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을 벗고 하늘을 날다-1. 이상한 휴가

이상한 휴가

by 태산박


사람과의 만남은 즐거울 수도 있고 괴로울 수도 있다. 그런데 어떤 만남은 연민으로 가득 찰 때도 있다.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섞인 만남 말이다. 벌써 그를 만난 지 몇 년이 흘렀다. 이 연재소설은 일부 픽션을 가미한 논픽션 소설이다.





한겨울의 추위가 바닷바람과 함께 매서운 넓은 해변에는 사람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고, 썰물이 남긴 무수한 모래톱엔 갈매기들이 떼 지어 시끄럽게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는 물기가 올라오는 해변의 끝까지 걸어갔다.



그가 그 일로 징계를 앞두고 처음으로 멀리 외진 사업소로 발령을 받은 지가 며칠이 지났다. 그가 정상적인 과정을 거쳤다면 이미 승진을 하고도 남는 시간이 흘렀고, 지금쯤은 새로운 사업소장으로 부임을 받았을 터였다. 본사 근무만 십여 년, 그는 승진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본사를 떠나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결국 그렇게 그가 의지했던 하늘은 그를 돕지 않았다. 사실 오랫동안 기획부서에서 근무했던 터라 그가 만나는 대부분의 업무는 거의 부처님 손바닥 안에 있는 손오공이었다. 다만, 한 가지, 그가 제일 관리하기 까다로운 부분이 있었는데 바로 사건은 거기서 터져버렸다. 환율 관리. 하지만 그것은 그가 알기로 신만이 알 수 있는 영역으로 느껴졌다. 날마다 새벽 2시경이 되면 자동으로 눈이 떠져 휴대폰으로 뉴욕 외환시장을 확인하고 그 초록과 빨강의 숫자들을 보면서 잠을 설치거나 뜬눈으로 지새야 했다.


그렇다고 뉴욕시장의 영향을 받는 서울 외환시장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그저 일상화된 그의 업무였고 어쩌면 그에게 지워진 운명이기도 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게 직접적인 그의 일이라기보다는 그가 관리하는 부서의 업무로 연대 책임자로서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이었다. 따지고 보면 업무의 성격상 일상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일이었을 뿐만 아니라, 일정 기간을 정해놓고 잘잘못을 따지기에는 좀 문제가 있는 업무였다. 증권사에 있는 펀드매니저들이 실수 몇 번 했다고 회사가 쫓아내 버리면 아무도 그 일을 할 수 없는 것처럼, 그가 담당했던 환율 관리도 그러했기에 그를 걱정하는 많은 동료들이 탄원을 하고 선처를 호소했지만 외부의 눈을 의식한 경영진은 눈을 꿈적하지도 않았다.


그가 징계 확정을 받고 출근을 하지 못한 첫날, 그는 홀로 그가 거주하는 곳에서 가까운 해수욕장을 찾았다. 한겨울의 추위가 바닷바람과 함께 매서운 넓은 해변에는 사람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고, 썰물이 남긴 무수한 모래톱엔 갈매기들이 떼 지어 시끄럽게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는 물기가 올라오는 해변의 끝까지 걸어갔다. 한참 걷다가 뒤를 돌아다보았지만 평일인 데다 날씨가 추워서 사람들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었다. 듬성듬성 모여있는 횟집은 아침 흐릿한 안개 때문인지 멀리 희미하게 보였다.


그는 어디까지 걸어가야 하는지 이런저런 생각 없이 그냥 걸었다. 이미 신발에 물기가 닿은 지 한참 되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걷다가 발이 모래에 조금씩 빠져드는 느낌이 들자 그곳에 섰다. 그리고는 바다를 향해 포효하듯 큰소리를 토해냈다. 그의 목은 잠겨있었고 그때서야 참았던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수십 년의 직장생활이 이런 결과로 이어지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는데 지금 그가 맞이한 상황은 그에게 너무나 큰 고통으로 다가왔다. 그때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이번에 그의 징계 결과를 안타깝게 생각하는 경영진 중 하나였다.

“지금 어디서 뭐 하고 있나?”

"..........."

"거기 해수욕장이지?"

"어떻게 알았어요?"

"뻔하지 뭐, 자네 갈 데가 그곳밖에 더 있겠나?"

“바닷바람 좀 쐬고 있어요.”

“에이, 청승맞게... 그러지 말고 서울 올라오면 나랑 술 한 잔 하자고”

“알겠습니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눈물을 닦아주고 파도가 그의 포효에 귀를 기울이는 동안, 횟집 뒤의 작은 공원 위로 올라온 태양이 아침 안개를 몰아내고 있었다. 그는 뒤돌아서 다시 해변을 걸었다. 물기 없는 모래 둔덕을 밟으며 아래를 바라보니 작은 구멍들 사이로 분주하게 오가는 것들이 보였다. 그것들은 그가 몇 번 밟고 지나왔을 수도 있는 그들의 보금자리였다. 생각해 보니 그가 받은 고통보다 그가 그들에게 준 고통이 더 컸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모습은 마치 그가 드넓은 우주 속에서 점보다 작은 이 조그만 땅덩어리에 살고 있으면서 별것도 아닌 일로 상심하는 것을 우습게 여기는 듯했고, 그들의 움직임은 잠시 후면 늘 그랬던 것처럼 그들에게 다시 밀려올 희망을 손님처럼 준비하는, 그래서 고통이나 절망에 빠져들 겨를이 없는 분주한 모습으로 보였다.

