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을 벗고 하늘을 날다-2. 세상이 버린 부자(父子)

세상이 버린 부자(父子)

by 태산박


아버지도 수많은 세월을 온몸으로 싸워 왔지만 하늘은 무심하게도 그들의 편이 되어주질 못했다. 요양병원에 어머니를 보내고 처음엔 일주일에 한 번씩 찾았지만 그 빈도는 해가 갈수록 줄어들었고 겨우 일 년에 한두 번 찾아가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놈의 세상, 그냥 전쟁이나 콱 나버렸으면 좋겠다!”


거실이라곤 서너 명이 앉으면 꽉 찰 어두침침한 그곳에 그의 아버지가 혼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거실 바닥에는 봉지가 뜯어져 반쯤 먹은 신라면과 빈 술병이 제멋대로 뒹굴고 있었고, 이미 반쯤 풀린 눈은 붉게 핏발이 서 있었다. 거기에 며칠째 벗지 않은 누런 러닝셔츠가 입에서 흘러내린 술로 가슴까지 적셔져 있어 그가 문을 여는 순간 역겹고도 진한 술 냄새가 코끝을 진동했다.

“아이고, 술 냄새, 아버지 또 술이야?”


하루 종일 컴퓨터 보안 문제 해결 때문에 이곳저곳 불려 다녀 너무 피곤한 병원은 동료들이 함께 술 한 잔 하자는 제안에도 아버지 생각에 서둘러 사무실을 정리하고 회사를 나섰다. 집에서 회사는 그리 멀지 않았지만 전화를 받지 않은 아버지가 걱정되어 오후 내내 퇴근 시간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오늘따라 그를 찾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잠시라도 시간을 낼 수가 없었다. 사회 전체적으로 보안에 대한 인식이 강화된 데다 최근에는 은행까지 서버가 공격당하는 바람에 요 며칠 거의 날마다 야근을 해야 했고, 그 외에 모회사에서 부수적으로 요청하는 일도 한두 건이 아니어서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 주말이 되면 온몸은 녹초가 되었다.


사실, 그렇다고 협력업체라 수당을 더 주는 것도 아니었지만 보수보다도 중요한 것이 한 번이라도 네트워크나 서버에 이상이 생기면 여기저기서 아우성을 치며 전화가 폭주하는 바람에 진땀을 흘려야 했다. 특히 기간이 정해져 있는 공적인 신고일이나 갑작스러운 외부 기관의 보안 점검 시에는 더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한 마디로 수시로 빈틈이 없는지 꼼꼼하게 체크하지 않으면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기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고 포털에 해킹 사고나 서버 이상 사고 관련 뉴스가 뜨면 마치 그에게 사고가 일어난 것처럼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손발이 마비되어 그와 아버지가 번갈아 수발한 지 일 년이 되었을 즈음, 그는 집안을 이끌어가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어머니를 요양병원에 보내야 하는 결정을 해야 했다. 너무 아쉽고 안타까웠지만 현실을 도저히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의 집은 어촌도 농촌도 아닌 어정쩡한 곳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할아버지로부터 논밭도 물려받지 못한 아버지는 그나마 인근 어시장에서 경매 보조로 조금씩 모았던 돈까지 어머니 사고 여파로 이미 다 써버려 이제는 집안 살림을 어떻게 해서라도 그가 꾸려가야 했고 그것은 매일의 전쟁이었다.


아침 찬바람을 받아가며 들어온 고깃배에서 나온 펄떡이는 물고기들을 정신없이 분류하고 박스에 포장하는 일을 오랫동안 해 왔던 그의 아버지는 연세가 들어가면서 건강이 별로 좋지 않았고, 몸이 아파도 돈 때문에 병원에 가지 않아 병을 키운 것이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둘 좋지 않은 신호로 몸에서 나타나고 있었다.


새벽에 일어난 어머니 교통사고는 그가 확실히 사건의 진위를 확인할 수 없었지만, 경찰 조사 결과 그의 어머니 과실이 80%로 인정돼 가해자 보험사로부터 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했고, 외가에서 입소문을 통해 소개해 준 다른 곳보다 저렴하다고 하는 요양병원 입소도 간병인 비용 때문에 그가 결혼자금으로 준비해 왔던 적금을 털어야 했다.

