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을 벗고 하늘을 날다-10. 천상의 대화

천상의 대화-3

by 태산박


“그런 마음이라니 너무 고마워요, 정말 그 마음은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에요. 마치 진주조개가 오랜 세월 고통을 밀어내 진주를 만들듯이 만들어진 마음인 거예요. 그래서 아름답고 영롱한 거고. 겉은 너무 빛나고 아름답지만 그 자체가 고통인 것을 정확히 알고 마음에 심어진 사람은 복을 받은 사람이죠.





“저도 한 시간 정도 버틸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지금 제가 놀라고 있어요. 물론 전혀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지금 서로 이야기를 하는 동안 그 아픔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소망만 남았어요. 이 세상의 소망이 아닌 하늘의 소망... 생각 같아선 팀장님만 괜찮으시다면 날마다 이런 이야기들을 말하고 싶고 듣고 싶어요.”



병원은 잠시 무슨 생각에 사로잡힌 듯 어두운 창밖을 바라보더니 다시 그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가끔 가슴을 움켜쥐기도 했다.

”저는 정말 어두운 인생을 살았어요. 어떤 진리를 발견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정말 문외한이었죠. 사실 뭐 그럴 여유도 없었고, 그런 곳에 시간 쓰는 자체도 아깝다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별로 할 일 없는 사람들이 시간이 남아 돌아가니까 쓸데없는 인생 타령하는 것처럼 들려서 저같이 매일 전쟁 같은 삶 속에서 사는 사람에게는 사치로 느껴졌으니까요."

”그랬겠지, 참 속이 아파요 또?"

”괜찮아요. 저기 저 밖을 보세요. 지금은 안과 밖이 정확히 구분돼요. 저 어두운 곳에서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으니 길을 잃을 수밖에 없고, 저 어둠 속에서 떵떵거리며 산다는 사람들도 여전히 어둠 속에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것. 이 방 안에 있으니 모든 것이 밝게 보이고 분명하잖아요. 그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어요. 팀장님 덕분에, 그런데..."

”그런데?"

”저는 솔직히 팀장님을 약간 의심했어요. 제가 알기로 늘 바쁘신 분으로 알고 있는데 굳이 왜 저한테까지 신경을 쓰실까. 혹시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기야 팀장님이 저로부터 무슨 이익을 볼 어떤 목적이 있겠어요? 제가 가진 것이라곤 이 몹쓸 병밖에 없는데. 하지만 별생각이 다 들어갔어요. 혼자 생각이 많아지니까 그랬던 것 같아요. 그냥 오시지 말라고 할까. 평범한 사람과 만나서 오랫동안 이야기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보시다시피 저는 말기 암 환자인데 누가 좋아하겠어요. 혹시나 잘못 감염이나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모두가 만나길 주저할 텐데, 팀장님은 그런 게 전혀 없으니 이상하기도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천사 같기도 했고, 남자한테 천사라니 좀 그렇긴 하지만, 하하."

”그렇게 생각해 주니 고마워요."

”아닙니다. 제 마음에서 올라오는 생각들을 다 말씀드리는 거예요.

“십 수년 전쯤 있었던 일이에요. 그땐 우리 아이들도 어렸는데 옆집에 어떤 아주머니가 살았어요. 우리를 처음 교회로 데리고 간 사람이죠. 그분은 남편이 바람을 피워서 이혼도 안 하고 딴 여자하고 살고 있었는데, 작은 미장원을 겨우 운영하면서 그나마 돈을 조금씩 모았어요. 그러면 몇 달 뒤에 그 남편이 찾아와서 행패를 부리고 돈을 빼앗아 가요. 제가 그 남편도 잘 알아서 제발 그러지 말라고 만나보려고 해도 잠깐 왔다가 사라지니 만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도 무심하시지 그렇게 열심히 살았던 그 아주머니가 자궁암에 걸려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었어요.”

“참 그분도 저 같은 신세였네요.”

“어떻게 보면 병원 씨보다 더 기구한 삶을 살았던 사람 아니었을까... 그래서 마지막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에 집사람이랑 딸이랑 같이 성가복지병원이란 곳에 찾아갔어요. 성가복지병원은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한 암 환자들이 있는 병원이라고 들었어요. 그분이 있는 병실을 들어갔더니 죽음의 그림자가 어둡게 드리워져 있었는데, 우리 딸이 들어가자마자 쓰러져 버렸어요. 아마도 그 음산한 기운 때문이지 않았나 싶어요. 금방 일어났는데 밖에서 바람 쐬라고 하고 집사람이랑 둘이서 들어갔죠. 그분은 완전히 앙상한 뼈만 남아 있었어요. 예전의 그 얼굴이 거의 사라지고 먹지를 못해서 그렇게 된 것 같았어요. 그런데... 그 형편을 보고 제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기도밖에 없었어요. 그분이 다시 산다는 것은 도저히 기적이 아니면 있을 수가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었으니까요. 그것을 보고 제 마음에서 ‘이 분 돌아가시겠구나’라는 생각밖에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마음에서 포기가 된 거죠. 제 기도를 들은 그분은 눈에서 눈물을 주르르 흘리더라구요. 그것밖에 할 수 없는 저를 보면서 전 너무 화도 나고, 슬프고 괴로웠어요. 지금처럼 제가 복음을 알았다면 그렇게 보내지 않았을 거예요. 왜, 왜 제가 병원 씨를 찾아왔겠어요. 병원 씨는 저를 충분히 의심할 수 있고 다른 목적이 있나 하는 마음이 들었을 수 있지만, 저는 그 아주머니에게 진 빚이 있어서 그것을 병원 씨에게 갚으러 온 거예요. 솔직히 다른 의도 하나도 없어요. 병원 씨 말마따나 제가 이익 볼 것이 하나도 없는데 무슨 목적이 있고 의도가 있겠어요.”

