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을 벗고 하늘을 날다-11. 그늘을 벗고 하늘로

그늘을 벗고 하늘로

by 태산박


그들의 이야기는 쉼이 없었다. 이야기가 계속되는 동안 그들의 얼굴엔 화색이 돌았다가 진지해졌다가 간간이 웃음도 터지기도 했다. 지금 서로는 암이라는 천형을 다 잊어버린 듯 천상에서 주는 아름다운 대화에 푹 빠져 있어 밤이 깊어가는 줄을 모르고 있었다. 누가 봐도 허름한 집, 그것도 암 환자를 품은 소망 없는 집은 그 밤을 하늘 소망으로 가득 채우고 뜨겁게 밤의 아궁이를 지피고 있었다.






“팀장님, 감사해요. 이제야 눈이 떠졌어요. 저 같은 자에게도 이런 세계를 맛보게 해 주심을 감사드려요. 물론 지금도 몸은 아파요. 구역질도 계속 나구요. 몸이 힘든 건 여전하지만 마음은 다른 세상을 훨훨 날고 있어요. 만일 제가 이런 병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제 마음도 변하지 않았을 것이고, 이렇게 베일로 가려진 것 같은 축복된 세상을 알 수 없었을 거예요.



병원과의 밤늦은 대화는 그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비록 말기 암이라는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더라도 병원의 마음속에 이루어진 또 다른 세계는 그냥 사람의 결심이나 노력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순전히 은혜로 이루어진 복된 세계였다. 그곳은 병원과 그 가족을 고통으로 내몰았던 세상의 힘이 절대 침입할 수 없는 천상의 공간이었으며 보이지 않는 세계였다. 그것은 병원이 그토록 원망하고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던 세상이 도저히 줄 수 없는 생명의 선물이었으며, 오히려 그것을 얻지 못한 세상 사람들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할 만큼 그에게는 하늘이 내려준 크나큰 은혜의 선물이었고 어두운 마음을 밝혀주는 빛이 되었다.

“팀장님, 감사해요. 이제야 눈이 떠졌어요. 저 같은 자에게도 이런 세계를 맛보게 해 주심을 감사드려요. 물론 지금도 몸은 아파요. 구역질도 계속 나구요. 몸이 힘든 건 여전하지만 마음은 다른 세상을 훨훨 날고 있어요. 만일 제가 이런 병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제 마음도 변하지 않았을 것이고, 이렇게 베일로 가려진 것 같은 축복된 세상을 알 수 없었을 거예요. 전혀 관심이 없었으니까요. 저는 그저 제 몸 하나 잘되기를 바랐고, 이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잘 먹고 잘 살아볼까 오로지 그 생각에만 꽂혀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제가 어떻게 되더라도 상관없어요. 무엇보다도 제 마음에서 이루어진 이 세계를 아무도 빼앗아 가지 못할 겁니다. 이제는 같은 형제로서 문안 인사드립니다.”


문자였다. 그는 한참 동안 병원에게서 온 휴대폰 문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가에 이슬이 맺히고 눈꺼풀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하늘을 바라보았다. 수많은 천사들이 그들의 속삭임을 알고 있는 듯했다. 그의 입술이 떨리며 찬송이 흘러나왔다.


‘저 장미꽃 위에 이슬 아직 맺혀 있는 그때에...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은 알 사람이 없도다’

병원은 계속 항암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었다. 자주 말씀을 나누며 전화와 문자로 기쁨을 나눴지만 때로는 연락을 해도 전화도 받지 않고 문자도 읽지 않을 때가 있었다. 그는 병원의 상태를 잘 알기 때문에 너무 자주 연락을 하는 것을 자제했고 대신 문자로 말씀을 보내주곤 했다. 다시 한번 찾아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서로 일정이 잘 맞지 않아 또 연기해야 했다.


