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대화-1
그 친구의 아버지는 여전히 방 안에서 일행들이 가는지도 모르고 술에 빠져 있는 듯했다. 첫눈에 알코올 중독자처럼 보였다. 생각해 보니 그럴 만도 했다. 부인은 교통사고로 고생하다 죽고, 하나 있는 아들마저 말기 암에 걸렸으니 기구한 인생 어디에다 한탄을 할 수 있겠는가. 술이라도 잠시 그 고통을 잊게 해 줄 수 있기에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고마워하는 그 친구의 인사를 뒤로하고 회사로 돌아왔는데, 가기 전과는 달리 몸은 회사에 있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그 집에서 떠나지 못하고 죄인처럼 붙잡혀 있었다.
‘뭐, 그냥 잊으면 안 되나. 이런 일이 따지고 보면 자주 있잖아. 바쁜데 시간을 내는 것도 그렇고....’ (5편)
”자, 병원 씨. 그리고 어르신. 제가 여기 온 것은 회사의 팀장으로 온 것도 아니고 또 돈이 많아서 병원 씨를 위해 뭔가 도움을 주려고 온 것도 아니에요. 그날 저희들이 십시일반 준비한 성금을 전달하려고 처음 왔을 때, 제 마음속에서 올라오는 소리가 있어서 그 이야기를 하려고 온 것입니다. “
병원의 집을 다녀온 지가 꽤 지났다. 집을 나설 때는 바로 찾아올 것처럼 약속했는데, 회사 일이 바쁘기도 했고 또 그 친구로부터 지금은 항암치료 때문에 만나기가 어려울 것 같다고 문자가 와서 실망스럽기도 했다. 상태를 물어봤더니 항암치료 차 한 번씩 병원에 다녀오면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는 아무것도 먹지도 못하고 물만 먹으면서 버티고 있다고 했다. 어느 정도 몸을 가눌 수 있을 때 연락을 하겠다고 했다. 괜히 몸도 힘든 사람에게 간다고 약속했나 싶었지만, 생각을 바꾸고 계속 그와 연락하며 만날 날을 기약했다.
늦가을이 지나가고 겨울의 초입에 들어섰다. 서해안은 다른 지역보다 겨울에 눈이 많이 오는 편이었다. 그는 여전히 민원인들과 힘겨운 협상을 하고 있었고 매듭을 하나씩 풀어나가긴 했지만, 거친 바다와 함께 살아오면서 세파에 단단해진 그들의 마음을 쉽게 녹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주로 어업 관련 보상 문제였고 또 한편, 그런 일들 때문에 지역 주민들과 가까워지기도 했다.
어느 날 병원이 그에게 문자로 소식을 보내왔다. 항암치료는 잘하고 있고 그가 다른 약속이 없다면 그다음 주 월요일에나 방문해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마침 월요일 저녁엔 민원인과 약속이 되어 있었지만, 그는 병원과 만나는 것이 그리 쉽지 않아 민원인에겐 급한 일이라고 약속 변경을 하고 병원과 약속을 해 버렸다. 그런데 월요일이 되자 다시 병원에게서 연락이 왔는데 목요일로 바꾸면 안 되겠냐고 하면서 몸이 아직도 덜 회복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날은 눈이 너무 많이 왔다. 저녁때는 눈이 내리지 않았지만, 낮에 내린 눈으로 퇴근 시간에 여기저기서 크고 작은 접촉사고가 발생했다. 그는 병원의 아버지가 생각났다. 병원은 아무것도 먹을 수 없다고 해서 가서 상태를 확인해 본 후에 필요한 것을 사 가기로 하고, 그 아버지를 위해 모시떡을 샀다. 모시떡은 그 지방에서 인기가 있었고 그가 서울에 올라갈 때 가끔 그것을 산 적이 있었다.
너무나 많이 내린 눈 때문에 거의 거북이걸음으로 차를 운전하면서 그의 집 근처에 차를 주차했다. 대문을 열고 마당으로 들어서니 마당엔 눈이 가득 쌓여있었고, 쌓인 눈 위로 발자국이 없는 것으로 봐서 둘 다 외출을 하지 않은 것 같았다. 두 번째 방문이었는데 이상하게도 자주 온 집 같은 기분이 들었다.