“아버지, 정신 좀 차리세요. 몸도 안 좋으시면서 매일 술이라니, 이거 다 치워요. 그렇지 않아도 신경 쓸 일이 하나둘이 아닌데 아버지까지 이러시면 어떡해요?”

“이거 다 니 엄마 때문이다.”


술만 먹으면 어머니 탓을 하는 아버지가 미웠지만 피붙이라고는 둘밖에 없던 터라 속이 상해도 아버지를 계속 원망만 할 수는 없었다. 아버지도 수많은 세월을 온몸으로 싸워 왔지만 하늘은 무심하게도 그들의 편이 되어주질 못했다. 요양병원에 어머니를 보내고 처음엔 일주일에 한 번씩 찾았지만 그 빈도는 해가 갈수록 줄어들었고 겨우 일 년에 한두 번 찾아가는 것이 고작이었다. 야윌 대로 야위어진 그의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본 지가 벌써 십 년이 지났다. 임종도 보지 못하고 외로운 곳에서 돌아가신 그의 어머니를 생각할 때 그는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지만 오랜 요양병원 생활 속에서 이제는 모든 것을 툴툴 털고 하늘로 올라가셨다는 생각에 한편 마음이 편해지기도 했다.

“아버지, 어머니 생각 많이 나지?”

“..........”

“다 알아, 하지만 시간도 많이 지났고 우리도 살아야 해요. 제발 술 좀 그만 먹고 할 일 없으면 운동이라도 하고 저기 노인회관에 가서 시간이라도 보내요.”

“다 쓸데없는 짓이야.”

“그럼 어쩔 건데? 나도 아버지 남겨놓고 확 죽어버릴까?”

“..........”

“나 없으면 아버지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 나도 힘들어 죽겠다고. 매일 죽어라고 일해도 나아진 것은 없고 살아가는 것이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 같아. 내가 지금 말 안 하고 있으니까 잘 먹고 잘 놀고 다니는 것 같지? 나도 말 못 하지만 요새 몸이 힘들다고. 제발 좀 내 말 듣고 술 좀 그만 먹어, 알았지?”

“흐…흐흐흑.”


아버지의 눈물. 그는 그날 아버지를 붙잡고 펑펑 울어버렸다. 이렇게 울어 본 지도 어머니를 하늘로 보내고 난 후 처음인 것 같았다. 회사에 가면 다들 언제 결혼하느냐, 사람은 있냐고 물어볼 때마다 웃고 넘겼지만 그의 마음은 늘 그늘에 가려져 있었고, 집안 형편 때문에 이미 결혼이라는 단어는 마음속에서 지운 지 오래였다. 나이가 서른여섯을 넘어가고 조금 있으면 마흔이 다가오는데 참한 아가씨가 있다 해도 그의 집안을 보게 되면 당장 뛰쳐나갈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결혼은 아예 꿈도 꾸지 않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소화가 잘 안 되고 화병처럼 속이 답답해 옴을 자주 느꼈다. 아버지 때문이기도 했지만 워낙 회사 일이 바빴고 업무가 신경을 곤두세우는 일이라 그런 것들이 소화불량으로 이어진 것 같아 가능하면 소식을 하고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아직은 젊기 때문인지 감기 한 번 걸리지 않았고 어지간한 병은 몸으로 이겨버렸기 때문에 조금 이상한 기운이 들어도 별로 걱정하지 않은 그였다.

“아버지, 우리 건강검진 한 번 받으러 가요.”

“안 간다.”

“그러지 말고 우리 둘이 함께 가요. 나도 요새 몸이 찌뿌둥해서 한 번 검진을 받아봐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일 때문에 자꾸 시기를 놓쳤는데 이번에는 꼭 같이 갑시다.”

“너나 가라. 돈이 어디 있냐?”

“돈 얼마 안 들어요. 큰 병원 말고 중요한 거 몇 가지만 보는 데가 있어요. 내일 내가 알아볼 테니 약속해 줘요. 응?”

