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을 벗고 하늘을 날다-8. 왜 세상에 왔는가

왜 세상에 왔는가

by 태산박


의사진은 최종적으로 수술을 하지 않고 항암치료로 방향을 잡았다. 이유는 이미 전이가 많이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항암치료가 쉬운 것은 아니라고 했다. 항암치료의 제일 큰 부작용이 골수 기능의 저하이고 그로 인해 백혈구가 감소되면 세균 감염이 쉽다는 것이다. 즉, 항암제가 암세포만 선택적으로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백혈구나 다른 정상 세포도 공격하는 바람에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게 되며, 면역체계가 무너지면 세균 감염 시 치명적이라고 의사는 자세히 설명해 줬다. 의사진이 어떻게 결정을 하든 이제는 그가 나설 필요가 없었고 그냥 하늘의 처분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결국은 이렇게 죽어가는 거야. 이렇게 비참하게 죽어가는 거라고. 어차피 죽는 건데 고통스럽게 생명을 연장하느니 차라리 조용한 곳에 가서 확 죽어버릴까. 아, 그런데 자신 없다. 최소한 나를 위해서 아버지를 위해서 그렇게는 못하겠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나를 죽일 권리가 있어? 그래 병이 찾아와 그것이 나를 죽이겠다고 이렇게 괴롭히는데 나까지 부화뇌동해서 나를 죽이겠다고 해? 죽을 때 죽더라도 그렇게는 하지 말자 병원아.

벌써 항암치료만도 몇 번째인가. 통증은 기억까지 삼키고 흐릿하게 만들었다. 한 번씩 항암치료 들어갈 때마다 거의 기진맥진해서 나왔다. 그 여파가 최소 일주일은 갔고 좀 심하면 열흘 동안 누워 있어야 했다. 몸이 너무 안 좋다 보니 배가 고픈 것은 둘째치고 아예 음식 냄새를 맡기도 싫었다. 조금만 먹어도 그대로 구토가 나왔다. 암에 걸리면 못 먹어서 죽는다는 말이 실감이 났지만, 차라리 죽으면 죽었지 음식을 먹을 맛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 허기를 물로 채우고 가끔 아버지가 사다 놓은 과일로 겨우 끼니를 때웠다. 그런 가운데 몸은 급속도로 나빠지고 있었다.


침대에 누워 있다. 천정이 흔들흔들 움직이는 것 같다. 머리가 어지럽다. 약 기운 때문인지 콕콕 찌르던 가슴통증이 좀 줄어들었지만 계속 구역질이 난다. 몸을 가눌 수가 없다. 근육과 관절이 으스러진 느낌이다. 도대체 나는 왜 태어났을까. 이렇게 죽기 위해서 태어났다면 인생은 너무나 허망하지 않은가. 왜 그렇게 가난했던 아버지는 똑같이 못살았던 어머니와 만났는가. 유유상종이라고 서로의 형편에 공감을 했던 것일까. 그렇게 찢어지게 가난했으면서 왜 나를 낳았단 말인가. 가진 것이 없으면 그냥 둘이나 좀 잘 살지, 왜 자기들 것도 아닌 남의 인생은 책임도 못 질 거면서 태어나게 해 이토록 고통스럽게 하는가. 하나님이 계신다면 왜 우리 가족을 이렇게 못 본 체하시는 걸까. 왜 그 수많은 부자들은 떵떵거리며 살게 두시면서 가난한 사람들이 이렇게 울부짖는데 일어설 수 있도록 도움을 안 주시는가. 하나님은 부자들의 하나님인가. 왜 그렇게 우리 가족에게만 인색하실까.


차라리 두 분이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도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두 분도 최소한 이런 삶을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것이 우리 가족에게 주어진 운명이란 말인가. 내가 이렇게 비참하게 된 것도 운명인가? 아버지는 어떻게 될까. 그래도 다행이다. 아버지까지 병들었다면 정말 우리 가족은 완전히 망하는 건데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다. 설마, 설마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이런 병에 걸리리라곤 상상을 하지 않았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내가 죄가 많은가 보구나.


