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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멜리에 Jan 10. 2019

도시여행자가 대전 원도심을 떠나지 않는 이유

젠트리피케이션과 새로운 비전


대흥동 480-3번지를 떠나는 서글픔

도시여행자가 위치해 있던 대전 원도심 지역 대흥동은 2016년을 기점으로 큰 변화를 겪었다. 대전 프랑스 문화원, 북카페 이데, 산호여인숙, 원도심 레츠, 파킹 갤러리 등 대흥동을 대표하던 문화 예술 공간이 문을 닫거나 떠나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도시여행자는 우여 곡절 끝에 월세 인상과 함께 2년 연장 계약을 체결했지만, 친구들의 상황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언제나 마음은 미래에 닿았다.


공간이 사라지고 이전한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이곳에 깃든 아름다운 시간들을 내려놓으라 말하는 순간을 상상했다. '공간에 깃든 아름다움과 어찌 이별할까.' '그 공허함을 무엇으로 채울까.'라는 서글픔이 싹텄지만, 다른 한 켠에는 '언젠가 우리가 이 공간을 떠나야 한다면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싶다.'는 마음이 일고 있었다.  


계약 만료를 6개월 앞둔 시점에, 건물 관리를 맡고 있던 부동산 중개인은 슈퍼가 있던 바로 옆 공간을 사용할 의향이 있냐고 물었다. 기존 월세 금액에 200%를 올린다는 조건이었다. 대흥동 상권에서 임차 건물의 상태와 규모로 카페와 서점을 운영하며 월세를 감당하기에는 리스크가 있다고 판단했고, 현재 공간만 다시 계약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다.  


설 연휴가 지나고 우체국에서 한 통의 등기가 도착했다. 봉투에 담겨 있던 종이에는 '더 이상 계약을 연장하지 않겠다.'는 내용 증명이 담겨 있었다. 2011년 겨울에 따뜻한 온기를 품고 시작한 도시여행자는 2018년 여름에 한파주의보를 맞은 채로 대흥동 480-3번지에서 쫓겨 났다. 아름답기 보다는 서글픈 이별이었다. 


2018년 8월 26일, 도시여행자의 마지막 순간을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서글픈 마음을 위로하듯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젠트리피케이션의 논의 대상에서 빠진 '부동산 중개업자'

도시여행자가 대흥동에서 쫓겨난 이유는 '부동산 중개업자' 때문이었다. 대전 원도심 건물의 상당수는 다른 지역 사람들이 소유하고 있다. 건물주가 서울이나 수도권에 살고 있다 보니, 대부분 건물 관리를 부동산 중개업자에게 위임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가 상주하던 건물 역시 다른 지역 회사의 소유였다. 회사는 우리 건물이 위치해 있던 블럭에 건물 전체를 가지고 있었는데, 한 사람의 부동산 중개인이 관리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2016년부터 2018년까지 부동산 중개인은 회사 건물만으로 17건의 부동산 계약을 체결했다. 권리금을 포함해 이루어진 계약은 14건 정도로 추정하고 있는데, 문제는 중개인의 부동산 외에 다른 곳과 거래를 할 수 없는 형태라는 점이다. 우리 건물의 경우 후속 임차인을 선정하는 일부터 권리금 액수와 수수료까지도 부동산 중개인이 직접 결정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현재도 그렇다. 이 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우리에게 도착한 내용 증명 서류도 부동산 중개업자가 보냈다는 것이었다.


건물주가 법적 안전망을 확보하기 위해 기존 세입자를 내보내고 임대료를 다시 책정하는 형태와 중개 수수료를 챙기려는 부동산 중개인의 욕심이 더해져 일어난 젠트리피케이션이었다.


대흥동은 건물주의 증여와 상속 등으로 인해 건물의 소유권 변화가 빠르게 일어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부동산 중개인은 '월세 인상'이라는 달콤한 악마의 속삭임으로 새로운 건물주를 설득하고 새롭게 설계한 임차 계약을 통해 수수료를 챙긴다. 건물 계약과 관리를 부동산 중개인이 하다 보니, 건물주와 세입자는 서로 얼굴 한 번 마주하기 힘들다. 어떤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는 관계 조차 형성될 수 없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부동산 중개업자의 위임 관리 시스템으로 인해, 대흥동 골목 한 블럭에서만 2년 동안 17건의 임차 계약이 이루어졌다.


대전 원도심 젠트리피케이션 문제의 심각성

기실 대흥동보다 은행동이 먼저 젠트리피케이션을 겪었다. 은행동의 경우 2013년 대전시가 추진했던 마중물 사업인 '스카이로드'가 완공되면서 주변 상가 월세가 3-4배씩 뛰었다.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건물주들은 으능정이 상권에서 나올 수 있는 매출 규모를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스카이로드가 생기면 사람들이 더 많이 모이리라 예상하고 무작정 월세를 높이기 급급했다. 상권은 활성화되지 않은 채로 월세만 오르는 상황에서 대다수의 세입자들이 폐업했고, 주변 공실률은 85%까지 치솟기도 했다.