회사는 여전했고 그에게 주어진 업무는 큰 무리 없이 잘 진행되고 있었다. 그즈음에 다행히 전에 모시던 분이 사장으로 부임해 와 그의 모든 것을 알고 있어서 그런지 그를 한 사업소를 담당할 자리로 영전 발령을 냈다. 그에게는 기쁘긴 했지만 병원과 서로 헤어질 것을 생각하니 서운하고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전화도 있고 문자메시지도 있기 때문에 계속 연락을 취하기로 했다. 그곳을 떠나오기 전에 꼭 한번 찾아가야 해서 연락 없이 병원의 집을 찾아갔다. 그런데 대문부터 잠겨 있었다. 문자로 연락을 해도 읽지 않은 것을 보니 위급한 일이 발생했거나 아니면 그가 모를 무슨 상황이 생겼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계속 휴대폰을 보며 병원의 답을 기다렸다. 병원은 그가 발령 난 것까지는 알고 있는 듯했다. 그런데 그 이후로 특별한 연락이 없는 것을 보니 무엇인가 일이 생긴 것만은 분명했다.


새로운 임지로 발령이 나서 업무보고를 받고 업무를 파악하는데 정신이 없다 보니 병원과의 연락은 간헐적으로 이루어졌지만, 그가 보낸 문자는 여전히 읽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었다. 그는 불길한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렇다고 그의 집에 무턱대고 갈 수도 없었다. 거리상으로도 그렇지만 연락이 안 된 상태에서 갔다가 허탕만 치고 올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생각을 바꾸고 병원의 집을 찾아보기로 했다. 벌써 병원과 연락이 끊긴 지 석 달이 넘었기 때문이었다. 주말에 서울에 올라가지 않고 점심때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 그의 집을 찾았다. 예상대로 문이 닫혀 있었다. 기분이 묘했고 불안한 마음이 엄습해 왔다. 마침 지나가는 동네 아주머니가 있어서 병원의 근황을 혹시 알고 있는지 여쭤봤다.


“아, 그 집 아들이요? 잘 모르겠어요. 어디 요양원으로 갔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가끔 그 아버지가 여기 오는 것 같아요. 딱 한 번 봤어요. 그런데 뭘 챙겨서 가는 것 같은데 괜히 안쓰러워서 묻지도 못했어요.”

너무 아쉬웠다. 일부러 거리를 두는 걸까. 아니면 몸을 가누지 못해 도저히 통화나 문자가 어려운 건가. 오만 가지 생각이 그를 짓눌렀다. 오기 전에 그가 아는 교회의 목사님께 한번 찾아가 보라고 연락은 해두었는데 목사님도 따로 연락이 없었다.


월요일 아침 간부회의를 하는 날이었다.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목사님이었다. 그는 중요한 회의를 하는 중이라 받을 수가 없어 메시지만 남겼다. 통 연락이 없던 목사님으로부터 연락을 받자 궁금증이 일어 회의를 빨리 끝내고 그 목사님에게 연락을 했다.

“안녕하세요? 병원 씨 말입니다. 오늘 발인했어요. 마지막 모습이 너무 평안했고 얼굴이 환했어요. 감사하게도 그가 사모하던 영원한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네? 아니… 벌써요?”

“그래도 의사가 그러던데 온몸에 암세포가 전이가 되었는데도 잘 참고 견디더라고 하더군요. 그 아버지도 병원의 마지막 가는 길에 팀장님을 부르려고 했는데 팀장님이 발령받고 많이 바쁠 것 같아서 그러지 못했다고 합디다. 제가 그 어르신한테 병원이가 손으로 직접 팀장님에게 쓴 손편지를 받아놨습니다. 꼭 전해주라고 했답니다. 언제 한번 들르시면 좋겠습니다. 혼자가 된 어르신은 교회에서 모시기로 했습니다. 너무 걱정 마세요.”


그는 예상은 했지만 막상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가슴이 철썩 무너짐을 느꼈다. 그러다가 하늘을 바라보았다.