그랬지. 일곱 살 때였어. 잊을 수가 없지. 그때, 아버지 어머니는 새벽부터 어디로 나가셨어. 나중에 커서 안 일이지만 내가 무슨 일로 화나 가서 난리를 폈더니 그때 어머니가 울면서 말씀하셨어. 남의 집에 머슴살이, 식모살이했다고. 그 화풀이가 눈물이 되어서 미안해서 어머니 껴안고 대성통곡을 했었지. 그 일곱 살 때 너무 배가 고팠어. 그래서 밖으로 나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남의 밭에서 무를 뽑았어. 물에 씻을 겨를도 없이 손으로 흙을 털어내고 한 입 베어 먹었지. 그 풋풋하고 향기로운 냄새.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 그런데 그때 정말 재수 없게 경희 아버지한테 걸렸어. 분명히 주위를 돌아봤는데. 나를 보고 뭐라고 욕을 했는데 그 어린 나이에 너무 부끄럽고 놀라서 무를 버리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냅다 뛰었지. 그 후로 경희네 집 근처에 얼씬도 안 했어. 그 밭이 경희네 밭이었나 봐. 그 한 입 베어 먹었다고. 그래, 그게 죄였고 설마 지금 그 죄 때문에 내가 이런 형벌을 받고 있는 걸까. 그건 아니겠지.

중학교 갈 형편이 못되었는데 그때부터 아버지는 나 때문에 그 험한 어시장에 나간 것 같아. 가끔 고기를 가져왔거든.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면 생선 비린내가 진동했어. 썩은 내 같기도 했는데. 그래도 그때는 아버지 때문에 먹고 살 만했던 것 같아. 고기를 가져올 때 어머니 모습은 온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얼굴이 환했어. 그 모습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지. 내가 커서 돈을 벌면 고기 한 박스를 사서 어머니께 드리겠다고. 근데 회사를 들어가서는 그 생각이 왜 나지 않았지? 이제야 병드니까 그 생각이 나네. 그 환했던 어머니. 가진 것 없었지만 그 선하고 고운 우리 어머니를 왜 하나님은 데려가신 거지?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고. 우리 어머니는 나처럼 무 하나도 뽑아 먹을지도 모르는 사람인데. 불쌍한 우리 어머니. 정말 저 세상 가면 우리 어머니, 보고 싶은 우리 어머니 만날 수 있을까...



의사가 말했어. 항암제가 좋은 약이 나왔다고 해도 암세포만 선택적으로 공격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정상 세포도 공격을 함께 받는다고. 그래서 몸이 가눌 수가 없는 것이라고. 결국은 이렇게 죽어가는 거야. 이렇게 비참하게 죽어가는 거라고. 어차피 죽는 건데 고통스럽게 생명을 연장하느니 차라리 조용한 곳에 가서 확 죽어버릴까. 아, 그런데 자신 없다. 최소한 나를 위해서 아버지를 위해서 그렇게는 못하겠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나를 죽일 권리가 있어? 그래 병이 찾아와 그것이 나를 죽이겠다고 이렇게 괴롭히는데 나까지 부화뇌동해서 나를 죽이겠다고 해? 죽을 때 죽더라도 그렇게는 하지 말자 병원아.

올라오는 모든 생각을 지워버렸으면 좋겠다. 그래 그 팀장님이 오셨어. 생각해 보니 그 시간은 너무 좋았는데 아직도 확신이 안 선다. 그 팀장님은 내게 무슨 마음으로 오셨을까. 나한테 얻을 것이 하나도 없을 텐데. 그렇지 않아? 병들고 가난하고 이제 죽음을 앞둔 내게 뭘 얻겠어. 바쁜 분이 시간만 아까울 텐데. 그분은 자선사업가도 아닐 테고, 그렇다고 봉사활동가나 사회사업가도 아닌 그냥 회사 다니는 분인데, 어쨌든 나한테 와주어서 고맙긴 해. 정말 하루 종일 누구와 말할 일도 없는데 말동무도 해주는 느낌이었으니. 근데 좀 느낌은 달랐어.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 전에는 들어보지 못한 것 같아.


교회 다닌다고 해놓고 성경이나 제대로 읽지도 않았잖아. 그래 신약성경 앞에만 몇 번을 읽고 그것도 뜻도 모르고 읽었지. 그런데 그분이 말했어. 만일 예수님이 지금 우리 집 거실문을 열고 들어오신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때 팀장님은 얼른 자리를 준비해드리고 거기에 예수님을 앉게 해서 말씀을 들을 거라고 그랬지. 그리고 그냥 예수님이 나가시면 붙잡고 저 병원이를 고쳐달라고 부탁하지 않겠냐고. 당연히 그러겠지. 지금 내가 죽을 판인데. 또 누구보다도 예수님이 너무 잘 아실 텐데 안 그래? 그러면 예수님이 그냥 모른 체하고 나가시겠냐고 그랬지. 아니라고 나를 고쳐주실 것이라고 내가 그랬어. 예수님은 능력이 있으신 분이니까. 팀장님은 바로 그걸 믿으라고 했어. 예수님이 중풍병자 고친 얘기를 하면서. 그게 의학적으로는 얘기가 안 되지만...


