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부처는 각종 대책을 내놓고 이를 관리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초에 내부적으로 작성한 업무보고 자료대로 정책을 준비하되 중간 중간에 장관 또는 차관이 주재로 대책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한다. 각종 대책을 내놓을 때마다 담당 국은 초비상이 된다. 몇개월을 골몰하며 대책 발표가 임박해서는 며칠 밤을 세우기도 한다. 대책이 나오기 전에는 기자들 간에 엄청난 취재 경쟁이 벌어진다. 모두 어떤 대책이 나올지에 집중돼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책이 나오기 전에는 해당 정책을 주관하는 국의 국장부터 과장, 사무관, 주무관들은 모두 보안 지시가 내려오게 된다. 정부부처에서 내놓는 정책 하나에 따라 국민들의 이해관계가 극명하게 갈릴 수밖에 없는 만큼 입단속에 나서야 한다. 언론사의 데스크들은 '대책 발표가 몇 주밖에 남지 않았는데 왜 기사가 하나도 안 나오냐'며 소위 말해서 기자들을 쪼기 시작한다. 경쟁매체에서 특종 기사가 펑펑 터져 나오는 상황에서 국장을 볼 면목이 없기 때문이다.
한 국장급 공무원은 내게 "한줄 먼저 쓰는 게 국민들에게 어떤 도움이 되느냐"고 물었었는데, 내가 달리 할말이 없었다. 굉장히 오래전 일이지만 지금도 할말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것이 언론의 본령이라는 생각도 크게 들지 않는다.
하지만 정부부처에서 1년에 대책을 한두개 내놓는게 아니다. 수십개에 달한다. 요즘 정부부처를 맡는 공무원들은 대부분 세종시 파견 공무원들로 한명의 기자가 기획재정부부터 국토교통부, 농림수산식품부, 또는 공정위까지 3~4개의 정부부처를 맡는 것은 기본이다. 기자들도 데스크의 요구에 부응해 특종 기사를 펑펑 터뜨려 주고 싶지만 하루에 쏟아지는 자료만 해도 10개 넘어간다. 특종을 쓰기 위해서는 적어도 취재원(공무원)과 안면도 트고 밥도 한끼 먹으면서 유대 관계가 형성되야 하는데 그런게 형성될 수가 없다. 그저 기획재정부 등 메인부처가 되는 곳에 상주하면서 다른 부처는 곁다리로 출입할 수밖에 없다. 기획재정부만 커버하는 것도 굉장히 버겁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대책이 나오더라도 구조적으로 깊이 있게 기사를 쓰는 환경이 어려워졌다. 오랜 동안 정책을 들여다보고
a부처가 이전에 어떤 정책을 했는데, 이번에도 똑같은 정책을 내놨더라. 또는 이번에 내놓은 정책은 좀 색다르다.. 하며 강조를 할 수 있기 떄문이다.
구조적인 환경도 그렇고 언론은 무조건 정부부처를 속칭 까야 한다는 전통이 계속해서 지속되는 탓에 거의 대부분의 정책과 관련한 기사는 비판 일색이다.
때문에 역량이 딸리는 데스크들은 무조건 정부를 소위 조지는 지시만 내려보낸다. 잘한 것도 뒤집어서 비판하면 정부부처에서 우리 매체를 우리 기사를 좀 더 색다르게 보고 다르게 바라볼 것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는 것이다. 이런 행태는 솔직히 기자로서 부끄럽다. 기레기 소리를 들어도 싸다고 생각한다. 정부가 잘한 것은 칭찬해 주고 비판할 것은 매섭게 비판하는 게 언론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비판을 위한 비판만 하다보면 기사를
정부부처는 나라의 모든 정보가 모이는 곳이다. 각 부처마다 논리를 뒷받침해주는 국책연구기관을 몇 개씩 끼고 있다. 언제든 국내 최고의 전문가들을 모아놓고 간담회를 열거나 포럼을 열어 아이디어나 정책 대안을 얻을 수 있다. 몇 천만원에서 몇억원 짜리 연구용역도 발주해서 제도 개선과 관련한 아이디어도 주기적으로
얻는다. 더욱이 그들은 행정고시를 패스한 국내 최고의 엘리트들이다.
나는 그렇기 때문이 기자는 항상 겸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자가 국민을 대신해서 질문하는 역할을 부여받은 것은 맞지만, 취재원과의 불편한 관계 때문에 더욱 날카롭게 비판을 하거나.. 혹은 제대로 모르기 때문에 비판을 위한 비판을 날리는 것은 국민들의 정책 수용도를 더울 떨어뜨리는 부정적인 효과를 낳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