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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선영 Feb 14. 2021

엄마

동시와 글이 만나면

도토리 냉장고       

        

겨울잠 자는

우리를 위해

엄마는

동글동글 도토리를 소복이     


자다 깼을 때

먹으라고

고르고 고른 도토리만 소복이     


엄마 다람쥐는

도토리를 차곡차곡 쌓으며


'천천히 꼭꼭 씹어 먹어!'


편지도 함께 넣어두었습니다


              - 동시집 <우리 집이 변신한다면>  (2022.브로콜리숲)




 쇠고기 뭇국


 이런, 또 시작이다. 며칠 전부터 코가 따끔거리더니 누런 콧물이 줄줄 흐르고 쉴 새 없이 재채기를 한다. 그럴 땐 머리가 아프고 몸도 쑤신다. 예전에는 병원에서 처방해준 약을 먹었는데 먹으면 일주일, 안 먹으면 열흘 고생 하는 걸 깨달았다. 지금은 그냥 버틴다.

 며칠째 계속되는 감기로 점점 지친다. 옆에 와서 놀아달라는 아이도 귀찮고 밥도 그냥 안 먹었으면 좋겠다. 이럴 때 엄마 쇠고기 뭇국을 먹으면 딱 좋을 텐데. 그걸 먹고 힘을 좀 낼 수 있을 텐데.

 내가 어릴 적 아플 때면, 엄마는 쇠고기 뭇국을 끓여주었다. 아파서 앓다가 밥을 먹을 만큼  회복되면 엄마가 끓여준 쇠고기 뭇국을 먹고 벌떡 일어났기 때문이다.

 사실 어린 눈으로 바라봐도 엄마요리는 항상 맛있는 건 아니었다. 엄마 음식 간을 잘 못 맞췄다. 재료 본연의 맛은 충분했으나 정말 맛이 없었다. 라면은 물을 많이 넣어서 스프 맛을 옅어지게 만들었으며, 브로커리도 데쳐서 초장 없이 그냥 먹게 했다.

 엄마가 맛있게 간을 잘 맞추는 음식이 하나 있었으니 그건 바로 ‘쇠고기 뭇국’이었다. 엄마 쇠고기 뭇국은 맑은 국이 아니라 얼큰했다. 그게 경상도식 이라는 걸 나중에 알았다. 쇠고기를 참기름과 고춧가루에 볶아 만든 것이라 어찌 보면 옅은 육개장 같다. 나는 밥을 잘 먹는 아이는 아니었지만 쇠고기 뭇국은 잘 먹었으니, 과연 간도 맞고 내 입에도 맞는 음식이었나 보다.

 감기로 지친 몸을 추스르고 싶었다. 울적해진 기분도 리셋(reset) 해버리고 싶었다. 결국 내가 나를 위한 쇠고기 뭇국을 끓이기로 했다. 아직 아이들이 어리니까 고춧가루는 빼고 맑은 국으로 만들기로 했다. 집에 있는 요리책과 핸드폰으로 요리법을 찾아보고 마트에서 장을 봤다. 그렇게 만들어진 쇠고기 뭇국. 그런데 식구들 반응이 영 좋지 않았다. 아이들은 고기만 겨우 골라먹었다. 남편은 한 숟가락 먹어보더니 숟가락을 식탁에 다시 내려놓았다.

 “이건…. 무(無) 맛이야! 이렇게 맛이 안날 수도 있다니 진짜 신기하다!”

 나는 급히 국을 한 숟가락 떠먹어보았다. 내 입에는 간이 딱 맞는 것 같은데. 나야말로 신기할 노릇이었다. 여기저기 요리법을 찾아보고 마트로 갔던 일련의 과정들이 갑자기 가볍고 싱거워진 것 같았다. 다음날, 국을 싱크대에 부어버렸다. 식구들 반응에서 예전 엄마의 싱거운 음식을 먹는 내가 떠올랐. 나도 엄마에게 간이 안 맞다고 뭐라 했던 것 같은데. 나도 쇠고기 뭇국만은 잘 만들고 싶다.  

 그 이후 엄마 방식대로 만들어보려고 몇 번 더 시도했다. 고춧가루와 콩나물을 넣으니 조금 비슷해졌지만 내가 기억하는 엄마 국 맛과 달랐다. 간을 많이 해도 살짝 싱겁고 깊은 맛이 부족했다. 엄마가 조미료는 안 썼으니 무언가 다른 재료 탓인 것 같다. 시장산 쇠고기가 아니라 마트산 쇠고기라서 그런 건지, 방앗간 참기름이 아니라 마트에서 산 참기름이라 그런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다음에 친정에 가면 엄마에게 쇠고기 뭇국을 끓여달라고 해볼까. 국 끓이는 엄마 옆에 붙어서 어떻게 하는지 자세히 보고 와야겠다. 그런데 엄마가 예전 그 맛을 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엄마 간은 점점 세지는데.

 친정에 갈 때마다 맛보는 엄마 요리가 점점 짜지고 있다. 국도 짜고 나물도 짜다. 그런데 엄마는 식구들이 요리에 젓가락을 대지 않으면 서운해 한다. 자기에게 하는 위로인지, 변명인지 모를 말을 중얼거리기도 한다.

 “간이 짰나. 나이가 드니까 혀가 좀 둔해진 것 같네. 예전엔 안 그랬는데.”

 아직도 나는 쇠고기 뭇국을 먹을 때 기억이 남아있다. 익혀진 무를 씹는 살캉거림, 쇠고기 한 조각과 국물을 듬뿍 뜬 한 숟가락 앞에서 가득 벌렸던 입. 대파도 달큼해서 먹을만하다는 생각.

 만약 내 기억과 지금 엄마 국 맛이 많이 다르다면, 그때 나도 엄마 나이를 깊이 깨달을 것 같다. 숫자 72, 그런 것 말고 진짜 엄마의 나이 말이다. 이제 엄마는 내 기억 속 엄마가 아닌, 혀 감각이 달라진 엄마가 된 것을 말이다.

 비록 맛이 달라진 쇠고기 뭇국일지라도, 나는 엄마에게 ‘맛있다’라고 많이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엄마가 끓여준 국이기에 진짜로 맛있게 잘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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