‘병원 씨, 연락 좀 하지, 마지막 가는 길에 함께 해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이제 아프지 않고 고통받지 않는 곳, 아무도 차별하지 않는 그곳, 이제는 돈 때문에 매일 전쟁 같은 삶을 살지 않아도 되는 곳, 그곳에서 이젠 평안히 쉬어요. 정말 좋지요? 그래요. 그때 내 이야기를 혹시나 안 들었다면 어쩔 번 했어요? 정말 큰일 날 뻔했잖아요. 감사해요. 고마워요. 나도 시간이 되면 그곳으로 갈 거예요. 기다려요. 우리 그때 즐거운 모습으로 다시 봅시다. “


그의 눈에 기쁨과 아쉬움과 감사가 교차된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온몸에 암세포가 전이된 그런 상태에서 어떻게 그에게 손편지를 썼을까. 주말에나 목사님에게 갈 수밖에 없어 기다려야 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지루한 한 주가 갔다.


기다리던 주말, 날씨는 화창했다.

시골에 있는 작은 교회는 거의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고 인기척도 없었다. 교회 인근에 차를 주차하고 천천히 사택으로 걸어가는데 마침 마당 뒤쪽에서 어떤 사람이 빗자루를 들고 있다가 그를 보고 깜짝 놀란 듯 멈칫거렸다. 바로 그 어르신이었다. 어르신은 그를 다시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를 알아본 것이었다. 그도 어르신에게로 다가갔다. 어르신은 소리를 내며 훌쩍거렸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그도 가슴속에서 큰 무엇인가가 복받쳐 올라오는 것 같았으나 가까스로 참으며 어르신을 껴안았다.

”어르신, 고생하셨지요? “

”아닙니다. 팀장님이 애썼어요. 저기, 저.. 저 병원이 편지가 있는데 목사님이 가지고 있어요. “

”네, 알고 있습니다. 같이 사택으로 들어가십시다. “

어르신은 눈물을 훔치고 그보다 먼저 재빨리 사택으로 들어가더니 조금 후에 목사님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아, 오셨군요. 반갑습니다. 어서 들어오세요. 병원 형제가 많이 보고 싶어 했지만 바쁜 분 절대로 오시면 안 된다고 해서 저와 어르신이 마지막 장례를 잘 치렀습니다. 고인의 유지에 따라 전에 근무하던 회사에도 연락을 하지 않았구요. 시신은 화장을 했고 묘비 없이 교회 뒷산에 수목장으로 잘 모셨어요. 이따 가시는 길에 안내해 드릴 테니 한 번 들러 보십시오. 어르신은 보시다시피 교회에 계시기로 했으니 이젠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

”아, 그렇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

”병원 형제는 온몸에 암세포가 전이되어서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었구요. 그럼에도 마지막 순간까지 소망을 잃지 않고 오히려 남은 사람들을 걱정했어요. 마지막 숨을 거둔 후의 그 모습은 너무 평안하게 보였어요. 여기, 병원 형제가 팀장님께 전해 달라는 편지가 있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았으니 잘 간직하시고 편지 속에서 다시 만나 그간의 정을 깊이 나누시길 바랍니다. “


그는 교회 사택에서 목사님의 안내로 그 어르신과 함께 교회 뒷산으로 올라갔다. 어르신은 먼저 앞서 가면서 소나무들이 군집한 사이로 들어가더니 그곳에 있는 작은 소나무를 가리켰다.

”여기요.”


그는 그곳에 다가가 한참 동안 묵념을 하고 그들에게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하더니 조금 더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는 목사님으로부터 받은 편지를 품에서 꺼내 조심스럽게 열었다. 목사님과 어르신은 눈치를 챘는지 교회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꼬깃꼬깃한 편지에는 글씨를 잘 쓰려고 노력한 흔적이 곳곳에 보였지만 여기 저기 흔들린 듯 누운 것들이 많았다. 아픈 몸을 일으켜 힘겹게 글을 쓰고 있는 병원의 모습이 그대로 오버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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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이 연재소설은 일부 픽션이 가미된 논픽션 소설입니다. *타이틀 이미지 : F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