비’, 둘째 아들 ‘짜장이’, 셋째 딸 ‘짱이’가 있다.

  3년 전 내가 사는 주택단지에 하양, 주황, 검정 세 가지 색의 털을 가진 삼색이 고양이 한 마리가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한 이웃이 그 고양이에게 국물멸치를 챙겨주는 걸 보았다. 그러나 나는 유심히 살펴보지도, 신경쓰지도 않았다. 그때만 해도 나는 내 아이들을 돌보는 생활에 정신이 없었다. 내 아이들은 7살, 4살이었다.

 나는 자라면서 동물을 한번도 키워본 적이 없다. 아, 열대어 키운 적은 있구나. 내가 키운 건 아니고 아버지가 관리했으니 애정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앞으로 동물을 키울 것이라고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몇 달 후 그 고양이가 이웃집의 울타리 구석에서 출산을 했다. 집 옆 울타리에 돗자리가 걸려 있었는데 그 사이에 숨어서 출산을 한 것이다.

 “엄마! 저기 ○○ 형아네 울타리에 새끼 고양이가 있어!“

 흥분한 아이들이 뛰어와 소리쳤다. 조용히 가서 살짝 돗자리를 들쳐보니, 정말 새끼 고양이들이 있었다.  

 그때부터 아이들은 새끼 고양이를 데리고 와서 키우자고 조르기 시작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고양이를 만지지도 말고, 주변에서 시끄럽게 하지도 말라고 했다. 사람이 새끼 고양이를 만지면 사람 냄새가 나서 엄마 고양이가 버릴 수 있다는 이야기까지 했다. 우리 아이들은 엄마가 안 넘어갈 줄 알았는지 이웃집 아이들과 몰래 가서 살짝 보고 오곤 했다. 박스를 갖다놓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모른 척 했다. 아마 아이들이 찾아갈 때마다 고양이들은 기겁을 하고 도망갔을 텐데. 그리고 그 비밀 작업을 공모하던 아이들끼리 엄마 고양이 이름을 ‘재롱이’라고 지어주었다.

 고양이는 출산 후 수유기간이 지나면 아이들을 독립시킨다고 한다. 하지만 재롱이는 독립한 고양이들 중 한 마리를 다시 데려왔다. 그리고 함께 살기 시작했다. 새끼 고양이가 차 밑이나 데크 구석에 숨어서 안보이면 특유의 소리로 찾기까지 했다. 그렇게 유난히 새끼를 챙기던 재롱이였다.

 아이들은 집에서 수시로 고양이 이야기를 했다. '오늘 갔더니 한 마리는 안 도망가더라', '계속 고양이들이 거기서 살면 좋겠다'라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매일 업데이트 되는 소식에 나도 자연스레 재롱이와 새끼 고양이에게 관심이 생겼다. 그리고 슬그머니 집 앞에 고양이 사료를 놔두기 시작했다. 새로운 밥자리가 생기자 재롱이와 그녀의 아들인 ‘나비’는 우리 집과 이웃집을 자기들 영역으로 찜 한 듯 했다.

 배가 고파서 그랬는지, 성격이 순해서 그랬는지. 재롱이는 사람들이 문 밖으로 나오면 쪼르르 달려가서 ‘야옹 야옹’ 거렸다. 주기적으로 먹이를 챙겨주는 몇 집 앞을 항상 지켜보는 것 같았다. 어쩌다 먹이가 부족할 때면 마당에 있는 개 사료를 훔쳐 먹기도 했다. 목줄이 묶인 개들은 더 왈왈 짖었고 가끔 후닥 고양이가 달아나는 소리도 들렸다. 다들 건장한 몸집의 개들이었는데 목숨 걸고 훔쳐 먹었으리라.

 그 다음해 여름, 우리 주택단지가 ‘길고양이 TNR’ 대상이 되었다. 각 시에서 동물보호센터와 연계하여 하는 길고양이 중성화 사업을 TNR(포획 후 방사)이라고 한다. TNR은 반복적으로 임신과 출산을 하는 길고양이들의 개체수를 늘이지 않기 위해 하는 것이라고 한다.

