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누구의 기사를 덮으려고 하는거야" "뻔하지 S사지 뭐" "검찰일거야. 청와대인가"
거물급 연예인의 열애설이나 마약등 각종 사건사고를 알리는 기사가 나오면 꼭 따라 붙는 댓글이다.
정부와 대기업에 불리한 기사가 나올 예정인데 이를 연예인 기사를 통해 물타기를 했다는 음모론이다.
언론은 아주 빈번하게 음모론의 도구로 활용된다.
대한민국은 음모론에 지배당한 사회다. 각종 인터넷 게시판에서 음모론을 제기하는 사람은 '나는 너희보다 세상을 꿰뚫어 보는 시각이 날카로워'라고 어깨를 으쓱해 한다.
지난 몇년 간 제기된 음모론은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세월호 고의 침몰설도 있고, 금융감독원의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발표를 덮기 위해서 연예전문매체인 '디스패치'가 박진영씨의 구원파 보도를 했다는 음모론도 나온 바 있다. 당시 음모론이 눈덩이만큼 커지자 디스패치는 "음모론은 이제 지겹다"며 "박진영은 구원파고, 삼성은 분식회계다"라는 제목의 취재 파일을 내보냈다. 취재 일정에 따라 보도했을 뿐, 삼성 분식회계 발표시기와 기사 보도는 전혀 관련이 없다는 내용이다.
"잡히면 쓴다" 언론의 모토다. 시일을 재거나 하지 않는다. 왜냐, 경쟁매체가 있기 때문이다.독자(시청자)들은 언론이라는 하나의 카테고리로 각 언론사를 바라볼지 모르지만, 각 언론사는 모두 경쟁매체다.
한 언론사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 언론사는 대형 특종(연예인 열애설, 마약사건 사고 등)를 갖고 있다. 하지만 엄청나게 돈이 많거나 청와대(BH) 핵심권력이 이를 보도하지 말라며 자신들이 원하는 보도 시점에 기사를 내달라고 부탁한다. 이 가정이 과연 통할 수 있을까. 언론사가 1곳이면 가능하겠지만 언론사는 수백곳에 달한다.
내가 몇 개의 언론사 이름을 댈 수 있을까 곰곰히 생각해 보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기자들도 주요 매체 몇 곳을 제외하고는 타 매체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일부 음모론 제기자들은 정부나 대기업이 전체 언론사를 컨트롤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를 위해선 정부와 대기업에서 마치 단톡방을 열어 언론사 전체를 컨트롤한다는 가정이 성립해야 한다. 모두 경쟁매체인데, 논리가 성립이 안 된다. 무엇보다 연예인의 열애설이나 각종 사건사고가 나온다고 이슈가 덮히지 않는다. 이슈는 계속 진행된다. 이 세상 모든 이슈를 덮을 만한 핵폭탄급 팩트는 전쟁외엔 없다. 디스패치의 보도가 나온 후에도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대한 회계감사 결과는 발표됐다.
음모론은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사건의 원인을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할 때 빛을 발한다. 배후에 거대한 권력이나 비밀스런 단체가 있다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자기 가설에 부합하는 사실만 믿고 맞지 않는 것은 쳐내는 확증편향의 오류가 자리잡고 있다. 물론 우리 국민들은 권위주의 시절을 통해 각종 용공조작 사건들을 목도한 학습효과가 있다. 정부나 기업이 발표하는 것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뭔가 거대한 음모가 똬리를 틀고 있다고 생각하도록 과거 권력자들이 잘못된 행동을 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또 일부 정치권에서는 음모론을 제기하며 각종 물타기를 하기도 한다. 나를 반대하는 거대 세력이 언론이나 권력과 짜고 나를 음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열애 기사는 열애 기사고 각종 정부, 대기업의 헛발질은 별도의 사안이다. 두 개는 별도의 이슈고 별도로 굴러가는 사건이란 얘기다. 모든 것은 음모론적 시각으로 바라보면 본질을 제대로 바라볼 수 없게 된다.
만일 3년 전 촛불집회에 참여했던 1,000만명이 넘는 국민들이 촛불집회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특정 세력의 돈을 받고 나온 것이라는 기획론을 목도하게 되면 어떤 기분이 들까. 세월호 유가족들이 고의 침몰설을 들으면 마음이 찢어질 것이다. 바로 핵심을 바라봐야 한다는 얘기다. 이 세상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안을 음모론으로 바라보고 그 과정에서 언론을 손쉽게 활용하는 행동은 이제 멈출 때가 됐다.