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그리고 시작
사람들은 고난을 만나면 금방이라도 잘못될 것처럼 우왕좌왕한다. 사실 고난이라는 손님은 예고 없이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 그것에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중요한 것이지 고난이 오지 말기를 고대한다고 오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는 속으로 그 생각을 하면서 다시 오는 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그에게 추운 겨울은 지나가고 있었다.
그 친구의 집은 마당이 있는 전형적인 시골집으로 지붕은 슬레이트로 되어 있었고 처마는 양철판으로 덧대어 비가 오면 물이 양철판의 골을 타고 흘러내리도록 되어 있는 70-80년대 쯤 지어진 집 같았다. 가을로 접어든 주위 풍광은 단풍들로 아름다웠지만 그 집의 분위기는 음산했다.
“와, 안녕하세요? 그동안 고생 많았지요? 잘 지내셨어요?”
이른바 3개월의 휴식(?) 기간을 마치고 사무실로 들어가는 날, 그는 약간 계면쩍기도 하고 어딘가 어색하기도 한 모습으로 동료들의 인사를 받았다. 같은 사무실이었지만 그의 눈에는 모든 것이 너무 달라 보였다. 사람들도, 사무실도, 분위기도. 3개월은 그에게 지금 보는 것들의 가치를 달라지게 했다. 보이는 사물들이 당연히 있어야 할 것들이 아닌 그에게 새롭게 준 선물처럼 느껴졌고, 웃으며 다가오는 사람들 또한 언제나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닌 귀한 손님들처럼 여겨졌다. 교회에서 가끔 교육이 필요하거나 문제가 있는 사역자들을 연수원으로 보내는 경우가 있는데, 그때마다 그 과정을 마치고 나면 대부분이 겉이 아닌 속이 변했던 것처럼, 그 또한 마치 그런 과정을 거친 것처럼 느껴졌다.
“잘 지냈어요? 오랜만에 출근하니 좀 이상한 느낌이네.”
“뭐, 똑같죠. 팀장님 안 계셔서 제일 혼난 사람은 저 같아요. 민원 들어오면 제일 먼저 팀장님을 찾는데 안 계시니 제가 어떻게든 처리해야 했기에 죽을 맛이었죠. 보상은 있는 거죠?”
그의 부서 차장이 그간 팀장을 대신해서 고생을 많이 한 것 같았다. 좀 느릿하게 보이긴 했지만 똑똑한 친구였고 무엇보다도 민원에는 그 친구가 적격이었다. 느림의 미학이랄까. 민원인이 큰소리치며 들어와도 별로 동요를 하지 않고, 급히 따지러 온 민원인들 앞에서 한 2-3분 뜸을 들이면 민원인들은 답답해서 스스로 주저앉고 제발 좀 들어달라고 부탁을 하는 형국이었다. 그것은 원래 그 친구 성격인지 아니면 전략상 그러는 것인지 헷갈릴 때도 많았지만 업무 처리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친구였다.
“앞으로 보상을 잘 해 줘야죠. 하하.”
첫날은 인사한다고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본부장과 노조위원장을 만나고 전체 부서를 돌면서 차 한 잔씩 하다 보니 급히 시간이 가버렸다. 오후가 되자 협력업체 직원이 PC를 들고 와서 교체할 것이라고 말해 줬다. 아직은 쓸 만한 PC인데 왜 교체하느냐고 물었더니 교체 주기가 있어서 그렇다고 했다. 교체된 PC는 시골 초등학교나 마을 회관에 기증해서 사용할 계획이라고 했다. 덩치가 큰 그 친구의 이름은 잘 몰랐지만 전에 한 번 본 것 같기도 했고 그렇게 안면이 많지는 않았다.
“수고했어요. 첫날인데 새것으로 교체해 주니 마음도 새롭네.”
“참, 팀장님, 그간 고생 많으셨죠?”
그 협력업체 직원은 그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 PC 교체를 마치고 돌아가면서 그의 고마움의 표시에 대한 답변으로 웃으면서 말을 건넸다. 그도 다시 한번 고맙다고 말하고 자리에 앉아 교체된 PC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돌아서는 뒷모습이 덩치가 커서인지 약간 출렁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날 저녁은 그가 첫 출근한 날이기에 주요부서 간부 몇 명과 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다. 대부분 참석자들은 그의 과거 사건에 대한 언급은 피했고 사업소 현안 사항에 대한 이야기로 시간을 다 보냈다. 잠시 업무를 떠나 오히려 편안한 마음으로 시간을 보냈던 그는 복잡한 현안이 가득한 업무 현장을 생각하며 다시 어떤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소용돌이와 같은 업무는 그가 그토록 외면당했다고 생각하면서 그 자리로 돌아오고 싶었던 부서의 일들이었다. 정말 아이러니했다.
