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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잊을 수 없는 세월호 사태 <9>

by 캘리박

2014년 4월. 세종시에 내려온지 몇주가 지났을까. 갑자기 세종팀장이 해상사고가 났다며, 해양수산부 대변인실로 가보라고 연락했다. 모두가 예상한 4월 16일 그 날이었다.

당시 기자생활을 한 OB선배들은 우왕좌왕하는 해수부 공무원들에게 빨리 상황을 알려달라며 얘기를 했다. 한 방송출입기자 OB 선배가 외친 말이 생각난다. "이미 애들 다 죽었어!!"라며 안타까워 했다.

배와 함께 차가운 물속으로 아이들이 잠기는 모습을 우리는 지켜봤고, 그것은 전국민에게 깊은 트라우마를 남겼다.

4월 17일 해수부 공무원과 함께 세월호 현장에 가보라는 팀장의 지시를 받은 나는 새벽에 청사 앞으로 나갔고 콤비 버스를 타고 강진으로 내려갔다. 족히 6시간은 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항구 앞에서 수많은 취재진이 취재현장으로 가기 위해서 대기를 했고, 당시 몇몇 기자가 "친구 중에 UDT가 있는데 폭파해서 다 꺼내야 된데요. 그렇지 않으면 방법이 없대요."라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하지만 파도가 넘쳤고 우리는 오후 늦게야 경찰 쾌속선을 타고 출발했다. 나는 멀미가 너무 심해서 고개를 앞으로 숙이고 있었다. 팀장에게 현장상황을 보고 하라는 문자와 전화가 계속 왔지만, 나는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단한번도 그분에게 형이란 말을 하지 않았지만, '형 살려주세요'라고 문자를 보냈을 정도로 멀미가 심했고, 결국 기관장 침실과 조타실 사이의 복도에 구토를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맹골수도의 파도는 너무 강했다. 결국 사건현장 주변까지 가지도 못한채 다시 세종시로 돌아왔고 12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이후 회사에서 특별취재팀을 꾸려서 몇달간 팽목항 주변에 2~3명을 파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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