 여러 개의 포획 틀이 우리 단지에 도착하였다. 나와 이웃들은 그 포획 틀을 길고양이들이 자주 가는 몇 집 밥자리 근처에 놔두었다. 그러나 재롱이는 그때 이미 두 번째 임신이 되어 있었고 출산이 임박한 상태였다. 결국 제일 중성화 수술이 필요했던 재롱이는 제외되었다.

 곧 재롱이는 출산할 장소를 찾다가 다른 이웃집의 텐트 천 아래에 숨어 출산했다. 구석진 곳을 찾는 것 같아서 내가 현관문 앞에 박스를 마련해주었는데, 영 마음에 들지 않았나보다. 하필 그 집이 며칠 집을 비워 조용했고, 지붕이 있어 비를 피할 수 있으니 그 곳으로 간 것 같았다.

 재롱이는 텐트 속에서 젖먹이 고양이들을 키우더니, 몇 번 장소를 옮겼다. 2~3달쯤 지나자 한동안 새끼들이 보이지 않았다. 독립시켰나 싶었다.

 그러나 재롱이는 역시 재롱이였다. 독립한 고양이 두 마리를 다시 데려왔다. 나비와 함께 다시 우리 집 마당으로 돌아왔다. 새로 마당에 입성한 새끼 고양이들은 짙은 회색 바탕에 검은색 줄무늬가 있는 고등어 태비인데, 한 마리는 짜장에 네 발을 담근 듯 검은색이어서 이름이 ‘짜장이’가 되었다. 그리고 다른 한 마리는 흰 양말을 신은 것처럼 네 발이 다 흰색이어서 이름이 ‘짱이’가 되었다. 짜장이와 짱이는 엄마인 재롱이와 의붓 남매인 나비를 졸졸 따라다니며 먹이를 챙겨먹고 건강하게 자랐다.

 어느새 나는 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챙겨주는 캣맘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 이웃들 눈치를 보며 더욱 TNR 에 관심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몇 달 후 짜장이와 짱이, 그리고 재롱이까지 중성화 수술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모두 귀 커팅이 되어 우리 집 마당의 ‘손님’이 되었다.

 그 손님들은 당연하게 우리 집 마당을 점령했다. 그리고 누워 햇볕을 쬐고 쥐와 새, 메뚜기를 사냥하고 놀며 지냈다. 우리 가족이 집을 비우고 돌아와 주차를 하면 쪼로록 달려와 당당하게 밥 달라고 야옹 거렸다. 어쩌다 밥을 제때 챙겨주지 않아 배가 고프면 현관 문 앞에서 기다릴 때도 있었다. 현관 앞에서 고양이들이 서성일 때 벽이나 문에 부딪혀서 ‘탁! 타탁’ 소리가 난다. 그 소리는 집 안에 있는 나에게 ‘밥 주쇼!’ 하는 소리와 같다. 그 소리는 나에게 기분 좋은 압박감을 준다.

 지난주 일요일, 주택단지 밖에서 쥐약을 먹고 죽은 길고양이를 보았다. 내가 목격한 것만 두 번째였다. 내가 ‘손님들’에게 먹이를 챙겨주지 않으면 그들도 단지를 벗어나 쓰레기봉투를 뜯고 길거리에 떨어진 아무거나 먹으며 지낼 것이다. 운이 없으면 쥐약을 먹을 수도 있겠지. 이런 생각이 나에게 계속 마당을 손님들에게 내어주게 만든다. 그러다 문득 내가 손님들과 동거하는 하숙집 주인 같다는 생각을 했다. ‘먹이를 챙겨주고 지낼 곳을 내어주니’ 하숙집 주인이 아니고 뭔가.

 지난 겨울, 날씨가 많이 차가웠다. 길고양이 평균 수명은 약 4년 정도라고 한다.  겨울을 맞이하며 스티로폼으로 겨울집을 만들어주었다. 밖에서 서로 껴안고 추위를 견딜 ‘손님들’이 무사히 겨울을 날 수 있길. 그리고 부디 건강한 음식을 먹고 오래 살 수 있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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