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그가 고향에 갈 때마다 그는 아버지에게 그가 믿는 신을 얘기하곤 했다. 사람의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고 언제 죽음을 맞이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그가 믿는 신을 함께 믿고 평안하게 여생을 보내시라고 여러 번 얘기했던 것이 생각났다. 그런데 아버지의 체념 섞인 독백을 듣자 그는 정말 그가 마음을 쏟아 믿었던 신이 그를 외면했다는 생각이 들어 서운함이 물밀듯 올라왔고 가슴은 하염없이 무너져 내렸다.
‘그래 어쩌면, 아니 충분히 도우실 수 있었는데...’
생활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슬픔의 날을 참고 견디면 머지않아 기쁨의 날이 오려니, 현재는 언제나 슬픈 것,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모든 것은 일순간에 지나간다. 그리고 지나간 것은 그리워지려니 - 푸시킨
“그래, 아무 걱정하지 말거라. 회사 못 나가는 동안 필요한 돈은 내가 마련해 보마. 마침, 니들 주려고 모아놓은 돈이 좀 있는데 잘됐다.”
아버지는 든든하게 믿었던 큰아들이 갑작스럽게 실업자가 된듯한 상황에 처하자 내심 실망하면서도 당신이 그 책임을 떠안겠다고 말했다. 그것은 자식을 생각하는 부모로서 당연히 느껴지는 책임감이었다. 그는 손사래를 치면서 그것 때문에 온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사실 그는 당장 경제적인 문제도 문제지만 누군가로부터 위로를 받고 싶었고, 그 위로의 주체가 목적지로 입력된, 그의 몸에 내장된 내비게이션이 지시하는 대로 따라온 곳이 바로 고향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부모를 실망시키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고 더구나 이렇게 금방 그의 힘겨운 상황을 말해버릴 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정말 그럴 거였으면 고향에 가지도 않았고 발길을 서울로 돌렸을 것이었다.
“그런 것 때문이 아니라 그냥 마음이 허전해서 부모님이 보고 싶었을 뿐이에요.”
“그래도 당장 살아가야 할 것 아니냐.”
“뭐, 어떻게 살아가겠죠. 그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지금은 좀 시골에서 조용히 있고 싶어요. 한 며칠 있다 갈게요.”
“그래라. 사람이 살다 보면 별일을 다 겪는 거다. 내가 팔십 평생 살아오면서 정말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도 당해봤고, 또 소소한 기쁨도 많았다. 힘겨운 일만 생각한다면 인생을 어떻게 살겠냐. 누가 그러더라. 지나가면 아무리 힘들었던 일도 다 별일 없었던 것처럼 된다고...”
“제가 다섯 살 때 큰 고모님이 알려준 시를 외웠잖아요. 저는 지금도 그 장면이 생각나요. 허름한 초가집 안방 윗목 벽에 붙은 종이 말이에요. 입에 붙은 그 시가 푸시킨의 시인 줄은 좀 커서 알았죠. 아버지는 기억나세요?”
“당연히 기억나지, 그런데 지금은 그 구절이 잘 생각이 잘 안 난다. 나이가 들어가니 기억력도 많이 떨어지고... 그게 ‘생활이...’ 뭐 그렇게 시작하는 것 같은데.”
“생활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슬픔의 날을 참고 견디면 머지않아 기쁨의 날이 오려니, 현재는 언제나 슬픈 것,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모든 것은 일순간에 지나간다. 그리고 지나간 것은 그리워지려니.”
“아직까지도 다 외우고 있구나?”
“그럼요. 다섯 살 때 뭘 알고 외웠겠어요? 그냥 달달 외운 거지. 고모님도 참, 이제 막 세상에 나온 저한테 인생을 관조한 듯한 시를 외우게 했으니... 그런데 저 시가 제가 살아가는데 가끔씩 툭툭 잘 튀어나오더라고요.”
“그래, 다른 생각하지 말고 편하게 있다 가라. 뭐 딸기 하우스에 나올 필요도 없다.”