대흥동은 4년 전부터 원룸 투룸 수요가 늘어나며 건축업자들이 낙후된 건물을 매입해 다세대 주택을 짓고 있던 상황에서 서서히 젠트리피케이션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2년 사이 대흥동에 소규모로 창업을 희망하는 소상공인들의 수요가 늘어나며 전체적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기 시작했다. 최근 1년 사이에는 선화동이나 소제동 등 상대적으로 땅값이 저렴했던 원도심에 다른 지역 부동산 투자 회사들이 들어와 땅값이 3배 정도 뛴 상황이다.


젠트리피케이션과 지역 경제의 상관 관계

지방 도시의 젠트리피케이션을 더욱 심각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부동산 시장 자체가 지역 경제 기반을 흔드는 주요 원인으로 심각한 상황으로 바뀔 위험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원도심 상권이 걱정된 때가 없었다. 평일 저녁에 거리를 지나다 보면 오래된 맛집이나 작은 규모로 특색 있는 공간을 운영하는 카페나 펍 이외에는 사람이 없어 비어 있는 상점들을 마주할 때가 많다. 부동산 업자들은 대흥동이 힙해졌다고 이야기하며 땅값과 임차료를 올리고 있는 상황이지만, 정작 거리의 유동인구는 눈에 띄게 줄었다.


'지역에 돈이 돌아야 지역 경제가 활성화 할 수 있다.'는 기본적인 경제 논리를 놓고 봤을 때도 현재 원도심의 부동산 문제는 심각하다. 대전 원도심 상가 건물 월세의 높은 비율이 수도권으로 유출되고 있다. 기획 부동산들이 제대로 된 상권 분석 없이 공간 운영을 시작하고, 1년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폐업하며 권리금과 월세만 높여 놓는 상황도 비일비재하다.


생존권과 원도심에서 도시여행자의 역할

젠트리피케이션은 누군가에게는 '생존권'이 달린 문제다. 특히 대전 원도심의 경우 건물주가 대전 지역 사람이 아닌 건물이 많아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조례 제정이나 정책적 합의를 이뤄내기 힘든 구조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는 고스란히 대부분 건물에서 세입자로 자영업을 영위하는 대전 시민들의 몫으로 돌아온다.


자영업의 건강한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 대전시와 대전 시의회는 원도심을 비롯해 여러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를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대전 원도심에 일어나고 있는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정책들을 제안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예정이다.


대흥동 공간을 떠나보내며 도시여행자 구성원들과 기념 사진을 남겼다. 왼쪽부터 타키, 라가찌, 아멜리에, 지니, 윌


원도심을 기반으로한 도시여행자의 새로운 비전.

첫 번째 이야기, 은행동 서점 '다다르다(differ and reach)'


도시여행자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으로 내몰림을 당한 상황이었지만 지난해 대전 원도심을 기반으로 더 큰 비전을 세웠다. '사람, 공간,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다양한 로컬 콘텐츠를 디자인하며 지역 청년들과 성장하는 일이다.


로컬을 사랑하는 청년들이 도시여행자의 구성원으로서 함께하며, 각자가 꿈꾸는 분야에서 개인의 성장과 회사의 성장을 도모하는 비즈니스 모델이다. 고용 창출과 더불어 지역 사회 문제들을 우리만의 방식으로 질문하고 해결하는 소셜임팩트를 만들어낼 예정이다.


첫 번째 시작은 삶의 다양성이 존중받는 사회를 위한 서점  '다다르다(differ and reach)'이다. 도시여행자가 왜 서점을 운영하는지 질문하는 사람들이 많다. 책이란 삶의 다양성을 담아낼 수 있는 콘텐츠고, 서점은 책과 사람을 이어주는 커뮤니티다. 지난 7년의 시간은 책을 통해 다양한 삶의 방식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 건강한 커뮤니티가 많아질 수 있음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현재 은행동 164-3번지 건물에 34평 규모로 공간 임대 계약을 체결했고, 구성원들은 1월 오픈을 목표로 각자가 맡은 분야에서 열심히 준비 중이다. 라가찌는 비즈니스 모델 설계를 담당하고 아멜리에는 공간과 브랜딩 기획 및 디자인을 진행하고 있다. 윌과 타키는 서가 구성 및 책 큐레이션 서비스를 준비하고, 11월부터 합류한 바리스타 지나가 서점 내 커피 바를 통해 선보일 메뉴를 구성하고 있다.


공간과 커뮤니티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며 비즈니스 모델을 설계하는 방식이 조금 더디어 보일지도 모른다. 이토록 준비하는 시간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지금까지 도시여행자가 지켜왔고 앞으로도 지켜나갈 '사람, 공간, 커뮤니티'라는 비전의 본질을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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