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적 글쓰기
매직스틱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일이었다. 나고 자란 동네다 보니 한 동네에 어울려 다니는 친구들이 많았던 나는 친구들과 오락실을 자주 갔다. 내가 즐겨 하던 게임은 ‘1984’와 ‘텐가’였다. 주로 날아오는 적들의 공격을 피하고 물리쳐서 끝판을 깨나가는 게임들이었다. 오락실이 생기기 전에는 동네의 작은 구멍가게 앞 오락기에서 ‘메탈슬러그’를 했었다. 그 옆에는 ‘동물철권’이 있었는데 걸어서 5분도 안 되는 거리에 오락실이 생기니 슈퍼 앞 아이들은 모두 오락실로 옮겨가게 되었다.
어느 날 그는 친구들로부터 오락실에서 공짜로 오락을 할 수 있는 방법을 듣게 되었다. 물론 그전에도 오래 게임을 하고 즐기고 싶었던 아이들이 동전에 구멍을 뚫어서 실로 연결하면 된다는 이야기들을 하곤 했지만, 동전 가운데에 구멍을 뚫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엔 정말로 실현 가능한 방법이었다. 그것은 서류를 정리하는 파일의 플라스틱으로 된 두꺼운 겉표지 부분을 길게 자른 후 끝부분을 동전처럼 동그랗게 잘라서 스틱을 만들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것을 동전 투입구에 집어넣으면 되는 것이다. 이 방법은 순식간에 친구들 사이에서 퍼져나갔다. 그는 곧장 집으로 향했다. 가정통신문을 모아둔 초록색 파일, 사진첩에 미처 실리지 못한 사진들을 품고 있는 하늘색 파일 등 다양한 색깔의 파일들이 있었다. 그 중 초록색 파일의 표지를 정성스럽게 잘랐다. 처음에는 잘 잘리지 않았다. 너무 두껍게 자르면 오락실 아저씨의 눈에 띄기 좋았다. 그렇다고 너무 얇게 자르면 구멍에 넣을 때 힘을 받지 못해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렇게 몇 번의 실패를 지나고 나서야 중지 손가락 정도 굵기에 20cm정도 되는 초록색 마법의 코인 생산 스틱을 완성했다.
나는 스틱을 가지고 오락실로 향했다. 여느 때처럼 아저씨는 동전 교환기 옆 한 켠의 방에서 TV를 보시고 계셨다. 그는 아저씨가 있는 방과는 그다지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곳에 위치한 가장 좋아하는 텐가의 끝판왕을 깨보겠다는 심산이었다. 아저씨의 동향을 살핀 후 조심스럽게 스틱을 꺼냈다. 동전 투입구는 오락기의 오른쪽에 있었기에 왼손으로 오른손을 가리고 재빠르게 스틱을 구멍에 쑤셔 넣기 시작했다. ‘띠딩 띠딩 띠딩…’순식간에 오락기 화면 좌측에 99개의 코인이 생겼다. 그는 그렇게 99개의 목숨을 얻고 나서 한편으로는 너무 많은 목숨을 채워 넣어서 지나가는 사람이 보면 이상하게 생각하겠다는 생각 때문에 다음부터는 조금씩만 채워 넣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공짜로 얻어낸 99개의 목숨을 가지고 오락의 끝판을 깨고야 말았다. 동전을 써가며 할 때는 그렇게 어렵게만 느껴지던 끝판깨기는 실은 15개의 목숨 정도로도 가능했다. 그는 80개가 넘는 남은 목숨을 남겨둔 채 오락실을 나오며 생각했다. “이거 진짜 대박이다 들키지만 않는다면 평생 공짜로 오락을 할 수 있다니!”
그렇게 그는 마법의 초록 스틱을 가지고 이 게임 저 게임의 끝판왕들을 물리쳐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그 스틱이 어떻게 동전과 똑같은 기능을 하게 되는지 의문이 들었다. 어른들이 그렇게 허술하게 기계를 만들었다는 것도 납득이 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그는 동전을 넣으면 기계가 동전을 인식하고 그 동전이 기게 속 어딘가에 떨어지면 ‘띠링~’ 그때 서야 목숨이 한 개 생기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손에 쥔 스틱을 구멍에 찌르기만 하면 그것이 어딘가에 걸려 목숨이 늘어났다. 그는 스틱이 어디에 걸리는지는 알지 못했지만 그것이 어딘가 양심에 걸리는 일이라는 것은 명백히 알고 있었다. 그는 이전까지 부모님의 속을 썩이는 일도 없었고 공부는 그리 잘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학교 선생님들은 그를 좋아했고 친구들과도 한 번도 싸워본 적 없이 친하게 지냈다. 그랬던 내가 처음으로 ‘나쁜 짓’을 하게 된 것이다.