“아뇨, 가만히 있으면 더 답답할지도 몰라요. 일하는데 요령은 없지만 몸을 가만두고 싶지는 않아요. 도울 수 있는 데까지 돕고 밤이 되면 푹 잠 좀 자고 싶어요,”
“알아서 해라.”
그는 답답한 마음이 후련해짐을 느꼈다. 고향에 가기 전까지만 해도 마음을 둘 곳이 없어서 방황했는데 막상 부모님을 만나고 다 털어놓고 나니 막힌 체증이 뚫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역시 그의 고향은 오갈 데 없는 그의 마음을 포근하게 받아주는 안식처였다.
부모님의 딸기 농사는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비닐 안에 들어있는 풀도 뽑아야 하고, 순도 제거해 줘야 했다. 그것은 종일 습하고 답답한 곳에서 똑같은 일을 반복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작업이었고 그의 부모님은 그 일을 날마다 하고 있었다. 그는 그냥 자신이 부끄러웠다. 조금만 더 신경을 써서 꼼꼼하게 일을 했더라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겠다 싶었고, 지금까지 그랬듯이 당당하게 부모님께 자랑스러운 아들임을 보여주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딸기 비닐하우스 안에서 아버지는 의도적으로 회사와 관련한 일들은 묻지도 않았고, 금년도 딸기 농사에 대한 예측과 전국적으로 대량 생산에 따른 가격 하락 등을 우려하는 그런 이야기들만 했다.
“아버지, 이제는 이 일도 좀 그만하세요. 이제 아버지도 팔순이 다 되셨는데 언제까지 이 일을 계속하실 건가요? 어머니 허리 좀 보세요. 구부정하셔서 얼마나 불편하시겠어요. 젊은 저도 이렇게 쪼그려 앉아서 일을 하다 보니 허리가 아프고 벌써부터 온몸이 쑤시는 것 같은데...”
“아니다. 몸은 가만히 두면 눕고 싶고, 또 누우면 자고 싶은 게 몸이다. 이렇게 일을 하고 나면 힘들기는 하지만 음식도 맛이 있고 밤에 잠도 잘 온다. 일을 하다 쉬어버리면 그때부터는 병이 나기 때문에 안 할 수가 없어.”
“그렇긴 하지만...”
아버지와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 보니 회사 일은 언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모를 정도로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진작부터 시골에 자주 내려와 부모님과 많은 대화를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골에 내려간 지 거의 한 주가 흘렀다. 몸은 좀 피곤했지만 부모님과 함께 일하면서 대화를 하는 동안 마음은 가라앉고 평안해졌다. 이제는 서울로 올라가야 했다. 부모님께 걱정 말라고 인사하고 그는 가는 길목에 그가 머무르고 있는 사택에 들렀다. 시간이 많다 보니 괜히 이곳저곳 더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오히려 마음이 전보다 한껏 여유로워졌다. 어차피 주어진 현실인데 부정적으로만 받아들이지 말고 오히려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꾸기로 결정했다. 그러다 보니 그간 다녀보지 못했던 여행을 떠나볼까 하는 마음도 일어났다. 그에게 휴가(?)로 주어진 시간은 석 달이나 되었다.
서울에 올라가기 전에 그는 아침 일찍 바닷가 어시장을 들렀다. 이제 막 들어온 싱싱한 돔 몇 마리를 사갈 요량이었다. 아직은 찬바람이 고기 비린내와 함께 물씬 풍겨오는 어시장에는 이제 막 들어오는 배에서 나온 고기들과 그것들을 재빨리 박스에 담아 경매로 넘기는 일들로 분주했다. 무슨 말인지도 잘 들리지 않는데 작은 박스 위에 올라가 가위바위보 하듯 손짓하는 경매사의 몸짓에 그 많은 고기 상자들이 단숨에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아직 떠나지 않은 배 위에서 몇몇 어부들은 담배를 길게 내뿜으며 그들이 밤새 고생스럽게 잡았던 고기들이 포터에 실려 어시장을 빠져나가는 것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오랫동안 품에 있다가 멀리 도시로 떠나보내야 하는 자식들을 바라보는 것 같았고, 그들이 가진 가장 소중한 것들을 삶이라는 전장(戰場)에 어쩔 수 없이 내놓을 수밖에 없는 무정한 현실을 한탄하기라도 하듯 무거운 침묵의 시위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방금까지 고기와 사람들 그리고 차량들로 북적이던 그곳이 물청소하는 아줌마들의 떠드는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깨끗이 정리되는 것을 보고 그 빠른 손놀림에 혀를 내둘렀다. 스피커에서는 어시장의 하루 일정을 공지하는 이장님의 구수한 목소리가 소음과 섞여 울려 퍼졌고 그는 그 소음을 뒤로한 채 거기서 가까운 수협 공판장으로 향했다.
