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소(直訴)_극장편

그러니까 관객분들 제 말 좀 들어보시라니깐요

by 박두환

<직소(直訴)_극장편>

저기요. 관객분들 제 말 좀 들어보시라니깐요. 요즘은 왜 이렇게 사는 게 불안하고 답답한지 모르겠습니다. 그중에서도 저를 가장 불안하게 만드는 건 이 지긋지긋한 전쟁입니다. 세계대전도 안 겪은 놈이 왜 전쟁이 지긋지긋하냐고요? 그야 우리나라가 분단국가니깐 그렇죠. 전역을 한 지 몇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군대 꿈을 꿉니다. 그리고 여전히 전쟁이 우리 곁에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끔찍하기만 합니다. 벌써 재작년인가요? 우크라이나랑 러시아가 전쟁이 난 것 말입니다. 저는 그날 간만에 쉬는 날이어서 거실에서 TV를 틀어놓고 빨래를 개고 있는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는 겁니다. 이야 이거 꽤나 심각한 일이구나 생각하면서 집중해서 보고 있는데, 갑자기 예비군대대에서 전화가 온 겁니다! 전쟁이 터졌고 예비군 부대라니. 저는 진짜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않는 기분이었습니다. 휴대폰의 진동이 울리는 몇 초 동안 제 심장이 더 크게 뛰어서 휴대폰 진동이 안 느껴질 정도였죠. 저는 조심스럽게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때 하는 말이 “저 김현수 병장님 되십니까?” “네 그런데요?” “아 네 전입신고 오셔서 확인차 전화드렸습니다” 확인차라니! 제가 며칠 전에 이사를 와서 전입신고를 했거든요. 그래서 예비군 대대 편입 때문에 연락을 준 것이었습니다. 타이밍도 기가 막히지. 왜 하필 제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고 전쟁이 확전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런 전화가 왔을까요? 우연인 듯 보이지만 필연입니다. 대한민국에서 군필 남자라면 누구나 느끼는 그 공포가 실제화된 경험이었죠. 얼마 전에는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 여기에 이란까지 개입하면서 상황은 더 심각해져 갔습니다. 저는 관련된 유튜브 영상을 하루 종일 시청했습니다. 왜일까요? 분명 3차대전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란 걸 알면서도 왠지 모를 불안감 때문이겠죠. 그러고 보면 요즘 사람들은 3차 대전이라는 말을 너무 쉽게들 입에 올리는 것 같습니다. 입이 아니라 썸네일이라고 할까요? 아무튼 우리를 더 불안하게 만들려는 속셈인 것 같아요. 그래야 불안을 잠재워 줄 사람들이 이득을 보니깐요. 아무튼 또 저희같은 젊은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게 있습니다. 그건 바로 전세사기에요. 아니 대한민국의 법치국가에서 이게 가당키나 한 이야기입니까? 뭔가 단단히 잘못됐습니다. 사기꾼들이 판치고 수 많은 피해자가 발생하는 이런 사태를 아무도 예측도 예방도 하지 못했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높으신 분들은 도대체 뭘 하고 있었나요? 안 그래도 내 집 마련이 어려운 세상에서 사기당할까 봐 이렇게 불안해하기까지 해야하다니... 특히 젊은 신혼부부가 많았다더라고요. 이건 뭐 결혼하지 말라는 거죠. 결혼하지 않으면 당연히 출산율도 떨어질 거고, 저는 솔직히 말해서 엔포세대다 어쩌니 하면서 결혼도 연애도 다 포기하고 사는 거 좀 한심하게 생각했거든요. 그리고 욜로다 뭐다 하면서 지금을 즐기자는 마음으로 사는 거 진짜 안 좋은 생각이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저도 점점 마음이 그렇게 되더라니깐요. 아니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 그렇게 홀라당 사기당해버리고 그러는데 누가 악착같이 열심히 살겠습니까? 저는 두손 두발 들기 직전입니다. 왜 직전이냐고요? 그래도 여전히 기댈 곳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건 바로 인간성입니다. 고결하고 숭고한 인간성! 하지만 저는 이런 인강성 마저도 완전히 상실하기 직전입니다. 이 일은 하루에 일어난 일입니다. 하루는 제가 연습을 가려고 지하철을 탔는데말이죠.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이 타시는 겁니다. 그래서 자리를 양보해드렸습니다. 그런데! 원래 같으면 “아이고 고마워요~”이렇게 말씀해주시잖아요? 근데 정말로 당연하다는 듯이 앉으시는 겁니다. 저는 기분이 좀 언잖았지만 그러실 수 있겠다고 넘어갔습니다. 