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을 벗고 하늘을 날다-12. 편지

편지

by 태산박


그는 그곳에 다가가 한참 동안 묵념을 하고 그들에게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하더니 조금 더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는 목사님으로부터 받은 편지를 품에서 꺼내 조심스럽게 열었다. 목사님과 어르신은 눈치를 챘는지 교회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꼬깃꼬깃한 편지에는 글씨를 잘 쓰려고 노력한 흔적이 곳곳에 보였지만 여기저기 흔들린 듯 누운 글자들이 많았다. 아픈 몸을 일으켜 힘겹게 글을 쓰고 있는 병원의 모습이 그대로 오버랩되었다.





‘그래, 인생은 어떻게 보면 너무 단순한 거야. 스티브 잡스가 그랬지. 그 단순함이 궁극의 정교함이라고. 인간을 향해 정교하게 설계된 창조주의 계획이 어떻게 보면 너무 단순하기에 사람들이 그것을 믿지 못하고 오히려 복잡하고 쓸데없는 것들을 더 찾는 것 같아. 그런 것들이 좀 있어 보이고 좋아 보이거든.



팀장님, 잘 계시는 거죠? 팀장님이 이 편지를 보실 때는 아마도 제가 하늘나라에 가 있을 거예요. 그 생각을 하니 어쩐지 아쉽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합니다. 제가 이 편지를 지금 다섯 번 만에 끝마쳤어요. 자꾸 손가락이 떨리고 힘이 빠져서 한 번에 쓰지 못했어요.


먼저 연락을 드리지 못해서 죄송해요. 휴대폰에 손을 대면 자꾸 세상 미련이 생겨서 일부러 안 본 지 오래됐어요. 팀장님으로부터 연락이 많이 왔을 거라고 생각이 들었지만, 또 보게 되면 이것저것 다른 것들을 볼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면 여러 생각에 자꾸 빠질 것 같았어요. 팀장님께 연락 못 드린 점 정말로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저는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너무 많이 받은 것 같아요. 팀장님을 통해서요. 제가 무엇이길래 저 같은 사람을 찾아주시고 하늘 소망을 심어주셨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고맙고 감사하기만 합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이제는 몸은 많이 안 좋아져 세상과 이별할 날이 아주 가까이 온 것 같아요.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제가 이루 말할 수 없는 은혜를 입었다는 사실이에요.


우리 그날 밤을 잊을 수가 없어요. 밖은 어둠인데 방은 환한 그 누추한 우리 집. 그곳은 어둠 속에 살다 빛을 받아 생명을 얻은 소망 가득한 제 마음과 같았어요. 그때 우리 이야기를 듣고 하늘의 천사들이 내려와 합창을 하는 것 같았고, 호위 천사들이 우리 둘레를 지키면서 우리 이야기들을 쉬지 않고 위에 계신 지극히 높으신 분께 보고하기 위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처럼 보였답니다. 그곳은 다름 아닌 하늘 잔칫집 같았어요. 팀장님 가시고 난 후 밤새 울면서 감사기도를 했어요.


비록 세상 나이는 마흔도 안 됐지만 누구보다 온갖 세파를 온몸에 받아 상처가 많은 불쌍한 자로 생각했는데, 팀장님 만나고 저처럼 소망 없는 자가 소망이 가득한 행복한 사람으로 변했다는 것이 정말 기적이었어요. 저를 위해 온몸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고 또 의롭게 됐다는 증거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생각하면 한없는 감사가 올라온답니다.

잠시 후면 그 주님을 제가 먼저 만나러 가는데 부러우시죠?^^ 예수님께 부탁해서 좋은 자리 맡아놓을게요. ㅎㅎ 팀장님은 좀 더 저 같은 사람 많이 만나 하늘 소식 전해 주시구요. 천천히 오세요. 지금 저는 제가 보기에도 세상에 오래 있을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세상 사람들은 저를 보고 안 됐다고 생각하겠지만 저는 이제 그분들이 불쌍하게 보인답니다.


