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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캘리박 Dec 13. 2018

세종시 엘리트 공무원 '그들이 사는 세상'

나는 기자생활의 대부분을 정부부처를 출입하며 보냈다. 과천 청사의 마지막을 봤고, 세종시에서 총 3년을 살았다. 중앙부처 공무원들의 생활을 가장 근접해서 목격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어렸을 때 그렇게 뛰어나게 공부를 잘 하지 못했던 나로서는 엘리트 중의 엘리트인 이들과 지내는 게 신기하기도 했다. 오랜 기간 이들과 씨름하면서 이들의 유형을 몇 가지로 분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스펙의 경우 대학은 스카이(SKY) 졸업자가 대부분이다. 기획재정부는 더욱 그렇다. 조금 단정적으로 말하면 기재부는 그냥 서울대 동문회라고 생각하면 된다. 같이 스터디했던 동문들이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느낌이다.

2순위로는 연대가 많다.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은 연대 출신 중 전설적인 선배로 꼽힌다. 그는 사무관 때부터 과장급이 해결 못하는 일을 해결하는 것으로 유명해 '해결사'라는 별명도 얻었다고 한다. 지금 구치소에 있는 최경환 전 부총리도 연대 경제학과를 나왔다. 정부부처 공무원은 아니지만 이주열 한은 총재는 연대 경영학과를 나왔다. 내가 느낀 바로는 연대가 계속 많아지고 있는 느낌? 고대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고대 출신 한 국장이 자기가 좋지 않은 대학을 나왔다며 한탄하는 걸 들은 기억이 난다.

특히 기재부의 경우 서울대 경영학과와 경제학과가 대다수를 이루고 법대와 정치학과 출신도 간혹있다. 예전에 법대 출신인 강만수 전 장관이 이명박 정부 시절 "서울대 법대 출신이 없어져 일을 시킬 사람이 없다"고 얘기한 것이 보도돼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른바 '서울대 법대 최강론'이다. 물론 정치학과 출신의 핵심 보직 과장이 일을 잘해서 생각이 달라졌다는 후문을 듣기도 했다.(그 과장은 지금 실장이 됐다.)


정부청사를 출입하다가 보면 가끔 사법고시와 행정고시 2개를 동시에 합격한 괴물을 만나기도 한다. 공무원 명함을 받는데 옆에 변호사라고도 당당히 써 있는 것을 보면 '허걱'하며 자괴감을 느끼기도 한다. (물론 고시를 패스했다는 것만으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영재급이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고시 출신들이 얼마나 스펙이 좋은지 일반인들이 쉽게 알 수 있는 사례로는 김관영(사진) 국민의당 의원으로, 행정고시 재경직 36회로 재정경제부에서 근무를 했다. 그는 사법고시와 행정고시, 공인회계사(CPA) 시험 등 3개 고시를 통과해 '군산 천재'로 불렸다고 한다.

내가 느낀 점은 "이들은 공부로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무엇이든 할 수 있구나"라는 것.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한 국장급 공무원은 행시가 붙고 대학원 졸업 때까지 할일이 없어서 CPA를 봤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한은과 같은 '신의 직장'에 잠시 다니고 다시 행시를 봐서 정부부처에 들어온 공무원도 있다. 해외 유학 시절 AICPA를 따온 공무원도 더러 있다.


고등학교와 지역은 무수히 다양하다. 하지만 최근에 입사한 친구들을 보면 외고와 과학고 등이 꽤 눈에 띈다. 특히 외교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한 과장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친구들이 공무원이 돼야 하는데 특목고만 나온 친구들이 국민들의 눈높이를 맞춘 정책을 만들 수 있을지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과장급 이상 공무원들은 대부분 미국에서 석사 학위 이상을 따온다.(석사가 없는 공무원은 드물다)

다른 나라에서 따온 것은 한번도 못 봤다. 특히 기재부에는 미주리 경제학 박사가 엄청나게 많다.(나쁘게 말하면 발로 채일 정도라고나 할까)  예전에 한국인에게 점수를 잘 주던 교수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모 방송사 프로그램에서 미주리에서 유학 중인 공무원들이 골프를 치는 장면을 내보냈고 그 때 이후로 미주리를 지원하는 게 급격히 줄었다고 한다.

하버드대학교 케네디스쿨 정책학 석사도 꽤 많이 있다. 부부공무원이 하버드대 석사를 한 사례도 있다. 예일대학교 MBA도 있고 (위에 썼던 대로 이들은 공부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한다는 얘기를 잊지 않았으면 한다 ㅎ)  내가 느끼기에는 학사 이후의 전공은 MBA보다는 경제학 박사가 제일 많은 것 같다.

경제학 박사가 많은 이유는 뭘까. 내 생각으로는 교수나 강의, 책 집필 등 인생 2모작을 하기 위해서 박사학위 만큼 검증된 증빙서류가 없기 때문이다. 행시 공무원들이 은퇴하는 평균 연령은 55세 정도다. 앞으로 반평생을 공무원이 아닌 신분으로 살기 위해선 미리 준비를 해야 한다. 때문에 무리를 해서라도 박사학위까지 마치고 오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하지만 박사 학위를 하기 위해선 최소 3~5년이 필요하다. 애들을 학교도 보내야 하고 간간이 여행도 해야 한다. 최소 은수저라도 되지 않으면 하기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남편 또는 아내의 직업

-50대 이상 남자 공무원의 배우자 직업 중 가장 많이 본 것은 의사다. 치과의사도 있었고 소아과 의사도 있었다. 아내가 김앤장 변호사인 공무원도 2명 봤다.

