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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hind you May 15. 2019

밀키 이야기

냥줍을 아시나요?

10월 18일. 베를린 보다 서울이 좀 더 쌀쌀했다. 일주일 만에 집에 돌아가는데 낯선 소리가 들렸다. 즐겁거나, 외롭거나, 쓰다듬어 달라는 소리는 아닌 것 같다. 두렵고, 배고프고, 총체적으로 공포에 질린 소리였다. 아기 고양이가 어미와 떨어졌나 보다. 이제 추워서 혼자 저녁을 보내기 힘들 텐데 생각하면서 분리수거장을 지나 집으로 들어갔다.


다음날 자정, 같은 장소에서 같은 소리가 들린다. 어미를 만나기는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러보니 검은 승용차 아래 있다. 하얗고, 노랗고, 검다. 꽤 오랜만에 포복을 했다. 전진은 쉬웠는데, 한 팔로 되돌아 나오는 후진은 어려웠다.



다온이와 밀키의 첫 만남

집에 들어가니 뱅갈고양이 두 마리가 마중 나오다 움찔한다. 콧구멍이 커지며 뒷걸음질을 한다. 하얗고, 검고, 노란 아이를 소파 위에 올려두고 좀 더 나이 많은 뱅갈 묘 ‘다온’을 옆에 두었다. 애기 추우니까 네가 좀 품어줘. 그 옆에서 나도 잠들었다.    




아침에 아내에게 냥줍(길냥이를 주워오는 행위)했다고 말했다. 간밤에 어땠는지 묻길래 다온이에게 품어 달라 하고 잤다고 하니 혀를 끌끌 찬다. 그리고 묻는다. “술 먹고 한 여자가 추워 보인다고 집에 데려와서 나한테 따뜻하게 품어 달라고 하면 내가 어떻게 할 것 같아?” 아... 그때 알았다. 아깽이가 간밤에 죽을 뻔했구나. 둘러보니 아깽이는 책장 한 구석에 들어가 머리를 감추고 있었고, 영역을 침범당한 다온, 다람은 이 녀석을 노려보고 있었다. 뱅갈고양이 두 마리 외모는 호랑이 새끼인데 성질은 온순한 것이 다행이었다.     


세 고양이가 공존하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했다. 우선 병원에서 종합검사를 받고, 공간을 분리해 지내도록 했다. 일주일 정도는 문을 사이에 두고 서로의 냄새를 맡도록 두었다. 다시 일주일은 하루하루 장난감을 바꿔 주었다. 그리곤, 서로 먹는 밥그릇을 바꿔치기했다. 3주 정도가 지나 마지막으로 서로의 배설물을 바꿔 주었다. 무언가 바뀌면 절대 손을 먼저 대지 않는다. 그 주위를 빙글빙글 돌면서 한참 냄새를 맡고 손을 대도 안전할 것 같다는 판단이 들면 장난감을 만지고, 밥을 먹었다. 배설물은 특히 공들여 냄새를 맡았다.       



집사들이 공통적으로 제시하는 방법을 이용한 합사(合飼) 절차가 어느 정도 지나 한 공간에 세 마리를 만나게 했다. 여전히 하앍질을 했지만 어미 다온이 보다, 딸 다람이의 하앍질 빈도는 눈에 띄게 줄기 시작했다. 장난감과 똥을 더 바꿨다.


이렇게 5주 정도가 지나자 함께 뛰어 놀기 시작했다. 다시 한 달 정도가 지나니 서로 그루밍을 해주기 시작했고, 집에 온 지 3개월 만에 함께 모여 자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6개월이 지난 오늘. 첫날 밤 공포에 질린 밀키의 얼굴은 찾을 수 없다. 조금씩 클수록 개구쟁이가 되었고, 언니들을 제압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뱅갈 두 마리도 동조되어 예전보다 활동 반경이 두 배로 늘었다. 집안에 찢어지고, 떨어지는 물건들이 그만큼 많아졌다.


하.. 술이 웬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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