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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선영 Nov 02. 2022

가만히 있는 것도 직무유기 아닐까

참나무 옥탑방



참나무 맨 꼭대기에 사는 까치 가족

동네 큰 공사로 집 잃게 생겼다


옆 동네 살던

다람쥐, 딱다구리, 사슴벌레 이사 가고


짐 싸던 청설모가 걱정돼 말했다

"위험해, 너도 얼른 짐 싸"


"집 짓고 여기서 아이까지 낳아 키웠는데, 내가 어떻게 가"


"까치야, 내일부터 공사라구구"

비둘기가 구구구구 걱정하며 말했다


참나무 맨 꼭대기 까치둥지

외딴섬으로 떠 있다


                                 - 동시집 <우리 집이 변신한다면>  (2022.브로콜리숲)





경계 위에 서서


 읽던 책 진도가 안 나갈 때, 「문 밖의 사람들」이란 시사 만화책을 우연히 접했다. 책은 핸드폰 부품을 생산하는 대기업 하청업체에서 일어난 산재사고를 다룬다.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수 많은 사건 사고들.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여러 명의 사람들. 이런 것들을 되돌리는 데 내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되자 문득 답답해졌다.

 예전엔 내가 흥분해한들, 사회는 잘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난 언제나 '경계 위에 서서' 중립적인 입장이었다. 간 보듯 경계를 잘 넘어가지 않았다. 답답하지만 이게 현실이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남이 바뀌지 않는다고 내가 가만히 있으면, 그것도 ‘직무유기’ 아닐까? 시민으로서, 또 하나의 노동자가 될 내 아이들을 위해서 엄마가 해야 할 의무를 저버리는 것 아닐까라고 말이다.

 이젠 경계를 넘어서자고 생각했다. 비록 작지만 행동을 시작하자라고 결심했다. 촛불이 들불처럼 번진다던지 나비효과를 바라고 시작하는 건 아니다. 점점 깊어지는 고민과 걱정들에서 나를 방어하고자 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제일 먼저 행동으로 옮긴 건 메인 포탈에서 특정 언론사 뉴스는 읽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한 언론사를 구독 신청했다. 그랬을 뿐인데 왠지 몰랐던 세계에 눈을 뜬 기분이었다.


 한 언론사를 통해 경북 봉화 광산 매몰 사고를 접하게 됐다. 그러나 곧 메인 포탈에서 그 사건은 이태원 참사로 인해 기사가 덮히게 되었다. 이태원 희생자 합동 분향소에 찾아간 대통령 부부 기사가 반복되고 있을 때, 여전히 봉화 광산 진척 상황을 다룬 기사는 몇 개 없었다. 그러다 골든타임을 놓쳤다.

 애도의 유통기한이 있는 것처럼 애도기간을 정하고, 그 기간동안 추모만 강요하는 이상한 흐름. 엉뚱한 책임자 골라내기만 하려는 이상한 흐름. 언론 기사를 읽다보면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나는 누군가의 입을 전달하는 언론 기사가 읽는 사람의 사고 흐름에 영향을 미친다고 믿는다. 그렇지만, 몇몇 중요한 직책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책임을 미루는 상황 속에서도, 또는 엉뚱한 논리로 정쟁의 근거자료로 삼으려는 사람들 속에서도, 우리들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안다고 믿고 싶다. 상식의 기준이 저마다 다를 때, 그래도 우리들이 생각하는 상식은 비슷하다고 믿고 싶다.


 나는 지금 경계 위에 서 있다. 그동안 이 경계 위에 서서 행동은 하지 않은 채 현실 비판만 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이제 경계를 넘어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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