한 공무원은 이름만 대면 알 정도로 큰 기업의 사위이기도 하다. 중견 건설사 사위,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프렌차이즈 업체의 옛 사위.

한 사무관급 공무원은 우리나라에서 연봉을 제일 많이 받는 사람 중 한 명의 사위이기도 하다. (이런 사례는 의외로 많은 것 같다..내가 모르는 것까지 합하면 더 많겠지)  와이프가 교수인 사람도 여럿 있다.

요새는 부부 공무원들이 늘고 있다. 정부청사가 세종시로 옮겨간 만큼 원거리 살림을 한다는 게 물리적으로 힘들기 때문이다. 그나마 남자 사무관들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지만 여자 사무관에 대한 선호도는 다소 떨어졌다는 얘기를 들었었다. 그래서 고시 동기 공무원들이 많다. 부처는 다르더라도.


*재산  

확실히 강남이 많다.

한 정부부처 공무원 중에는 개포주공에 대출을 풀로 받아서 샀는데 집값이 올라서 좋아하는 공무원도 있었다.  본인이 금수저가 아니라고 판단하는 정부부처 공무원들에게 강남 재건축 아파트는 최후의 보루인 것 같다. 내가 30년 가까이 만날 야근하며 고생했는데 재건축 아파트 하나 정도는 노후 대비 갖고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자기 위안 같은 듯 하다.

그래서 강남 강남 하는 가 보다. 강남 재건축 아파트는 마치 삼성전자처럼 부동산 시장의 대장주 역할을 한다. 이전까지 정부의 모든 정책이 강남 재건축 아파트에 포커싱이 돼 있었다. 강남 재건축 시장이 주택 시장의 바로미터인 만큼 이것만은 살려야 한다는 시각이다. 1급 이상 공개되는 고위 공직자 재산목록에 강남 재건축 아파트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은 이런 연유일 것이다.


와이프가 의사인 공무원들은 확실히 재산이 금세 불어나는 것을 목도했다. 한 전직 고위 공무원은 와이프가 치과 의사였는데 집이 2채에 하나는 강남 재건축 분양권을 갖고 있었다. 와이프가 같은 스펙의 다른 고위 공무원도 똑같은 단지의 분양권을 갖고 있어서 내가 "혹시 둘이 같이 분양 받은 것 아니냐"고 다른 공무원에게 물으니 "둘이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아서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정치권 진출

정부부처 공무원 중에는 정치권 진출을 목표로 하는 관료들이 꽤 있다.

스펙 자체가 우리나라 최고인 만큼 국회의원이나 보좌관들이 대부분 대학 과(科) 선배나 후배다. 그리고 국회의원들은 정책을 만들고 지역구의 예산을 받기 위해서는 공무원들의 힘이 필요하다. 서로 불가근 불가원이라지만 재산이 어느 정도 되는 공무원들은 소위 '빅픽처'를 품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닌다. 그러다가 "시대가 나를 부른다"고 생각이 들었을 때 사표를 던지고 정계에 진출한다. 정부부처에 출입한 결과, "저 사람은 정치에 뜻이 있어"라고 다른 공무원들이 말하면 거의 대부분 나중에 국회의원에 도전했다.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재직 당시에는 "아닙니다. 그럴 계획 없어요"라고 말하던 공무원들도 여의도 입성에 성공하면 태도가 달라진다.

실제로 공무원들이 제일 많이 걱정하는 것이 '국회의 힘이 커지는 것'이다. 본인들이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괴롭힌 다는 것이다. 정부부처를 출입하면서 정부부처 공무원들은 정책 입안자들이기도 하지만 '정책 행위자(player)'라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대형 정책은 항상 민심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고, 정책을 밀어부치거나 판세를 뒤집기 위해서는 민심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무원들도 언론이 필요하고 언론도 취재를 하기 위해 공무원들이 필요한 것 같다.


*가족

아이를 많이 낳지는 않는 것 같다.

아이가 한명인 한 공무원은 "아이를 더 낳으셔야 하는 것 아니냐"는 나의 질문에 "하나도 힘들어 죽겠는데"라고 말을 했다. 내가 살짝 화가 났었던 것은 그 사람이 저출산 고령화 정책을 담당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아이를 많이 낳는 정책을 만든다는 게 이해가 안갔다. 본인은 낳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많이 나을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정책을 펴는 것이 공무원이 할 일이 아닌가. 결국 우리 사회를 짓누르는 저출산 고령화라는 구조적인 문제를 정부가 어떤 노력을 하더라도 해결할 수 없다는 자인을 한 것 같아 기분이 안 좋았다. 사실 그렇다면 공무원이 존재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다른 공무원 중 한명도 우리는 아이를 낳지 말자고 와이프한테 얘기하고 결혼했다고 내게 말한 기억이 난다. 그 사람도 저출산 고령화 업무를 담당했다.


*사족

위험한 생각일 수도 있는데, 재산이 많은 공무원들이 진짜 일반 국민들을 위해 일할까..라는 생각을 한적이 있다. 국민들에게 '내가 이 정책을 너희들에게 해주는 거야'라고 생각하지 않을까..라는 생각. 왜냐하면 그들의 사회경제적인 위치는 일반인들이 봤을 때 이미 범접하기 힘든 위치기 때문이다. (그들이 행정고시를 패스하기 위해서 노력한 것과 20~30년간 국가를 위해서 헌신한 것을 폄하하는 게 아니라 요즘 9급공무원 하기 위해서 10년 가까이 공부하는 분들이 많아지는 만큼 사회적인 박탈감 같은 게 더 크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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