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의 시대다. 사람들이 돈을 주고 신문을 사서 보는 시대는 진작에 끝났다. 지하철 매점에 깔려 있는 신문을 사서 보는 사람을 못 본지 몇년이 지났다. 그대로 폐지 수거함에 쌓인다. 그런데 몇년이 지나니 활자 기사의 시대 자체가 저물고 있다. 사람들이 유튜브로 몰려들고 스스로 크리에이터가 되고 있다. 재미가 없으면 일단 보지를 않는다.
하지만 나는 신문기자다. 광고매출은 신문부수에 연동된다. 하지만 사람들이 신문을 보지 않고 스마트폰을 통해서 뉴스를 소비하다보니 인터넷 기사에 심혈을 기울이고 속보 경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한마디로 신문 기사도 신경을 써야하고, 인터넷 기사도 공을 들여야 한다. 모든지 다 잘해야 한다.
회사에서 요구하는 기자로서의 소양을 곰곰히 생각해 보니 도저히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문 기사도 잘 써야 하고, 인터넷 기사도 잘 써야 하며, 회사를 빛내기 위해서 팟캐스트나 유튜브도 할 수 있으면 하고, 덤으로 언어공부도 게을리 하지 말라고 한다. 한마디도 잠도 자지 말고 24시간 기사에 매달리라는 것이다. 이 세상에 그런 사람이 있나요? 제가 로봇인가요. 인터넷 기사를 많이 쓰거나 유튜브를 제작하게 하면 적어도 다른 일을 빼주는 게 맞다. 하지만 어디나 그렇듯이 인력은 모자라다. 적은 돈을 투입해서 많은 부가가치를 올리기를 원한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 항상 언론이 사설이나 기사의 제목으로 뽑는게 '공짜 점심은 없다' 아니던가. 제발 뭐든지 날로 먹으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투자를 하지 않으면 절대로 성과는 나올 수가 없다.
2019년 7월 3일 회사의 '기사 송고 시스템'에 들어가 내가 하루 동안 쓴 속보(인터넷 기사)의 개수를 세어봤다. 총 7개였다.
하루 평균 쓰는 인터넷 기사 숫자가 7~8개 정도 되는 것 같다. 나는 식품의약품안전처를 출입한다. 보통 정부부처는 자료를 오전에 낸다.
지면에 안 들어가더라도 인터넷 기사를 써야 하기 때문에 3~4개는 정도의 자료 기사는 빛의 속도로 써야 한다. 생각할 시간이 없다.
사진을 붙이고 얼른 기사를 다듬어서 '웹전송 버튼'을 눌러야 한다. 이외에도 출입하는 제약사와 바이오벤처 업체, 제약협회, 바이오협회 등의 자료를 처리하게 되면 처리해야 할 인터넷 기사 숫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된다. 점심을 먹기 전인데 이미 약간 진이 빠진다.
3일 11시경 편집 회의가 끝나자 부서 데스크는 1개 업체의 자료기사(식약처의 인보사 허가취소)와 이전에 발제해둔 200자 원고지 10매짜리 대박스를 쓰라는 지시를 내렸다.
(우리 신문사는 오전에 2번, 오후에 2번 그리고 마감 후 1번 이렇게 총 5번의 데스크 회의를 한다.) 점심 시간을 넘겨가며 미친 듯이 7매짜리 기사를 쓰고, 후배와 함께 30분 만에 식사를 마쳤다.
하지만 시간은 이미 오후 2시30분이었다. 최소 4시까지는 10매짜리 대박스 기사를 써서 올려야 한다.
신문에선 그래픽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표부터 만들어 올려야 했지만, 머리는 하얘졌다.
시간이 촉박할 때 대박스를 쓰게 되면 항상 '시간 내 기사를 마감할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이 엄습해 온다. 불안감이 커지면 커질 수록 기사는 안 써진다. 처음 두 문장을 갖고 20~30분 고민한 적도 많다.
결국 나는 이날 가까스로 기사를 마감했다. 저녁 6시까지 2시간 정도가 남았지만, 이미 하루에 쓸 모든 스테미너가 다 빠져나가버렸다.
당장 내일 아침까지 발제를 해야 할 거리를 찾아야 하고 취재도 해야 하지만 진이 빠져서 노트북을 쳐다보기도 싫어졌다.
신문 초판 강판이 5시에 끝났기 때문에, 이후 약속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기자실에서 나왔다. 하지만 이동중이던 저녁 6시에 청천벽력과도 같은 문자가 왔다. 출입처 가운데 하나인 A 제약회사가 파트너사인 다국적제약사와 라이선스계약을 맺었던 치료제에 대한 권리를 반환받는다는 내용이었다. 쉽게 말해 '신약수출 실패'였다. 머리가 하얗게 됐다.
어차피 크게 가면 1면 스트레이트에 대박스(해설기사)를 써야 했기 때문에 급히 약속을 취소하고 6시15분경 인근 커피숍에 앉았다.
회사에서 내근을 하고 있는 후배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회사 지시를 따르겠다고 얘기했다. 그 사이 후배와 내가 한미약품의 기술수출 취소 속보를 각각 1개씩 송고했다.
정확히 6시 30분경 데스크에게 전화가 왔다. "기사쓰고 있냐. 7~8매 써서 보내"라고. 이 말은 7시까지 마감을 하라는 뜻이었다.
30분 만에 8매의 기사를 쓰라니.. 10년 동안 기자생활을 하면서 가장 빠른 속도로 기사를 써야하는 오더인 것 같다. 정말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기사를 써내려갔고, 겨우 7시에 맞출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4일자 우리 부서 지면에는 1개의 기사를 제외하고 모두 내 이름이 실리게 됐다. 기사를 보낸 후 터덜터덜 집으로 걸어가며 '이러고 어떻게 살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급우울해졌다. 오늘과 같은 내일이 계속해서 반복되지 않기 만을 바랄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