그리고 동작역에서 9호선에서 4호선으로 환승을 하는데 한 젊은 부부가 유모차를 끌고 전철을 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모차 바퀴가 승강장과 전철 사이에 딱 끼어버린 겁니다. 부부가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고 저는 얼른 뛰어가서 바퀴를 잡고 있는 힘껏 잡아당겨 바퀴를 탈출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부부 두 명 모두 저에게 고맙다는 이야기를 안 하는 겁니다! 이게 말이나 됩니까? 제가 무려 무릎까지 꿇어가면서 바퀴를 빼내 주었는데 저한테 고맙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다니요? 이거 진짜 뭔가 잘못된 거 아닐까요? 세상은 이렇게 미쳐 돌아가는데 우리들 끼리라도 좀 다정하고 친절하면 안 되는 걸까요? 저는 정말 이제 한계치에 도달할 것 같습니다. 이러다간 뉴스에서 봤던 묻지 마 범죄의 가해자가 어쩌면 제가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또다시 느낍니다. 이성의 끈을 붙잡고 이렇게 꾹꾹 버티고 있는 겁니다. 물론 그 사람들 아주 나쁜 사람들인 거 맞습니다. 하지만 우리도 뭔가 자성의 마음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요? 왜들 그랬을지 생각해 봐야 하는 거 아니냐 이겁니다. 누군들 태어날 때부터 그러고 싶어서 그랬겠습니까? 분명 살면서 뭔가 다른 경험을 했겠죠. 불우한 가정환경 같은 거 말입니다. 부모님이 일찍 이혼을 하셨다던가 폭력을 당했다던가 그런거겠죠. 아 이혼 이야기가 나와서 그런데 요즘은 이혼을 너무 쉽게들 생각하는 거 같습니다. TV를 보면 ‘나는솔로 돌싱 편’, ‘돌싱글즈’ 하는 돌싱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있잖아요. 아무리 ‘이혼이 흠이 아니다’하는 사회라 할지라도 그걸 미디어에서까지 다루고 권장하는 건 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구시대적 사고 아니냐고요?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죠. 이건 그냥 지극히 제 개인적인 의견일 뿐입니다. 절대 이혼 당사자들과 이혼가정을 비방하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단 우리가 자라나는데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겁니다. 그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이어지는 겁니다. 그리고 인내심을 가져보자는 겁니다. 요즘 MZ세대들의 빠른 퇴사와 참을성 없는 태도들이 가끔 지적받곤 하는데요, 저는 이게 다 제대로 된 소통이 부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부관계든 회사 조직의 관계든 서로 소통하고 타협해서 잘 이끌어 가 볼 생각을 해야지 마음에 안 든다고 그냥 갈라서기만 하면 그게 나중에 큰 도움이 될까요? 그런 태도들이 아까 제가 전철에서 마주했던 그런 사람들을 만들어내는 겁니다. 왜 도움을 받고도 고맙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 거죠?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주장을 회피하는 게 아니구요 진짜로 정말로 잘 모르겠어서 그런 겁니다. 이렇게 답답한 세상에서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거죠? 여기 계신 분들은 ‘이게 무슨 공연이냐. 푸념이지’라고 하실 수도 있겠지만 푸념 한 번 좀 제대로 하겠습니다. 사실 원래부터 여러분들에게 이런 식으로 공연을 선보이려는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우리 사회의 거대한 문제들, 그러니깐 인권, 공정, 권리, 젠더, 성평등, 퀴어, 장애, 환경, 동물권, 세대갈등, 성별갈등, 저성장, 양극화, 혐오, 부동산, 촉법소년, 쇼츠, 틱톡, 릴스, SNS, 문해력, 전쟁, 평화, 인공지능, 로봇, 유전자 조작, 종교, 난민 후... 이것 말고도 정말로 우리가 관심 가지고 얘기해야 하는 것들이 많은데 공연을 통해 어떤 문제를 이야기해도 잘 바뀌는 게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냥 오늘은 그냥 제가 배설하듯 뱉어내는 말들을 좀 귀 기울여 들어달라는 겁니다. 적어도 이렇게 자그마한 극장까지 시간을 내어 귀한 걸음 해주신 여러분들이라면 앞에서 제가 얘기한 수많은 거대한 담론들에 다 관심 가지고 계실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또 여러분도 저마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서 생각하고 계신 지점들이 있겠지요? 