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을 벗고 하늘을 날다-4. 죽음의 그림자

죽음의 그림자

by 태산박


“그래요? 그런데... 좀 특이한 병변인데 물론 조직검사를 해봐야 확실히 알겠지만 별로 좋지 않은 조직이 보입니다. 환자분께서는 당분간 우리 병원에 입원하셔서 정확한 진단을 받고 난 후에 그에 따라 맞게 처방을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네? 혹시 암인가요?”

“지금은 뭐라고 말씀드릴 수 없는데 일단 좀 더 정확한 진단이 필요합니다. 바로 입원 수속을 밟으세요.”






할아버지로부터 유산 한 푼도 물려받지 못하고 찬바람을 맞으며 비릿한 어시장을 전전한 아버지. 그리고 정확한 사고의 실체도 모르고 요양병원 신세를 지다 하늘로 떠나버린 어머니. 이제는 그것도 모자라 전혀 생각지도 않은 몹쓸 병이 그에게까지 찾아왔다는 사실에 기가 막혔다.



의사의 얼굴에 회색빛이 보였다.

그는 침대에 누워 있다 회진 들어오는 의사를 바라보며 무엇인가 좋지 않은 답을 갖고 온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아버지의 건강을 걱정했는데 지금은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아버지가 그를 지키고 서 있었다.

“선생님, 무슨 문제가 있나요?”

“네, 너무 긴장하지 마시고 들으세요. 제가 검사한 바로는 위에서 악성 종양을 발견했는데 이게 보통의 종양과는 좀 다릅니다. 위치도 그렇구요. 사실 저는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암환자들을 봐 왔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입니다. 그래서 그런데 좀 더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 큰 병원으로 제가 안내해 드릴 테니까 지체하지 마시고 가서 다시 검사해 보세요. 이미 제가 명동 백병원의 선배님께 연락은 다 해 놨고 차트도 메일로 보내 놨습니다.

”............ “

”암이라는 거요?“


의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곁에 서 있던 아버지가 큰소리로 의사에게 따지듯 물었다.

”아직은 정확하다고 말은 못 합니다. 하지만 아주 안 좋아요. 아드님하고 빨리 큰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고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

”아이고, 이 또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야! “


아버지의 건강문제로 병원을 찾았던 그는 그가 몹쓸 병에 걸려있다는 의사의 소견을 듣고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다. 설마 젊고 건강했던 그에게 암이 찾아오리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 했고, 더구나 몸에서 크게 이상 반응이 있어서 고생한 적도 그의 기억에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가슴이 아픈 느낌과 속이 메스꺼운 적은 여러 번 있었지만 가끔 있는 소화불량 정도로 생각했을 뿐 그것이 병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아직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진단을 받은 이상 회사에 이야기는 해 놔야 할 것 같았다. 상사에게 전화로 상황을 말하고 아직은 확정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큰 병원에서 진단을 받은 후에 그 결과를 보고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출근하겠다고 말했다. 회사에서는 많이 놀란 듯했다.


그는 의사가 안내해 준 대로 지체 없이 서울로 출발할 준비를 했다. 일단 회사에 병가를 며칠 내고 간단한 세면도구와 옷가지만 준비한 후에 아버지와 함께 버스를 탔다. 버스에 앉아 창밖을 보니 온갖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이 모든 갑작스러운 상황이 꿈처럼 여겨졌고 거짓말 같았다. 가슴이 더 조여 오는 느낌이 들었다.


백병원. 지방의 조그마한 내과의원에서 검진을 받다 서울 백병원에 와 보니 그 규모가 대단했다. 그는 암에 걸린 것보다 더 걱정되는 것이 치료비였다. 무엇인가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일단 그는 응급실로 안내되었고 시골 내과 의사의 도움으로 입원 수속까지 잘 마쳤다. 검사를 앞두고 오만가지 생각이 다 올라왔다. 아니 그의 집안을 생각하니 너무나 기구했다. 할아버지로부터 유산 한 푼도 물려받지 못하고 찬바람을 맞으며 비릿한 어시장을 전전한 아버지. 그리고 정확한 사고의 실체도 모르고 요양병원 신세를 지다 하늘로 떠나버린 어머니. 이제는 그것도 모자라 전혀 생각지도 않은 몹쓸 병이 그에게까지 찾아왔다는 사실에 기가 막혔다.