그 사업소에서는 주요 SOC 사업을 추진하던 터라 민원업무가 많았고, 사무실에는 외부 민원인들의 방문이 잦았다. 늘 시끄러웠고 한 번 민원인이 들어오면 한 시간은 금방 지나가 버렸다. 일을 해야 하는데 사람들과 부대끼며 심하면 삿대질과 욕도 심심찮게 들어야 하는 그런 날들이 계속되었다. 한 무리의 민원인들이 지나가고 잠시 쉬는가 했는데 그때 그 덩치 큰 친구가 들어왔다. 무슨 일인가 싶어 눈짓으로 그를 반갑게 맞으며 바라보았다.
“팀장님, 인사드리려구요.”
“무슨 인사?”
“아, 네. 회사를 그만두게 됐어요.”
“네? 무슨 소리에요?”
“집안에 좀 일이 있어서요. 오래 회사를 다닐 수가 없게 됐네요. 팀장님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그래요? 정말 아쉽네. 내 PC를 전담으로 챙겨주는 고마운 사람인데...”
“뭐 챙겨드린 것도 없어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그래요. 또 만날 수 있으면 봅시다.”
그는 씩 웃으며 돌아서는 그 친구를 바라보고는 무슨 사정이 있어서 그러나 보다 라고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자리에 앉았다. 그가 간 후에 옆에 있던 박 대리가 그에게 오더니 작은 소리로 그에게 말을 해줬다.
“팀장님, 저 친구, 말기 암 걸렸대요. 위암이라던가, 아무튼 수술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는 것 같아요. 젊은 사람이 참 안됐어요.”
“아, 그래요? 세상에 젊은 사람이...나이가 얼마나 돼요?
”서른여섯이랍니다.”
“서른여섯? 결혼은 했어요?”
“아뇨, 아직 혼자인 것 같습니다.”
갑자기 그 이야기를 듣자 마음이 착 가라앉고 연민이 올라왔다. 하지만 더 이상 그로서는 무엇을 어떻게 할 수도 없었다. 그 IT 담당 협력업체 친구가 가고 또 민원인이 들어오자 사무실은 시끄러워졌고 모두들 다시 전투 모드로 바뀌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갔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제는 간사하게도 지난 3개월 동안의 휴식이 오히려 그리워졌다. 그것을 보면서 인간이라는 동물은 늘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고 산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가 자신을 보니 정말 그랬다. 그렇게 바다를 향해 목청껏 소리지르며 격정을 토해 냈던 그때를 지금 그는 그리워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소중하고 그리워했던 지금의 자리를 지금 그는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첫날 그가 그렇게 그리워했던 장소에 들어와 바라본 모든 것들이 새롭고 선물처럼 느껴졌지만, 지금은 당연히 있어야 할 것들이 되었고, 사람들 또한 귀한 손님들이 아닌 오로지 자신과 자신의 부서 업무만 챙기는 이기주의자들처럼 보였다.
어느 날 아침 회의 시간이었다. 노동조합에서 제안했다고 이번 달에 성금을 걷기로 노사가 타결을 봤다고 전해줬다. 바로 전에 말기 암이 걸렸다고 한 친구, 그에게 와서 마지막이라고 인사하고 간 IT 협력업체 직원을 위한 성금 이야기였다. 그렇지 않아도 그가 궁금했는데 어떻게 됐느냐고 물었더니 모두들 잘 모르고 있었다. 수술했다는 소리도 들렸고 그냥 깊은 산 속 어디에선가 요양을 하고 있다는 소리도 들렸다. 확실치는 않았지만 그만둔 협력업체 직원이 상태가 안 좋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는 그냥 그러려니 했고 십시일반 도울 수 있으면 도와주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거들었다. 그러고는 시간이 또 흘러갔다.
그달 말일쯤 되었을 때 본부장이 그를 불렀다. 본부장이 대표로 노조위원장과 함께 협력업체 그 친구에게 성금을 전달해야 하는데 대관업무 때문에 자기가 갈 수 없어서 대신 다녀오라는 것이었다. 그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서 그가 흔쾌히 다녀오겠다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그 친구가 궁금했고 어떻게 상황이 전개되었는지 알고도 싶었다.
드디어 성금을 전달하는 날이 왔다.
그날은 그와 노조위원장, 그리고 회사 측과 노조 측 총무가 함께 가기로 했다.