얼마 후 다시 오락실에 갔을 때 오락기들이 분해되어 수리되고 있었다. 오락실 아저씨의 심각한 얼굴과 그의 손에 쥔 몇 개의 알록달록한 스틱들이 보였다. 그는 자기 주머니에 들어있는 스틱이 아직 아저씨의 손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도 더이상 이 스틱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좌절했다. 그때 고학년이던 동네 형이 저렇게 고쳐도 방법이 있다며 알려주었다. 우선 스틱을 더 길고 굵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길게 만드는 것은 간단한 일이었지만 가장 핵심이 도는 끝부분을 뭉뚱하고 굵게 만드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라이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끝 부분을 살짝 불로 지지면 플라스틱이 녹다가 뭉쳐져서 끝이 조금 더 굵어질 수 있었다. 그는 이번엔 노란색 파일의 표지를 길게 잘랐다. 이전의 것보다 적어도 5cm는 더 길게 만들었다. 그의 아버지는 흡연을 했기에 집안 곳곳에서 라이터를 쉽게 구할 수 있었다. 그렇게 새롭게 업그레이된 더 굵고 튼튼한 노란 스틱이 탄생했다.
그는 더 강력해진 노란 스틱을 가지고 오락실로 향했다. 그런데 막상 텐가의 끝판을 깨고 나니 딱히 하고 싶은 게임이 없었다. 또 끝판을 깨는 데 사실은 그다지 큰돈이 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고작 천 원 조금 넘는 푼돈에 양심을 팔아넘기는 것이 괜히 찜찜해지기 시작할 때였다. 하지만 여전히 공짜로 게임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는 것은 그에게 기쁨이었다. 그는 아직 끝판을 깨보지 않은 새로운 게임을 도전해보기로 했다. 그것은 철권, 그는 그다지 격투 게임을 선호하지 않았다. 물론 실력이 딸려 매번 상대에게 지다 보니 자연히 재미가 없어진 것이다. 어차피 목숨도 많겠다. 그는 실력도 재미도 없었지만 남아도는 목숨으로 계속해서 싸워 볼 의향이었다.
철권은 아무래도 가장 인기 있는 게임이다 보니 여러 대의 오락기가 있었고 오락실의 가장중심에 위치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하나의 오락기 앞에 앉아 새롭게 만든 노란 스틱을 천천히 꺼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이제는 오락실 아저씨가 스틱의 존재를 알아챈 이후였기 때문에 더욱 눈치가 보일 수밖에 없었다. 또 오락기의 보수가 있은 후 처음 시도하는 것이기에 실패할 가능성도 생각해두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다른 동네 아이들 모두 각자 새롭게 개발한 스틱들을 가지고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모두 동전 투입구를 푹푹 찔러대고 있었다. 그도 천천히 노란 스틱을 꺼내 오락기에 집어 넣으려던 찰나 멀리서 아저씨의 고함 소리가 들렸다. “야이 새끼들아!” 오락실 안의 아이들은 초등학생 특유의 민첩함으로 오락실 밖으로 뛰쳐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와 몇몇 아이들은 아저씨에게 잡히고 말았다. 그와 함께 그를 포함한 아이들은 일렬로 서서 아저씨의 훈계 말씀을 들었다. 실은 훈계 전에 모두 뒤통수를 한 대씩 맞았다. “이렇게 하는 거 너네 부모님은 아나? 이번 한 번만 봐줄테니까는 다음부터는 걸리기만 해봐라잉!”
그 이후로는 아무도 그 스틱을 쓰는 사람이 없었다. 물론 오락실 기계들도 한 번 더 보수를 진행했다. 그와 친구들은 그 후로는 오락실에 잘 가지 않았다. 공짜 오락의 광풍이 지나고 얼마 후 2002 한일 월드컵이 열리고 모두가 축구에 열광했다. 오락실은 뒷전이 되었고 그와 동네 아이들은 학교를 마치고 해가 지기 전까지 축구만 했다. 땀을 뻘뻘 흘려가며 격하게 놀다 보니 원래는 오락실로 향했을 동전들은 포카리스웨트와 파워에이드를 사 먹는 데 쓰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락실은 문을 닫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