“난 안 간다니까?”

“참, 정말 이럴 거야? 내가 더 젊어서 난 병원에 갈 필요도 없는데 아버지 때문에 이런 거 몰라? 왜 또 내 이름은 병원이라고 지었어?”

“니 할아버지가 지었다. 최고로 빛나라고”

“뜻이 좋아도 상식에 맞게 지어야지 병원이 뭐야 아픈 사람들이 찾는 곳인데...”

“알았다. 그럼 싼데 찾아봐라. 중요한 몇 군데만 보면 되지 뭐.”

“좋아요. 빨리 알아볼 테니 또 안 가겠다고 그러면 안 돼요, 알았죠?”


그는 협력업체의 직원으로 계약직이었지만 건강검진은 상시 근무자를 대상으로 실시하기 때문에 최소 2년에 한 번은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버지랑 같이 받기로 약속한 터라 회사의 혜택을 함께 받을 수 없었다. 바쁜 와중에도 그는 사업장에 배치된 간호사실로 찾아갔다. 그의 얘기를 듣던 간호사는 금년도 건강검진은 하반기에 예정돼 있고 현재로서는 기간을 뒤로할 수는 있지만 당길 수는 없다고 말했다. 더구나 가족이 함께 받으려면 따로 추가 신청을 해야 하고 검진 항목에 따라 비용도 추가되며 출장 검진이 아닌 직접 모 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는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또 시간을 허비하면 안 되겠다는 마음이 들어 간호사가 소개해 주는 병원의 원무과에 전화를 했다, 돈이 들더라도 이번에는 좀 큰 병원에 가서 제대로 받아보고 싶었다. 하지만 검진은 바로 간다고 즉시 받을 수 없었고 예약제이기 때문에 최소한 두 달은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실망한 그는 다시 인근의 작은 도시에 있는 내과를 알아보았다. 규모가 작은 그곳은 일주일 안에 검진이 가능하다고 연락이 왔다. 그의 아버지랑 둘이서 받는 검진이라 비용도 적지는 않았지만 이미 계획한 이상 그렇게 결정을 하고 아버지에게 말씀을 드렸다. 대장 내시경까지는 못하지만 둘 다 위내시경은 검진 항목에 포함시켰다.


검진 전날 병원에서 보내준 위내시경 키트로 그와 그 아버지는 속을 비워야 했기 때문에 녹초가 다 되었다. 그는 전에는 그런 느낌이 없었는데 무척 속이 아팠고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아 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오히려 그의 아버지는 신기하게도 그보다 더 잘 참아냈다.

검진이 있는 날은 오전부터 비가 오기 시작했다. 봄이 가까웠지만 여전히 겨울의 찬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했고, 아침엔 우중충한 분위기가 계속되더니 그들이 병원에 도착할 즈음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마지막 내시경 검사가 끝나고 채 어지럼증이 가시지 않았는데 의사가 그를 따로 불렀다. 먼저 다른 결과들은 며칠 시간이 필요로 했지만 내시경은 바로 파악이 가능해서 그것을 알려주려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아도 그는 그보다 그의 아버지 결과가 궁금했는데 다행스럽게도 아버지는 크게 문제가 없고 작은 용종 두어 개 떼어냈다고 말해 주었다.

문제는 그였다. 의사가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최근에 피를 토하거나 속이 쓰려 잠 못 이루신 적이 있습니까?”

“네, 속은 좀 쓰렸지만 피를 토한 일은 없었습니다..”

“그래요? 그런데... 좀 특이한 병변인데 물론 조직검사를 해봐야 확실히 알겠지만 별로 좋지 않은 조직이 보입니다. 환자분께서는 당분간 우리 병원에 입원하셔서 정확한 진단을 받고 난 후에 그에 따라 맞게 처방을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네? 혹시 암인가요?”

“지금은 뭐라고 말씀드릴 수 없는데 일단 좀 더 정확한 진단이 필요합니다. 바로 입원 수속을 밟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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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이 연재소설은 일부 픽션이 가미된 논픽션 소설입니다. *타이틀 이미지 : F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