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빛을 건넨다.

나의 별과 너.

by 박하우주


올곧게 따라가는 나침반처럼, 길가에 연등이 가지런히 흔들리고 있다.

'우리 가족 모두를 위해, 너의 초도 함께 켰다.'

나를 보듬어 주신 어머니의 전화 목소리가 내 귓가에 맴돌았다. 갑자기 몽글거리는 울음이 불쑥 흘러나와 버렸다.


나는 어릴 적 억지 모태신앙이었다.

일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지 않으면 혼나는 신앙쯤이었으니까.

그래서 내게 종교라는 것은 근거 없는 '추종자'였다.

실증하지 못하는 것을, 듣는 대로만 믿어야 한다는 게 그때는 이해할 수 없었다.

어른이 되고 보니 종교나 철학 책에서든 또는 인간관계나 자연에서든,

자기만의 치유될만한 시공간을 갖는 건, 살아가는데 가끔은 위로가 되는 것도 같다.

반대로, 모두가 자기 성찰이 중요하다고 말은 하지만, 살다 보면 그런 이는 매우 드물다는 것도 알게 된다.


문득 떠오른다.

너무 사소해서 이해하려고 노력할 만한 일도 아닌 기억들. 하지만 평범한 일상 속에 샅샅이 박혀있는 기억들.

그것들은 뇌리에 박혀 가라앉아 있었다.

한밤중, 초등학생 꼬마는 덩치보다 큰 외투를 챙겨 입었다.

그러곤 가슴안속주머니에 가장 아끼는 새끼 강아지를 담았다.

작고 소중한 내 동생. 같이 다녀오자.

함께 다녀오면 괜찮을 거야.

아직 눈도 뜨지 못한 그 작은 생명체에게, 나는 속삭였다.

대문 앞에서, 밤하늘을 바라보며 숨을 고른다.

그곳에 한별이가 빛나고 있었다. 당장에 그 밤길을 비춰줄.

나는 그때에도 별을 보는 게 좋았다. 그래서 가장 밝은 별에 '한별이'라는 애칭도 달아주곤 했었다.

실제 돌아오는 음성은 없어도, 우리의 대화는 오고 갔다.

아기 강아지 냄새와 별빛은 언제나 내게 포근함을 주었고 그들은 텔레파시가 통하는 나의 유일한 비밀친구들이었다.


어두운 골목길 때문에, 저 멀리 서 있는 가로등 불빛이 유난히 더 밝아 보였다.

어쩌면 밤하늘 별이 뚝 떨어져 가로등이 된 것만 같았다.

한별이는 우리를 그 가로등별로 인도했다. 우리는 그쪽을 향해 전력질주했다.

그때 유행했던 환상특급의 침대 밑 유령이 담벼락 옆으로 스윽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래도 서로의 체온 때문에 따뜻했고, 차가운 공기는 이내 하얗게 입 밖으로 피어올랐다.

조막만 한 존재가 울진 않는지 들여다보면서, 빠른 걸음으로 밤 길을 재촉했다.

그러다 보면 외로움도 무서움도 서로가 있어 괜찮았다.

그런데 갑자기, 주변 시야에 나를 꿰뚫는 어떤 시선이 있었다. 뭐라 설명할 수 없는 형체였다.

정지된 눈동자는 깜빡임이 멈췄고 아무것도 못 본 척 집 대문으로 뛰어들어왔다.

그때 어린 내가 받아들이기에 그 감정은 말문이 턱- 막히는 공포감 이었다.

돌아와서는 이 시간에 놀랄만한 무서운 일이 있었다고 벌렁이는 가슴을 가라앉히지도 못했다.

불평을 들어줄 관계가 내겐 없었기에.


누구에게도 꺼내지 못한 마음은, 어디로도 흘러가지 못한 채 고여 있었다.

내 입은 언제나 과묵하게 닫혀 있었고, 믿고 싶은 마음조차도 가볍게 흘려보냈다.

어떠한 감정도 깊게 새기지 않게 된, 기억 속의 미세 조각의 일부분이다.

어떤 힘이 나를 그렇게 버티게 한 걸까. 종교적 신앙도 없었고 가르쳐 준 사람도 없었는데.

때론 내 마음이 열리는 순간은, 끄적이는 그림과 감정을 실어 누르는 건반 위의 흔들리는 피아노 소리였다.

그렇게 조용한 선율을 타고 소용돌이처럼 빨려 들어가 흩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사랑하는 강아지 동생들과 밝은 별이 있어서 말을 건넨다.

그들에게 우주적 생명을 불어 넣어 나는 소통했다.

말 대신, 내게는 안정감을 주는 어떤 대상들.

그것은, 신에 대한 기도 대신 나를 깨우는 빛이었고,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는 위로였는지 모른다.


우주를 통한 울림에 대한 답이었을까.

그 작은 대화 끝에 그들은 나를 이곳으로 닿게 했다. 그리고 여기서 새로운 존재들과 나를 엮었다.

나의 가족이 된 어머님께서 며칠 전, 올해도 이렇게 모두를 위해 연등을 달았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 어떤 원망과 책망의 말들이 들려오지 않는다.

거친 감정을 깎아내며 반평생을 너덜너덜하게 살아온 내게 보상이라도 하듯, 진짜 가족이 생겼다.

처음 겪는 온기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낯설었지만, 차근차근 스며들고 있다.

누군가, 나를 위해 초를 켰다.

그것은 앞으로 남은 삶의 여정에 밑거름이 되어줄 거라는 걸 알게 한다.

그 작은 불빛은 어두운 골목길 가로등별처럼, 이제 내가 가고 싶은 길로 가라며 손짓하듯 일렁인다.

나를 감싸안아준 존재들, 그리고 침묵 속에 빛나는 별.

숨겨두었던 상상의 실체들을 드디어 꺼낼 수 있게 되었다.

결국 '말을 건네던 나 자신'이라는 것을.

그 빛을 따라 나는 또 걸어가 본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바로 그런 것이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