“죄송합니다. 그런 생각을 해서...”

“아니요. 충분히 그럴 순 있어요. 사실 제가 가진 이 복음을 전하면 살 수도 있다고 생각한 거예요. 아니 살아요. 저는 그런 경우를 너무 많이 봐 왔으니까요. 꼭 신앙이 아니더라도 말기 암 걸린 사람이 산속에 가서 자연치유로 낫기도 하잖아요. 치유 방법은 많아요. 그것을 실천하지 않거나 믿지 못하니까 그렇지.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이 능력이 없어서 자연치유가 되는 길보다 못하겠어요? 그러면 하나님이 아니죠. 우리가 의심해서 못 믿고, 안 믿어서 그러는 거예요.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고 가려져 있어서 그래요. 보이는 형편에 매몰돼 버리니 그럴 수밖에 없어요.”

“네, 보이는 형편이 너무 크게 다가오고 실제로도 너무 아프니까...”

“신앙은 부담을 넘는 일이에요. 죽을 때 죽더라도 저 말씀이 살아있나 믿어보자 하는 배수진을 친 군사의 심정으로...”


그가 단호하게 말하자 병원의 얼굴에서 어떤 비장함이 엿보이는 것 같았고, 순간 눈가가 빛나며 어떤 실낱같은 희망의 스침도 언뜻 보였다.

“그 부분은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에요. 그것은 오롯이 병원 씨가 해야 할 몫이죠. 저는 그저 그 사실을 전하는 사람일 뿐이에요.”

“네, 알고 있어요. 사실은 제가 낫고 안 낫고 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암이라는 병을 통해서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되었다는 것이죠. 뭐 따지고 보면 누구나 죽잖아요. 이것도 모르고 죽는다면 그것같이 불행한 일이 어디 있겠어요. 자신의 가는 길을 모르고 죽는다는 것처럼 두렵고 무서운 길을 없다고 봐요.”

“아주 정확하고 분명한 말을 했어요.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우린 모두 시한부 인생이에요. 자,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이 계신 곳을 상상하면 이 세상은 그저 나그넷길일 뿐 아무것도 아니에요. 사도 바울이 그랬죠. 고린도후서인가에서 셋째 하늘에 올라간 일을 기록했는데 사람들이 미쳤다고 생각하고 믿지 않을 것 같아서 십사 년 동안이나 입을 다물고 있었어요. 그 일이 있고 난 후 십사 년 후에 그 놀라운 일을 말하죠. 가히 인간의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그런 세계를 보았다고. 여기 시간계를 넘어 영원계를 본 거죠. 그는 빨리 하나님 계신 그곳으로 가는 것이 더 좋겠다고 했지만, 하나님은 세상 사람들을 위해 그를 남겨 두었어요. 제 말의 요지는 이 세상보다 그 세상이 너무 좋기 때문에 차라리 그런 세상에 어서 가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는 일이라는 거죠. 오해하지 마세요. 따지고 보면 그렇다는 겁니다. 즉, 죽는다고 모든 것이 무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다만, 그 나라를 가는 조건이라면 조건은 바로 믿음이죠.”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그래서 제 맘이 편하다는 거예요. 어떻게 보면 죽음을 초월한 그런 경지에 들어간 것 같은... 하지만, 아픈 것은 어쩔 수 없어요. 낫고 싶은 욕망도 강하고... 그런 세계를 직접 눈으로 보지 못해서 그러는 거겠죠?”

“누구나 육신을 벗는 날이 있어요. 이 육신은 집과 같아서 나라는 자아가 사는 집이에요. 우리가 ‘마음’이라고 하는 그것은 다른 말로 ‘영혼’이라고도 해요. 집주인이 나간 집은 폐가가 되듯이 우리 영혼이 나간 몸은 죽은 몸으로 남아요. 사실, 몸이 집이라는 표현을 우리가 하잖아요. 몸집. 그리고 우리는 몸이라는 육신을 벗으면 신령한 옷을 입는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어요. 물론 아직 안 겪어봤기 때문에 모르죠. 그래서 믿어야 하는 거예요. 또 사람이 죽으면 ‘돌아가신다’고 해요. 돌아간다는 뜻은 원래 있던 곳으로 간다는 뜻이에요. 한자로 별세(別世)했다고도 하죠. 세상(世)이 나눠진다(別), 다른 세상으로 간다...”