“계세요?”
인기척을 내며 밖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병원이 문을 열면서 반갑게 맞이했다. 술에 중독된 그 아버지도 그날은 옷을 깔끔하게 입고 그를 맞이했다.
“눈이 많이 왔어요. 원래 이쪽 지역이 눈이 많이 온다고는 했는데 정말 오늘 하루 종일 눈이 온 것 같아요.”
“팀장님, 오실 때 길이 많이 안 좋았죠? 하필이면 오늘 이렇게 눈이 많이 온 날 오시라고 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뭐 거리가 얼마나 된다고 그래요. 자, 들어갑시다.”
밖에서 바로 연결된 거실로 들어가니 전과는 달리 깨끗했고, 박스로 갔다 놓은 소주도 말끔히 치워져 있었다. 어르신을 위해서 산 모시떡을 내놓자 그 어르신은 못난 자식을 위해 찾아줘서 고맙다고 연신 고개를 숙였다.
“아니, 병원 씨가 못나다뇨? 그게 무슨 말씀인가요. 원치 않은 몹쓸 병에 걸리면 못난 사람이 되는 건가요. 너무 그런 생각 마시고 말씀으로라도 그런 말씀 절대 하지 마세요.:
”하여간 누추한 곳에 이렇게 찾아줘서 고맙습니다.“
”어르신, 여기는 제가 찾아오고 싶어서 온 것입니다. 전에 처음 올 때도 말씀드렸지만 제가 병원 씨에게 할 말도 있고, 또 몸은 어떤지 겸사겸사 알아보려고 온 것이니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어르신은 벌떡 일어나 싱크대로 가서 무엇인가 열심히 씻기 시작했다. 그가 온다고 해서 딸기를 산 모양이었다. 상을 펴고 그가 산 모시떡과 딸기를 함께 먹으면서 병원의 상태를 듣기 시작했다. 병원은 항암치료 이후 먹는 것이 너무 어렵고 먹으면 바로바로 구토가 난다고 했다. 그래서 물이나 물로 변하는 과일을 주로 먹는다고 했다. 그는 병원의 상태를 어느 정도 듣고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기 시작했다.
”자, 병원 씨. 그리고 어르신. 제가 여기 온 것은 회사의 팀장으로 온 것도 아니고 또 돈이 많아서 병원 씨를 위해 뭔가 도움을 주려고 온 것도 아니에요. 그날 저희들이 십시일반 준비한 성금을 전달하려고 처음 왔을 때, 제 마음속에서 올라오는 소리가 있어서 그 이야기를 하려고 온 것입니다.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저도 잘 몰라요. 하지만 제 마음의 소리가 자꾸 여기를 가라고 해서 왔는데, 제가 하는 이야기를 그냥 편하게 들으세요. 병원 씨를 보면서 제 어렸을 때 동생이 자꾸 생각났어요.“
그는 딸기를 한 입 먹으면서 그 두 사람에게 계속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일곱 살 난 동생이 있었어요. 저는 그때 중학교 2학년으로 그날은 막 개학한 날이었어요. 동생은 저하고는 여덟 살 차이가 났지만 정말 귀여웠죠.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는 서울에 가셨고 집 안에는 할머니와 어머니만 계셨는데, 그 동생이 갑자기 폐렴이 걸려 3일 만에 제대로 손도 써보지 못하고 제 눈앞에서 죽었어요. 얼마나 슬펐는지 그 이후로 10년간 그 동생을 생각하며 너무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한참 사춘기에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 시기였는데 정신적으로 많이 방황을 했죠. 바로 병원 씨 이야기를 듣다가 갑자기 동생이 생각나는 거였어요. 물론 시간은 이미 지나갔고 동생은 다시 돌아오지 않아요. 하지만 늘 상상을 했죠. 동생을 다시 만난다면 나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
둘은 진지하게 그가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집안인데도 양복을 입고 그의 앞에 앉아 있는 어르신은 처음 보았을 때의 술에 중독된 그의 아버지가 아니었다.
