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을 벗고 하늘을 날다-6. 불공평한 세상

불공평한 세상

by 태산박


다시 출근한 지 며칠 되지 않았지만 뭔가 새로운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전에는 느끼지 못하는 통증이 조금씩 속에서 꿈틀거렸다. 콕콕 찌르는 것 같기도 하고 속도 쓰리고 해서 퇴근길에 약국에 가서 위궤양 약을 샀다. 집에 도착해 아버지와 저녁을 지어먹고는 일찍 누웠다. 하루가 어떻게 간지 모르게 훌쩍 지나가 버린 것 같았다.

“얘야, 이게 뭐냐? 피를 토한 거야? 병원아!”






그런데 막상 몸에 통증이 오고 피를 토하고 나니 갑자기 살고 싶어졌다. 아니, 이렇게 죽는다는 것이 너무 억울하고 싫었다. 그것은 꼭 아버지 때문만은 아니었다. 세상이 유독 그의 가족에게 너무 불공평하고 야속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지금 이렇게 된 것도 어머니 사고로부터 시작되었고, 더 멀리는 유산 한 푼도 받지 못하고 할아버지로부터 쫓겨나다시피 한 아버지 때문이었다.


‘엄마, 아니 시장을 가서 그렇게 오랫동안 있으면 어떡해? 지금 막 외삼촌이 왔는데 엄마를 찾고 있어. 삼촌 얼굴 너무 좋더라. 외삼촌이 뭘 잔뜩 사 왔던데? 그냥 다른 것 사지 말고 빨리 집으로 들어오라고 했어. 빨리 가자. 이쪽으로 와! 아니, 그쪽으로 가면 어떡해? 엄마, 차 조심해. 안돼! 엄마!!’


무슨 소리가 들렸다. 잠시 잠에 떨어졌나 보다. 그 짧은 순간에 꿈속에서 어머니를 보았다. 너무 반가웠는데 이상하게 기분이 안 좋았다. 낮에 여기저기 시스템 업그레이드를 요청하는 부서를 정신없이 다녔는데 좀 피곤했던 모양이다. 몸이 커다란 돌에 매달린 듯 천근만근 무거웠다. 기침이 나왔다. 오싹한 기운과 함께 뭔가 축축한 기운이 몸 전체를 감싸는 느낌이 들었다. 가까스로 눈을 떴는데 소리는 들리지 않고 아버지가 뭐라고 외치고 있었다.

“아버지, 왜?”

“피, 피 말이야. 너 피를 토했다고.”

“피요?”


아버지가 물과 휴지를 찾으러 간 사이 일어나 보니 하얀 와이셔츠가 핏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저녁을 먹고 샤워할 때 옷을 갈아입는다는 것이 그냥 잠에 떨어진 것 같았다. 손으로 입을 훔쳤다. 손에 피가 흥건했다. 얼마나 피곤했으면 피를 토하면서 잠을 자다니 느낌이 안 좋았다. 그렇게 속이 아프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러고 보니 최근에 부쩍 속 쓰림이 심해진 것 같고, 머리도 어질어질했다.

“안 되겠다. 다시 병원에 가자.”

“괜찮았는데 왜 이러지?”

“그때 서울에서 그냥 수술을 했어야 하는 거 아니냐?”

“아, 괜찮아요. 좀 더 심해지면 알아서 할게요.”

“안돼, 바로 가야 한다. 너 죽으면 나도 더 못살아. 다시 내가 그 내과에 가서 부탁을 하마. 아직도 수술 안 했냐고 한소리 하겠지만 어떡하겠냐. 돈이 들더라도 어떻게든 해야지. 언제까지 이러고 산단 말이냐. 서울 말고 좀 가까운 병원으로 소개해 달라고 해보마.”

“..... 알았어요.”


위궤양 약을 먹었는데도 밤새 잠을 설친 것 같았다. 또 어머니를 만났다. 고운 옷을 입고 있었다. 이번에는 목소리도 생생했다. 하지만 필름이 끊기듯 나타났다 사라지는 바람에 그것을 애써 이어 붙이려다 놓치고 말았다. 아무리 해도 소용없었다.


새벽녘인데 아버지가 보이지 않았다. 어제 내과에 간다고 했는데 아침 일찍부터 준비하고 나간 모양이었다. 몸 상태가 갑자기 안 좋은 것 같아서 기분이 묘했다.

‘이러다가 진짜 죽는 건가.’


