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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hind you May 16. 2019

머릿속 폭탄

5월 1일. 오전 일정을 조율하면서 작은 논란이 있었다. 주요 재판은 피고인을 기록하는데 정신 질환을 앓는 피고인의 경우 다른 피고인과 동일하게 대응해야 하는지가 고민이었다.


15시 공판에 피고인 A는 출석하지 않았다. 불출석 사유에 대한 구치소장의 서신이 올 동안 재판은 20분간 정회됐다. A는 호송차량 탑승 직전 호송 직원에게 가지 않겠다고 욕을 하고 물리력을 사용했다. 구치소장은 이대로 보낼 경우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판단했다.


1. 

A(31)는 살인을 했다. 2018년 12월 31일 5시 44분경 자신을 진료하던 의사를 찾았다. A는 예약하지 않았다. 의사는 이미 당일 진료가 끝났고, 종무식이 예정이라 환자를 만나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찾아온 환자를 모른척하지 않았다. A는 진료실에 들어가 머릿속에 장착된 폭탄을 제거해 달라고 했다. 의사는 간호사에게 경비원을 불러 달라는 수신호를 보냈다. A는 진료실 문을 잠갔다. 그리고 집 근처 마트에서 구입한 흉기를 꺼냈다. 의사는 옆 진료실 문으로 도망 나오며 문 앞에 있던 간호사에게 도망가라고 소리쳤다. A는 뒤쫓아 나오다 진료실 앞 의자에 부딪히며 주춤했고, 간호사와 마주쳤다. 도망치던 의사는 간호사가 잘 피했는지 뒤돌아 봤다. 대상이 멈칫한 것을 보자 A는 바로 의사를 쫓았다. 슬리퍼를 신고 있던 의사는 빠르게 피할 수 없었고, 넘어졌다. A는 곧바로 공격했다. 공격은 길었고, 치명적이었다. 입고 있던 셔츠와 러닝은 원래 색을 알아볼 수 없었다. 흉기 공격을 멈추곤, 발로 수차례 밟았다. 그리곤, 환자 대기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웠다. 어떤 집단이 자신의 머리에 폭탄을 심었고, 세계 3차 대전을 일으키는데 자신을 이용하려 한다고 했다. 


2.

A의 가정은 화목하지 못했다. 초등학교 때 부모가 이혼하기 전까지 부친에게 학대를 당했다. 어머니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지켜봐야 했다. 학교에 들어가선 왕따를 당하고, 폭행을 당했다.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이어졌다. 군대에 가서는 더욱 힘들어했다. 엄마는 걱정을 놓을 수 없었다. 무사히 전역했지만 이상행동은 군에 다녀온 뒤 더욱 심해졌다. 엄마는 아들이 자신과 딸에게 무슨 해코지를 할지 모른다고 걱정했다. 집 근처에 방을 얻어 분가시켰다. 낮에 가서 빨래와 음식을 해주었다. 2015년 입원했다가 퇴원했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고, 아들은 치료약을 거부했다. 내 머리에 누군가 폭탄을 심었다고 했다. 


3.

방청석엔 20여 명의 사람이 있었다. 누구보다 많은 주름과 그늘을 온몸에 품은 두 번째 줄에 앉은 여자가 눈에 띄었다. 엄마는 피해자 가족에게 너무 죄송하다고 했다. 그리고 화목한 가정에서 생활하지 못하게 해서, 학창 시절 주변의 폭력으로부터 보호해 주지 못해서, 군에서 극도로 괴로워하는 아들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서, 그리고 이렇게까지 심각한 질병인 줄 몰라서 아들에게 너무 미안하고 사회에 죄송하다고 했다. 모든 것이 자신의 탓인 것 같다고 했다. 


검찰은 “죄 없는 의사를 잔혹하고 처참하게 살해했지만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반성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무기징역과 3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 명령을 청구했다.   


국선변호인 B는 피의자를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채 1차 공판 준비를 해야 했다. A는 변호인을 만나길 원치 않았다. 제발 정신병원으로만은 보내지 말고, 사형시켜 달라고 했다. 어차피 자신은 머릿속 폭탄 때문에 죽을 것이고, 밖에 나가면 죽일 사람이 3명 있다고 했다. 한 명은 이재용 부회장이고, 나머지 두 사람은 누군지 알지 못했다.   


30분이 넘는 검사의 청구 이유를 듣고, 변호인은 짧게 말했다.


“이 같은 행동을 한 건 피고인의 죄가 맞다. 하지만 피고인은 어려서부터 가정폭력에 노출되는 등 성장 과정이 불우했고, 정신 장애로 인해 사물을 분별할 능력이 없었다. 이 같은 정신질환자를 방치한 건 사회와 국가도 책임이 있다. 피고인의 행위에 온 사회가 분노하지만 법적 책임에 대해선 차분한 이성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게 법과 제도가 정비되길 바란다. 이는 돌아가신 피해자도 바라는 일일 것이다.”    


선고는 17일 오후 2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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