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나는?
문득,
고요한 틈마다, 연이어 떠오르는 오래된 장면과 함께
나는 나에게 되묻는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나는 어지럽게 켜켜이 쌓인 책들 사이에서, 왜 이 책에 손이 갔을까?
이유 없이 괜한, 아주 먼 과거의 한순간이 불려 온다.
초등학교 6학년. 일요일 오후.
오래된 탁상 위에 너저분하게 올려진 책들 사이에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책이 한눈에 띄었다.
조금 작고 얇은 책이었지만, 아직도 표지의 그림이 떠오른다.
천사와 길거리 홈리스가 수채화처럼 대충 일그러져,
마치 화풍 없이 그려진 그저 신문사의 짤막한 시사만화 같은 그림체.
그렇게 엷은 물감이 조금 번진 듯, 여리여리한 표지 그림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도무지 읽을 호감이라고는 하나도 없어 보이는 그런 책이었다.
나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알려주는 재미없는 어른들의 책일 거라 생각했다.
손자병법 같은.
어른이 되려면 알아야 하는 건가, 생각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어째 한 번에 다 알 수 없었다.
다시 보고 또다시 보고, 어떤 부분은 다시 앞으로 넘기기도 하면서 점점 좁혀 들어갔다.
살아보니 인생 자체가 그렇지 않던가.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지는 정해진 것이 아님을.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책은 톨스토이의 책이었다.
제목이 무의식을 자극한 건지 아니면, 반복해서 읽은 기억이 남은 건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순간순간 나 자신에게, 나는 같은 질문을 한다.
다시 그 궁금증이 발동했다.
이럴 때, 정말이지 내 손 팔과 주변을 두리번거리게 된다.
그러면 손깍지를 끼고 턱을 괴고서는, 잠시 생각에 잠긴다.
평온함을 깨는 무엇으로부터, 지금 자극받은 건지.
어떤 이의 생각이 내 신경 하나를 건드린 것 같다. 그와 연관된 오래된 기억이 슬며시 피어올랐다.
내가 생각하는 나와 타인이 바라보는 나는, 얼마큼 겹쳐져 있을까.
누군가에겐 평생의 상처, 누군가에겐 기억의 일순간도 차지하지 않는 일.
같은 사건.
하지만, 다른 기록.
그 자잘한 짧은 시간 틈에서,
내가 아는 내가 되고, 네가 아는 다른 내가 된다.
흔하디 흔한 말일지도 모르지만, 사람은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삶에 담긴 가치관 또한 제각각이다.
그 깊이의 정도는 또 얼마나 다르겠는가.
이런 생각이 떠오르면, 나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이라 '그 사람은 나를 어떻게 생각했을까.'라는 것이 마음 한편에 잠시 앉는다.
굳이 잠시 잠깐 어떤 날의 감정이라, 이내 바람과 함께 섞여 날아가라고 후- 불어버렸다.
나에게만큼은 사소함이 깊은 골로 남겨지기도 한다.
평범하지만은 않았다. 내 여정은.
지구 밖 우주에서 보면, 흔히들 말하는 우주먼지 정도의 시간을 살아온 과정 동안,
그래도 나는 너무나 심각할 정도로 평범하게 버티며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아닌 것들.
심각했던 것을, 심각해지지 않으려고 일부러 애쓴 것은 아니었다.
그저 겉보기 밝기가 다른 별처럼, 내 중심에서 그것들을 다 태워버리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혹은 나에게서 1미리 그 이하 보다 더 좁디좁은 틈만 벗어나도, 아무것도 아닌 게 돼버리는
자정능력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나는 도대체 무엇으로 살아온 것인가.
스스로 분열하는 나는 울었고,
활활 타오른 그 열기는, 순식간에 작은 불씨로 흔들리다 말아버린 아지랑이가 되어, 이내 꺼져버렸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아무것도 아닌 것들.
하지만 오늘, 역시 세상만사 공통의 시간 속에 여러 갈래로 살아간다.
생각은 주인 없는 생명을 지녔으며, 여기저기 흩어져 있음을 또 알게 됐다.
꼭 어디선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내려다보듯 제3자, 제4자, 제5자, 무한 존재로서 느껴진다.
이보다 더 지극히 일상이 평범한 어떤 이는, 심지어 평범한 생활을 '극복'이라고 표현하며, 이를 헤쳐나간다고 생각한다.
험난한 도전이라고 보기엔 다소 민망하지만, 자다가 벌떡 일어나서 '오늘 해보고 싶은 한 가지 일'이었다며 일기에라도 거창하게 남기고 싶어 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이로써 세상의 모든 이치를 알아간다고 느끼는 생각들도 존재한다는 것을.
그래서 오늘 나는, 처음으로 나 자신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어 낯설다.
내가 무언가에 몰두하면, 그렇게 엄청난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던가?
그저 핑계 삼아, 성격 탓이라 생각했는데 말이다.
한 가지를 파게 되면, 내 선에서 더 이상의 결과를 찾을 수 없을 때까지, 일단 하고 보는.
그런 쓸데없는 고집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았으니까.
언젠간 이 열정의 빛줄기가 지구에 다다를 수 있길 바란다.
'사람은 연약하지만 마음속 '선 (善)'을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실행할 수 있고, 심지어 죽음에 이르게 된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지켜야 한다. 그래야 천국을 만날 수 있고 그것이 모두가 아는 최종의 행복이다.'
거창한 것이 아니라고 느껴질 정도의.
이것이 아마도 그때, 그 책의 책장을 덮었던 늦은 일요일 오후쯤 나의 기억이다.
내가 이해하기 어려워, 제대로 깨달은 건지조차 모를.
선한 윤리의식이 마음의 풍요일지도 모르지만, 난 상관없고 생각한다.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정해져 있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
소확행? 대확행? 또는 힘겨운 날들이든 평범한 일상이든, 그 어떤 거라도 상관없지 싶다.
자신이 이루고 싶은 무엇이라면.
다만 악행은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어떤 이는 무려하고, 어떤 이는 벅차고, 또 다른 어떤 이는 갈피를 잃는다.
다른 세상의 크기에서, 모두 각자의 무게로 살아가는 중이다.
그저 아무 일도 없는 하루, 진한 카페라테와 떡 한 조각이면 충분하다.
사람은 그런 일상으로도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