그렇게 한 달이 쏜살같이 흘렀다. 회사에서는 이렇다 할 연락도 없었고 가끔 친했던 동료 몇몇이 전화로 근황을 묻기도 했다. 그는 통상적인 이야기만 할 뿐 회사에 대해서 깊이 알고 싶지도 않았고 묻지도 않았다. 그는 그가 없더라도 세상도 그렇지만 회사도 돌아가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것을 느끼면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회사는 물론 이 사회가 그를 용납하며 너무나도 귀하게 대우해 줬고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베풀어 줬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전에 미처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발견이었다. 그는 그때부터 조금씩 그가 속한 사회와 회사에 대해 고마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사실 그는 본래부터 자신이 선하며 사람을 미워하는 성격이 없는 줄 알았다. 그때까지 그를 대적하거나 훼방하거나 스토킹 한 사람들을 만나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일을 겪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올라오는 여러 감정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런 그에게도 미움이 있고 마음속 깊은 곳에 증오가 똬리를 틀고 있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다.
아직은 겨울인 데다 봄이 오려면 한 달 남짓 남았고 회사로 복귀하는 데는 두 달여 남아 있어서 시골에 다녀온 이후로 생각했던 여행을 한번 해 볼까 고민이 되었다. 시간이 많아 이때 아니면 이런 절호의 기회도 없을 텐데 그냥 방구석에서 세월을 보내기에는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한편, 그렇다고 혼자서 어쩌면 근신하는 기간인데 세월 좋은 사람처럼 막 돌아다니기도 좀 그랬다. 물론 집에 있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여러 가지 할 일도 많았다. 물론 글을 써서 공식적으로 책을 출간하거나 어느 곳에 기고하는 것은 아니었다. 거기에 그가 속한 교회와 교류도 잦아서 그렇게 심심하지는 않았다.
그는 여행은 그렇게 내키지 않아 집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하고 대신 꾸준하게 책을 읽거나 글을 쓰기로 했다. 가끔은 지방 발령을 받은 그곳 사택에 다녀오기도 했다. 서울에서 좀 떨어져 있긴 하지만 조용히 쉴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그곳에 내려가 다시 바닷가 해변을 찾으면 첫날의 아픔이 그대로 밀려왔다. 하지만 마음이 그때하고는 많이 달라졌다. 그때 이후로 약 두어 달 정도 지났는데 너무나 많은 경험을 한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외부로 나타나는 변화가 아닌 내면의 변화였다. 어쩌면 이 고통의 기간이 그가 새롭게 성숙하는 다리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언젠가 신문에서 이런 글을 본 적이 있었다.
‘어떤 생물학자가 개미를 관찰하다가 혼자서 긴 지푸라기를 지고 가는 모습을 보았다. 무엇 때문일까 유심히 관찰하던 학자는 개미가 물웅덩이 앞에서 그것을 걸치고 다리를 삼아 건너가는 것을 보면서 무릎을 탁 쳤다. 그렇구나. 우리가 지고 가는 짐은 은총의 건너편으로 건너갈 수 있는 다리가 된다는 것을...’
사람들은 고난을 만나면 금방이라도 잘못될 것처럼 우왕좌왕한다. 사실 고난이라는 손님은 예고 없이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 그것에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중요한 것이지 고난이 오지 말기를 고대한다고 오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는 속으로 그 생각을 하면서 다시 오는 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그에게 추운 겨울은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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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이 연재소설은 일부 픽션이 가미된 논픽션 소설입니다. *타이틀 이미지 : F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