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 지하철을 타기 위해 승강장에 서 있었다. 앞차의 고장 문제로 몇 분간 연착될 수 있다는 방송이 흘러나오자 한 노인이 "쌍놈의 새끼들 지금 몇분이나 기다렸는줄 알아? 개새끼들" 몇 번을 외쳤다. 나를 포함한 나머지 사람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채 줄을 선채 지하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마음이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 동네에 깨진 보도블럭이 교체되길 원한다. 더 나아가 내가 출퇴근 하는 버스 노선이 증설되고 고향으로 가는 길에 고속도로가 추가로 깔리길 바란다. 그리고 우리가 매일 매일 맞닥뜨리는 사회적 서비스가 일사분란하게 나에게 적용되길 바란다.
그런데 그렇게 되려면 우선 나라와 지방자치단체에 돈이 많아야 한다. 그리고 해당 서비스가 경제적으로 타당하다는 국책연구기관의 예비타당성 조사를 거쳐서 비용편익 분석의 최소기준을 통과해야 한다. 하지만 저출산 고령화 시대다. 세상의 패러다임이 달라지고 있다. 세금을 낼 사람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데, 부양을 받아야 할 노인으로 편입되는 사람들은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기사에 붙은 댓글을 읽다가 보면 대중들이 정부와 공공기관에 너무 심각할 정도로 불신이 팽배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부와 공공기관 관련 기사에 붙은 댓글을 읽어보면 온통 욕으로 도배가 돼 있다. 공무원과 공공기관 직원들은 천하의 나쁜 놈이다. 우리 집앞에 무슨 문제가 있는데 해결해 주지 않고, 경찰은 부르면 오지도 않고 주취자가 있어도 머뭇머뭇 거리기만 하고 제압하지도 못하고.
천조국 경찰은 안 그러는데. 우리 공무원들은 항상 뒷돈 받고 철밥통을 누리는 천하의 버러지들이다. '내 세금으로 저런 놈들 월급 주기 싫은데, 헬조선 정말로 떠나고 싶다'이런 글에는 '좋아요'가 몇 천개씩 붙는다.
우리나라의 가장 큰 문제는 자기에게 주어진 의무는 제대로 하지 않고 권리를 누리려고 하는 행태인 것 같다.
내가 국가로부터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으려면 조세를 회피하면 안 된다. 국가로부터 고급 의료 서비스를 제대로 향유하려면 건강보험료를 내는 것을 아까워 하면 안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툭하면 입에서 튀어나는 게 "국가가 나에게 해준게 뭐가 있어'다. 대가를 덜 지불하고 더 받는 것에만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청와대 고위급 인사인 한 공무원은 몇년 전 세종시에서 나와 밥을 먹으면서 이렇게 얘기했다. "나라가 성숙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근로소득세를 면제 받는 사람들이 나부터 소득세 500원이라도 내겠다고 얘기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게 성숙한 사회 아닌가요?" 결국 그가 그 말은 한 후에 세법
연말정산 파동으로 난리가 났고 개정안이 통과됐고 근로소득 면제자 비율은 48.1%로 대폭 늘어났다.
국가가 나에게 로또처럼 10억, 20억원을 캐쉬로 계좌에 쏴줘야만 국가가 당신에게 무엇을 해주는 게 아니다. 치안, 사회간접자본(SOC), 안보, 국민연금, 주택연금 등 국가는 분명히 당신이 한 것보다 많은 부담을 치르고 있다. 이 때문에 국가 빚이 계속 늘어나는 것이다.
다만 국가가 쓰는 재정.. 곧 내가 낸 세금이 어떻게 활용되는지... 내가 신호 위반으로 부담한 과태료 등 준조세가 어떻게 쓰이는 지 투명하게 정부는 공개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그것은 또한 국민의 권리이다. 이 과정에서 언론이 제대로 된 감시견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