‘그래. 시골 의사가 잘못 진단할 수도 있어. 검사기구가 오래됐고 진단이 틀릴 수도 있다고 하잖아, 설마 내가 이 젊은 나이에 죽는다고?’


그는 아버지에게 어차피 시간이 오래 걸리니 다시 내려가시라고 말했다. 그의 아버지도 마땅히 오래 있을 수도 없고 돈도 많이 들 것 같아서 올라온 지 하루 만에 다시 내려갔다. 그를 간호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아직은 혼자서 지낼 만했다.

”여기 병원 씨죠? 죄송합니다만, 잘 들으세요. 환자분은… 음, 위암 4기예요. 말기죠. 병변이 좀 특이하긴 한데 보통은 위 안에서 종양이 발생하고 자리 잡는데, 환자분은 위벽 안쪽으로 종양이 파고 들어갔어요. 그래서 잘 못 느꼈을 거예요. 차라리 위 내부에서 발생했다면 통증을 빨리 알아차렸을 거고 좀 더 빨리 병원에 올 수 있었을 텐데 너무 안타깝네요. 일단 말기라서 수술을 바로 할 것인가 항암치료만 할 것인가를 좀 더 따져봐야겠어요. 수술보다도 항암치료가 생존 기간 측면에서 유리할 수도 있어요. 참, 보호자는 금방 어디 가셨나요?

“위암 말기요?”

“네. 지금은 다른 방법이 없어요. 이렇게까지 진행되었는데 그것을 감각하지 못했다는 것이 너무 이상하고 아마도 젊다 보니 아파도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는 흰머리의 중후한 노의사의 판정을 듣는 순간 눈이 침침해지고 앞이 막막해져 옴을 느꼈다.

‘아, 아버지... 아버지는 어떡하지.’


그는 한 번도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고, 죽음이라는 것은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나 어머니와 같은 요양병원에 있는 사람들에게나 해당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죽음이라는 불청객이 지금 그에게 찾아온 것이었다. 그것도 말기암으로 말이다. 한편, 수술해서 생명이 연장된다면 다행이지만 어차피 수술해도 죽을 것이라면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 라는 그런 생각이 올라왔다. 다 돈 때문이었다. 가지고 갈 돈도 없지만 있다 해도 죽으면 가지고 갈 것도 아니고, 아버지를 생각하다 보니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그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갑자기 일어나 그를 진단한 의사 선생님을 찾아갔다.

“선생님, 제가 말기 암 환자면 수술해도 죽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굳이 수술해서 좀 더 연장한들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저는 아직은 통 느끼지 못하겠어요. 통증도 별로 모르겠구요. 거짓말 같아요 이 모든 것이. 어차피 제 인생 제가 책임지는 것이니까 저는 그냥 이대로 퇴원하고 싶습니다. 사실 치료비도 없어요.”

“아, 병원 씨, 내가 말했는데. 꼭 수술만 하는 것이 아니에요. 항암치료 방법이 수술보다 더 나은 경우도 있어요. 지금 병원 씨는 상황이 안 좋아서 수술도 못해요. 마음 진정시키고 우리가 하자는 대로 하세요."

“아니, 뭐 선생님이 제 치료비 대주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저는 그냥 이렇게 살다가 죽게 되면 죽을 겁니다. 수술이나 항암치료나 뭘 하든 어차피 조금 더 연장하는 건데 받기 싫어요. 저 그냥 퇴원할 겁니다.”


그는 뒤돌아보지도 않고 퇴원 수속을 밟고는 백병원을 나왔다. 밖으로 나와 버스를 타니 그가 말기 암 걸렸다는 것이 꿈과 같았고 잠깐의 해프닝 같았다.