이제 마무리해야겠어요. 몸이 자꾸 굳어져 가는 느낌이에요. 아버지를 목사님께 부탁해 놨어요. 저 때문에 술로 사셨던 우리 아버지가 남은 삶을 복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지켜봐 주시고 기도 많이 해주세요. 아버지도 마음이 완전히 변해서 새사람이 되었어요. 팀장님, 보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흰옷 입고 만나는 그날을 기다릴게요. 안녕히 계세요. 고마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그럼 안녕히….

영원한 사랑을 받은 자

병원 올림



그는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그리고 형언할 수 없는 감사가 밀려옴을 느꼈다. 그것은 전에 느껴보지 못한 어떤 슬픔과 아쉬움이 묻은 희열과도 같았다. 멀리 기차가 지나가고 있었다. 말없이 달리는 기차를 쳐다보다 그는 조용히 병원 씨에게 혼잣말로 속삭이기 시작했다.

‘병원 씨, 저기 저 기차 보여요? 멀리 기차가 지나가고 있어요. 그런데 기차는 그냥 가는 것 같지만 분명한 목적지를 두고 달리겠죠. 그렇죠? 목적지가 정해져 있지 않다면 무턱대고 달릴 수 있겠어요? 병원 씨는 비록 세상에서는 일찍 떠났지만, 누구나 얻을 수 없는 영원한 행복을 찾았어요. 물론 그것은 돈으로 환산할 수가 없죠. 이 세상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으니까.

이 세상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이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그 목적지가 어디인 줄 모르고 살아요. 그저 잠시 이슬처럼 왔다가 햇빛에 스러지는 그 ’ 행복‘이라는 것을 좇아 살아가고 있는데, 병원 씨는 감사하게도 정확한 목적지를 알았잖아요. 그 하나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줄 몰라요. 그리고 고마워요. 내 얘기를 들어줘서. 몸이 아프니까 얼마든지 물리칠 수 있었을 텐데, 병원 씨는 그러지 않았어요.

조금 아쉬운 것이 있다면 마지막 가는 길에 손을 잡아주지 못한 것이 걸려요. 그리고 참, 어르신 얼굴이 너무 좋아요. 어르신도 이제는 고생스러운 삶 내려놓고, 교회와 함께하며 남은 인생을 복되게 살아가실 것 같아요. 아버지 걱정 그렇게 많이 했는데 이제는 병원 씨 마음도 편할 겁니다.’


그는 편지를 다시 품속에 넣고는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어떤 카타르시스를 느낀 것처럼 가슴이 뜨거워지고 말할 수 없는 행복감이 밀려왔다. 천천히 아래를 향해 옮기는 발길도 가벼웠다. 이제는 병원을 마음에서 보내고 나니 그동안 소식을 알 수 없어 누적되고 묵혀있던 체증이 확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 인생은 어떻게 보면 너무 단순한 거야. 스티브 잡스가 그랬지. 그 단순함이 궁극의 정교함이라고. 인간을 향해 정교하게 설계된 창조주의 계획이 어떻게 보면 너무 단순하기에 사람들이 그것을 믿지 못하고 오히려 복잡하고 쓸데없는 것들을 더 찾는 것 같아. 그런 것들이 좀 있어 보이고 좋아 보이거든. 하지만, 죽음 앞에 설 때 그런 것들은 한낱 바람에 불려 정처 없이 날아가는 초개 같은 것 아니겠어. 세상에 온갖 것을 다해 본 솔로몬 왕이 뭐라 했나.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고 그랬지. 결국, 사람의 본분이 무엇인가를 결론 냈잖아.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그래 맞아, 백번 맞는 말씀이다.’


그는 다시 병원의 소나무 앞에서 그를 추모하고 천천히 돌아섰다. 언제 다시 그곳을 올지 그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마음속에 살아있는 병원의 독백과 편지의 울림은 그의 삶 속에서 늘 희망을 이야기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다시 한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푸른 하늘에 하얀 선을 그으며 날아가는 비행기가 눈에 들어왔다. 가늘게 선을 긋다 넓게 퍼지는 그 모습 위에 글을 써 보았다.



‘그래, 사랑은 죽음같이 강해’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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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이 연재소설은 일부 픽션이 가미된 논픽션 소설입니다. *타이틀 이미지 : F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