‘참, 내가 미물보다 더 못났구나’


그의 휴대폰에는 많은 문자들이 찍혀있었다. 일일이 다 답하기에도 버거웠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답을 하기로 하고 그가 혼자 머무는 사택으로 돌아왔다. 그의 주위엔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혼자였다. 혼자가 된다는 것. 그것은 공허였다. 아픔과 고통을 인식하는 것보다 공허를 느끼는 것이 더 두려웠다. 사실 그는 평소에 혼자 있기를 좋아했고 한평생 혼자 있어도 전혀 외롭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혼자가 되었다고 생각하니 너무 고통스러웠다. 물론 그가 가족이 없어서 그런 건 아니었다. 부모 형제는 물론 가족들이 다 있었다. 그가 혼자라는 것은 따지고 보면 잠시지만 지금까지 몸담아 왔던 울타리로부터 소외된 현실 때문이었다. 더더욱 힘들었던 것은 그가 그렇게 의지했던 신이 침묵하고 방관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서러웠다.

그는 주섬주섬 옷가지를 정리하고 부모님을 찾아보기로 했다. 바쁜 회사 일로 부모님을 자주 찾지도 못했던 것이 늘 안타까웠는데, 이제는 시간도 많고 할 일도 없어서 며칠 다녀오면 될 것 같았다. 어쩌면 그가 누구에게도 위로받을 길이 없어서 고향을 찾아가는, 마치 여우가 제 굴을 다시 찾아가듯 어떤 힘에 의해 끌려가는 듯했다.


갑자기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마음을 괴롭혔다. 하루에도 오만가지가 넘는 생각들이 마음의 방에 들락거린다고 하는데, 그 생각들을 붙잡고 있다가는 우울증에 걸릴 것 같았다. 누구보다도 마음의 길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그의 마음의 밭에 깊이 심어져 버린 그 생각의 씨앗을 뽑아낼 수가 없었다. 그냥 파내면 되는데 날마다 물을 주고 키우고 있었다. 줄기가 올라오고 잎사귀가 풍성해지면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을 태세였다. 그는 고개를 흔들며 풍성해진 잎사귀들을 잘라내기 시작했다. 가만히 두면 죽음에 이르는 병인 그 우울증과 신경 정신병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에 지금 손을 대지 않으면 무슨 일이 날 것 같았다.


고향의 부모님은 여전했다. 팔순을 앞에 둔 그의 아버지는 주름이 더 깊어진 것 같았고, 어머니는 휘어진 허리가 더 불편해 보였다. 그는 그의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차를 타고 가는 동안 혼자서 수없이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았지만 결국은 부모님을 안심시키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휴가 온 듯 대하기로 했다. 사실 직장 생활하면서 겨울 휴가는 한 번도 간 적이 없었고 더구나 휴가를 고향으로 간 적은 더더욱 없었다.

“웬일이냐? 무슨 일로?”


예상대로 부모님은 사전에 휴가 간다는 소리 없이 그가 고향을 찾았기에 놀라는 눈치였다. 그는 별일 아니라는 듯 그냥 자주 못 내려와 죄송하다고 말하고 뵙고 싶어서 온 것이라고 둘러댔다. 바람에 스치는 잠깐의 흔들림에도 세상의 흐름이 어떠한지를 몸소 경험했던 그의 부모님이 순간적으로 비친 그늘 어린 그의 표정을 놓칠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아무 말을 하지 않고 묵묵히 하던 일을 계속했다. 그는 특작으로 재배하는 딸기 비닐하우스에 들어가 그의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 부자간의 무언의 움직임은 무거운 분위기를 연출했지만 딸기 순을 제거하는 손의 움직임이 빨라지면서 자연스럽게 일 속으로 빠져들었다.


저녁을 먹고 이런저런 평범한 대화가 이어졌지만 그의 부모님은 피곤했는지 금방 잠에 빠져들었다. 그는 부모님과 한 방에 같이 누워 있었지만 잠이 오질 않았다. 자꾸 이불속에서 휴대폰을 켰다. 시간을 보니 새벽 네 시가 되었다. 이제 좀 눈을 붙일까 하는데 여전히 주무시고 계신 줄 알았던 그의 아버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냐...”

갑작스레 아버지의 낮고 차분한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흠칫하면서 그가 일어났다.

“아버지, 안 주무셨어요?”

“아니, 좀 일찍 잤더니 세 시쯤 깬 것 같구나. 너 분명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은데 솔직히 말해 봐라.”

“.........”


그의 어머니도 일어나 앉았다. 더 이상 감출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런 상황이 오니 뛰쳐나가 어디론가 가서 실컷 울고 싶었다. 그의 현실보다도 농사일로 고생하시는 부모님께 걱정을 안겨드린 것에 대한 죄송함 때문에 더 그랬다. 그는 자초지종을 설명하기 시작했고 별 것 아니며 잠깐 지나가는 일이라고 말했다.

‘돕기는커녕 그렇게 내버려 두다니...’


그가 고향에 갈 때마다 그는 아버지에게 그가 믿는 신을 얘기하곤 했다. 사람의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고 언제 죽음을 맞이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그가 믿는 신을 함께 믿고 평안하게 여생을 보내시라고 여러 번 얘기했던 것이 생각났다. 그런데 아버지의 체념 섞인 독백을 듣자 그는 정말 그가 마음을 쏟아 믿었던 신이 그를 외면했다는 생각이 들어 서운함이 물밀듯 올라왔고 가슴은 하염없이 무너져 내렸다.

‘그래 어쩌면, 아니 충분히 도우실 수 있었는데...’






* 타이틀 이미지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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