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에 출입하는 기자들이 관심이 있는 것은 성장률, 물가, 고용률, 산업활동동향, 수출 등의 거시지표다. 특히 성장률에 대한 관심도는 거의 집착에 가깝다. 기획재정부를 출입하는 기자들과 한은을 출입하는 기자들은 성장률과 관련된 업무를 하는 국장, 1급, 차관, 장관 등을 만날 기회가 있을 때 마다 '이번 분기 성장률은 어떻게 되나요' 상반기 성장률은 어떻게 되나요. 올해 성장률, 내년 성장률은 어떠게 되는지 끊임 없이 묻는다. 하지만
상대방은 대답해 주지 않는다. 그 말이 나가는 순간 심하게 얘기해서 자기 목이 달아날 정도로 파급력이 크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성장률이란 1년간 정부와 민간, 기업이 일으킨 부가가치의 전년 대비 증가률이다. 결국 수출과 산업활동, 물가 등이 총체적으로 어우러져 나타난 경제 성적표다.
성장률이 3%대에서 2%대로 2%대에서 1%로 꺾이는 것은 그만큼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 경제는 말 그대로 심리이기 때문이다.
내년도 경제 성장률 전망치에 따라 외국에서 국내로 유입되는 투자금액의 규모가 달라진다. 외국에서 들어오는 직접 투자(FDI)와 자본시장으로 들어오는 투자는 국내 산업 전반에 윤활유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성장률은 세입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통상 경상성장률이 1%포인트 낮아지면 세입이 2조원 정도 낮아진다는 통계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민간 연구기관과 심지어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예측하는 성장률보다도 정부의 성장률은 항상 0.XX%포인트씩 앞서 있다.
인간 만사가 그렇듯이 세상일이 항상 예측한대로 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정부의 예측치와 실제 성장률이 다르게 나오면 정부가 너무 장밋빛으로 경제를 예측했다며 가차없이 언론의 비판이 날아온다. 그럴 때는 기자로서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정부의 성장률 예측치에는 항상 현 정부의 제도가 경제 성장을 끌어올릴 수 있게 도움을 줄 것이라는 기대치가 플러스로 반영돼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우리 경제 끝장났습니다. 모두 난파선에서 대피하시고 다른 나라로 이민갈 준비하십시오." 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때문에 국정감사 때 국회에서 '경제 전망을 낙관적으로 보는 것 아니냐'고 두들겨 맞으면서도 꿏꿏하게 버티는 게 정부 관료들이다. 사실 정부 관료들을 만나보면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 가고 있다.
과거 자기들이 사무관 때처럼 나라가 고속성장을 하던 시기가 종언을 고하고 저출산 고령화라는 피할 수 없는 악재에다 각종 기득권 단체의 이권다툼, 지역 간 갈등 등 온갖 민원거리들만 눈덩이처럼 쌓여 있고 나라가 조금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경제 성장률만을 놓고 하는 얘기는 아니다.
현재 국장급인 한 공무원은 "경제가 어려우니 뭐라도 해야 할 것 아니냐"며 "하지만 이해관계가 너무도 얽혀 있고 국회에서도 움직이려고 하지 않으니 가슴이 답답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사실 정부는 경제 성장률 부진에 대한 핑계를 댈 곳이 있다. 바로 국회다. "A 법안이 통과할 경우 일자리에 몇 만개 생길 수 있다"는 보고서를 인용한 기사를 많이 읽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땅덩어리가 너무 좁고 이해관계가 너무도 얽히고 설켜 있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A법안을 통과시키려고 하면, 항상 B 단체에서
우려를 제기한다. 그럼 야당에서는 B단체의 논리로 반대를 한다. 이후 야당이 정권을 잡고 여당이 되면 A법안을 통과시키고 싶어한다. 당장 정권에서 성과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정치가 반대를 위한 반대만을 일삼는다는 비판을 받는 것이다. 정부부처에서 일하는 공무원들 조차도 어느 정권이 들어오던지 행태와 패턴이 비슷하기 때문에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생각을 한다. 이는 언론도 마찬가지다. 진보와 보수 정권을 가릴 것 없이 낙하산을 내려보내는 행태나, 야당을 적극적으로 설득하려는 자세가 부족하다거나, 소통이 부족한 패턴은 비슷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정치가 경제를 놓아줘야 할 때"라는 경제인들의 호소가 엄살로 들리지 않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