명동 백병원에서 젊다는 이유로 겁 없이 뛰쳐나온 일이 약간 후회스러웠다. 돈이 들든 말든 일단 치료부터 했어야 했는데 말기 암을 너무 우습게 여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죽을 텐데 수술한들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노의사에게 버릇없이 따지던 그때가 생각났다. 그런데 막상 몸에 통증이 오고 피를 토하고 나니 갑자기 살고 싶어졌다. 아니, 이렇게 죽는다는 것이 너무 억울하고 싫었다. 그것은 꼭 아버지 때문만은 아니었다. 세상이 유독 그의 가족에게 너무 불공평하고 야속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지금 이렇게 된 것도 어머니 사고로부터 시작되었고, 더 멀리는 유산 한 푼도 받지 못하고 할아버지로부터 쫓겨나다시피 한 아버지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서자였다. 다른 동료들이나 친구들을 생각할 때 그들과 시작부터가 출발선이 달랐다. 그것은 대를 이어 계속되고 있었다. 또 그것은 그가 결혼을 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그래서 반드시 살아야 했다. 너무 억울했기 때문이었다. 더욱 살고 싶은 마음이 불길처럼 솟아올랐다. 그 백병원 노의사에게 달려가 살려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함부로 내뱉었던 말을 다시 회수하고 싶었다.


회사 상사에게 전화를 했다. 시간은 흘렀지만 부탁한 것이 있었기 때문이고, 또 이런 상태로 회사 출근한다는 것도 무리가 될 것 같아서 알려줘야 할 것 같았다. 사실 회사로서는 어렵겠지만 부득이 수술비로 쓰기 위해서 퇴직금을 미리 가불 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했었다. 그 차장님은 알아보겠다고만 했는데 이후 답이 없었다. 물론 당장 입원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오늘은 그것을 좀 확인해보고 싶었다.

“차장님, 제가 아무래도 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아야 할 것 같구요. 몸이 갑자기 안 좋아졌어요. 참, 지난번 부탁한 것은 어떻게 가능하나요? 퇴직금 가불...”

“아, 병원 씨, 그거 그때 알아보았는데 참 내가 말을 안 했나 보네. 퇴직금 가불은 안되고 일단 회사에 상조금을 적치해 놓은 것이 있는데 그걸로 대출을 받고 나중에 퇴직금에서 상쇄하면 된대요.”


돌아오지도 않은 미래를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지금 필요하면 돈은 쓰면 되었다. 목숨이 경각 간에 달렸는데 돈을 모아봐야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래 수술하자고 다짐했다. 아침 일찍 나섰던 아버지가 돌아왔다. 그 내과 의사가 대전의 S 모 병원으로 가보라고 급히 연락을 해 놓았다고 했다. 옷가지와 몇몇 준비물들을 챙겨 바로 병원으로 나섰다. 그곳은 다행히 그가 사는 집과 한 시간 거리였다. 그 병원에서도 처음부터 다시 검사가 진행되었다. 결국 같은 병명으로 검사를 세 번이나 받는 꼴이 되었다. 검사 결과는 더 안 좋았다. 여기저기 전이가 많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그냥 두는 것보다 수술이든 항암치료든 빨리 치료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했다.


이제는 하늘에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치료했는데도 살 수가 없다면 그것은 하늘의 뜻이었다. 누구를 원망할 필요도 없었다. 전에 마음이 너무 힘들어 집에서 가까운 교회를 몇 번 나가긴 했는데, 다니다 보니 교회도 장사하는 것처럼 느껴져 그만둔 적이 있었다. 그것 때문에 하나님이 그를 이렇게까지 몰아갈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정말 하나님이 있다면 믿고 싶었고 기대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는 몸이 나갈 수 없는 처지가 되어버렸다는 생각이 들어 그마저 생각에서 지웠다.

“선생님, 수술하는 게 좋나요? 아니면... 수술하면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요?”

“내가 볼 때는 수술보다.... 지금 환자의 경우는 여러 곳에 전이가 돼서 수술이 별로 의미가 없어요. 차라리 항암치료만 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아요. 그렇다고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순 없고 다만, 조금 더 연장될 뿐이죠. 수술보다는 낫단 말입니다. 음, 또 모르죠. 사람마다 달라서 어떤 경우는 기적도 일어나기도 해요. 뭐 의사인 입장에서는 그렇게 말할 수도 없고... 답답하니까 그런 말도 하는 거죠. 일단 무엇보다도 항암치료를 잘 받아야 하는데 이겨내는 것이 문제예요.”

“네...”

“그렇다고 너무 절망하진 마세요. 무엇보다도 심리적인 안정이 필요하고 그것이 어쩌면 더 중요할 수도 있어요. 자, 함께 최선을 다해 봅시다.”


의사진은 최종적으로 수술을 하지 않고 항암치료로 방향을 잡았다. 이유는 이미 전이가 많이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항암치료가 쉬운 것은 아니라고 했다. 항암치료의 제일 큰 부작용이 골수 기능의 저하이고 그로 인해 백혈구가 감소되면 세균 감염이 쉽다는 것이다. 즉, 항암제가 암세포만 선택적으로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백혈구나 다른 정상 세포도 공격하는 바람에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게 되며, 면역체계가 무너지면 세균 감염 시 치명적이라고 의사는 자세히 설명해 줬다. 의사진이 어떻게 결정을 하든 이제는 그가 나설 필요가 없었고 그냥 하늘의 처분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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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이 연재소설은 일부 픽션이 가미된 논픽션 소설입니다. *타이틀 이미지 : F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