그는 병원에게 믿음으로 실제 죽을병에 걸린 육체가 사는 길도 있고, 비록 어쩔 수 없이 죽음을 맞이한다 해도 조금 빨리 가거나 늦게 가는 것일 뿐, 누구나 그 길을 앞두고 있으니 너무 매일 필요 없다는 뜻으로 얘기를 계속했다. 대체로 병원은 마음에 확고한 믿음이 생긴 것 같았고, 그의 확신에 찬 말을 들으면서 너무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벌써 둘이 마주 앉아 이야기하는 시간이 4시간이나 훌쩍 지나갔는데 전혀 피곤한 기색이 없는 병원을 보면서, 그는 그것을 작은 기적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이야기가 계속되는 동안 병원의 몸 상태는 더욱 좋아지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랬을까. 밤새 얘기해도 괜찮겠다는 병원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정말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는 그런 느낌을 그대로 받았다.

“병원 씨,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 괜찮아요? 내가 보기에는 전혀 피곤한 기색이 없이 기적같이 느껴져요.”

“저도 한 시간 정도 버틸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지금 제가 놀라고 있어요. 물론 전혀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지금 서로 이야기를 하는 동안 그 아픔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소망만 남았어요. 이 세상의 소망이 아닌 하늘의 소망... 생각 같아선 팀장님만 괜찮으시다면 날마다 이런 이야기들을 말하고 싶고 듣고 싶어요.”

“언제든지 말만 해요. 난 다른 일보다 우선적으로 달려올 테니까.”

“정말 감사합니다. 혼자만 있으면 많은 생각들이 올라와 저를 괴롭혀요. 아직은 제가 온전한 믿음이 없어서 그러는 거겠죠. 이제는 떨쳐버릴 거예요. 그리고 희망만 생각할 거예요.”

“혼자 있을 때는 정상적인 사람도 많은 생각이 휩싸여요. 오죽하면 오만가지 생각이 든다고 하겠어요. 수많은 생각들이 우리 마음의 방을 날마다 들락거려요. 그런데 그중에 센 녀석이 마음의 방에 들어와 떡 자리 잡고 앉아 안 나가죠. 쫓아내도 엉덩이가 무거워 절대 안 나가요. 이 집이 좋다고 하면서. 다시 말해서 우리 마음의 밭에 못된 씨앗이 하나 심어지면 얼른 뽑아내야 하는데, 그런 못된 생각의 씨앗에 우리는 보통 물을 주기 시작해요. 키운다는 말이죠. 그렇게 키우면 어떻겠어요? 줄기가 올라오고 잎사귀가 생기며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혀요. 그건 이미 뽑을 수 없는 나무로 커버린 거죠. 그러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 못된 나무는 그 사람을 우울증에 걸리게 하고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하도록 끌고 가는 거예요. 그래서 생각이 올라오면 이놈이 좋은 놈인가 나쁜 놈인가 우선 판단을 해봐요. 금방 알잖아요. 내 마음이 즐겁지 않고 우울하면 못된 놈이에요. 기쁘고 감사한 생각은 좋은 놈 아니겠어요?

”잘 알겠습니다. 생각의 씨앗이라는 말이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

”그래요. 정상적인 사람도 그 생각에 이끌려 쉽게 죽음을 선택하는 세상이에요. 하루에 그런 생각에 이끌려 죽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된 줄 알아요? 거의 30명 내지 40명쯤 돼요. 믿어지지 않죠? 일 년에 약 14,000명 정도가 자살을 해요. 이유야 다양하죠. 경제적인 문제로, 가정의 불화로, 우울증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또는 가까운 주위의 사람들로 인해서 말이에요. 그런데 그런 이유를 가만히 속으로 들어가 보면 다 이놈의 생각 때문이에요. 그 어려움을 포기할 생각보다 넘을 생각을 하면 어떻게 길이 열릴 텐데, 스스로 길은 없다고 판단해서 몸을 던져버리는 거예요. 정말 젊은 사람이나 황혼을 보내는 사람이나 나이 불문하고 부정적 생각에 노예가 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


그들의 이야기는 쉼이 없었다. 이야기가 계속되는 동안 그들의 얼굴엔 화색이 돌았다가 진지해졌다가 간간이 웃음도 터지기도 했다. 지금 서로는 암이라는 천형을 다 잊어버린 듯 천상에서 주는 아름다운 대화에 푹 빠져 있어 밤이 깊어가는 줄을 모르고 있었다. 누가 봐도 허름한 집, 그것도 암 환자를 품은 소망 없는 집은 그 밤을 하늘 소망으로 가득 채우고 뜨겁게 밤의 아궁이를 지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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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이 연재소설은 일부 픽션이 가미된 논픽션 소설입니다. *타이틀 이미지 : F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