그의 집은 회사에서 약 승용차로 20분 거리였다. 그는 그래도 회사에서 노사 합동으로 성금을 전달하게 된 것이 다행스럽다고 생각했고, 넷이 차 한 대로 출발하면서 그의 이야기를 조금 들을 수 있었다. 그 친구 어머니는 오래전에 사고로 요양병원에서 생활하다가 돌아가셨고, 그 친구 아버지는 가진 것이 없이 혼자 어시장에서 막노동을 전전하면서 부인의 수발을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이야기를 들을수록 그 친구가 안 돼 보였고, 불쌍해 보였다. 성금이라고 그리 큰돈도 아니고 그저 성의인데 그나마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가 신을 믿고 있기는 했지만, 인간적으로 볼 때 신은 공평해야 하는데 그 친구뿐만 아니라 가만히 보면 못된 사람들은 더 잘되게 돕는 것 같았고, 불쌍하고 어려운 사람들은 더 절망에 빠뜨려 버리는 불공평한 신처럼 느껴졌다.
그 친구의 집은 마당이 있는 전형적인 시골집으로 지붕은 슬레이트로 되어 있었고 처마는 양철판으로 덧대어 비가 오면 물이 양철판의 골을 타고 흘러내리도록 되어 있는 70-80년대 쯤 지어진 집 같았다. 가을로 접어든 주위 풍광은 단풍들로 아름다웠지만 그 집의 분위기는 음산했다. 인기척을 내고 문을 열자 밖에서 신발을 벗고 바로 들어갈 수 있는 거실이 있었는데 서너 명이 앉으면 꽉 찰 정도의 크기였고, 거실 안쪽으로 보이는 소주 한 박스는 절반은 이미 비워진 빈병이었다. 덩치 큰 그 친구가 안에서 나오자 거실이 꽉 찬 느낌이 들었고 얼굴을 보니 전보다 많이 수척해 보였다.
“아이구, 이렇게 누추한 곳까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는 일행들에게 인사를 건네며 어서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안으로 들어서자 안방으로 연결된 문에서 그의 아버지로 보이는 어르신이 술이 많이 취해 비틀거리며 뭐라고 인사는 하는데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얼른 안방으로 들어가 버린 그의 아버지를 바라보다 그는 그에게 상태가 어쩌냐고 물었고, 이런 저런 그의 얘기를 듣다가 회사에서 노사 합동으로 준비한 성금을 전달했다.
“이거 십시일반으로 준비했는데 얼마 되지는 않아요. 병원비에 보태세요.”
“아이고, 정말 감사하고 고맙습니다.어떻게 은혜를 갚아야 할 지...”
“어서 나으면 그게 은혜 갚는 길이에요.”
“감사합니다. 빨리 나아야죠.”
시간이 좀 지나자 다들 돌아서서 나오려고 하는데 갑자기 그가 머뭇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참, 병원씨, 병원씨는 교회에는 안 나가는가요?”
“네, 전에는 어쩌다 한번씩 나가긴 했는데 몸이 아프고 그러다 보니 지금은 안 나갑니다.”
“아 그래요? 병원씨는 그럼 말씀에 대해 조금은 알고 있겠네요. 혹시 말씀의 능력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어요?”
“네, 뭐 들어는 봤지만 제가 믿음이 없어서...”
“좋아요. 누구든지 어려움은 다 있어요. 그런데 그것을 어떻게 헤쳐 나가느냐에 따라 그 어려움을 이길 힘도 생기고 병도 나아요. 오늘은 내가 공식적으로 회사에서 온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 다른 말은 못하고 떠나지만 앞으로 혼자서 개인적으로 올테니 그땐 좀 못이기는 체하고 만나줘요. 내가 병원씨에게 할 말이 많아요.”
“아, 네 알겠습니다.”
일행은 그 친구를 걱정하며 치료를 잘하라고 부탁하고 집을 나섰다. 그 친구의 아버지는 여전히 방안에서 일행들이 가는지도 모르고 술에 빠져 있는 듯했다. 첫눈에 알콜 중독자처럼 보였다. 생각해 보니 그럴 만도 했다. 부인은 교통사고로 고생하다 죽고, 하나 있는 아들마저 말기 암에 걸렸으니 기구한 인생 어디에다 한탄을 할 수 있겠는가. 술이라도 잠시 그 고통을 잊게 해줄 수 있기에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고마워하는 그 친구의 인사를 뒤로 하고 회사로 돌아왔는데, 가기 전과는 달리 몸은 회사에 있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그 집에서 떠나지 못하고 죄인처럼 붙잡혀 있었다.
‘뭐, 그냥 잊으면 안 되나. 이런 일이 따지고 보면 자주 있잖아. 바쁜데 시간을 내는 것도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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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이 연재소설은 일부 픽션이 가미된 논픽션 소설입니다. *타이틀 이미지 : F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