”병원 씨 그리고 어르신, 전에 교회를 좀 다녔다고 했지요? 오해하지 말고 제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저는 뭐 열심히 전도해서 두 분을 교회로 모셔가기 위해 그 목적으로 여기 온 것이 아니에요. 제가 본사에 있다가 징계를 받고 외지인 여기 이 사업소에 발령 났을 때, 사실 저는 하나님을 원망했고 사람들을 원망했어요. ‘어떻게 제게 이럴 수 있습니까?‘ 도저히 이해가 안 갔죠. 그런데 이제야 왜 그랬는지 알게 된 것입니다. 두 분을 만나라고 보낸 것이었어요 하나님이... “
둘은 진지하게 그가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였다.
”병원 씨, 전에 처음 왔을 때 내가 물었죠? 말씀에 대해서 아느냐고, 아니 말씀의 능력에 대해서 들어봤냐고 말이에요.“
”네. 교회는 조금 다녔지만 성경도 잘 안 읽었으니 모를 수밖에요.“
”좋아요.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봐요. 몸은 힘들지 않아요? 들을 수 있겠어요?“
”그제까지만 해도 정말 몸이 쉽게 회복이 안 되었는데, 오늘은 팀장님 오셔서 그런지 몸 상태도 좋고 너무 기분이 좋습니다. 아주 괜찮아요.“
”좋아요. 정말 감사하네요. 자, 성경에 말씀이 많이 기록되어 있죠? 잘 들어보세요. 말씀의 능력이라는 것이 이런 거예요. 만일 여기 계신 병원 씨 아버지가 우리 병원 씨를 위해 밥을 잘 준비하고 상을 잘 차렸다고 합시다. 그런 후에 ’병원아 와서 밥 먹어라‘ 고 하셨다면 그 말씀에는 ’능력‘이 있는 거예요. 왜요? 준비를 다 해놓으시고 말씀하셨기 때문이죠. 그런데, 반대로 상도 안 차려 놓고 아무 준비도 하지 않았는데 말로만 ’병원아 와서 밥 먹어라‘ 하셨다면 그 말씀은 어때요? 앞에서 한 말과 똑같은데 지금은 아무 힘이 없는 말씀이에요. 준비도 안 해놓고 밥 먹으라고 했으니까요. 그렇지 않아요? 속된 말로 헛소리라는 거예요. 이해가 가요?“
”네, 무슨 말인지 잘 알겠네요.“
”네, 어르신도 이해가 가시죠?“
”예, 설명을 잘해줘서 이야기가 쏙쏙 잘 들어오네요.“
”감사합니다. 그런 것처럼, 여기 이 성경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닌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준비를 다 해놓으시고 약속을 하신 겁니다. 만일에 ’ 근심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면 근심하지 않도록 준비를 다 해놓으시고 그 말씀을 하셨다는 거죠. 지금 병원 씨가 말기 암에 걸렸어요. 얼마나 힘듭니까? 그쵸? 들어보니 의사도 이제는 항암치료 말고 방법이 없다고 해요. 이제는 사람의 손을 떠난 일이 되어버렸어요.“
”기적이나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만.... “
병원의 이야기를 하자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그 어르신이 혼잣말로 한탄하듯 중얼거렸다.
”자, 어르신도 병원 씨도 그렇지만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따지고 보면 모두가 다 시한부 인생이에요. 암에 걸렸다고 해서 그 사람만 시한부 인생은 아닙니다. 저도 언제 이 세상을 떠날지 모르지만 정해져 있어요. 내일 오라고 하면 내일 가야 하고 오늘 오라고 하면 오늘 가야 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천년만년 그렇게 살 수 없다는 것이죠.“
그는 그들에게 새 희망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교회를 다녀본 적이 있어서인지 병원 씨는 그의 이야기에 그대로 몰입되었고, 그의 아버지도 노트에 뭔가 기록하면서 그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고 있어서 그는 그 모습을 보며 마치 천상의 한 장면이 땅에 내려온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였다.
밤이 늦어가는 겨울날, 눈에 뒤덮인 세상은 고요한데 불 켜진 그 집에서는 더 환한 빛이 그들을 감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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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이 연재소설은 일부 픽션이 가미된 논픽션 소설입니다. *타이틀 이미지 : F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