‘하나도 아프지 않고 지낼만한데 뭐, 죽을 때 죽더라도 병원에서 오랫동안 입원하기 싫다.’

그는 내려가는 버스 안에서 퇴원 결정을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큰돈이 들어갈 것 같았고 집안을 생각하니 수술은 아무래도 무리수였다. 한편 텔레비전에서 말기 암 걸린 사람들이 자연치유로 나았던 사례도 생각났다.

‘그래, 그래도 사는 사람은 다 살더라.’


집에 도착해 인기척을 내고 방으로 들어가니 아버지가 그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는 너무 걱정 말라고 하면서 당장 수술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지만 더 이상 꼬치꼬치 따져 묻지는 않았다.


다음 날, 회사에 출근했다. 동료들은 이미 소식을 다 알고 있어서 그를 보자마자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다. 그는 그렇게 걱정할 만한 병은 아닌 것 같다고 둘러댔다. 걱정스럽게 그를 바라보던 그의 상사도 다소 안심하는 눈치였다.

“그래도, 계속 병원에 가서 체크해 봐. 병원 씨는 전혀 병치레 안 할 사람처럼 보였는데...”

“차장님, 나중에 시간 좀 내주세요. 할 말이 있습니다.”

“그래, 언제든지 말해. 혹시 부탁할 것이 있으면 부탁하고...”


회사는 별일 없었고 평온한 것 같았다. 늘 긴장하는 분위기였지만 병원 신세를 잠시 진 후로는 모든 일이 새롭게 보이고 감사하게 여겨졌다. 서울 백병원에 다녀온 것이 꿈같았다. 만일 그때 당장 퇴원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아마도 지금 병원에 축 늘어져서 한 발짝도 걷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상사인 김 차장과 면담을 하면서 자초지종을 설명해 줬다. 당장 수술은 곤란하지만 만일 수술을 꼭 해야 한다면 회사에서 병가 처리와 수술비용 관련 퇴직금을 가불 할 수 있냐고 물었다. 차장은 최대한 알아보고 그렇게 도와주겠다고 약속했다.


업무는 예전처럼 모회사 직원들의 요청에 따라 거의 날마다 현장에 왔다 갔다 했다. 다음 날은 오래된 PC를 교체하는 날이었다. 하루 종일 대부분의 PC를 다 교체했는데 몇 달 전에 잠시 보였던 그 팀장님 자리 PC가 문제였다. 그 팀장님은 새로 부임한 지 얼마 안 되어서 회사의 어떤 일로 징계를 당해 집에서 대기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었다. 사실 한 번 정도 얼굴을 본 것 같은데 인상이 참 좋았었다.

“아, 우리 팀장님 PC는 일단 놔둬요. 모레 출근하시니까 그때 교체합시다. 혹시 교체하다가 파일 날아가면 안 되니까, 병원 씨 모레 해도 되죠?”

“물론입니다. 잘 알겠습니다.”


늘 그가 가면 반기는 모회사 박 대리가 수고했다고 하면서 그를 따로 불렀다.

“아니, 병원 씨, 무슨 안 좋은 일이 있다면서요?”

“아뇨. 별거 아니에요.”

“정말요? 하하, 다행이구만. 소문도 희한하게 돌아서 원… 그래, 알았어요.”


다시 출근한 지 며칠 되지 않았지만 뭔가 새로운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전에는 느끼지 못하는 통증이 조금씩 속에서 꿈틀거렸다. 콕콕 찌르는 것 같기도 하고 속도 쓰리고 해서 퇴근길에 약국에 가서 위궤양 약을 샀다. 집에 도착해 아버지와 저녁을 지어먹고는 일찍 누웠다. 하루가 어떻게 간지 모르게 훌쩍 지나가 버린 것 같았다.

“얘야, 이게 뭐냐? 피를 토한 거야? 병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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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이 연재소설은 일부 픽션이 가미된 논픽션 소설입니다. *타이틀 이미지 : F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