제가 오늘 좀 말이 많은데 몇 개 사안에 대해서 좀 더 말씀드리자면 우선 환경입니다. 환경에 대한 문제는 전적으로 동의하고 우리가 힘써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것을 뼈저리게 느낀 때가 있었는데요, 하루는 연극인들이 모이는 포럼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들어가기 전 카페에서 테이크 아웃 커피를 하나 사 들고 들어갔는데, 모두들 테이블 위에 텀블러를 올려 두신 겁니다. 저는 너무 눈치가 보여서 커피를 단숨에 원샷 해버리고 쓰레기통에 버려버렸습니다. 아! 정말로 다들 환경에 대해서 행동하고 계시는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고 얼마 있다가 마침 공연을 보러 와 준 후배가 텀블러를 선물해주어서 저는 그 후로는 계속 그 텀블러를 아주 아주 잘 쓰고 있습니다. 물론 환경을 지키는 일 쉽지 않습니다. 굉장히 번거롭고 비용이 드는 일이기 때문이죠. 저는 솔직히 양심고백 하자면 디젤차 탑니다. 디젤차는 환경규제 때문에 곧 있으면 생산도 중단되고 더이상 도로에 돌아다니지도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제가 중고차를 알아볼 당시 가장 저렴해서 샀습니다. 그래서 얼른 2년 정도만 타고 폐차시킬 생각입니다. 그때 되면 돈도 더 벌었을 테니 가솔린이나 전기차로 한 대 뽑겠습니다. 대중교통 이용하라구요? 저도 그러고 싶지만 공연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짐도 실어야 되고... 가족끼리 여행도... 데이트도...여러분도! 분명 포기 못 하는 어떤 거 있으실 거라 생각합니다. 저는 그게 승용차입니다. 대신! 일상에서 환경을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할터이니 너무 안 좋게만 보시지 말아주세요. 마지막으로 이게 진짜 저를 불안하게 만드는 최악의 세태입니다. 바로 성별갈등! 아니 정부는 왜 커뮤니티를 관리하지 않습니까? 커뮤니티가 혐오를 조장하고 사람들을 더 고립시킨다는 거 왜 모릅니까? 아! 솔직히 저는 커뮤니티 안 합니다. 그냥 들리는 이야기들로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런데 제가 봤을 때 그렇거든요. 모든 혐오에 대한 발언은 거기서부터 시작되고 있더라구요. 근데 도대체 왜 정부는 이 커뮤니티를 그대로 두는지 정말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사회로 나오세요. 이렇게 나오셔서 연극이든 뮤지컬이든 아니면 영화라도 보세요. 그렇게 집에 틀어박혀서 남 흉이나 보고 깎아내릴 시간에 좀 제대로 살아보자는 겁니다. 인생이 너무 아깝지 않나요? 정말 이상한 게 남녀갈등이 그렇게 심각하다면서 연애프로그램은 전례 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습니다.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깐 실제로 얼굴 보고 만나면 사랑에 빠질 사람들이 왜 인터넷에서는 그렇게들 싸워대는지 모르겠다 이겁니다. 관객분 중 혹시 기자님 계시면 이것 좀 공론화시켜주세요. 커뮤니티에서 시작되는 온갖 혐오와 만행들 말입니다! 아무튼 말이 너무 길었는데요, 제가 그냥 좀 답답해서 그랬습니다. 밖으로는 전쟁이다 뭐다 그러고 안으로는 서로 혐오하고 도움받고도 고맙다는 인사도 하지 않는 그런 세상이 되었다는 게 너무 분하고 화가나서 그랬습니다. 여기 모이신 관객분들은 절대 그러지들 마세요! 절대! 그러니깐 우리 조금만 더 서로에게 다정하고 친절해지면 안 될까요? 사는 게 이렇게 힘든데 서로 돕기라도 해야죠? 안 그렇습니까? 오늘 제가 한 이야기들 진짜로 그냥 하는 이야기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돈 내고 귀한 걸음 해주신 관객 여러분들을 피로하게 만든 말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느끼셨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이렇게 호소했는데도 제가 오늘 극장에 한 이야기들 까먹으시지는 않으시겠지요? 극장을 나서서 여러분 가족, 친구, 동료, 애인에게 오늘의 이야기를 꼭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뭐라도 좀 바뀌는 게 있지 않을까요? 저를 비방하면서 전해도 상관없습니다. 어떤 아주 아주 무례하고 재미없는 공연을 봤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꺼내도 좋습니다. 어쨌든 그게 제 일이니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