하기야 의학적으로는 나는 이미 사망선고 내린 거지. 인간적인 방법은 더 이상 없는 거라고. 이제는 팀장님 말마따나 하나님밖에 의지할 분이 없는 것 같아. 나는 그게 잘 안 믿어지지만. 팀장님이 그랬어. 그 안 믿어진다는 것이 마음이 얼마나 단단하게 굳은 건지 죽어가면서도 못 믿고 죽는 사람들이 많다고. 내가 지금 그러는 것 아니냐고. 그래 팀장님 또 오신다고 했으니 물어보자. 그리고 믿어 보자. 오죽하면 그분이 나를 생각해서 오실까. 바쁜 분이 말이야. 죽을 때 죽더라도 나는 길이 없어. 내가 길이 없다고 하니까 그분이 그랬어. 아니, 길은 있다고. 의아했지. 내가 살 길이 있다구요? 속으로 질문을 던졌지. 예수님이 길이라고 했어. 요한복음 몇 장인가. 그래 많이 듣기는 했다. 내가 안 믿어서 그렇지.


이렇게 살다가 목숨이 끊어지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어디로 가는 걸까. 정말 천국과 지옥이 있다면 나는 죄가 많아서 지옥에 가는 걸까. 아니면 세상 살았을 때 너무 험하고 힘들게 살아서 천국으로 보내줄까. 하기야 그래야 공평한 거 아닐까. 우리 어머니도 천국에 계실 것 같은데. 내가 하나님이라면 그렇게 해줄 것 같다. 그래야 형평에 맞을 것 같다. 그런데 그분은 그렇게 말 안 했어. 뭔가 좀 달랐어. 그래, 자기 생각을 믿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이 뭐라고 말씀하는지 밝히 들어보고 믿으라고 했지.

몸이 또 아프기 시작한다. 이놈의 통증. 정말 미칠 것 같다. 아, 하나님 나 좀 살려주세요. 통증 때문에 미칠 것 같아요. 왜, 내게 이런 형벌을 주십니까? 왜, 내게 이런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주십니까?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요? 저 밖에 길거리에 걸어가는 사람들은 아무 걱정 없이 다니는데 왜 내게는 그럴 권리도 없습니까? 그렇다면 왜 세상에 저를 내보내셨나요? 힘들게 살면서 가난하고 고통을 당하며 인생 그렇게 살라고 보내셨나요? 그렇다면 하나님은 정말 나쁜 분입니다.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거겠지요? 네 주님은 그럴 분이 아니니까요. 나 같은 놈을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는데 정말 정말 죄송합니다. 아프니까 못할 말이 없네요. 이해해 주세요.


비몽사몽간이다. 기억의 저편에서 쪼그리고 있던 한 아이가 소리친다. 넌 병이 걸린 것이 아니라 뭔가 잘못 먹은 거라구. 저번에도 그랬잖아. 아버지가 어디서 가지고 온 염소고기. 그거 썩은 거였어. 그거 삶지도 않고 아버지랑 날로 먹고 둘 다 배탈이 나 죽을 뻔했잖아. 너 지금 아픈 것도 뭔가 잘못 먹은 것 때문이야. 너 그거 아픈 거 병 때문이 아냐. 잘 생각해 봐. 생선 잘못 먹어도 큰일 나잖아. 괜찮아질 거야. 그때 생각해 봐. 며칠 지나면 그때처럼 깨끗하게 낫게 된다구.


그래 낫게 되면 나도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 지금까지는 자격지심 때문에 포기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적극적으로 나서 보자. 집안이 어때서. 서로 마음만 맞으면 되는데. 잘 설명해 주면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도 있을 거야. 세상은 그래도 좋은 사람이 많아.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 보는 사람도 있지만 천사들도 많이 있다구. 그래서 세상은 살 만한 거야. 영원한 저주도 영원한 고통도 없어. 아무래도 하나님이 세상을 그처럼 아무렇게나 불공평하게 두실 것 같냐고. 너무 세상을 비관적으로만 보지 말자. 지금부터는 긍정적으로 살자. 내가 낫게 되면 모든 좋은 기운이 내게로 올 수 있다고. 그 팀장님 얘기 들었잖아.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보지 말라고. 근심과 염려는 마음에 독을 심는 거라고. 하나님은 ‘근심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그것은 근심하지 않을 준비를 다 해놓으시고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그래 그게 맞지. 하신 말씀에 책임도 못 지신다면 하나님이 아니시지. 내가 믿음이 하나도 없었어. 그래서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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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이 연재소설은 일부 픽션이 가미된 논픽션 소설입니다. *타이틀 이미지 : F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